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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22 22:19
[한국사] 끝나지 않은 한국 고대사 논쟁
 글쓴이 : 호랑총각
조회 : 2,849  

 올해 주류사학의 계간지라고 할수 있는 2016년 역사비평 봄호에 강단사학이 비주류사학을 사이비사학이라고 규정하며 비판아닌 비난을 퍼부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121440461&code=94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10707001&code=960100

위 링크들을 참조하자. 한국 주류학계의 거물들은 다 어디가고 저런 새파란 학자(?)들을 내세웠는지

모르겠지만 젊다고 해서 반드시 새로울것은 없다, 그간 주류사학에서 꾸준하게 주장하던 것들뿐이다

오히려 더 퇴보했다는 느낌도 든다,

이 역사비평에 대응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주류학계에서도 이투데이에 기획기사 12편을 실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하자.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47829 0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47831 1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51231 2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54225 3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57380 4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60441 5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63869 6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70303 7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73026 8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75923 9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79010 10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81969 11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87073 12

이정도면 현재 한국 고대사에 대한 논쟁들이 전부다 정리되었다고 볼수 있다.

끝날것 같지 않은 평행선은  결국 만날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폐쇄적인 주류학계를 자꾸 토론과 논쟁의 장에 끌어 내야한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국민이 알게끔 하고 판단 할수 있게끔 하는것이 바른역사를 세우는 첫걸음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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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6-11-22 23:04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역사가에 따라 서로 견해를 달리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이 그것이다. 사실 자체는 역사가의 사관과는 관계없이 사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견해를 달리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역사가의 사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1919년 3월 1일에 3.1운동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은 사관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그 사실은 사관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성격 등에 대한 해석은 사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자체에 대해서 역사가가 견해를 달리한다면 그것은 그 사실이 정확하즤 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것은 결코 사관이 차이에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바로 잡는 노력을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 자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그 해석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상고사에서 쟁점이 되어 있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사실 자체이다. 이것들은 사실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사관의 차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사실 자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역사 연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민족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윤내현 <고조선의 강역과 사회> 중..

역사학자 본연의 임무는 역사적 문헌을 발굴하고 엄밀히 해석하는 데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역사학자는 잘 정리된 정사에서부터 사소한 문서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문헌을 다뤄야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일기, 타다가 남은 문서 조각에 있는 한줄의 문장, 깨진 토기 조각에 새겨진 한 자의 글자까지 엄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한 문장, 한 글자가 역사 해석 전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헌을 포기하거나 문헌을 경시하는 역사학과 역사학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주류 사학계, 특히 고대사를 다루는 주류사학자들은 입만 열면 문헌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고대사에 관련된 사료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실 그 자체'를 확인할 정도의 사료는 있습니다. 충분합니다.

예 ) 고조선 관련 사료

한국사료 :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고려사 응제시주 세종실록 동국통감 성호사설 동사강목 .. 등
중국사교 :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통전 만주원류고 요사 대명일통지 관자 산해경 수경주 여씨춘추 염철론 전국책 설원 .. 등

사실 그 자체를 증명할 사료는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가생이유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 고대사에서 쟁점이 되어 있는 부분은 사실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의견을 달리할 수 없는 부분.. 팩트란 말입니다.
만약 사관에 따라 사실을 왜곡한다면 그것은 혼이 비정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사군을 포함한 주류사학계와 비주류사학계로 갈리는 고대사의 쟁점들에 있어서
어느 쪽이 왜곡을 하고 있고 어느 쪽이 문헌을 철저히 고증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있었다는 사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네이버에 삼국사기라 치면 지식백과에 삼국사기 완역본이 있습니다. 한글로 번역 된거요
한자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래 글은 제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는 한사군 관련 기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시간순서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일일이 찾기 어렵다면 보시길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2700&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C%AC%EB%A7%88%EB%9F%AC%EB%B8%8C&sop=or&page=2

답글 환영합니다.
     
mymiky 16-11-23 07:06
   
문헌은 이미 많고요-.-
지금 이 시점에도 유물도 계속 발굴되고 있어요..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논쟁은 역사학계의 쉰 떡밥일뿐입니다;;
차라리, [한사군의 성격]가장 오래 남아있던 [낙랑군]에 대한 연구가 최근 추세죠.

윤내현 교수는 한국 고대사 전공도 아니고, 중국사 전공이신데.
80년대부터 대륙조선설을 주장하시고 있으시죠.

80년대는 한창 민주화 열기로
대학내 학문 자유를 추구하는 분위기였고
실제로 환단고기같은 책들이 제일 잘 팔리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다양하고 파격적인 주장을 할수 있었던 것도
자유에 대한 갈망과 민주화 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전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말하면
식빠가 된다거나, 非(비)국민이라 욕먹는 분위기는 무척 안타깝군요.

누구 주장대로, 한국학계가 식빠라서가 아니라
당연히 한국학자들도 한국인인데, 한국에 유리한 사실을 숨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학자적 양심과 팩트가 있는데도
자신의 바람을 사실처럼 우겨서는 안됩니다.

마치, 위안부란 존재 자체가 없어져야, 일본이 아름다운 나라가 된다고 믿는
자칭 애국하는(?) 우익학자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님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요즘 연구 동향은 점점 [한사군의 재한반도설]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한국학계와 외국학계 모두 그렇습니다.
문헌적 검토+ 유물입증으로 인한 고고학 증거로써 말입니다.

걍.. 역사는 역사일뿐이지만
그럼에도 꼬롬한 심정인 것은 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한 패권주의가 점점 느껴지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의 정치 불확실성으로 인한 현실이,

차후,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우려한다면,
한사군이 북한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심적으로(?) 용납할수가 없다고 느끼는
그런 마음으로 인한 것이 크기 때문입니다.
          
구름위하늘 16-11-23 12:49
   
한마디만 하면
"요즘 연구 동향은 점점 [한사군의 재한반도설]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 아니라,
아직도 낙랑군은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이 남은 것 아닌가요?
나머지 3개군(쩝....)은 얼마 유지 못하고 옮기거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낙랑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현도 한반도에 계속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요즘 학설인가요?
               
mymiky 16-11-23 14:45
   
님 말씀대로, 낙랑군 빼곤 일찍 정리되었고, 낙랑군이 400년정도 존속합니다.

한사군의 성격은,
고조선의 유민들을 관리하기 위해서인데..

로마제국의 식민도시 건설과 비슷한 면이 있고,
이것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는거 같습니다만..
-(물론 이때 식민이란 표현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의미랑은 좀 다르고요.)

낙랑군의 주민들은 소수의 한나라 이주민과 대부분의 고조선인들이였고

(일제시대 관료들은 본토의 일본인들이나, 백성들 대부분은 조선인들이였고,
또 일본군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있었던 것처럼, 낙랑군도 그랬을 겁니다.)

물론, 고대의 민족개념이 오늘날과 똑같다고 주장은 안 하겠습니다-

고대에는 비행기나 자동차도 없는 시대라, 본토로부터 교통이 불편하고, 변방을 지키는데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점차 낙랑군은 낙랑 고유의 색을 띄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나라가 망한뒤로도, 낙랑군이 지속되는데는 이같은 이유가 큽니다.
본토 한나라와는 다르게 가는거죠. 이를테면 일본롯데가 망해도, 한국 롯데는 별 상관없이 안 망하고 계속 있을수도 있고요.. 예시가 좀 이상한가? -.-;;

어쨎든, 세월이 갈수록 혼혈도 생겼을꺼고, 그 아이들은 한나라인이란 정체성보다 한반도계통의 정체성이 생겼을겁니다.

(본토 일본인들과 달리,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들은 또 조선에 대한 감정이 다를수 있는거고, 그게 몇대를 더 흘러내려가면, 걍 한국인 되듯이 말이죠)

(비슷한 예가, 스페인 혈통이나 남미에서 나고 자라, 유럽본토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 크레올이 그 예시가 될런지요? )

(신라의 경우에도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달랐는데 흉노계통이다 뭐다 말이 많은, 이주민 세력이고, 백성들은 진한, 변한인들이듯..)

뭐, 하여든,, 고대시대엔 오늘날 같은 민족개념이 확립되기 전의 일이고,
결과적으론 낙랑인들도 우리의 조상의 일부라 생각하며

한나라(한나라 멸망후엔, 다른 중원의 여러나라)와의 무역, 교역의 조계지(租界地)적 성격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밥밥c 16-11-23 15:57
   
그런데, 그러한 낙랑군의 이야기가 정작 정사의 내용에도 그렇게 적혀있는지

 확인해 본적이 있으신지요.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 없나요?
                         
mymiky 16-11-23 16:13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밥밥c 16-11-23 16:45
   
사서, 즉 정사에 그렇게 적혀있는가를 직접 확인하시고 적은것인가의 여부입니다.

 정말로 본인이 확인해보셨는가에 대한 것이죠.
                    
촐라롱콘 16-11-23 16:11
   
한반도 서북부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낙랑군과 낙랑군에 속한

25개 현의 태수와 현령들은 대부분 중국출신.... 그 가운데서도 낙랑의

상위 행정구역인 한나라 유주출신들이 주로 차지하기는 했지만.....

군-현보다 하위단계인 각 지방의 속리들은 옛 고조선의 재지세력들이 주로

차지했습니다.

마치 일제시기라 하더라도 총독과 정무총감을 비롯한 총독부 고위급은 일본인이

차지하더라도, 지방 군수들의 상당수와 면장 이하의 대부분은 조선인이 차지했던

것과 비슷한 측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낙랑이 그나마 계속 중국의 일부라는 정체성을 흐릿하게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나라 멸망 이후 중국대륙의 정세불안으로 지속적으로

상당수의 유민들이 낙랑으로 흡수되어 중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의

인구가 낙랑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낙랑이 지속된 기간이내에서는

큰 폭으로 줄어들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낙랑은 중국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구 고조선의

요소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국본토 입장에서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적으로는 이질적인 색채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흑요석 16-11-23 16:56
   
낙랑의 중국 출신들이 한나라 한족들이었나요?????
                         
꼬마러브 16-11-23 17:01
   
썰을 대지 말고 문헌사료를 대라고요 촐라롱콘님아.
그렇다면 한나라가 정복했던 대표적인 두 국가
남월과 위만조선..
둘다 한나라에서 군현을 설치하였는데
왜 조선에서만 그런 독특한 성격의 색채가 나왔단 말입니까?
그리고 님은 한나라군현의 태수에 불과한 자가
왕이라는 호칭을 쓰고 외국과 혼인동맹을 맺고 다른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한나라 군현 중에서 이처럼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 곳은
공손씨세력밖에 없어요.
                         
촐라롱콘 16-11-23 17:09
   
정확히 한족들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나라 중앙조정인지, 아니면 지방의 유주차원인지

관리를 임명한 주체가 누구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나라 시기 낙랑으로 부임을 명받은 한 하급관리가 깡촌 중의 깡촌인

데에다가 한 번 발령받아 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낙랑으로의 발령을

앞두고 실의에 빠졌다는 기록을(물론 한문해독능력이 떨어지는 본인의 역량상

1차사료는 아니고 번역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본 기억이 나네요~~~
                    
호랑총각 16-11-23 16:38
   
ㅋㅋㅋㅋㅋ 실증주의 한다며 개소설을 쓰고 있네요 식빠들의 목소리는 하나 같아서 누가하든 똑같은 소리죠.  정말 잘 훈련된 체계적 조직이예요. 이견이 있을수 없습니다.
낙랑군에 의한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것이 자기들도 찝찝했는지 낙랑군의 성격을 규명한다면서 아무 근거도 없는 소설 써대는거 듣기 역겨워요.
                    
꼬마러브 16-11-23 16:58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허.. 참.........

님 저랑 문헌으로 토론하실래요?
제가 먼저 댈까요? 그 쪽이 먼저 댈까요?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말하는 사료
'단 한줄' 이라도 찾아와보세요.

적어도 님은 삼국사기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촐라롱콘 16-11-23 17:27
   
그 삼국사기 기록에 신라와 백제가 낙랑과 충돌 또는 교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아닌데..... 그렇다면 한반도 중남부에 위치한 신라와 백제가

적어도 낙랑과의 교류관계는 일단 제외하더라도 적어도 충돌하려면

낙랑이 한반도 북부에는 위치해 있어야 앞뒤가 맞는 것 아닌가요.....???
.
.
.
그리고 앞서의 꼬마러브님의 질문에 해당시기와 지역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잘 알지 못하지만....굳이 답을 하자면.....

한나라 이후에도 공손씨 세력과 위나라에게 낙랑이 예속되었고

공손씨와 위나라가 낙랑을 매개로 하여 한반도에 일시적으로 침략의

강도가 높아진 시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한나라 멸망 이후의 낙랑은 사실상 반독립적인 지방정권의

성격을 강하게 띄게 됩니다. 더구나 위나라 멸망 이후에는 독립적인

성격이 더욱 강해져 사실상 낙랑의 말기시기라 할 수 있는 5호 16국

시기가 되면 낙랑은 독립왕국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성격을 지니게 되지요

~~~ 사실상 낙랑은 멸망이전까지 적어도 인구수와 규모로 볼때

당시 한반도 어느 세력과 비교해서도 우월하거나, 적어도 유력한

규모였으니까요......

이미 기원전의 낙랑이 4~5만호에다가 30만 규모였는데, 삼국지 기록인지

어느 기록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보다 200년 정도 후의 고구려 인구조차

아직까지도 3만호에 불과했다고 하니 200년 전의 낙랑보다

규모면에서 적었다는 논리지요.....

그리고 낙랑의 왕 칭호는 실제로 낙랑에서 그렇게 칭했는지....

아니면 낙랑 말기에 이르러 사실상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인 낙랑의

지배자에 대해 주변에서 편의상 왕으로 칭했는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mymiky 16-11-23 17:48
   
개인적으로,
삼국시대의 많은 사료들이 전란으로 소실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존하는 최고(古)의 사서가 고려때 나온 삼국사기인데,
김부식 본인 또한 삼국사기를 쓸 때
참고할 사료가 더 많았다면 좋았을꺼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적어도 삼국사기가, 당시로써 200-300년 앞서 쓰여졌더라도
좋았겠지만.. 이민족의 침입이 참으로 뼈아픈 결과가 아닐수 없습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동시대였던
중국의 정사인 [삼국지](소설인 삼국연의 말고요)와
교차검증하여, 몇몇 부분에서 안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고대사료가 적고, 중국이나 일본의 사서 등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쓰인 기록들을 찾아 그것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삼국사기는 몇백년뒤 고려때 나온거고, 중국의 삼국지는 당시의 기록물이다보니, 아무래도 당대의 기록에 좀 더 맞지 않나? 싶어서 나온게

삼국사기의 수정론 입니다.

알아두어야 할 점은, 수정론과 불신론은 다른 개념입니다.
삼국사기도 읽긴하되, 어느정도 삼국지와 비교해 참고한다는 개념입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모두 불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중국의 삼국지는 모두 맞는거냐? 물을수도 있을텐데..
중국은 땅이 매우 커요.. 즉, 땅파서 유물 나오는 빈도가 우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린 사료 하나 부족해서 쩔쩔매지만.. 중국은 사료가 전란중에 불타도
이 동네서 불탄게, 저 동네에서 나오기도 하고, 땅이 커서 그런점은 우리보다 유리합니다.

중국의 고고학적 성과로 인해, 삼국지 기록물들이 어느정도는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점도 있다는 것입니다.
          
꼬마러브 16-11-23 16:54
   
마이미키님 평소에 지식이 풍부하신줄 알았는데 상고사에 대해서는 영..이군요.

전두환정권 시기에 일어난 '교과서파동' .. 마이미키님께서도 잘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강단고대사학계의 거물급 원로학자들을 국회 공청회에 불러 드잡이를 한 사건이지요. 당시 재야사학자들이 강단고대사학계가 식민사학을 옹호한다며 질타를 퍼부었습니다. 이 재야사학자들이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나요?
민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신군부독재세력의 앞잡이로 나섰습니다. 전두환정권의 개가 됐다고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애초에 전두환정권이 관제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에서 영화에 이르기 까지요. 3D 정책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중 '역사'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교과서 파동 이후로 우리 사회에서 휘몰아친 고조선, 고구려 다물 이야기는 우리 국민을 한국 고대사로부터 영영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군대에서 기업에서 학교에서 억지로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것은 국사가 아니라 정당성 없는 군부독재를 합리화하려는 기만과 폭력일 뿐입니다. 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라도 한두 번입니다.
즉 전두환정권이 전단하는 고조선 이야기는 그저 허울만 좋은 거짓 이야기 혹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바보 만들기 수작일 뿐이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21세기가 됐습니다. 당시 재야사학자들과 강단사학자들은 하나가 됐습니다.
환빠는 식빠입니다.
그리고 이 강단사학계에서는 지금에 와서 피해자코스프레를 하지요.
진실은 영영 숨긴채 말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환단고기는 신빈성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차검증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댓글에 썼죠?

역사학자 본연의 임무는 역사적 문헌을 발굴하고 엄밀히 해석하는 데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역사학자는 잘 정리된 정사에서부터 사소한 문서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문헌을 다뤄야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일기, 타다가 남은 문서 조각에 있는 한줄의 문장, 깨진 토기 조각에 새겨진 한 자의 글자까지 엄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한 문장, 한 글자가 역사 해석 전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헌을 포기하거나 문헌을 경시하는 역사학과 역사학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님도 인정하셨잖아요?
"고조선 관련 문헌은 많다"
그런데 문헌이 없다고 징징대는 쪽이 어디입니까?
제발 팩트를 대세요 팩트를
문헌은 충분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보자고요. 철처한 문헌사료를 기반으로
          
꼬마러브 16-11-23 16:56
   
또한 윤내현이 대륙조선설을 주장했다는 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윤내현은 고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라는 책을 짓기는 했습니다만. 이는 언제까지나 난하 동쪽입니다. 허황되지 않아요. 사료로 확인됩니다.
설마 대륙조선설의 조선이 고조선이 아니라 근세조선을 말하는겁니까?
윤내현이 그런 주장을 했다고요? 자료 부탁드립니다.
윈도우폰 16-11-23 09:58
   
팩트는 해석 이전의 것이라 일견 가치중립적인 듯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지요. 역사는 고고학이 아니라 하지만...고고학이란 것도 나름의 해석관점이 있다는 점에서 가치중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사관을 배제한 팩트의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철학의 인식론과 유사...인식한다는 자체가 인식의 들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그 인식의 틀은 학습을 통해 형성되는데 여기에 목적성을 띠는 교육이 개입되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인 인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결국 관련된 팩트라고 생각하여 받아들이거나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 배제할 때 이미 역사에 대한 해석이 이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팩트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현재의 주류사학이든 아니든 자기의 학술적관점과 상관있는 팩트만을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통적이지요...

단지 강단사학이 나름 정리된 방법론으로 이단적 관점을 필터링한다는 점에서 좀더 객관적이지만 이런 측면에서는 인문학으로서가 아니라 과학적 성격 즉 맹목적...반면 국수주의적 역사는 객관적 방법론이 다소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다소 맹신적...돌다 문제..그리고 둘다 문제라고 보는 저같은 양비론자도 함께 문제^^

역사학이 자연과학이 아닌데 팩트에 의거한 가지중립적 해석이란 것 자체가 난센스인거지요...관련된 팩트라고 생각할 때 벌써 해석이 들어가는거지요. 오히려 역사는 인문학인 동시에 정치학적인 사회과학의 성격을 갖지 않나 합니다. 공동체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그렇다는거지요.
     
꼬마러브 16-11-23 17:02
   
착각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학술적관점과 상관있는 팩트만을 취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사군과 관련하여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말하는 문헌사료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팩트를 입맛에 고르는게 아니라
팩트 자체가 없다고요
          
mymiky 16-11-23 18:13
   
1. 삼국지의 왜열전
2.삼국지 동이전(동옥저 열전)(예(濊) 열전)
3.후한서 동이전(동옥저 열전)(예 열전)
4.한서 지리지
5.자치통감 진(晉)기 등에 한사군 위치를 짐작하게 해주는 기록이 있다는군요.
이것으로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6.삼국사기(우리나라꺼)

백제본기 온조왕
[서기전 11년]
온조왕이 마수성을 쌓고 병산에 목책을 세웠다. 낙랑 태수가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지난날 서로 사신을 보내고 우호 관계를 맺어 한 집안처럼 지냈는데 이제 우리 땅 가까이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니 혹 우리 땅을 야금야금 차지하려는 꾀가 아닌가? 만일 지금까지의 우호를 생각하여 성을 헐고 목책을 부순다면 의심할 바가 없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한번 싸워 승부를 내겠다.”
임금이 답하여 말하였다.
“요새를 만들어 나라를 지킴은 예나 지금이나 떳떳한 일이다. 어찌 이 일로 우호 관계에 변함이 있으랴? 당연히 집사(태수)가 의심할 일이 아니다. 만약 집사가 강함을 믿고 군사를 일으킨다면 우리도 대책이 있다.”
이 때문에 낙랑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

신라 유리 이사금
[서기 40년]
화려현과 불내현(낙랑군 속현) 사람들이 공모하여 기병을 끌고 신라의 북쪽 국경에 쳐들어왔다.

삼국사기 고구려 미천왕
[서기 314년]
미천왕이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공하였다.

윗의 문장에서, 낙랑군의 위치를 대략 짐작할수 있다고 합니다.
               
호랑총각 16-11-23 19:11
   
전혀 모르겠는데요. 님은 식빠적 관점을 머리속에 두고 있으니 명확하겠지만 사서 그대로를 본다면 님이 제시한 그 어떤 것도 낙랑이 평양이라는 근거는 될수 없어요.
삼국사기의 낙랑은 그 하나만으로 논문꺼리가 되는 소재예요.  낙랑국도 나오구요. 백제온조왕대에만 낙랑태수라는 표현이 있죠. 그외에는 그냥 낙랑 낙랑국 이렇게 나옵니다.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있다는 기록도 있어요. 이런 모든 사료들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문제이지 님들이 재야사학자에게 지적하듯 필요한 사료만 취하면 안됩니다.
                    
mymiky 16-11-23 20:00
   
유물이 나온다니까요-.-
역사학에서 사료, 문헌같은 기록물과 더불어, 유물같은 고고학적 연구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 유물도 없이 사료만 있는 상황도 아니거니와,
사료를 바탕으로 한 곳에, 유물이 나와요, 발굴이 된다고요;;

아님? 일본의 고고학자가 가짜 구석기 시대 유물 놓고 쇼한거처럼?
평양지역에 누가 가짜 유물을 파뭍고 갔을꺼라고 주장하시는건가요?

평양에서 목간, 인장, 토기, 한나라 고분 수천기, 거기에서 나오는 부장품들이 출토되고 있는게 현실이고 일제시대때 발굴된 것뿐만이 아니라, 최근 2000년대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에선 한때 한나라의 낙랑군이 아닌, 고조선의 여러나라들 중 하나인 낙랑국꺼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걸 뒷받침하는 기록은 없고,

북한의 주장은 다분히 주체사상(위대한 조선이 세계제일!)을 내세워야 하기에,
나오는 선전용의 의미가 큽니다.
감히 위대한 영도자의 혁명 수도인 평양에
자그마치 중국의 유물이 나온다는게 정치적으로 좋진 않으니까요.
                         
호랑총각 16-11-23 20:49
   
그놈의 유물은 무슨,,,일제가 발굴하고 한번도 검증된적 없는 유물타령은~~
식빠들의 생명줄인 낙랑목간도 증거가 안된다고 깨진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고 계세요
오히려 낙랑목간을 보면 평양이 낙랑이 아님을 알수가 있어요.  공부가 싫으면 검색을 하세요.  유물로만 따지면 고인돌은 왜 고조선의 표지유몰로 인정안하나요? 아전인수도 정도껏 해야죠
자 식빠들은 처음에는 문헌사료로 낙랑이 평양이라 합니다. 그 문헌사료가 깨지니까 이제 유물로 도망갑니다, 그 유물이 깨지니까 정말 기상천외하게 정약용에게 도망가요,, 그 정약용도 더이상 기댈수 없으니 낙랑사회의 성격을 규명한다고 소설을 써댑니다. 참 한심한 집단이죠
                         
mymiky 16-11-23 20:59
   
2000년대 발굴된 것이 일제시대에 발굴된 것인가요? -.-;;
일제강점기가 언제 1910-2010년까지 100년이 되었습니까?;;
뭐가 깨졌다는건지? ㅋㅋ
목간이 계란인가요?
혼자 깨고, 붙이고 ㅋㅋㅋ 참 재미난 분이십니다!

그간, 고조선의 세력권임을 확인하는 유물/유적은 3가지가 있습니다.
고인돌, 비파형 동검. 미송리형 토기 이렇게 3가지가 모두 발견되는 곳은 고조선의 영역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이 발견되어도 미송리형 토기가 나오지 않으면 고조선의 영역이 아니라 비슷한 문화를 가졌던 이종족의 세력권으로 추정했죠.

다만, 요즘은 꼭 이 3가지가 나와야지 고조선이라고 하지는 않는 추세입니다.

일단, 고인돌에서 뼈나 유물이 단 한점도 출토된 적이 없어, 과연 무덤이 맞느냐?의 문제, 미송리형토기는 고인돌이 유행하는 지역에서 유행하지 않는 유물이라는 주장, 미송리형토기가 발굴되는 무덤은 고인돌이 아닌 석관묘에서만 거의 출토되고 있다는 것을 들어,

요즘엔 이 3가지 세트로 묶이는걸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촐라롱콘 16-11-23 21:46
   
[식빠들의 생명줄인 낙랑목간도 증거가 안된다고 깨진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고 계세요]

누가 그럽니까....??? 낙랑목간이 증거가 안 된다고... 혹시 사이비나 유사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리고 낙랑목간 자체가 일제시기가 아닌 1990년대 북한이 발굴한 것이고
낙랑고분들도 일제시기에 발굴된 것은 고작 70여기이며 무려 2,600기에 이르는
고분들이 해방 이후 시기에 발굴되었지요.....!!!

이것도 일제의 조작인가요....???

그리고 이미 일제시기 이전의 조선시기에도 낙랑의 중심지가
현 평양 인근지역이었다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통설이었습니다.....!!!
                         
호랑총각 16-11-23 23:07
   
낙랑목간은 평양이 낙랑이 아니라는 증거,,,,,
http://blog.naver.com/joymug/80195646259
조선시대 평양을 낙랑이라 본것은 조선이 유학의 나라라는 것을 감안해야죠
마구잡이로 그러니까 그런게 아니예요, 그게 바로 유사역사학입니다.
후기 실학의 학풍이 생기면서 많은 학자들이 한사군은 요서요동에 있다고 주장했죠
근데 무슨 통설요 ? 내 맘대로 통설이예요???
               
삼바 16-11-23 22:36
   
사기=여기에는 평양설 관련 내용 없습니다. 요동설 관련만 있음
삼국사기 미천왕
十四年 冬十月 侵樂浪郡 虜獲男女二千餘口
14년(313) 겨울 10월에 낙랑군을 침략하여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十五年 春正月 立王子斯由爲太子 秋九月 南侵帶方郡
15년(314)봄 정월에 왕자 사유(斯由)를 태자로 세웠다. 가을 9월에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략하였다.
이게 다인데 이것이 평양설 증거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를 마세요.
사서들을 보면 낙랑군이 북쪽에, 대방이 그남쪽에 있고 특히 낙랑군 둔유현의 남쪽에 대방이 있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313년 북쪽의 낙랑지역을 공격하고 314년 낙랑군 둔유현 남쪽의 대방을 공격한걸로 보아야지 이게왜? 평양설로 둔갑하나요???
이 구절에는 평양이다 요동이다 특정할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눈이 빠뚤어 져도 말은 바로 합시다.
꼬마러브 16-11-23 17:08
   
환빠는 식빠입니다.

여기에 계신 많은 환빠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실증사학은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라면 불타다 남은 한쪼가리 종이의 글자 한 자, 깨져버린 토기에 적힌 글자 한 자 까지 엄밀히 살펴봐야합니다.
증거가 없는 역사학은 역사학이 아니라 소설학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와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실증주의 역사서입니다.
현 강단사학계는 삼국사기 기록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현 강단역사학계는 역사학계가 아니라 소설학계일뿐이에요

에빌린의 역설이라는 게 있습니다. 나치정부도 이것의 예가 될 수 있겠군요.
에빌린의 역설에서 전제하고 있는 것이 뭐냐하면
그 사회의 분위기와 지적수준이 그 사회에 속한 개인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진보적인 사람이 있다 가정할 때
그 사람이 속한 사회가 보수적인 사회라면
그 사람 역시 어느정도 보수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절대적으로 본다면
그 사람은 사실 진보적인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보수적이기 때문에 '진보'라는 탈을 쓰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민족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역사'라는 분야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우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진실을 말하는 자의 말을 허황된 것이라 판단하고 타박하게 됩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요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진실만을 말합시다. 진실을 믿는 사람이 되고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사군자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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