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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23 17:39
[기타] 해양대제국 백제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6,842  

 
[내일신문]

백제의 제8대 고이왕은 20대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홀로 40마리의 사슴을 사냥하고 날아가는 오리를 화살로 쏘아 떨어트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무예에 출중하고 호탕한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고이왕은 중국 대륙이 위, 촉, 오의 삼국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패권다툼을 하자 대륙 진출의 꿈을 키우며 기회를 엿본다.

마침내 서기 246년, 재위 13년 여름에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을 데리고 고구려 침략에 나서자 좌장 진충을 시켜 산둥반도의 바닷가를 기습하여 낙랑 사람들을 납치한다. 그 후 백제는 낙랑군에 소속돼 있던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여 대방태수 궁준을 죽인다. 이로써 대방과 백제는 철천지원수가 되는 듯하였으나, 고이왕이 궁준의 딸 보과를 며느리로 맞아들이며 결혼동맹을 맺는 것으로 서로 화해한다. 이로써 백제는 대방 땅에 대륙백제의 교도부를 마련하게 되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서서히 산둥반도 전역과 북쪽의 요서지방을 넘어 남쪽의 양자강 일대를 공략하게 된다.

고이왕으로부터 시작된 백제의 대륙진출은 그 후 근초고왕 대에 이르러 요동과 요서, 발해만을 거쳐 산둥반도 전역과 양자강 일대를 포함하는 중국의 남쪽지역과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근방까지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백제는 명실상부한 해양대제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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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15-03-23 18:10
   
증거도 있나요?
     
야차 15-03-23 19:13
   
백제가 중국 산둥반도와 남쪽땅일부, 일본의 큐슈와, 주고쿠,시고쿠 일부를 점령한건 역사책좀만 읽어도 아는데요...
     
알라바바 15-03-26 10:28
   
사실이긴한데 오래동안 지배를 하지를 못함. 이때 중국이 삼국지 소설쓰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오투비 15-03-23 19:29
   
예전부터 드는 생각... 일본은 백제와 너무 닮았다.. 국호도 그렇고 ..  팽창주의적인 해양국가 라는 점도 그렇고..
     
우유니 15-03-23 20:11
   
kiyoke 라는 원숭이를 아시나요?

정체를 숨기고 한동안 동아게에서 활동하던 원숭이였습죠

그러던 어느날...

백제가 지금의 일본이라는 황당한 소릴 주절주절 늘어놓다 유저들에게 멍석말이당합니다

그렇게 처맞다 순간 흥분하여 우끼끼거리다가 본 모습을 드러내고 말죠 ㅋㅋㅋ

혹시 kiyoke? 아니길 바랍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1642&sca=&sfl=wr_name%2C1&stx=kiyoke&sop=and
     
열심히공부 15-03-23 22:06
   
백제가 건국후부터 꾸준하게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을 경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당연합군에게 망한 후

엄청나게 많은 백제의 인적 물적 자원이 그대로 고스란히 다

일본으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그 바탕에는 백제의 문화를 깔고

고구려와 신라 가야의 문화를 보조로 받아들여서 발전하였을 것입니다.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 문화의 원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본의 문화가 백제의 것과 아주 닮아있겠죠.


물론 천년이상 일본이 자생적으로 발전시킨 문화도 인정해야죠.

모든 일본 문화가 한반도에서 공급된 것은 아니니까요.


일본과 백제는 가장 가까운 나라임에 틀림은 없지만

일본을 백제의 후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백제 문화가 많이 이식되었어도

일본이라는 자연 환경에 맞추어 백제와는 다른 문화가 발달했을 터이니까요.
          
오투비 15-03-23 22:39
   
일본이 스스로 백제의 후손이라던가 전통성을 이어간다고 주장하지도 않지만,
국가의 성격이 너무 닮아 있다고 봅니다. 담로를 건설하듯 해양제국을 건설하려는 특징이라던지.

구한말 정한론자들을 비롯해서 현재에 이르는 극우인사들의 한반도에 대한 악감정까지..
물론 그들이 백제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행위를 했다고는 못합니다.

그들의 심벌인 해(日), 태양의 제국. 즉, '일본' 이라는 국호도 본래 백제인 자신들이 쓰던말을 국호로 지었듯이 백제의 정신사상,국가관,철학이 일본이란 국가로 재탄생 되어 나타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철천지 원수지간에게 패망한 굴욕적인 역사를 지우고 새로 거듭나기 위해서 한반도와의 연을 스스로 끊어버렸고 그 동안의 역사는 일본서기에 담아 자신들의 뿌리부터 왜곡하기 시작했겠지요. 만세일계처럼. 이런 작업은 백제 멸망후 몇세기에 걸쳐 행해져 오늘날의 일본인들은 당연 모르는거구요.

즉, 백제가 멸망하고 열도에 터를 잡은 유민들은 복수심에 가득차 다시금 부흥을 꿈꾸었겟지요. 그리고 그 이전의 역사는 지우고 '일본' 이라는 국가로 새로 거듭난거라 봅니다.

특히 그들의 태도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日出處 天子, 日沒處天子に書を致す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올린다)

당나라에 이런 국서를 보냅니다.
마치 그 이전의 역사는 모른다는듯 시치미를 뚝떼며 스스로 해가 뜨는 곳의 천자라 칭하고 있습니다. 모든걸 잊고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보여집니다.

마치 퍼즐처럼 우연의 일치치곤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지고 있다 생각되네요
               
디노 15-03-24 08:03
   
백제랑 일본이 뭐가 비슷하다는 건가요?

담로를 건설하듯 해양제국을 건설하려는 특징이라던지.
구한말 정한론자들을 비롯해서 현재에 이르는 극우인사들의 한반도에 대한 악감정까지..

이 두 가지 가지고 비슷하다고 하는 건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궤변이네요...

게다가 악감정이 무슨 백제의 정체성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성왕이 신라의 복병에 죽음을 당하면서 감정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사이가 좋기도 했다 나빠지기도 하는 법이에요...
그게 무슨 백제의 정체성이라도 되는 양, 일본과 비슷하다니...

그리고  왜놈들이 언제 해양제국을 건설했다는 건가요?
비교를 하려면 제대로 된 근거를 들어서 비교를 하세요...
                    
오투비 15-03-24 14:48
   
해양제국을 건설하려는 의지와 성격을 말하는겁니다.
제국주의 시기에 일본이 해양으로 진출해서 점령한 형태와 과거 백제가 담로를 건설하고 해양제국을 이룬 형태가 너무 닮아있습니다. 더 확대되었을 뿐이지.

그리고 백제와 신라 사이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건 맞는데,
결국 신라에 의해 멸망하지 않습니까. 열도로 이주한 백제인들의 한반도에 대한 악감정과 복수심 그리고 다시금 부흥을 꿈꾸려는 의지에서 탄생된 나라가 '일본' 이라는 것입니다.
日本이라는 국호에서도 알수 있듯이 원래 저 글자는 백제인들이 쓰던 말입니다. 그걸 국호로 정한것이구요. 저 글자의 의미대로 새로이 부국을 꿈꾸려는 야망이 강하게 보여집니다.

물론 정한론자들과 현재의 극우인사들이 의도적으로 백제의 정체성을 계승하기 위해 하는행동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가 우리에게 물려주는 것은 기록뿐만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겪었던 모든 경험,학습,철학 등 모든 정신사상은 유전자로도 각인되어 후손들에게 계승되는겁니다.
                         
디노 15-03-24 15:57
   
님이 말하는 그런 정신이 일본에만 있다는 건 착각이라는 겁니다.
선조들이 겪었던 정신사상이 유전자로 각인되어 후손들에게 계승되고 그것이 일본과 백제가 비슷한 이유라면, 일본은 그 자체로 백제가 되는 겁니다.
백제가 야마토 일본을 세웠지만 헤이안시대를 지나면서 당나라의 문물을 직접적으로 대거 받아들이며 백제랑은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백제의 유전자가 남아있다면 우리한테 더 많이 남아 있어야지 왜 왜놈들이 이어받은 것처럼 말씀하시냐고요...

백제는 무역을 위해 항로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담로를 세운 것이지 왜놈처럼 무작정 침략하고 점령을 해 나간 나라가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는 왜놈 뿐만이 아니라 서구 열강들이 모두 배로 침략을 해 나갔는데, 그것은 왜놈만의 특징이 아니고 당시 세계 제국주의의 특징이었어요.
그것을 가지고 왜놈의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라고 하면 말이 안되지요.

그런면에서 난 세계 곳곳으로 무역을 위해 뻗어나가는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모습과 더 닮았다고 봅니다.

고려 성종 4년에 북송이 보낸 책봉문에도 백제의 백성을 안온케 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백제를 이어받은 건 고려지 일본이 아닌데 말입니다.
일본은 백제의 22담로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오투비 15-03-25 00:49
   
1.헤이안시대를 지나면서 당나라 문물을 대거 받아들이는게 백제와는 다른 모습이라니..
백제시대 때도 중국의 문물을 대거 받아들였습니다.

2.그리고 백제의 유전자가 일본에 더 남아있는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반도를 차지하였기 때문이고, 망국의 한을 품고 열도로 건너간 백제유민들이 '日本' 을 건국하였기 때문입니다. 日本이란 글자는 백제인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글자입니다. 즉, '일본'이란 국가의 시작은 백제의 국가관으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겁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 계승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들이 꿈꾸는 '부흥과 팽창' 을 국시로 하는 성격이 비슷합니다.

다만, 그 유전자가 단지 혈통의 개념이라면 당연 얘기는 달라집니다. 본디 고구려,백제,신라는 큰틀에서 한 뿌리이고 같은 민족에서 갈라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 국가의 성격은 다릅니다.

3.백제가 왜놈처럼 무작정 침략하고 점령을 해나간건 물론아니죠. 그러나 사람도 한번 마음이 삐뚫어지면 끝없이 잔악해 지듯이.
망국의 한으로 부터 시작된 나라이니 만큼 당연 국가관 역시 삐뚫어질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국주의의 특징이 무역이 아닌 침략과 수탈이죠.
여기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양으로 진출하여 침략과 수탈을 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을때 아시아에서 왜 일본만이 배를 타고 바다건너 영토를 점령할수 있었을까요?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런 선택을 추진 할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동게에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이런 저런 분석 해놓으신 글들 저도 다 읽어봤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백제인의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된 일본이란 국가의 성격과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잘 부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유전자가 기억하는 한반도에 대한 악감정이 더해지니 모든 것이 이치에 맞아 떨어집니다. 이것을 일본의 지도자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고 '본디 그래야 한다' 라는 이치로 생각했던 겁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를 바탕으로한 근대화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의식하진 못해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겁니다.

메이지유신의 성공에 대한 이유와 이를 분석한 동게유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메이지유신의 과정 속에 있었던 한가지 '운이 좋았던' 사건에 대한 거론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게 아닙니다. 제국주의의 도래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듯이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모든 국가와 문명에는 저 마다의 전성기가 있습니다. 역사를 배우는건 단지 기록물을 해석하는게 아니라 역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철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알수있습니다.

4.또한 세계 곳곳으로 무역을 위해 뻗어나가는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아닌 쇼와시대의 일본이 더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와 2차대전이 끝나 패망 후 일본의 팽창주의적인 성향은 경제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쇼와시대에 일본 지도자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영토 전쟁에서는 졌지만 경제 전쟁에서는 이겼다","경제 영토로는 일본이 미국의 승리다" 사실 그런면에서 한국은 다릅니다. 신라,조선... 다 팽창주의적 성격의 국가가 아닙니다.

5.고려시대 북송이 보낸 책봉문에 백제의 백성이라 칭한것은 단지 옛땅을 고려가 차지해서 그렇게 부른겁니다. 또한 후백제와 백제 역시 다릅니다.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후 백제인은 곧 사라졌습니다. 열도로 건너가 일본을 건국하고 일본인이 되었으니까요.


6.倭국은 백제 22담로 중의 하나였지만 후에 백제인으로 하여금 日本으로 재탄생 됩니다.

저는 이에 대한 여러가지 기사도 읽었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링크는 없네요.
                         
디노 15-03-25 05:34
   
1, 백제시대 때 분열되어 있던 중국과의 교류로 문물을 받아들인 거랑, 당나라로 통일제국을 형성에 중국 내에서도 문화의 융성기라고 평가받는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인 거랑은 엄연히 다릅니다.
단지 중국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상황만 가지고 동일시하면 안 되죠.
당나라에 앞서 통일제국을 세웠던 수나라는 수명이 아주 짧아 문화를 꽃피울 겨를도 없었고요...

2. 백제 멸망기 망국의 한을 품고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은 백성이 아니라 대부분 백제의 왕족과 귀족이었어요.
많은 인구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면 수 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배도 엄청 많이 필요하고요. 임진왜란만 해도 왜놈들이 조선을 공격하려고 수 년의 준비기간을 거치잖아요.
한데 전쟁에 패하자 그 많은 백성들이 준비도 없이 어떻게 일본에 건너갑니까?
그리고 일반 백성들은 건너갈 필요도 없었고요...
당나라에도 수 만 명의 백제 유민들이 끌려갔는데, 거기도 일본 만큼 유전자가 남아 있을 텐데, 왜 일본만 예외의 경우로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한반도에는 일본, 중국보다 더 많은 백제 백성들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日本이란 글자는 백제인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글자라는 건 님의 사견일 뿐이고요...
아니라면 백제의 사상과 철학이 뭔지,
그리고 어째서 일본이란 글자에 백제인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다는 것인지 설명을 해 주셔야죠...
과장 조금 보태서 계승이라고....하셨는데, 과장이 아니라 망상 수준이네요.

사람이 마음이 삐뚫어지듯...백제도 삐뚫어 졌다...
이것 또한 터무니 없는 님의 추측이고... 비교할 바도 아닌 것 같아 패스하겠습니다.

3, 해양으로 진출하여 침략과 수탈을 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을때 아시아에서 왜 일본만이 배를 타고 바다건너 영토를 점령할수 있었을까요?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런 선택을 추진 할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 일본지도자들이 모두 합심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나요? 일본도 막부와 존왕양이파의 싸움 등 여러 싸움을 거치면서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죠...
왜 일본만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영토를 점령했냐고요? 처음에 쇄국정치를 하려다가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서구에 패하는 걸 보고 문호를 개방해 일찍 서구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조선만 해도 갑신정변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어찌 백제의 유전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요?

비슷한 이야기라 4는 패스하고,

5.고려시대 북송이 보낸 책봉문에 백제의 백성이라 칭한것은 단지 옛땅을 고려가 차지해서 그렇게 부른겁니다. 또한 후백제와 백제 역시 다릅니다.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후 백제인은 곧 사라졌습니다. 열도로 건너가 일본을 건국하고 일본인이 되었으니까요.
 
--> 고려가 백제 땅을 차지해서 백제의 백성이라고 했다는 건 님의 추측일 뿐입니다....한 나라의 국서가 수백 년 전에 사라진 나라의 땅에 단지 고려가 있다고 해서 그곳의 백성들을 백제의 백성이라고 했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의견이네요.
그 때도 국서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작성되는 겁니다. 님의 추측과 당시의 사관들 중 누구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나요?

막 써내려가다보니 거친 표현들이 많이 있는데, 이해해주시고 님께서 걸러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투비 15-03-26 04:26
   
님이 지적해주신 것들은 사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지엽적인 사건들에 불과합니다. 역사는 큰틀에서보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헤이안시대를 지나면서 당나라의 문물을 직접적으로 대거 받아들이며 백제랑은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되어갑니다.  //

1. 분열된 중국과 교류로써 문물을 받아들이면 백제 다운 모습이고 통일제국인 당나라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백제와 다른 성격입니까 단지 교류와 직류의 차이가요? 님 말대로 당시 당나라는 문화 융성기 입니다. 설령 백제가 존재했다고 한들 당연히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걸로 백제와 유사하다 아니다를 판단하기엔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것같습니다.

2.백제 멸망기 망국의 한을 품고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은 대부분이 백제의 왕족과 귀족입니다. 이부분이 역시 중요할 뿐만아니라, 멸망 직후에는 님 말대로 많은 백성들은 건너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몇세기 전부터 꽤 오랜시간을 두고 많은 수의 백제유민들이 주기적으로 열도로 건너가 터를 잡았었고 주 권력층 역시 백제계가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본국이 망하니 나머지 왕족과 귀족들도 열도로 건너가 망국의 한을 품고 다시금 부흥을 꿈꾸며 '日本'을 건국한겁니다.

물론 당나라에도 많은 유민들이 끌려가지만 그들은 단지 패망국의 포로일 뿐입니다. 그들이 무언가를 할 여건도 아니었고 당나라 인구에 비하여 비율적으로 극소수이기 때문에 거대한 집단 속에 흡수 동화되었을 뿐이지 유전자를 남겨 후대에 영향을 미치거나 할정도는 아닙니다.

또한 한반도에도 수많은 백제 백성들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들은 신라인으로 편입됐습니다. 제가 말하는 유전자란 단지 혈통속에 녹아있는 DNA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백제 땅을 포함하여 신라가 점령함으로써 한반도 남부는 신라의 이념,국가관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로써 한반도에는 백제의 정신사상은 사라지게 됩니다. 신라의 국가관은 이후 사대주의 성격으로 굳어집니다. 그도 그럴것이 삼국시대엔 고구려 힘을 빌려 백제를 견제하기도 하고 후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주변국을 물리쳤습니다. 강대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닳았던 것입니다. 오랜기간의 경험을 통한 신라의 학습과 기억이 유전자로도 뿌리깊게 새겨져 후대의 국가에도 계승됩니다. 어떻게 보면 신라와 백제 유전자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후에 사대교린을 국시로 한 조선도 그러한 이념이 바탕이 됩니다. 익숙한 것은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조선이 멸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서세동점의 시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자주성이 강한 나라가 살아남기 유리한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이미 망할 국운에 쳐하게 된것입니다. 우리민족은 그 동안 스스로가 옳다고 믿었던 모든 관념을 완전히 갈아 엎고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 그만큼 힘든 시기를 겪은 것입니다. 그만큼 사대주의로 지낸 역사가 길었기 때문에 깊이 각인된 유전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오늘날의 한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엔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국제무대에서 강대국과의 외교와 협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주변에 여러 강대국이 한꺼번에 있으니 그만큼 우리가 이리저리 휘둘리고 힘든것 아니겠습니까..


사견이 보태져서 길어 졌네요.. 좀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설득력을 가질 필요가 있겠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패스하겠습니다. 하지만 모든게 이치에 맞는 사실입니다.


日本이란 글자에 백제인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다 하는것에 확신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日本이란 글자는 고조선 부여 때부터 사용되던 글자입니다. 그들에게 (해,日)의 의미는 각별합니다. 추운지방에 살던 북방민족은 태양을 신으로 섬깁니다. 님도 잘 아실꺼라 생각합니다. 부여의 귀족 해解씨 가문 역시 태양을 의미하는 '해'의 발음에서 본떠온 것입니다.
또한 卒本扶餘의 (졸본)의 음을 보면 홀본 > 할본 > 알본 > 일본 (알 = 일 = 日) 으로 지금의 하얼빈므로 하얼빈은 동명성왕(부여 시조, 고구려 추모왕 아님)이 부여를 열었던 곳으로 여겨지니 즉 일본이라는 이름도 백제의 국호가 만들어 지기전(부여시대)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국호를 자신의 성 (해,解)을 이용해서 지었습니다.
해의 뜻을 가진 마따하리> 맏다아리 > 맏다리 > 맏다이 > 맏더이 > 맏이 
백제는 맏뎌이 = 맏이 = 해(태양) 으로 연결되므로 백제라는 이름은 [해 日] 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마따하리는 남방에서 기원한 언어로써 해를 뜯하며 남방계와 북방계는 길게는 이미 만년전부터 중국 동북부 및 만주 일대 융화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또 있습니다. 백제란 국명 유래를 이기훈 박사(동이/의  저자)는 이렇게 풀이 하더군요 박지가 원 명칭이였는데 (단연히 고대 한국어)..박/은 밝은 무엇 ..즉 태양...의미 ,,,-지/는 고대에 고위직 인물 내지 국가의미...로서 백제란 즉 태양의 나라란 말입니다

온조가 백제를 건국할때 자신의 동족이 신으로 섬겼던 (태양,日)이라는 글자를 이용하여 국호로 정했다는 것은 어떠한 이념이나 철학을 담았다는 것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日本으로 이어진 것이구요.


3.제국주의 시대에 일본 지도자들이 모두 합심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일본의 내부적인 갈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성공' 했다는 거죠. 큰 흐름에서 보면 그게 중요한겁니다.

일본도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갈라먹을 수 있었습니다.  1854~1868년 동안 이어진 막부말 혼란과 유신전쟁은 서구 열강들이 개입하면서 열심히 뜯어먹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만 그렇게 황금기회인 내전 때 서구 주요 열강은 죄다 내부적인 사정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누군가는 이것을 일본이 운이 지독히 좋았다고 표현하는데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메이지유신을 선택하지도, 추진시키지도 못했다면 저런 황금같은 타이밍이란게 세상에 존재했을까요? 흐름 즉,.. 어쩔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백제의 국가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된 일본은 천성적으로 어딘가를 진출하여 점령하는 제국주의의 성격과 가장 부합되는 국가 입니다. 제국주의의 도래가 막을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이었듯이 그 시기에 일본이 부흥하는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일본 지배해온 세력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성공하리라는 것을요.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하니 일본이 쇠퇴하고 있는 겁니다. 역사를 깊이 알면 미래를 예측할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일본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지만 흐름상 내리막을 걸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이 됩니다.


5. 한 나라의 국서 역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작성되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북송이 고려인을 백제인이라 칭한것은 몇세기 전에 멸망한 백제(남부여)인을 빗대서 말한것은 아닐겁니다. 성종4년의 고려인을 백제인이라 부른것은 가장 최근까지 존재했던 후백제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지 그 이전의 백제인이 아닙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백제와 후백제는 엄연히 다릅니다. 

두서 없이 쓰다보니 얘기가 길어졌네요. 계기가 되는 사건을 깊이 파고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큰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역사를 넓게 보시면 퍼즐조각처럼 모든 이치가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디노 15-03-26 17:04
   
님이 지적해주신 것들은 사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지엽적인 사건들에 불과합니다. 역사는 큰틀에서보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헤이안시대를 지나면서 당나라의 문물을 직접적으로 대거 받아들이며 백제랑은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되어갑니다.  //

1. 분열된 중국과 교류로써 문물을 받아들이면 백제 다운 모습이고 통일제국인 당나라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백제와 다른 성격입니까 단지 교류와 직류의 차이가요? 님 말대로 당시 당나라는 문화 융성기 입니다. 설령 백제가 존재했다고 한들 당연히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걸로 백제와 유사하다 아니다를 판단하기엔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 백제와 유사하다 아니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일본이 백제라는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제대로 된 비교가 되는 것이죠. 백제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을 세웠다는 증거는 많이 발견되지만 그 외의 일본의 대다수 역사가 백제와 일치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가야계와 신라계가 지배할 때도 있으니까요.
님은 백제와 일본을 동일시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비교가 아니며, 백제와 일본이 받아들인 문물도 다르니 더더욱 나라의 성격이 다르다는 얘깁니다.
   

2.백제 멸망기 망국의 한을 품고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은 대부분이 백제의 왕족과 귀족입니다. 이부분이 역시 중요할 뿐만아니라, 멸망 직후에는 님 말대로 많은 백성들은 건너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몇세기 전부터 꽤 오랜시간을 두고 많은 수의 백제유민들이 주기적으로 열도로 건너가 터를 잡았었고 주 권력층 역시 백제계가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본국이 망하니 나머지 왕족과 귀족들도 열도로 건너가 망국의 한을 품고 다시금 부흥을 꿈꾸며 '日本'을 건국한겁니다.

--> 5세기 궁월군과 아지사주가 백성들을 데리고 건너간 것 외에 백성들이 주기 적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처럼 대규모 인구가 이동할 땐 그만큼 힘이 들고 기록에도 남는 법인데,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건너갔다는 건 님의 추론이고요...
5세기에 건너갔다는 궁월군과 아지사주도 백제인인지 신라인인지 가야인인지 아직 논쟁중인 사안압니다.
 

물론 당나라에도 많은 유민들이 끌려가지만 그들은 단지 패망국의 포로일 뿐입니다. 그들이 무언가를 할 여건도 아니었고 당나라 인구에 비하여 비율적으로 극소수이기 때문에 거대한 집단 속에 흡수 동화되었을 뿐이지 유전자를 남겨 후대에 영향을 미치거나 할정도는 아닙니다.

또한 한반도에도 수많은 백제 백성들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들은 신라인으로 편입됐습니다. 제가 말하는 유전자란 단지 혈통속에 녹아있는 DNA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백제 땅을 포함하여 신라가 점령함으로써 한반도 남부는 신라의 이념,국가관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로써 한반도에는 백제의 정신사상은 사라지게 됩니다. 신라의 국가관은 이후 사대주의 성격으로 굳어집니다. 그도 그럴것이 삼국시대엔 고구려 힘을 빌려 백제를 견제하기도 하고 후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주변국을 물리쳤습니다. 강대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닳았던 것입니다. 오랜기간의 경험을 통한 신라의 학습과 기억이 유전자로도 뿌리깊게 새겨져 후대의 국가에도 계승됩니다. 어떻게 보면 신라와 백제 유전자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일본의 지배층이 내내 백제였던 것도 아니고 신라계와 백제계의 싸움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신라와 백제의 유전자가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라는 건 근거도 없는 님의 추측입니다.
내전은 신라와 백제만 했나요? 일본도 전국시대를 거치며 피터지도록 싸웠고, 중국도 수없이 많은 내전을 거쳤던 나라들이에요. 전쟁 했다고 유전자가 정반대라니요...
중국의 힘을 빌리고 어쩌고 이런 것들은 유전자가 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책이 달라서 그런 겁니다. 


후에 사대교린을 국시로 한 조선도 그러한 이념이 바탕이 됩니다. 익숙한 것은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조선이 멸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서세동점의 시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자주성이 강한 나라가 살아남기 유리한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이미 망할 국운에 쳐하게 된것입니다. 우리민족은 그 동안 스스로가 옳다고 믿었던 모든 관념을 완전히 갈아 엎고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 그만큼 힘든 시기를 겪은 것입니다. 그만큼 사대주의로 지낸 역사가 길었기 때문에 깊이 각인된 유전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오늘날의 한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엔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국제무대에서 강대국과의 외교와 협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주변에 여러 강대국이 한꺼번에 있으니 그만큼 우리가 이리저리 휘둘리고 힘든것 아니겠습니까..


사견이 보태져서 길어 졌네요.. 좀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설득력을 가질 필요가 있겠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패스하겠습니다. 하지만 모든게 이치에 맞는 사실입니다.


日本이란 글자에 백제인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다 하는것에 확신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日本이란 글자는 고조선 부여 때부터 사용되던 글자입니다. 그들에게 (해,日)의 의미는 각별합니다. 추운지방에 살던 북방민족은 태양을 신으로 섬깁니다. 님도 잘 아실꺼라 생각합니다. 부여의 귀족 해解씨 가문 역시 태양을 의미하는 '해'의 발음에서 본떠온 것입니다.
또한 卒本扶餘의 (졸본)의 음을 보면 홀본 > 할본 > 알본 > 일본 (알 = 일 = 日) 으로 지금의 하얼빈므로 하얼빈은 동명성왕(부여 시조, 고구려 추모왕 아님)이 부여를 열었던 곳으로 여겨지니 즉 일본이라는 이름도 백제의 국호가 만들어 지기전(부여시대)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국호를 자신의 성 (해,解)을 이용해서 지었습니다.
해의 뜻을 가진 마따하리> 맏다아리 > 맏다리 > 맏다이 > 맏더이 > 맏이 
백제는 맏뎌이 = 맏이 = 해(태양) 으로 연결되므로 백제라는 이름은 [해 日] 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마따하리는 남방에서 기원한 언어로써 해를 뜯하며 남방계와 북방계는 길게는 이미 만년전부터 중국 동북부 및 만주 일대 융화되었습니다)


--> 해만 숭상하면 모두 백제와 같은 사상과 철학을 가진 나라가 되는 건가요?
단어를 풀이한 열심히 공부님의 글까지 가져오셨는데, 온조는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삼국사기 온조의 기록은 그 시대 때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요. 바로 고이왕 때의 기록이 온조의 기록에 많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추운지방에 살던 북방민족은 태양을 신으로 섬긴다고 했는데, 바이칼호 주변에 살던 종족들 가운데 태양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또 있습니다. 백제란 국명 유래를 이기훈 박사(동이/의  저자)는 이렇게 풀이 하더군요 박지가 원 명칭이였는데 (단연히 고대 한국어)..박/은 밝은 무엇 ..즉 태양...의미 ,,,-지/는 고대에 고위직 인물 내지 국가의미...로서 백제란 즉 태양의 나라란 말입니다

온조가 백제를 건국할때 자신의 동족이 신으로 섬겼던 (태양,日)이라는 글자를 이용하여 국호로 정했다는 것은 어떠한 이념이나 철학을 담았다는 것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日本으로 이어진 것이구요.


3.제국주의 시대에 일본 지도자들이 모두 합심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일본의 내부적인 갈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성공' 했다는 거죠. 큰 흐름에서 보면 그게 중요한겁니다.

일본도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갈라먹을 수 있었습니다.  1854~1868년 동안 이어진 막부말 혼란과 유신전쟁은 서구 열강들이 개입하면서 열심히 뜯어먹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만 그렇게 황금기회인 내전 때 서구 주요 열강은 죄다 내부적인 사정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누군가는 이것을 일본이 운이 지독히 좋았다고 표현하는데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메이지유신을 선택하지도, 추진시키지도 못했다면 저런 황금같은 타이밍이란게 세상에 존재했을까요? 흐름 즉,.. 어쩔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백제의 국가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된 일본은 천성적으로 어딘가를 진출하여 점령하는 제국주의의 성격과 가장 부합되는 국가 입니다. 제국주의의 도래가 막을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이었듯이 그 시기에 일본이 부흥하는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일본 지배해온 세력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성공하리라는 것을요.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하니 일본이 쇠퇴하고 있는 겁니다. 역사를 깊이 알면 미래를 예측할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일본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지만 흐름상 내리막을 걸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이 됩니다.


5. 한 나라의 국서 역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작성되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북송이 고려인을 백제인이라 칭한것은 몇세기 전에 멸망한 백제(남부여)인을 빗대서 말한것은 아닐겁니다. 성종4년의 고려인을 백제인이라 부른것은 가장 최근까지 존재했던 후백제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지 그 이전의 백제인이 아닙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백제와 후백제는 엄연히 다릅니다. 

두서 없이 쓰다보니 얘기가 길어졌네요. 계기가 되는 사건을 깊이 파고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큰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역사를 넓게 보시면 퍼즐조각처럼 모든 이치가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후백제를 빗대어 표현했다는 건 근거도 미약한 님의 추측일 뿐이에요. 송나라가 고려, 백제 구분도 못해서 고려 백성을 백제의 백성이라고 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들은 고려라는 나라를 명확하게 인식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고려에 의해 망한 나라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 백성이라고 하는 건 외교관계를 단절하자는 도발이죠...그래서 후백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백제인들이 살던 곳에서 일어난 나라인데 지배층이 다르다고 백제와 후백제가 다르다는 것도 님의 관점, 같지야 않겠지만 엄연히 다르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에 가야와 신라인, 고구려인 백제인, 죠몽인들이 섞여 살았는데, 그 일본은 백제랑 동일시하면서 후백제의 백제는 백제와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면 누가 님의 말에 신빙성을 갖고 귀를 열겠습니까?
               
shrekandy 15-03-24 10:39
   
특히 그들의 태도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日出處 天子, 日沒處天子に書を致す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올린다)

당나라에 이런 국서를 보냅니다.
마치 그 이전의 역사는 모른다는듯 시치미를 뚝떼며 스스로 해가 뜨는 곳의 천자라 칭하고 있습니다. 모든걸 잊고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보여집니다. >>>>>>>


이건 일본이 당나라한테 보낸게 아니라 수나라 한테 보낸건데요...


아직 백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을때입니다
                    
오투비 15-03-24 14:56
   
잘못적었군요. 아마도 본국 백제가 아직 존재한시기였다 하더라도 이미 열도 역시 백제계가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이 스스로를 천황이라 칭했으니까요.
런데이 15-03-23 22:40
   
일본은 여러나라가 짬뽕된 나라예요. 한반도 지배계급이 몰락하면 가장 많이 이주한곳이 일본이니... 젤첨은 가야가 멸망하면서 이동했고 그이후 백제가... 그리고 고구려가 이동했습니다. 큰이주말고도 권력에서 밀려난 지배계층이 자기세력을 데리고 떠난곳도 일본이 많죠.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실은 친척같은 관계이긴합니다. 언어학적 유사성이나 생물학적 유사성을 봐도 그렇구요. 단지... 성질드러운 친척, 남보다 못한 친척정도죠.
스코티쉬 15-03-24 00:03
   
이상하게 일본을 백제에 갖다데려는 분들이 종종 보이더군요.

근세이후는 백제계가 장악했으니 그렇다 치고,
왜인들이 백제를 일본과 연관시키려는건,
일본서기 날조질이 파헤쳐지면서 점점 심해져가는건 우연인가?

막부시대는 그럼 왜 신라계가 경영했는지?
실제적인 백제계의 왜국 장악은 막부시대 이후죠

그냥 딴거 다 필요없고
한국 - 일본의 관계는 유럽 - 남미, 영국 - 미국의 관계.
남미나 북미 원주민과 일부는 섞이고 일부는 차별화된 모양새처럼
삼한의 도래인과 죠몽원숭이가 뒤섞여있는것도 그렇고,

일본은 삼한의 도래인들이 가서 문자부터 온갖 문화를 수혈해주며 개척한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ㅋㅋ

막판 폐륜질에 제대로 성공해서 현재까지 역사왜곡 날조질에 신분세탁까지
죠몽원숭이들 역겹네요

일본서기를 포함해 죠몽원숭이는 날조가 아니면 자존감을 가질수 없는?
그노스 15-03-24 03:37
   
백제가 일정기간 동안 중국 산동반도와 그 주변 지역을 영유했다는 중국측 사료의 대륙백제설이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백제가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근방까지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네요.
혹시 여기에 관련된 근거나 사료에 대해 아시는분 계시나요.
궁금하네요.
     
디노 15-03-24 08:47
   
백제가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근방까지 영토를 차지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단서가 될 만한 기록은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흑치상지의 묘비명인데,

“흑치상지는 백제인으로 그 선조가 부여씨에서 나와 흑치에 봉해졌으므로 자손이 이로써 씨를 삼았다.” 라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상지가 봉해졌다는 흑치라는 지역은 동남아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회남자>의 "동남방으로부터 동북방에 까지에는 대인국, 군자국, 흑치민, 모민, 노민이 있다"라는 내용이나, <신당서> 남만전의 "군소 만이는 종류가 많아 기록할 수 없지만 흑치, 금치, 은치의 세 종류가 있는데..."라는 기록들입니다.

둘째는 일본서기 킨메이기 9월조의 기록인데,

“백제의 성왕이 부남(지금의 캄보디아 부근)의 재물과 노비 2구를 왜에게 주었다." 라는 기록입니다.

또한 12월 기록에

백제가 왜에 보낸 물품에 탑등 1령이 들어 있는데, 이는 양모를 주성분으로 하는 페르시아 직물입니다. 이 또한 동남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일본서기 코우교쿠기 원년 2월조에
백제의 사절이 곤륜(임읍 이남의 동남아 지역에 살던 곱슬머리에 힌두교를 신봉하는 전신이 까만 종족) 곤륜 사신을 바다에 집어 던졌다. 라는 기록도 있는데
이 또한 백제의 세력이 동남아에서 활동했던 하나의 근거라고 생각됩니다.

양서 백제전에 “그 나라에는 22담로가 있는데 모두 자제나 종실의 친족으로 나누어 그곳에 자리잡게 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담로에 관한 기록은 양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즉, 무령왕이 명주항로를 개척해 동남아까지 세력을 넓힌 즈음에 나온 기록인 것으로 보여지고,

왕족 부여씨의 후손인 흑치상지가 동남아의 흑치 지역에 봉해졌다는 것으로 보아, 흑치도 이곳 담로중의 하나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노스 15-03-24 10:35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밥밥c 15-03-24 12:52
   
가장 중요한 것이 흑치상지의 흑치(黑齒)국에 관한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조선시대의 사서만 보더라도 흑치는 말그대로 "검은이빨"의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흑치국이 된이유가 그 동네사람들의 이빨이 새까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반도나 일본열도에서 이렇게 이빨이 새까만사람은 없다는 점이죠.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빈랑"이라는 열대작물의 열매를 씹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때문인데,

  이 빈랑이라는 열대작물자체가 없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대륙최남단은 가야 "빈랑"이 있으며,  여기 최남단에서부터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아니면 더더욱

 이남까지 이런 문화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
     
열심히공부 15-03-24 21:11
   
흑치 문화가 중국 일본 동남아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에 자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http://www.moodeungilbo.co.kr/searchview.php3?no=293749&read_temp=20090122§ion=15
동화 15-03-24 20:21
   
백제는 해양국가인것도 맞고..삼국(고구려,백제,신라)중에 경제적으로 가장 선진국이였다는것도 맞아 보임..
저 위에 댓글중에 백제와 일본의 관련성에 대해 쓰신분도 계신데..당연히 관련이 깊은 나라인건 맞죠..
그런데, 알아야 할게..일본은 백제와만 관련이 깊은게 아니라..신라도 그에 못지 않은 관련성이 있는 나라죠.
고구려도 관련성도 있다고는 하나, 고구려와의 관련성은 일부분에 지나지 읺고요.
중국(남송,당)과도 관련이 있고요..

일본은 기본 바탕을 백제+가야에 두고 있고..그것을 펼친게 나라이고..아스카문명이고..
그리고 확실히 국가의 틀을 가지고 제대로 꽃피우기 시작한것은 교토이죠.
교토부터는 백제보다 신라에서 온 도래인들의 영향력이 아주 커지기 시작한 시점이고요.
교토에 여행 가보시면..신라출신 도래인들의 신사가 대부분이고..그 신라출신들의 흔적이 한두군데가 아니기도 하고..신라의 수도인 금성(경주)의 기본 골격을 토대로 교토라는 도시를 건설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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