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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21 10:50
[한국사] 진시황 병마용갱의 진짜주인은 누구인가?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5,807  

 
진시황 병마용갱의 진짜주인은 누구인가? (11부)
 
13대 흘달·22세 색불루 단군이 빈.기를 점령했을 때 만든 유적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6/11/12 [15:47]  
 
 
(단군세기 원문) 2세 부루단군 재위 58년
계묘 3년(B.C2238) 9월, 조서를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아서 목을 덮도록 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쌀되와 저울을 모두 통일하도록 하였고, 베와 모시의 시장가격이 서로 다른 곳이 없으며, 백성들 서로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안하였다. 
 
(해설) 위 기록인 “머리카락을 땋아서 목을 덮도록 하고”는 댕기머리 또는 땋은 머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이 우리 민족의 상징인 상투로 발전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머리를 땋는 풍습이 없었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번)조선으로 망명할 때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상투가 조선족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위만이 조선족이 되기를 희망했다는 의사를 망명 시 조선인들에게 표현해보이기 위한 재스츄어라고 할 수 있다.
 
섬서성 서안 부근에서 발견된 병마용갱(兵馬俑坑)에서 발견된 토용(土俑)들도 모두 상투를 튼 모습이다. 그 무덤이 진시황의 것인지 아직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진시황도 동이족이었다. 또한 병마용갱은 13대 흘달단군과 22세 색불루단군 때 조선이 서안 서쪽에 있는 빈.기(邠.岐)를 점령하고 있을 때 조선이 만든 유적일 가능성도 있다. <단군세기>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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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안에 있는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토용이 상투를 튼 모양.                                                               © 편집부
 
 
“13세 흘달단군 갑오 16년(B.C1767) 이 해 겨울에 은(殷)나라가 하(夏)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桀王)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단제께서 읍차인 말량으로 하여금 구환(九桓)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게 하니, 은나라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이 조약을 위반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막고 약속을 깨려 하였다. 이에 은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 우량을 파견하여 견(畎)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낙랑(樂浪)과 합쳐서 진격하여 관중의 빈.기(邠.岐)의 땅에 웅거하며 관청을 설치하였다.”라는 기록이다.
 
위 기록에서 우리는 조선의 의중에 따라 하나라와 은나라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하나라 도읍은 안읍(安邑)으로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 하현(夏縣)이며, 은나라 도읍은 조가(朝歌)로 지금의 황하 북부 하남성에 있는 신양시 위휘현이다. 이 두 나라가 싸우는데 조선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했다는 것은 조선이 이 두 나라와 가깝게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견(畎)은 섬서성에 있던 견이(畎夷)를 의미하는 것이고, 낙랑(樂浪)은 산서성 최남부 원곡(垣曲) 일대, 빈(邠)은 섬서성 함양시 일대, 기(岐)는 섬서성 기산현의 동북쪽이다.
 
安邑县 : 夏禹所都,春秋时魏绛自魏徙此,战国为魏都,汉置县,今夏县安邑县之地,后魏分安邑为南安、邑北、安邑三县,旋改北安邑为夏县,故城在今山西夏县北,即后魏分置之县也,清属山西解州,民国移治运城,寻复故,属山西河东道,县境有盐池,为山西省惟一产盐之区,左传谓郇瑕氏之地,沃饶而近盐,即指此地而言,池水不流,凝成固粒,朝取夕复,终无灭损,其利甚溥。
(안읍현 : 하나라 우의 도읍.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 하현 북쪽의 땅)
 
朝歌县 : 古沫邑,帝乙所者,(按今本竹书纪年,武乙三年自殷迁于河北,十五年自河北迁于沫,帝王世纪,帝乙复济河北徙朝歌,罗振玉殷虚书契考释云,以卜辞证之,迁沫必在帝乙之世,竹书误,)周武王灭殷,封康叔为卫国,《书酒诰》明大命于妹邦,《孔传》“纣所都朝歌以北是也,”项羽立马邛为殷王,都朝歌,即此,汉置县,三国魏置朝歌郡于此,寻废郡,故城在今河南淇县东北,隋移治,改为卫县。(조가현 : 하남성 신양시 위현으로 기현의 동북쪽 - 은허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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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과 기는 섬서성 서안 서쪽, 하나라 도읍 안읍은 산서성 남단 하현, 은나라 도읍 조가는 황하북부 하남성         ©
 

▲ 빈과 기는 섬서성 서안 서쪽, 하나라 도읍 안읍은 산서성 남단 하현, 은나라 도읍 조가는 황하북부 하남성         ©
 
 
 또한 은 탕왕이 하 걸왕을 정벌한 곳은 순임금이 죽은 명조(鳴條)라는 지명으로,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따르면 산서성 남부 운성시에 있는 염지(鹽池) 일대이다. 맹자가 말하길 “이 땅이 동이족의 땅”이라 했으니 바로 여기까지 단군조선의 영토였던 것이다.
 
“명조 : 고대 지명으로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 안읍진 북에 있다.은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정벌한 전투지이다.고후원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산서성 운성시 하현의 서쪽, 일설에는 하남성 낙양부근, 또 일설에는 하남성 신향시 봉구 동쪽에 있다고 한다.
(鳴條:“古地名。在今山西运城安邑镇北,相传商汤伐夏桀战于此地。又名 高侯原 。●古地名,又名高侯原,其地具体位置,异说甚多,一说在今山西省运城市夏县之西,一说在今河南洛阳附近,还有一说在河南省新乡市封丘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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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임금이 돌아가신 명조는 산서성 남부 염지 근처로 동이족의 땅이다.     ©편집부
 

▲ 순임금이 돌아가신 명조는 산서성 남부 염지 근처로 동이족의 땅이다.     ©편집부
 
 
위 <단군세기>의 기록은 중국의 고대 사서인 한나라 사람 유향이 쓴 <설원 권모(設苑權謀)> 편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탕이 걸왕을 치려 하자 이윤이 말하기를 '청컨대 걸왕에게 바치는 공물을 막고 그의 행동을 살펴보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걸왕이 진노하여 구이(九夷=조선)의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자 이윤이 말하기를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아직도 능히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이에 성탕은 사죄하고 다시 공물을 바쳤다. 이듬해에 탕왕이 다시 공물을 끊어버리자 걸왕이 노하여 다시 구이의 군사를 요청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윤이 '됐습니다.'라고 말하자 탕왕은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잔당을 토벌하니 걸왕은 남소씨의 땅으로 도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위 <단군세기>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위 기록 이외에 조선이 빈.기를 점령했다는 기록이 <단군세기>에 또 있다. "22세 색불루단군 을묘 20년(B.C 1266) 이때에 람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여 엄독골(奄瀆忽)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과 매우 가까웠다. 이에 여파달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기(邠.岐)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유민과 서로 단결하여 나라를 세워 여(黎)라 칭하고 서융(西戎)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람씨(藍氏)의 위세가 매우 성하여 황제의 교화는 멀리 항산(恒山) 이남의 땅에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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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국의 위치는 산서성 동남부 장치시 일대     © 편집부
 

▲ 람국의 위치는 산서성 동남부 장치시 일대     © 편집부
 

여기서의 람국(藍國)은 산서성 장치(長治)시 일대에 있던 나라이다. 중국통사 참고자료 고대부분(中國通史參考資料古代部分)-4에 따르면, “람수는 산서성 둔류현 서남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장으로 들어간다(蓝水,源出於山西屯留县西南,东流入漳。)”라는 문구가 있으며, 보다 상세한 자료로는 아래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나오는 “강수(絳水)는 산서성 동남부 둔류현을 흐르는 강”이라는 설명이 있다.
 
绛水 : 源出山西屯留县西南八十里盘秀山之阴,八泉涌出如珠,合而东流,至潞城县界交漳村入漳,水经注谓之陈水,《清一统志》水经注有绛水而无蓝水,其绛水所行之道,皆今蓝水也,而别有陈水,则今绛水所行之道也,与今府县诸志不合,惟魏书地形志有绛水,又有蓝水,与今水道相同。
(강수 : 산서성 둔류현 서남 80리 반수산 남쪽에서 나와 동으로 로성현 경계와 만나는 장촌까지 흘러 장수로 들어간다. <수경주>에서는 진수라 한다, <청일통지> ‘수경주’에 강수라고 있는데 무람수라 하는데 그 물길이 모두 같다. 다른 이름으로 진수라 한다. ‘위서지형지’에는 강수와 람수가 있는데 물길이 같다. 즉 강수=람수)
 
출처:http://greatcorea.kr/sub_read.html?uid=717&section=sc1&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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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리뚜바 16-11-21 12:13
   
사실 환단고기 내용 자체는 신뢰를 못하겠음... 객관적인 자료가 너무 부족한거 같에요; 전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아니나 그 하나하나가 진실된 내용인지는 알 방법이 없으니...
칼리 16-11-21 14:21
   
이래서 종교사학(환빠)이 답이 없는거 ㅋㅋㅋ.

그냥 전세계 문명은 다 단군의 후예라고 해라 ㅋㅋㅋ.
viperman 16-11-21 14:38
   
중국 문명의 시원은 화하족이 아닌건 중국 역사학자들도 인정한 사실

지금은 중국에 있는 문화재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중국이 독점하고 있지만
누구나 접근할수 있도록 공개된다면 환빠라고 애기는 못할듯

중국에 있는 수백개의 파라미드들 ...
중국이 자랑하지 못하고 애써 감추고 있다면 그 피라미드의 주인이 누구인지 지레짐작으로 유추 할수 있음
피라미드의 공개는 우리 한민족이 중국의 부속 민족으로 완벽이 포함되었을때 공개할수 있을것...
     
촐라롱콘 16-11-21 14:54
   
만약 그 피라미드가 중국 서안 주변에 있는 피라미드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건 이미 한나라 황릉 또는 황족들의 무덤으로 이미 판명난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피라미드들이 외부에서 관람하는 것은 제지가 없을만큼 자유로우며
몇몇 피라미드들은 경주 대릉원 천마총처럼 내부도 관람할 수 있게 만든 있는 곳도
있는데....???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환빠들이 뿌려놓은 떡밥에 걸리신 것 같네요~~~
          
viperman 16-11-21 15:00
   
그게 문제인게 그 피라미드가 한나라대것이 아니라 기원전 수세기것이라 문제라는 겁니다
완전한 공개가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것만 보여주는게 문제라고요

서안은 주나라 이전부터 수도 역활을 하던곳임
               
Marauder 16-11-21 18:39
   
한나라가 기원전 200년이고 그 이전 수세기는 춘추전국시대죠. 기원전 수십세기가 아니라면 의문을 제시하는것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입니다. 아무리 관대하게봐도 주나라이후는 우리와 관련이 전혀 없잖습니까?
          
햄돌 16-11-23 15:35
   
피라미드는 님이 말하는 환빠들만 주장하는게 아닌데요
구름위하늘 16-11-21 17:29
   
글쎄요. 방사능 연도 측정이 발전한 지금에 와서
BC 2000년대와 BC 200년대를 구분하지 못할 것 같지 않은데요?
혹시 제가 잘못 이해했나요?
     
Marauder 16-11-21 18:37
   
저도 딱 그생각했는데 바로 써올리시네요. 뭐 의문제기하는거야 그럴수도있지만 말이안되는...
피닉 16-11-21 18:37
   
2만년전에 한민족이 있었을까요? 1만년전에 한민족이 있었을까요? 사람이 환경에 따라서 몇대를 거치면서 적응하면서 다른 문화를 가지게 된것인데, 당연히 지금 한국인의 조상들은 수많은 문명을 만들었겠지요... 하지만 중국인의 조상은? 일본인의 조상은? 결국 다른게 아니라 흩어져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루었을 뿐이겠지요...
5천년전에 민족이라는게 뭐 그리 중요했겠습니까...
비좀와라 16-11-21 18:41
   
병마갱의 고분 형식이 진秦나라 고유 양식이나 진시황 무덤에서만 쓰인 고유양식이 아니고 초楚나라 형식 이라는 것이 통설이죠. 진시황 무덤에서 만 발견된것이 아니라 초나라 무덤이라 추정되는 곳에서도 발견되는 양식입니다.

그리고 진시황 무덤이라는 것도 진시황 무덤에서 한나라 오수전 등이 발굴되어서 이것도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한나라 유방은 초나라 사람이고 동아시아 피라미드 형식의 무덤의 대표적인 것이 장수왕릉 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초나라는 남만이라고 하나 왕실등 지배층의 원류는 동이계 은나라 족속이라는 것 이고요.

여기서 대충 정리하자면 한나라와 고구려는 피라미드 형식의 무덤양식을 공유 하였다는 것 입니다. 결국은 둘은 같은 계열이라는 것이죠.

원래 서안에 있는 피라미든 군을 중국은 부정하였고 지금은 한나라 무덤양식 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도 중국이 많이 양보 한 것 이지요.
정욱 16-11-21 21:41
   
오자서 16-11-22 08:01
   
병마용 주인에 대한 논란


■ 중국학자들의 의문

여기에 그 논란이 되는 근거를 잠시 적어본다.

이 내용은 시안 대학 고고학과 교수인 천징웬교수의 논문내용과 차이니즈나이트의 저자인 강효백씨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우선 천징웬교수의 병마용이 진시황의 것이 아니라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병마용의 군진이 진시황 당시의 군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과거 거의 모든 고전에는 진시황이 기동력이 강한 기병을 활용해 천하를 통일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병마용의 군진은 전차를 중심으로 사열하고 있다. 진시황 당시 차전을 벌렸다는

    역사기록이 없다.

 

2. 병마용의 병사들은 각양각색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즉 전쟁 필수품인 투구를 쓴 병마용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중무장한 병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즉 전쟁을 위한 행렬이 아니라는 것이다.

 

3. 진시황이 통일 후 반란을 우려해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청동기를 모두 회수해 동상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2호갱 내의 청동으로 만든 80량의 전차는 어디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

 

4. 병마용의 옷 색깔이 진시황시대의 드레스코드를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진시황은 검은색을 통일제국의 색깔로 정했는데 병마용의 병사들은 진한 빨간색, 진한 녹색,

    파란색, 보라색, 흰색 등 화려한 색깔을 사용하고 있다.

 

5. 출토된 도끼와 모자, 쪽진 머리모양 그리고 새겨진 문자들이 전국시대 초나라의 풍속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 천징웬 교수는 위와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병마용의 주인은 진나라 28대 소왕의 모친,

  즉 진시황의 고조할머니인 진선태후이며, 병마용은 진선태후의 유해를 그녀의 고향이 초나라

  땅으로 운구하는 장의 행렬이다라고 주장했다.
오자서 16-11-22 14:05
   
진시황은 전국통일후 문자 궤도 화폐등을 통일시켰고 통일전 진나라때도 수레궤도를 반드시 통일하도록 하였는데 상투를튼 병마용은 궤도가 제각각입니다

중국학자가 초나라 풍습을 예로들며 초나라출신 진선태후를 거론했는데
여기서 재밌는건 초나라인데 고대초나라는 동이족이며 곰토템 단오절 지명(한강 한양 단양 강릉)이 우리와같습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다는 홍산문명에서도 곰토템 적석총이 발견되었고 역시 동이족 조선의영역이였고

실존여부논란의 기자도 그가 은나라왕족이라면 역시 동이족이며 나라가망하자 같은 동이족인 조선으로 건너간것이며 위만은 찬탈자이지만 상투를 틀고 조선옷을 입었던 동이족일 가능성이 높고 그게 아니라 상투를틀고 조선옷을입고 위장했다면 상투는 조선 동이족과 다른민족을 구분짓는 것일수있습니다

한족도 상투가 있다지만 트는법도 잃어버린지 오래며 조선시대까지 원형 비슷하게 상투를 틀었던 민족은 우리민족밖에는 없습니다

지나족이 동이족역사까지 흡수하였지만 융합전 본래 주류는 남쪽에서 올라온 족속으로 어순도 몽골 만주 퉁구스 한국 일본과는 달리 남방계열인 이유입니다
 
고대사에서 동이족의 비중은 이토록 큰것입니다

누가 주인인지 몰라도 만약에 우리선조가 그주인이라 하여도 사실은 별로 이상할게 없습니다

우리선조들 역시 유럽처럼 여러민족 국가가 들어선 대륙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는 범위인 조선부여옥저고구려발해 전부 대륙과반도에 걸쳐있었으며 삼국 고려도 좀 수상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까지는 얘기안겠습니다-고구려 발해유민인 청이 왜 조선을 멸망도 안시키고 영토도 안뺏고 복식과변발강요도 안했고 전쟁전이나 후나 조선은 왜 반도불변인지 의문이긴하지만

사천성 성도에 왕건묘가있는데  태조왕건과 동시대 동일한자이름 유사재위입니다 왕건이 대륙과 반도에서 동시에 출현하는 기적이 연출되다니 참 웃기죠. 기적이 아니라면 조작이겠죠.

참 이상한 역사네요
하늘나비야 16-12-03 04:01
   
우리 나라 역사 왜곡이 많이 되어 있다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특히 고대사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까지 중 고려부터  조선 시기에  당시 중국을 점령한  민족들에 요구와 지나친 모화사상으로 역사책들과 신화나 전설로 내려오는 책들을 모두 불태웠다고 하더군요  상국에 잘 보일려고  한 부분도 있고 그 쪽에서 압력을 행사 하니 그런 부분도 있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일제 강점기  몇 차례에 걸쳐 역사책이나 그런걸 모아서 불태웠다고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일본이 만들준 짜집기한 역사를 배우면서 반도 사관에 묶여 버렸다고  이건 저희 때 가르치시건 역사 선생님 말씀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스승님이 알려주신 부분들을 알려주셨고요  고대사 특히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그 영역을 설명해 놓은 것도 그렇고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말도 않돼는 부분도 많고 ..당시 배울때는 똘망하게 기억을 했는데 오래 되다 보니 저도 거의 잊어버렸네요  한세대도 안지나 이모양인데  역사란거 왜곡할려면 너무도 쉽게 왜곡 된다고 생각 됩니다  중국애들이 쓴 역사서에도 고대 나라들에 대해서 아주  애매모호하게 말을 얼버무려 놓은 부분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언어도 비슷하고  풍습은 같은데 같은 민족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오묘한 표현들.. 풍습이 같고 언어가 비슷한데 같은 민족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대체 어느나라 민족이 같은 민족인지 ..  경상도 사투리 나 전라도 사투리 쓴다고  서울사람과  비슷한 말을 쓰고 풍습도 거의 같지만  한국인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식의 표현 .. 우린  나중에  서울만 한국이고 경상도 전라도는  다른 나라였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 조금만 잘못 하면 30년쯤 지나면 긴가 민가 할테고 60년쯤 지나면  우리 나라가 아닌거 같다가 될것이고 100년이 되면 이제 피터지게 싸울겁니다  우리나라는 서울뿐이다 다른 곳은 다 중국이었다  아니다 언어와 풍습이 비슷한데 같은 한국이였다 .. 그럼 누구 말이 맞는지 과연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거나 중국애들이[꼭 중국이 아니라 하더라도 ] 자기들 역사서에  애매모호하게 적어 놓는다면 .. 우린 또 밀어내면서 싸우기만 할것 같습니다 .. 그리고 어느날 누군가 그럴겁니다  그 당시 민족이란게 큰 의미가 있었겠느냐  다 허구의 명칭이다  그냥 서울만 한국이다 .. 비약 된 생각이라 할수 있겠지만 한번쯤 생각을 넓게 가졌음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중국의 한족은 지들 역사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타민족의 역사도 모두 자기들것으로 끌어 넣는데 우린 어떻게 해서든 밀어 내려고만 합니다 .. 이제는 하다 하나 고구려도 발해도 다 중국 역사라는데 우리는 여전히 싸웁니다 우리끼리 발해는 어디였사였더라 중국인가? 한국인가? 고구려는 한국역사가 맞던가? 맞다면 증거를 내놔봐 .. 중국은 무슨 증거가 있나요?  짜맞추기 해서 만들어낸 것들 말고  그렇게 짜맞추면 미국도 중국역사 됩니다 .. 전인류가 다 중국역사죠  중국식 역사관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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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 [한국사] 한국의 사라진 대사찰 (11)- 베일에 가린 대목탑, 신라… 햄돌 11-18 3629
668 [한국사] 일본왕실도서관 서릉부에서 일본에 의해 약탈&조작&… (1) 햄돌 11-17 3172
667 [한국사]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5) 두부국 11-16 2079
666 [한국사] 간도가 우리땅인 이유 (15) 두부국 11-16 4136
665 [한국사] 발암을 유도하는 무능한 조선시대 (16) 선황제 11-15 3501
664 [한국사] 고조선은 고대국가가 아닙니다. (37) 타샤 11-14 3640
663 [한국사] 저희학교에선 고조선 국가가 아니라 배웁니다 (29) 최상컨디션 11-14 3194
662 [한국사] 발해, 여진, 한민족에 대한 의견과 질문입니다. (6) 도은 11-13 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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