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912
아래 호랑총각님의 발제글에 대한 , 한반도 한사군이 사료적인 근거가 있다는 댔글입니다.
정말로 그 근거가 정확한지를 보겠습니다.
1. 삼국지의 왜열전
2.삼국지 동이전(동옥저 열전)(예(濊) 열전)
3.후한서 동이전(동옥저 열전)(예 열전)
4.한서 지리지
5.자치통감 진(晉)기 등에 한사군 위치를 짐작하게 해주는 기록이 있다는군요.
이것으로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6.삼국사기(우리나라꺼)
백제본기 온조왕
[서기전 11년]
온조왕이 마수성을 쌓고 병산에 목책을 세웠다. 낙랑 태수가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지난날 서로 사신을 보내고 우호 관계를 맺어 한 집안처럼 지냈는데 이제 우리 땅 가까이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니 혹 우리 땅을 야금야금 차지하려는 꾀가 아닌가? 만일 지금까지의 우호를 생각하여 성을 헐고 목책을 부순다면 의심할 바가 없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한번 싸워 승부를 내겠다.”
임금이 답하여 말하였다.
“요새를 만들어 나라를 지킴은 예나 지금이나 떳떳한 일이다. 어찌 이 일로 우호 관계에 변함이 있으랴? 당연히 집사(태수)가 의심할 일이 아니다. 만약 집사가 강함을 믿고 군사를 일으킨다면 우리도 대책이 있다.”
이 때문에 낙랑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
신라 유리 이사금
[서기 40년]
화려현과 불내현(낙랑군 속현) 사람들이 공모하여 기병을 끌고 신라의 북쪽 국경에 쳐들어왔다.
삼국사기 고구려 미천왕
[서기 314년]
미천왕이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공하였다.
윗의 문장에서, 낙랑군의 위치를 대략 짐작할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백제본기 온조왕
[서기전 11년]
온조왕이 마수성을 쌓고 병산에 목책을 세웠다. 낙랑 태수가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현 주류사학에서는 삼국사기의 '마수성'이라는 지명으로서 한반도에 위치비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삼국사기 지리지를 보면 마수산, 마수성은 미상지명으로서 그 지명의 위치를 알 수 없다고 나옵니다.
즉, 본분의 지리적 위치는 삼국사기본문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것이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835&cid=49627&categoryId=49627
(삼국사기 지리지, 미상지명, 4번째문단 , 아래에서 두번째와 세번째 문장)
후산(候山) 미천(美川) 단웅곡(斷熊谷) 마수산(馬首山) 장성(長城) 마미산(磨米山) 은산(銀山) 후광(後黃) 영류산(嬰留山) 소수림(小獸林) 독산(禿山) 무려라(武厲邏) 대부현(大斧峴) 마수성(馬首城) 병산책(甁山柵) 보술수(普述水) 봉현(烽峴) 독산책(禿山柵) 구천책(狗川柵)
즉, 정사인 한서, 후한서, 삼국사기를 통해서 본래 고조선이 요서지방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사료가 너무 적어서 고조선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는 주류사학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것도 알 수 있지요.
추가로 이후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 양나라의 '양직공도'를 통해서도
위의 사서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百濟舊來夷 馬韓之屬 晋末 駒麗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晋
백제는 옛날의 래이(來夷)로, 마한(馬韓)의 속국이었으나, 진(晋)나라 말에 구려(駒麗)가 요동과 낙랑을 약유(略有)하자 (백제) 역시 요서 진
平縣 自晋已來常修蕃貢 義熙中其王餘㙉 宋元嘉中其王餘毘 齊永明
평현(晋平縣)을 차지하였다. 진(晋)나라 이래로 항상 번공(蕃貢)해왔다. 의회(義熙) 연간 중에 그 왕인 여전(餘㙉)이, 송(宋)나라 원가(元嘉) 연간 중에는 그 왕 여비(餘毘)가, 제(齊)나라 영명(永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