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방해만되었다는 글 본적 없는데요. 명군 때문에 민가에 피해가 있었다는 글은 많이봤어도...? 특히 평양성전투가 그러죠. 근데 기본적으로 전쟁종결 이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기 때문임을 생각해보면 시간 질질 끌다보면 이겼겠죠. 실질적으론 이겼다고보긴 힘들겠지만뭐...
애초에 고니시등이 지휘하는 일본군 제 1군이 평양에서 진격을 멈춘 가장 큰 이유가
명나라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습니다.
뭐 국뽕들은 이순신 장군 활약때문에 보급이 어려워져서 진격을 멈추었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일본군이 평양과 그 주변고을에서 탈취한 식량만 최소 1만석~수 만석 규모에 달하며(이는 당시 일본군
제 1군이 적어도 수 개월은 버틸만한 군량이었습니다. 징비록에는 10만석을 탈취당했다고 하지만
고거는 좀 과장이 들어간 통계이고.....)
이만큼 확보한 군량미로 적어도 의주까지 진격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평양에서 아무리 넉넉하게
소요날짜를 잡아도 10일 남짓이면 의주까지 진격가능한 거리이기 때문에......
그리고 함경도로 진격한 가토와 나베시마의 일본군 제2군은 조선수군이 없는 동해안루트를 따라 얼마든지
보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적어도 조선경내에서는) 조선수군의 영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가토군이 함경도를 거쳐 간도초입까지 갔다가 진격을 멈춘것은 함경도-동만주로 이어지는 험준한 산악지대와
여진족의 기습 등의 악조건을 뚫고 머나먼 요동으로 진격하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일본군의 기세로 보았을때 평양을 탈취한 다음 며칠간 휴식과 정비를 취하고 다시 의주를 향해
진격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10일 남짓이면 국경근처까지 도달이 가능한 전력이었기 때문에......
보급이 부족하여 평양에서 진격을 멈추었다는 의견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더구나 평양과 주변고을에서
몇 달을 버틸 군량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리고 국뽕들은 명나라군의 역할을 상당히 폄하하는 것 같던데......
적어도 전세를 전환시킨 결정적인 전투는 명나라군이 개입한 전투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1593년 1월의 평양성 탈환전투를 비롯하여(적어도 한양으로부터 북방에 주둔한 일본군들이 한양으로
후퇴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전투입니다)
정유재란에서도 삼남지방을 집어삼킨 일본군의 경기-한양방면으로의 진입을 중단시킴은 물론
일본군들을 다시 남부해안지대로 후퇴시킨 직산 소사평전투도 명나라의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물론 소사평전투내용적인 면에서는 비교적 명군 일본군 모두 각각 수 천규모의 중소규모 전투에다
무승부에 가까운 전투지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조명연합군의 울산,사천,순천 등 3로방면에서의 적극적인 공세도 말이 조명연합군이지 병력수에서는
명나라군이 80~90%를 차지하여 전선을 주도했고 조선군은 보조전력으로 참여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수군 역시 원균의 칠천량에서의 패전과 명량해전 이후시기부터는 명나라 수군이 참여하고부터
다시 일본수군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명량해전 직후시기만 하더라도 조선수군이 명량에서 일본수군의 예봉만 꺾은 상황이었고
정작 조선수군은 일본수군을 피해서 서해에서도 한참 북쪽인 전북 고군산군도에 들어가 짱박혀 칩거해있는
상태였고, 이시기 일본수군은 서해로 진입하여 적어도 전남북단 해역인 영광앞바다까지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 칠천량해전으로 규모가 축소된 조선수군은 명량해전 등으로 상징되듯이 일본수군의 진격을
방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규모가 보잘것 없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명나라수군의
참전 이후 규모면에서 상당히 커졌기 때문에 일본수군에 대한 공세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명 수군은 애초에 전황에 도움되는것은 하나도 없는게 기록이나 당시 명 상황에 비추면 알껀데
명 육군이 치룬 평양성 전투가 임란의 전황을 바꾼 포인트져
윗분 말처럼 명 육군 존재 자체가 일본에겐 부담스러운 존재임. 애초에 명이 참전하면서 일본 육군의 진군을 멈춰서 조선 육군의 전열을 재 정비 하는 시간을 줬기 때문임
거기다 이여송의 명 육군 5만이라는 숫자는 일본군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존재였음. 함경도쪽으로 진출한 가토도 해전의 연이은 패배와 의병이란 존재로 보급로가 차단되었고 또 가장 큰 문제는 여진족과 부딪힐 경우를 우려했기 때문에 더 이상 북진을 포기하게 되었음
애초에 명의 원군 자체만으로도 전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