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한국경제신문의 기우제에 관한 기사입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82650311
기사의 내용중,
병석의 태종은 ‘죽어서라도 옥황상제께 청해 온누리에 비를 내리겠다’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햇볕이 쨍쨍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음력 5월 초열흘께에 내리는 ‘태종우’의 연원이다.
위 내용을 보면 , 태종 이방원의 기일(사망일)은 5월입니다. 그리고 이날 비가내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우제를 5월에 지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늘에 있는 태종(이방원)때문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왕조 영조실록 79권, 영조 29년 5월 11일 병인 1번째기사에서는
임금이 친히 기우제를 지냈다. 초헌(初獻)이 있은 뒤에 비가 좍좍 내릴 조짐이 있어 기뻐하였다. 임금이 한참 동안 밖에 서 있었는데 곤룡포(袞龍袍)가 모두 젖었다. 하교하기를,
"이는 곧 우리 고황제(高皇帝)와 성조(聖祖) 태종(太宗)께서 하사하시는 것이다."
하였다. 환궁할 때 효장묘(孝章廟)에 들렀다. 추조(秋曹)와 금오(金吾)에 명하여 가벼운 죄수를 석방시켰다.
http://sillok.history.go.kr/id/kua_12905011_001
태종말고도 한명이 더 나옵니다. 오히려 앞에나오는데 고황제 (高黃帝)입니다.
흔히 이 고황제 (高黃帝)를 일단 황제니까 , 대륙의 백련교 행동대장 출신 주원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주원장의 기일(사망일)은 12월입니다. 겨울이죠..
태조실록 15권, 태조 7년 12월 22일 갑자 1번째기사
명(明)나라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의 부음(訃音)이 이르니, 의주 만호(義州萬戶) 이귀철(李龜鐵)이 명나라 예부(禮部)의 자문(咨文)과 명년(明年) 역일(曆日)을 전해 바치며 말하였다.
" 의 사신 진강(陳綱)과 진예(陳禮) 등이 압록강(鴨綠江) 서쪽에 도착하므로, 만호(萬戶)가 그곳에 이르니, 사신이 이 자문(咨文)을 주고는 곧 돌아가려고 하매, 만호가 굳이 청하여 강을 건너와서 이틀 밤을 유숙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자문(咨文)은 이러하였다.
"대명(大明)의 예부(禮部)는 의례(儀禮)에 관한 일을 말한다. 근일에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승하(升遐)하시고, 금상 황제(今上皇帝)께서 유조(遺詔)를 받들어 제위(帝位)에 오르시어 명년(明年)을 건문(建文) 원년(元年)으로 하고 이를 이미 천하에 포고(布告)하였다. 지금 해외(海外)의 조공(朝貢)하는 여러 나라에 조회(照會)하여 도리상 마땅히 통행(通行)해야 될 것이다. 지금 건문(建文) 원년(元年) 대통력(大統曆) 1본(本)을 발송(發送)한다."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712022_001
여기서 부음(訃音)이 죽었다는 말이죠. 즉, 주원장은 한겨울에 죽었기 때문에 절대로 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질 않아요 . 최소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2월입니다.
가수 신해철의 부음(訃音).
http://stonebird.co.kr/220164320024
그렇다면 영조실록의 고황제 (高黃帝)는 흔히 아는 그 주원장이 아니죠.
게다가 본문에서도 '우리 고황제 ' 라고 국역하였는데, 바로옆의 본문또한 아고황제(我高黃帝)로 적혀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또다른 황제는 누구인가요.
태종실록15권, 태종 8년 5월 24일 임신
http://sillok.history.go.kr/search/inspectionDayList.do
태종실록에 보면, 큰 비가 내린 가장 큰 이유는 태조 이성계(태상왕)의 승하(사망)였습니다.
이때가 5월이였죠.
그리고 태조 이방원의 기일도 5월로 같으며, 이때도 비가 내렸던 것입니다.
즉, 영조실록의 기록은 이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며 이때 고황제(高黃帝)는
주원장이아니라, 태조 이성계입니다.
다른게 본다면, 세종의 기후제에 대한 황제도 사실은 이성계이지, 주원장이 아니죠.
게다가 조선의 왕또한 황제라 칭했다는 것이죠.
지금다시 맨 위의 영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사실은 정말 멋진 글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