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군 : 1. 고려 최초 조직된 전국 군사 조직이다. - 지방 호족 군대의 통합군
2. 정종 2년 주현군으로 개편되어 중앙의 통제를 받음. - 통수부는 광군사
주현군 : 고려 때 2군·6위의 중앙군(中央軍) 외에 각 주·현에 주둔하고 있던 지방군으로 주현군(州縣軍)과 주진군(州鎭軍)이 있었습니다.
주현군은 광군이 중앙의 통제를 받은면서 생긴조직으로 지방 호족의 세력을 흡수 함과 더불어 지방 호족의 군벌화 또는 지방영주화가 진행되어 생긴 군사조직 입니다.
주현군은 도(道)와 계(界)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계는 국경 지대의 군사 지역이었기에 그 행정 단위인 진(鎭)마다 초군(抄軍)·좌군(左軍)·우군(右軍)을 중심으로 한 정규군이 주둔했고 진에 주둔했으므로 주진군으로도 불렀다.
이들은 일단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둔전병(屯田兵)다운 상비군이었다.
각 도의 주현군은 보승·정용·1품(一品)으로써 구성되었는데 보승·정용은 치안·방술(防戌)의 역(役)을 부담했고 일품군은 공역(工役)에 동원되는 노동 부대였다. 이때 주진군은 좌군·우군·초군으로 구성되어 국경 수비를 맡았고 주현군은 지방의 치안이나 노역에 동원되었다.
%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양계에 배치된 주현군은 일단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둔전병(屯田兵)다운 상비군이었다. 라는 대목으로 굉장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군호[편집]
군호(軍戶)는 고려 시대의 군대 편성 중 하나이다.
고려 초기부터 있었던 듯한데 군호는 군인과 양호(養戶)로 구성되었다. 이들에게는 군인전이 지급되어 2인의 양호로 하여금 이것을 경작하여 군인의 장비와 생활비를 제공케 하였다. 군인에 결원이 생기는 때는 선군(選軍)하여 보충하였는데 선군하면서 군호로 만들어 군인전을 주었다. 이 선군은 백정과 같은 농민 중에서 젊고 용력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천민도 많이 뽑혔고 이것은 군인의 사회 신분을 저하하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 여기서도 중요한 대목은 고려는 조선과 달리 무관을 시험에 의해 발탁한 것이 아니라 세습무관 이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간도의 유래를 알려면 고려의 행정구역을 알아야 합니다.
고려의 행정 구역은 성종 초 전국을 5도 양계와 경기로 크게 나뉘고 그 안에 3경·4도호부·8목을 비롯하여 군·현·진 등을 설치 하였습니다.
이중 간도와 관련된 것이 5도 양계의 양계 입니다.
양계는 고려 초기 부터 존재 했지만 현종 때에 전국을 5도 양계는 전국을 5도(道) 와 양계(兩界)로 정리 됩니다.특히 양계에는 병마사(兵馬使)를 두어 군권(軍權)과 민정(民政)을 맡겨 당시 소란하였던 북방을 관리 하게 하였습니다.
양계는 지금의 평안도 지방인 북계(北界) 와 함경도 지방인 동계(東界)를 총칭하는 것이며, 북계를 서북면, 동계를 동북면이라고도 했다. - 이 대목이 지금 문제가 되는 항목 입니다. 서북면과 동북면에서 면은 지금 읍 면 동 등에서 면과 같은 말로 행정 구역명 입니다.
만주지역을 동북삼성 지역이라고 하는데 삼을 생략하고 성은 행정구역명이라 면으로 대체하면 동북삼성은 동북면의 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지금도 고려때 만든 행정구역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죠.
아래의 지도는 서북 피아 양계 만리 일람지도 입니다.
먼저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위키백과를 인용하겠습니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작자, 연대 미상의 한국 관북 관서 지방과 만주 지방, 러시아의 연해주를 포함하는 관방지도이다.
2007년 12월 3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537호로 지정되었으나,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37-1호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변경되었다.
제작 연대
제작 연대는 백두산 정계비와 지명 표기를 미루어 18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며 채색필사본이다. 지도의 여백에는 만주의 역사와 조선 국토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축(軸)형태로 되어있고, 크기는 143×203cm이다.
지도 제작배경
백두산 정계 이후 변화한 북방지역 및 고대국가의 강역에 대한 관심이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제작을 이끌었다.
조선이 북변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전란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조선 효종·조선 현종대 이후였으며 북방대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숙종대부터라 할 수 있다.[4] 이 무렵 조선과 청국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인삼·초피 등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양국 주민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중국은 이에 국경문제를 제기하였고 1712년(숙종 38)에 조선과 청나라는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土門江'으로 국경을 정하고 백두산 남쪽 10리 지점에 정계비를 세웠다. 조선과 청국 양측에서 보인 백두산에 대한 관심과 국경 획정 문제는 다시 이 일대의 지도제작을 활발하게 하였다. 이러한 흐름이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관방지도로 알려진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로 계승되었다.
- 윗 대목은 이미 제가 조선왕조 영조실록에서 발췌해서 올렸습니다.
지도 내용
이 지도는 제작자와 제작년도가 모두 미상이지만 숙종 38년(1712)에 세운 백두산 정계비는 그려져 있으나 조선 정조 11년(1787)에 세운 장진부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조선 영조대에 그려진 지도로 추정된다.[3] 여진족의 첫 수도였던 심양(瀋陽) 즉 성경(盛京)지역에 대한 지도 및 지리정보는 정조 때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수입하기 이전까지는 남구만의 성경지도가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는 남구만의 성경지도를 모본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 이 대목도 문제가 있지만 패스.
기타 여러 내용이 있으나 여기서 다룰 내용이 아니기에 생략 합니다.
서북피아 양계 만리 일람지도 : 말 그대로 서북의 우리나라와 남의나라와의 경계지역을 그린 18세기 중기의 지도인데 저작자가 아직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만리라 하였으므로 당시 조선의 땅덩이는 남북으로 약 5천리, 동서로 약 2천리라는 예기가 맞다.
서북은 서북의 서와 동북의 북자를 취하여 조선의 서북변경이라 흔히 일컫어진다. 이와 같은 지도가
김정호의 청구도(대동여지도의 전 지도), 요소관방지도, 서북양계지도등이 있지만 일제에 의해서 산천지명과 고을지명은 가필된것으로 보여진다...왜냐하면 아래의 지도에서도 확연히 들어나는 옛장성의 위치 때문이다. 이 장성은 고려시대의 장성에 축성을 더한 것으로 판명났는데 현재 한반도에는 천리에 이르는 장성이 없다. 하지만 아래의 지도에서 장성은 만주대륙을 서에서 동북으로 횡단하고 있다 ..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인산에서 의주의 남쪽을 거쳐 함길도 정평에 이른다고 되어있다. 곧 장성을 기점으로 평안도 인산이 있으며, 의주 .. 그리고 만주대륙 동북의 중간쯤의 장성 끝부분이 함길도 정평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위와같은 장성의 위치와 실재는 1950년대의 중국의 지도에서도 확연히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이후 사라졌다. ( 원본은 일본에 있는 것으로 모사본만이 떠돌고 있으며, 서울대 규장각에 있으면서도 결코 일반에 잘 공개되지 않는 지도이다. 왜... ? )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특히 만주와 몽골 관련 지도는 꽁꽁 숨겨 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는 강역은 밑에 분의 말 대로 양계지역은 평안도와 함경도라고 배우며 그 것도 온전한 평안도와 함경도가 아니라 일부분만 점유 했다고 배웁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반도사관이죠.
고려의 영토가 한반도의 일부만 장악 했다는 것은 일제가 날조하고 식민사학자들이 그대로 계승한 학설입니다. 고려의 영토는 최소한 만주 전역을 장악 했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한 분이 함경도는 지금의 함경도가 아니라 동만주 또는 만주 전체를 일컫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하였고 이 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만든 학설이 대륙조선설 입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생략하고 현재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학설은 말이 안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실증사학에 기초해서 주장 한다고 하는데 실제있는 사료도 공개안하고 인정 안한단 말이죠.
이 것이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원래의 함경도는 지금의 함경도가 아니라 만주를 말하는 것이고 지금의 함경도는 일제가 만든 것이란 말이죠. 그 것의 반증의 여러군데 있지만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역시 그 반증의 하나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은 간도에 대한 이야기라 그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 한 것 입니다.
또한 이성계은 동북면 출신 이고 동북면이 함경도라서 이성계가 지금의 함경도라는 주장인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동북면은 만주지역 입니다. 이성계는 만주 출신이고 동계 출신으로 고려의 식민지 세력이라는 것이죠. 당연히 이성계는 고려 중앙에서 홀대를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 이고요.
이렇듯이 기존에 배운 내용과는 많이 다른것이 많습니다. 기존에 배운 것들이 엉터리고 일제에 의해서 조작되어서 그런 것 입니다. 이제 한가지가 뚫릴 려고 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가는 방향은 기존에 배운 내용과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것이죠.
단적인 예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조선이라는 역사적 연고성을 지닌 곳에서 건국해야 얻을 수 있는 국가명 입니다. 이게 일반적인 역사적 구분법 이란 말이죠. 그리고 조선이란 지명은 하남과 하북 지역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깐 초기 조선의 도읍지는 하남과 하북 어디 라는 것이죠.
대만이 중국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역사적으로 중국 또는 중원이라 불리웠던 지역과 아무 연관이 없기에 중국이라는 국명을 인정 받기 못하는 것 입니다. 조선도 마찮가지란 말이죠. 초기에 조선이 하남과 하북지역에서 건국되지 않았다면 조선이라는 국명을 쓰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인정 받지도 못한다는 것 입니다.
조선의 영토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거대 했을 거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 영토가 일본과 중국의 근 현대사에서 지속적인 침략을 받으면서 축소 되었다고 보는 것 입니다. 그리고 고려의 영토는 조선 못지 않게 거대 했을 것 이란 것 입니다. 단지 아직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 했을 뿐이거나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죠.
간도는 일본과 청 사이의 협약으로 청에게 넘겨간 것으로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의 영토가 우리의 의사와 관련이 없이 타국에 넘어간 것 이니 다시 돌려 받아야 마땅한 것이죠. 우리는 저들에게 간도를 준 적이 없고 지금 중국은 우리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간도가 곧 만주 입니다. 만주는 다시 돌려 받아야 할 영토가 인 것이죠. 본래 우리 것이기 때문이고 준 적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생활 훈련받을때 장교놈이 역사 이야기하면서 엄청난 식민사관 설명과 함께 간도땅 절때 못받아 올거라 하더군요 외국에 유명한 사람도 중국에 사태가 일어났을때 간도에 관해 좋은협정을 맺을수도 있다고 표현했죠 아주웃깁니다 이런것들 보면 나라가 부강해지면 자연스럽게 가져올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