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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18 14:05
[한국사]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던 여몽전쟁 기간.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3,226  

보통 사람들이 한민족 역사 중 조선 시대를 가장 무능력하고 가난하고 살기 안 좋을 때로 생각하고

고려를 그 위로 치며 훨씬 좋았던 때로 막연히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려 초기면 몰라도 특히 후기엔 그냥 지옥 그 자체였죠.

몽골군의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했던.... 확실히 북방 민족들이 야만적이고 잔인하긴 함.



蒙人 漬薪人膏厚積 縱火攻城 灌水救之 其火愈熾
몽고 군사가 또 나무에 사람 기름을 적시어 두껍게 쌓고 불을 놓아 성을 공격하므로 물을 부어 그것을 구하려 하였더니, 그 불이 더욱 성하였다.

위에서 언급된 '사람 기름'이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여 그 몸에서 기름을 짜냈다는 것.




합단(哈丹, 카단)의 병사 수만 명이 화주(和州)·등주(登州) 두 주를 함락시킨 뒤 사람을 죽여 양식으로 삼았으며 부녀를 잡으면 윤간한 후에 포를 떴다.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보내어 이들을 막았다.

부녀자를 잡아 강.간하고 죽이거나 또는 산채로 포를 떪 ㅎㄷㄷ 당하는 고려인들의 고통과 비명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 사람을 죽인 후 양식으로 삼았다는 것에 보아 포를 떠서 먹었다는 소리. 

바로 카단의 침입 당시인데, 사람을 잡아서 강.간하고 포를 떠서 잡아먹는 부대가 무려 11년간 고려 땅을 휩쓸며 활개 침.




현실 지옥이 온 고려 땅에서 펼쳐지는 동안 강화도에선 풍악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瑀營私第(우영사제) : 우가 제 집을 짓는데,

皆役都房及四領軍(개역도방급사령군) : 도방(都房)과 사령군(四領軍)을 모두 부역시켜

船輸舊京材木(선수구경재목) : 배로 옛 서울 송도의 재목을 실어 오고,

又取松柏(우취송백) : 또 소나무ㆍ잣나무들을 실어다

多植家園(다식가원) : 집의 동산에 심은 것이 매우 많았다.

人多溺死(인다닉사) : 때문에 사람이 많이 빠져 죽었다.

其園林廣?(기원림광무) : 그 원림이 넓기가

無慮數十里(무려수십리) : 무려 수십 리였다.


섬에 갇힌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있는데 강화도에서는 빙고에서 시원한 얼음을 꺼내 먹고 백성들에게서 마지막 한톨 남은 쌀마저 수탈하고 최씨네 집 후원에는 저 멀리서 가져온 잣나무가 그 풍채를 당당히 드러냅니다.






五月(오월) : 5월에

崔怡(최이) : 최이가

宴宗室(연종실) : 종실의

司空已上(사공이상) : 사공(司空) 이상과

及宰樞於其第(급재추어기제) : 재ㆍ추들을 위해 그 집에서 잔치하였다.

置彩帛山(치채백산) : 이 때 채색 비단으로 산을 만들어

張羅?(장라위) : 비단 장막을 두르고

中結?韆(중결추천) : 가운데 그네를 매었는데,

飾以文繡綵花(식이문수채화) : 문수(文繡)ㆍ채화(綵花)로 장식하였다.

以八面銀?貝鈿(이팔면은구패전) : 또 팔면(八面)을 은단추와 자개로 꾸민

四大盆(사대분) : 4개의 큰 분(盆)에

各盛氷峯(각성빙봉) : 각각 얼음 봉우리가 담겨 있고,

又四大樽(우사대준) : 또 4개의 큰 물통에

滿揷紅紫芍藥(만삽홍자작약) : 붉은 작약과 자줏빛 작약

十餘品(십여품) : 10여 품(品)을 가득히 꽂았는데,

氷花交映(빙화교영) : 빙화(氷花)가 서로 비치어

表裏燦爛(표리찬란) : 겉과 속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였다.

陳伎樂百?(진기악백희) : 기악과 온갖 잡희를 베풀고,

八坊廂工人(팔방상공인) : 팔방상(八坊廂)의 공인(工人)

一千三百五十餘人(일천삼백오십여인) : 1천 3백 50여 명이

皆盛飾(개성식) : 모두 호화롭게 단장하고

入庭奏樂(입정주악) : 뜰에 들어와 풍악을 연주하니,

絃歌館鼓(현가관고) : 거문고와 노래와 북과 피리의 소리들이

轟震天地(굉진천지) : 천지를 진동하였다.

八坊廂(팔방상) : 팔방상에게는

各給白銀三斤(각급백은삼근) : 각각 백은(白銀) 3근씩을 주고,

伶官(령관) : 영관(伶官)과

兩部伎女(량부기녀) : 양부(兩部)의 기녀(伎女)와

才人(재인) : 광대에게도

皆給金帛(개급금백) : 각각 금과 비단을 주니,

其費鉅萬(기비거만) : 그 비용이 거만(鉅萬)에 달하였다.


고려 내륙에서는 내 딸과 내 마누라가 몽골군에게 강.간당하고 산채로 포를 떠져 잡아먹히고 시체의 기름마저 쥐어짜지고 있는데 최씨 집의 축제에서는 미녀와 광대와 악공이 1300명이 모여 중국 천자도 부럽지 않은 무릉도원의 잔치와 주지육림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조선 세우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듦..ㅎㄷㄷ 


조선시대는 평화시기도 길고 먹을 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풍족했던 상당히 살기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후기로 갈수록 평화에 찌들어 얕잡아 보던 이웃 국가에게 짓밟히는 역사가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조선은 시스템적으로도 매우 선진화되어 있었고 괜찮았던 국가였죠.

고려의 부패와 조선의 부패는 그 정도가 비교 불가네요 ㅎㄷㄷ 그리고 고려말 백성들의 삶은


아마 한민족 역사상 최악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리고 임진왜란을 제일 최악의 전쟁으로 뽑는 분들이 계시는데 


임진왜란은 초창기 조선이 쭉쭉 밀렸을 시기엔 온 국토가 유린당하긴 했지만 딱 그때뿐입니다. 


7년 전쟁 중 실제로 교전했던 기간은 매우 짧으며 교전을 하지 않을 때 조선군이 지키던 영역의 안쪽에 있던 백성들은 안전을 보장받았습니다. 


임진왜란 7년간 일본군이 조선 국토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던 건 개전 첫 해 딱 한 번뿐입니다. 게다가 일본군은 보급도 x망이이었죠. 먼치킨 장군 이순신 장군님 때문에 보급선은 모두 수장. 


반면 여몽전쟁 당시 몽골군은 고려 땅을 무려 11년간 휘젓고 다닙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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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돌 16-11-18 14:15
   
개인적으로 조선이 안 세워지고 고려가 쭉 이어져 왔으면

근대화는 빨리 됐을텐데
     
아스카라스 16-11-18 15:11
   
고려가 조선보다 개방적이어서요??
          
햄돌 16-11-18 17:21
   
고려는 전세계랑 교역했음
               
mymiky 16-11-18 21:52
   
고려가 혼자 잘나서 전세계랑 교역했다고 한다면, 무리수 입니다.

대외내적인 배경을 잘 살펴볼수 있어야 합니다.
고려때는, 아랍상인들의 진출이 활발했고, 몽골제국의 개방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려가 조선보다 개방적이라, 근대화가 빨리 되었을텐데-라는 주장 자체가 어폐가 있어요.

개방을 빨리 한다고 근대화라? 단순히 서양문물 좀 받는거라면?
중국이 누구보다도 더 빨리 근대화 되었어야죠?
중국만큼 서양국가들이 자진해서 자기 문물 주고 교역하려고 했던 아시아 국가 드뭅니다.

베트남의 경우엔 천주교 포교까지 허락해주는 개방성을 보였으나,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하고, 하와이의 경우에도 고대로 따 먹힙니다.

아시아에서 일본과 태국만이 선방했는데, 태국이나 일본이나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했고, 그들의 근대화 과정이 상당히 드문 예시일뿐..
촐라롱콘 16-11-18 14:53
   
본문 내용 중간에 보이는 합단(카단)의 침입은 몽골계통의 침입이기는 하지만....
시기적으로 몽골(원)에 예속된 이후인 충렬왕 시기 1290~1291년 사이에 벌어진 전란으로서....
이는 고려 고종~원종 당시의 몽골침입(여몽전쟁)과는 시기적으로도 몇 십년 후에 일어난
전란일 뿐만 아니라 여몽전쟁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전혀 다른 침략입니다.

그리고 합단적의 고려침입은 1년 정도 지속되다가 쿠빌라이 휘하의 원나라군 1만여명의
원조를 받아 고려에서의 전란은 종식되게 됩니다.

합단(카단)의 고려침입은.... 당시 쿠빌라이의 만주지역에 대한 중앙집권화에 대항하여
당시 만주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칭기스칸 동생들의 후손들인 동방3왕가가 이에 반발하여
칭기스칸의 막내동생인 테무게 옷치킨의 후손인 나얀(내안)을 중심으로 난이 일어났다가....

나얀의 난이 원나라군에게 진압되고 나서 후속으로 칭기스칸의 또다른 동생인 카치운의 후손인
합단(카단)이 난을 일으켰으며, 한때 이들이 고려까지 침입했던 것입니다.
     
흑요석 16-11-18 17:33
   
아~~~ 그렇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칭기스칸 동생 후손 새끼들 나쁜 새끼들이네요 ㅠㅠ
촐라롱콘 16-11-18 15:07
   
위의 합단(카단)의 침입에 해당하는 사실관계를 제외하고......
흑요석님이 서술하신 위 본문의 견해에 저도 개인적으로 대부분 동의합니다.

사실 조선시기 500여 년 동안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 할 만하며....
국가 단위의 생산력, 인구증가 측면에서도 이전 시기와 비교해서는 훨씬 압도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조선시기의 기록이 가장 많고 오늘날과 가장 가까운 시기이기 때문에, 이와 더불어
왕조멸망 당시의 부조리한 실상 또한 가장 잘 드러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가장 큰 배경이 되는 요인이라고 봅니다....!!!

물론 호국의 측면에서, 민족의 영광의 측면에서 보자면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전반기가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일 수는 있지만.....

사실상 해당 시기의 지배층이 아닌 일반 평민 이하 신분계층의 입장에서 보자면
끊이지 않는 전란으로 인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노동력,군사력,물자를 끊임없이
징발당하는 고달픈 생활은 물론 가족의 안위까지 늘상 위협받는 생활을 하느니.....

조선시대의 국가위상은 고려전기보다 다소 떨어질지언정, 일반 평민의 입장에서는
탐관오리의 수탈만 없다면 그런대로 평화롭게 본인과 가족의 안위는 보장받으면서
사는 것이 휠씬 낮다는 판단이 듭니다....!!!
     
흑요석 16-11-18 17:39
   
좀 더 디테일하게 풀어서 잘 설명해주셨네요.

저도 님과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백성들 입장에선 몇몇 전란을 제외하고는 조선시대가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았던 시기가 아니었을지..
고독한늑대 16-11-18 18:39
   
고려는 여몽전쟁 이후 병력이 삼별초로 전력이 이분되면서 자주성을 잃은것이죠..
또 합단의 침략 같은 경우는 여몽 전쟁이후 여몽연합군으로 일본을 치려다가 풍랑에 전멸하고 거의 군을 상실한 상태가 되어버려서 거의 군사적으로는 식물국가가 되어버린 상태가 되어버린것이죠..
비좀와라 16-11-18 20:29
   
징기스칸은 징기스칸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예수가이에게 납치되어 결혼 한 후에 태어나서 징기스칸은 예수가이의 친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징기스칸은 몽골족이 아니라 메르키트 혈통인데 이 메르키트가 바로 말갈입니다.

징기스칸이 자무카에게 쫒기고 간신히 숨을 돌렸을 적에 자신의 곁을 지킨 징기스칸의 진정한 충신들은 몽골족이 아니라 고려족 이나 기타 타 부족 사람들 이었고 소수의 몽골계만 자신을 따랐을 정도로 몽골에선 인정 받지 못했죠.

쿠빌라이는 징기스칸의 적통입니다. 몽골의 황제이긴 하나 메르키트 혈통이라는 것이죠. 고려역시 말갈 혈통입니다. 말갈은 우리민족이 아니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논쟁하기 귀찮아서 패스 하고 고려는 일단 쿠빌라이 왕실과 결혼동맹을 맺음 으로서 메르키트 계열이 되는 것이죠.

더군다나 테무게는 징기스칸의 혈통을 무시하고 반란을 꿈꾸던 왕가고 고려 왕실은 쿠빌라이와 부계혈통과 같으며 결혼 동맹도 맺은 왕가라 동방왕가 보단 윗선의 왕가라야 합당하죠.
     
그노스 16-11-19 02:32
   
님의 글을 읽으면 내용 속에 항상 어떤 큰(?) 그림을 그리시더군요.
이번에는 사실상 징기스칸 = 메르키트 = 말갈 = 한국인...
발제글에 대한 댓글을 올리시며 발제글과 크게 상관없는 내용을 종종 포함 시키시는데 그 내용이 사실은 엄청난 주장...
솔직히 다빈치 코드를 찾는 기분입니다 ㅋ

징기스칸의 어머니 호에룬의 경우 확실히 전 남편이 메르키트족이었지만, 씨족사회에서 출생자가 '다른 씨'라는 의혹이 있는건 분명 치명적이고 회피할 수 없는 부류의 것인데다, 나름 산달을 따져가며 정확히 구분하려 했던 관습이 있었는데도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적자 인정을 무시한채 추측을 근거로 논리를 펴시는건 오류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징기스칸의 장자인 주치의 경우엔, 당대에 주변에서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징기스칸도 마음을 돌려 그는 결국 변방으로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징기스칸이 자무카에게 쫓기었을 때, 소수의 몽골계만 그를 따랐던 것이 마치 그의 출생에 대한 의문 때문인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테무진(징기스칸)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 예수게이가 독살 당하고 몽고 일족에게 버림받다시피 했을때, 정녕 그가 예수게이 혈통이 아니었다면 왜 그의 근친들이 그와 끝까지 길을 함께 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왜 다수 몽골족이 징기스칸을 따르지 않았는지는 징기스칸의 패전후 그와 자무카와의 세력 비교를 해보시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를 복잡하게 해석하시며 의미를 부여하시는건 좀...

솔직히 님의 주장이 맞다고해도 그 아비가 본인의 자식임을 인정했고 이름까지 직접 지어주었으며, 주변에서도 별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게임 끝난 것이지요.
징기스칸은 메르키트족이 아니라 보르지긴족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 조상 혈통 중에 어느 왜구가 끼어들었을지는 모른다고 해도 그 당시 가계 세습은 대내외적인 인정이 우선임(절대적)을 고려한다면 님의 징기스칸의 출생에 대한 지적은 별 의미가 없는 듯이 들리는군요.
이미 배 떠났습니다...

그나마 오늘은 이렇게 주장 안하시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인 = 몽골족 = '예수'게이(징기스칸 아버지) = 예수(기독교)

예수는 어느 나라 사람??
          
타샤 16-11-19 06:52
   
결론은 예수는 게이다?
     
촐라롱콘 16-11-19 10:00
   
그노스님이 앞서 지적하신대로 메르키트가 말갈이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에서 근거한 것입니까.....???

당시 몽골지역전체를 놓고 보았을때(서로는 알타이, 동으로는 대흥안령
북으로는 바이칼, 남으로는 고비사막을 당시 몽골세계의 범위로 정했을때)

분명 메르키트족은 바이칼부근의 초원지대와 삼림지역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잡아 몽골고원 중앙인들에게는 다소 멸시를 받았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당시 몽골초원 유목민 입장에서는 삼림지역인들을 '숲의 사람들'이라는 멸칭을
사용하며 대했는데.... 메르키트부는 그 경계에 위치한 부족이었고.....

메르키트부보다 더욱 북쪽인 바이칼과 그 북쪽일대를 본거지로 하는 오이라트부를
포함한 몇몇 부족들은 완연한 삼림지역인들이므로... 당시 몽골유목민들에게는
아웃사이더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리고 말갈족들(현 만주지역과 연해주-오호츠크해 연안일대를 포함한 동시베리아 남부)
역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들 입장에서 보자면 말갈족 대다수의 본거지가
삼림지역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메르키트부와의 공통점이 조금은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메르키트와 말갈을 한자음역의 변천과정을 적당히 섞어 명칭이
변천되어 온 과정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사실 당시 몽골지역과 만주-시베리아일대 지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태환경이 악간 비슷하고, 얼핏 명칭이 그럴듯하게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메르키트와 말갈을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봅니다. 

우선 지역적으로(적어도 1~2천km 이상) 시기적으로(적어도 300년이상)의 큰 차이가 나며
메르키트와 말갈의 당대 시대에 불리웠던 정확한 음가와 발음을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위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더구나 말갈이라는 명칭은 남부퉁구스계 제민족들을 칭했던 여러 명칭들(숙신-읍루-물길-
말갈-여진-만주) 가운데 민족적인 특성보다는 지역적인 총칭의 성격이 가장 강했던
명칭입니다.

당시 중국인들에 의한 타칭이었던 말갈의 범위는 현 만주 대부분지역과 연해주,
오호츠크해 일대는 물론 심지어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캄차카반도 인근에까지 이르는
수많은 삼림부족들을 통칭해서 일컬었던 민족보다는 지역적 성격이 강한 명칭이었습니다.

따라서 말갈과 한국인들의 직계조상들을 동일시하는 것도 비약이라고 봅니다.
물론 현재 한국인을 구성하는 본 줄기가 아닌 여러 갈래의 잔 줄기 가운데 분명 말갈의
일부분도 흡수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겠지만.......
karin123 16-11-18 21:37
   
글쎄요 조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이 꼭 잘했다고만 하는 것도 좀..
고려는 확실히 무신정권이 많이 말아먹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공민왕을 통하여 자주독립과 개혁의지가 돋보였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뭐 명분은 잘 잡았습니다만, 나라를 다스리고 싶었다면 역성혁명을 굳이 욕심내지 않아도 됐었죠. 어느 나라나 황제나 왕을 대신하는 국상은 있는 법입니다. 헌데 그거가지고 굳이 이성계의 조선건국이 좋았다라고 하는 것도 좀 미묘하네요. 이후 고려왕조가 쭉 이어졌으면, 나름 개혁이 일어나 조선보다 선진화 됐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과 여몽전쟁을 비교하시다니, 시대상 차이가 날 뿐더러 당시의 몽고는 동시다발적으로 중원을 치고 고려를 칠 정도로 날고 있었습니다. 그리 전성기를 끌던 남송과, 군사력이 강했던 금나라조차 무너지는데, 부패해 빠진 고려가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임진왜란이요? 임진왜란이야 섬나라 일본 특성상 이순신 장군이 보급로 잘 끊어주어서 일본군도 갈팡질팡하고, 나름 얼굴마담 대군을 파병한 명의 개입 및, 조선군의 화력도 있어서 버텨낸 것이지요. 회담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죽지 않았어도 임진왜란도 어찌 됐을지 모릅니다.
     
그노스 16-11-19 00:18
   
글쎄요.
어차피 민주주의 할것 아닌 다음에야 역성혁명이 나쁠건 없다고 봅니다.
통일신라 입장에선 고려의 성립 또한 역성혁명과 크게 다를바 없었을테니...
문제라면 외세에 의한 지배가 문제이지, 한반도인에 의한 지배가 다른 한반도인에 의한 지배로 옮겨지는건...음

말씀하신 공민왕의 개혁도 북으로는 홍건적 남으로는 왜구 등으로 인해 그의 치세 말기나 직후에 이미 그 활력을 잃고 있었습니다.
공민왕의 사후 이인임 같은 인물로 인해 개혁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져 그의 국정농단, 민중수탈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기울고 있던 고려의 국운이 가속도로 떨어지고 있었지요.
그런 이인임의 사후, 이제는 또 누구에게 의지하고 살아야 되냐는 창왕의 애처로운 통곡은 덤...

몽골 침략이후 더욱 심화된 호족들의 불법 토지확장, 노비증대로 인해 국가가 휘청이고 있었는데, 몽골과 이어진 고려 왕실은 대부분 그들의 농단을 방임하듯 했던 반면에, 그것을 바로 잡은 정도전과 이성계의 전제개혁을 보아도 어차피 천년만년 지배 받아야하는 피지배층인 민중들의 입장에선 누구를 더 지지했을지...
역성혁명파에 의한 전제개혁의 역사적 의의가 분명 적지 않았다고 저는 보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계속되는 외적침입으로 인해 장군들의 군대 사병화가 심화되는 반면 왕권은 점점 허약해졌는데 왕실은 제대로된 군주를 배출해내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보통 제후나 장군들의 사병 증대화는 역성혁명을 이끌어내는 필연입니다.
고려말 장군들의 사병 증대는 사실상 왕조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역성혁명을 일으킨 이성계의 야욕만을 볼 것이 아니라, 역성혁명을 꿈꾸며 왕조교체를 추진한 그의 추종자들 중에 정도전이나 조준처럼 학식있고 진보적인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던 것을 본다면 그 시대가 그것을 요구했다는 하나의 근거가 되지 않았을지...

고려왕조가 계속 이어졌으면, 개혁이 일어나 조선보다 선진화 되었을 수도 있다고 님께서는 보시지만, 정황상 그렇게 되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이고, 왕조 교체가 일어날만한 시기에 적절히 이루어졌다고 저는 봅니다.
오히려 후세의 조선왕조에 대한 역성혁명이 너무 늦어진(일어나지도 못했지만) 것인 듯이 말입니다.

그냥 제 생각이 그렇네요.
타샤 16-11-19 06:50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몽골이 퍼트린 소문에 불과합니다.

우선 사람에게서 기름을 짰다는거...
굉장히 힘듭니다. 기름이 많은 돼지에서 기름을 짜내는것도 힘들어서 그냥 비계 덩어리를 기름처럼 썼었습니다.
하물며 사람에게서 그것도 당시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양민들에게서 기름을 짜내다뇨? 오징어포에서 물 1리터를 빼냈다는 말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이야깁니다.

또 인육을 먹었다는거...
몽골군은 육포와 우유(라기 보단 마유 죠...)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게 몽골의 기동성 원천이구요.
사람 인육을 말려서 먹으려면 상당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걸로 육포를 만드는것 역시 마른 오징어에서 물을 반리터 정도 짜냈다는 말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깁니다.


몽골은 자신들의 잔학함을 선전하고 다녔어요.
이 선전으로 적의 사기가 떨어지고, 얼른 항복하기를 바라는거죠.
대표적인 도시가 호라이즘이구요. 호라이즘은 완전히, 말살 당한 도시 입니다.

이 도시의 악명을 듣고 항복한 성은 거의 몽골의 성처럼 대접했습니다.
이것 역시 항복을 촉진하는 거죠...

반항하면 말살하지만, 항복하면 번영을 구가하게 해주겠다.... 라는 겁니다.
     
그노스 16-11-19 08:11
   
보통 유목민족들의 침략을 보면, 실제 잔혹행위보다 소문이 더 빨리 과장되어 퍼져 수비자의 자멸을 촉진한 경우가 있지만, 몽골의 경우엔 보통 소문과 부합되는 증언 기록들이 보입니다.
(유목민 잔학행위의 최강 보스 몽골)

몽골만이 아니어도 정복 유목민족의 경우, 보통 인간보다 가축(?)을 더 중요시한 기록이 보이고, 그것이 인간 포로일 경우엔 더할 나위가 없지요. 소중한 가축을 낭비하며 기름을 짤 것인지 포로에게서 짤 것인지...
그것도 인간 한 두명이 아니라 수십만에 달하는 인간의 사체라면 엄청난 기름이 나옵니다.

일반적인 학살현장에 대한 기록을 못보신 모양이군요.
보통 수백명의 사체로 이루어진 학살현장을 보면 사체들이 인간기름으로 이루어진 작은 연못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굳이 짜내지 않아도...

서구측 기록을 보아도 Jennifer L Hanson의 Mongolia 에서 The rise and fall of the Mongol empire 편을 보면, 몽골의 공성전의 경우, 백골로 언덕을 이루고 거리가 인간 기름으로 칠해졌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보입니다.
서구에선 보통 징기스칸의 군대가 중앙 아시아의 인구 30프로를 학살했다고 봅니다.

우리측의 구체적인 역사 기록을 보면,
蒙兵車積草木 輾而進攻 慶孫以砲車 鎔鐵液 以瀉之 燒其積草 蒙人却走 更創樓車及木床 裹以牛革 中藏兵 薄城底 以穿地道 犀穴城注鐵液 以燒樓車 … 蒙人漬薪人膏厚積 縱火攻城 灌水救之 其火愈熾 犀令取泥土 和水投之 乃滅 蒙人 又車載草 爇以攻譙樓 犀預貯水樓上而灌之 火焰尋息

『高麗史節要』 卷16, 高宗安孝大王 3, 辛卯 18년 9월
고려사절요 권16, 651쪽

몽고군이 수레에 초목을 쌓고 이를 밀어 진격하므로 김경손이 포차(砲車)로 쇳물을 녹여 쏟아 부어 그 쌓은 풀을 다 태우니 몽골 군사가 물러 달아났다. 다시 누차와 목상(木床)을 만들어 쇠가죽으로 싸고 무기를 그 속에 감추어 성 밑에 바짝 이르러 굴을 뚫으려 하므로, 박서가 성에 구멍을 내고 쇳물을 쏟아 부어 누차를 불사르고 … 몽고 군사가 또 나무에 '사람 기름'을 적시어 두껍게 쌓고 불을 놓아 성을 공격하므로 물을 부어 그것을 구하려 하였더니, 그 불이 더욱 성하였다. 박서가 진흙을 가져다 물에 타서 던지게 하였더니 이때에야 불이 꺼졌다. 몽골 군사가 또 수레에 풀을 싣고 불을 놓아 문루로 공격하므로 박서가 미리 물을 누 위에 저장하였다가 내려부으니 불이 곧 꺼졌다.
(아마도 본문에서의 인용글)

몽골인들의 인육 문제 경우, Giovanni Da Pian Del Carpini 라는 프란체스코 탁발수도사가 교황 이노센트 4세의 명으로 외교적 임무를 가지고 몽골제국을 방문했는데, 몽골이 공성전에서 인육을 위해 10명당 1명을 죽인 사건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구르미그린 16-11-19 21:00
   
어쨌든 몽골을 형제의 나라처럼 여기며 친근감을 표하는 한국인들은 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타샤 16-11-21 06:42
   
그냥 서북 공정인거죠.

중국을 침략한 만주족의 땅도 중국땅이다(라는게 동북 공정)
고려를 침략한 몽골의 땅도 한국땅이다 (라는게 서북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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