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이 경상도 지역이라는 것과 저소득층이라는게 문제가 되기도 하겠으나 평균이 커지면 커지지 작아지진 않을겁니다.
여기 기사에서도 언급하는 일본인 평균키는 다소 믿기 어려운것이 19C사진이나 20C초 국제조약의 사진들과 비교해도 본토 일본인의 평균키가 150이상이라는 것에는 물음표가 붙습니다만 우선 밑에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경향신문 기사 원문 주소 고고학자 조유전과 떠나는 한국사 여행](22) 동래읍성 上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11211728525&code=900305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우리조상들은 일본을 왜(倭)라고 불러왔다. 倭라는 한자를 파자해보면 人+禾+女 로 이루어져있는데 벼(禾)의 키만한 여자(女)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人)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아주 작고 왜소하다는 뜻으로 상당한 경멸의 의미도 내포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의문은 왜라고 부를 정도면 현재 한국과 일본 젊은층의 평균키 차이인 3-4cm정도로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Welfen이 생각하기에 키만으로도 다른 민족을 구별할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6cm 이상의 차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과연 우리 조상들은 불과 3-4cm의 키 차이 정도로 과거 일본을 왜라고 칭했던 것일까? 이 의문점은 바탕으로 더듬어 과거 한,일 양국간의 평균키에 대한 고고학적 데이터를 조사해보았다. 먼저 경향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동래(현재의 부산)성 전투에서 왜군에 의해 사망한 남성인골 19개체의 평균신장은 163.6㎝, 여성 5개체의 평균신장은 153.4㎝로 당대 일본 에도(江戶)시대 왜인의 평균 키(남성 155.09~156.49㎝, 여성 143.03~144.77㎝)보다 무려 8~10㎝ 컸다고 한다.여기서 눈여겨 볼것은 왜군에 의해 사망한 19개체의 신분일것이다. 인골의 평균신장 측정이야 현재의 고고학적 능력으로 봤을대 정확하다고는 하지만 19개체의 인골의 주인이 양반이나 지배계층일 경우에는 일반 평민과의 영양공급의 차이로 인해서 에도 시대 일본 남성 평균키와 직접적인 비교는 타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9개체의 남성 인골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경향신문 기사에 나온다...... 위 경향신문 기사 일부 인용.....................................................................................................(“인골은 우리가 살펴봤던 비참한 전투상황을 증언해줄 뿐 아니라 당대 한·일 양국 사람들의 형질이라든가, 영양상태를 알 수 있는데 분석결과 아주 재미있는 데이터를 얻었습니다.”우선 당대 동래사람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치아를 확인할 수 있는 두개골과 하악골 32개체 가운데 에나멜 질감형성(Enamel hypoplasia)이 26개체에서 확인됐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에나멜 질감형성은 영양실조에 의해 나타나는 선인데, 치아발육부진으로 이어집니다.”)................................................................................................................................................즉 동래성 인골은 지배계층의 것은 아닐 가능성이 커졌고 이는 당대 일본 평민 남성 평균신장과의 비교치가 정당함을 뜻한다라고 볼 수 있다. 즉 400년전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8-10cm정도 키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정도면 확실히 멀리서도 키와 체격만으로도 구별이 가능할 정도이고 단순히 왜구의 침략이나 해적질등으로 인한 적대감만으로 倭라고 멸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그렇다면 340년후인 일제시대때의 한,일 양국간의 평균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의 수탈로 인해 평균체격의 역전이 일어났을까?다시 경향신문 기사를 보자.원문주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141727235&code=960100[1936년 울산에선 어떻게 살았을까?]에 의하면 1936년 경상도 울산 달리(達里)에 ‘조선농촌사회위생조사회(朝鮮農村社會衛生調査會)’라는 조사단이 약 50일 동안 현지에 거주하며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마을의 인구, 경제, 주택, 체격, 질병 등 민족지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한다. 조사단은 1940년 단행본 <조선의 농촌위생>을 내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성인(20~50세)들의 평균 키(남성)는 164㎝로, 같은 연령대 일본 농부들(157.6㎝)보다 6.4㎝나 컸다. 몸무게도 한국 남성(56.81㎏)이 일본남성(53~54㎏)보다 3㎏ 이상 더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즉 1592년 부산 동래 남성의 평균신장 163.6cm와 1936년 울산 달리 남성의 평균신장 164cm는 350년동안 거의 같은 수준으로 생활수준의 향상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일제의 근대화론의 허구성을 증명한다.또한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 남성 평균 신장 155.09~156.49㎝이 1930년대에는 157.6㎝로 커져 생활 수준의 향상이 일어났음을 알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일 양국간의 격차는 6.4cm의 큰 격차가 났음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에 비해서 영양수준이나 후진적인 보건의료체계에도 불구하고 6cm이상의 큰 체격의 차이는 결국 유전적인 차이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인종차별적인 의도로 말하는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은 적어도 성장의 유전적인 잠재력으로 봤을때에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해도 될 것이다.그런데 현재의 386세대는 일본인보다 약간 작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본인이 생각으로는 과거 倭人으로 불리던 일본인에게 평균신장이 추월당한 역사상 최초의 세대일것이라 생각된다. 현재의 젊은 세대 즉 20대 기준으로도 일본의 같은 세대에 비해서 불과 3cm가 클 뿐이다. 한,일 양국이 비슷한 생활수준,의료체계를 갖춘다면 유전적인 잠재력으로는 최소한 6cm가 커야 정상일 것이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Richard H. Steckel와 테네시 대학의 Joseph M. Prince의 논문 (Tallest in the World: Native Americans of the Great Plains in the Nineteenth Century)의 자료를 Average Height of Troops Born in the Mid-Nineteenth Century, by Country or Place 19세기 중반 즉 1850년대에 태어난 병사들의 평균신장을 보면 독일, 네덜란드도 164cm에 불과함. 1600년대 조선인의 평균키 163.6cm, 1930년대의 조선인 평균키 164cm와 차이가 없음....
흥미로운 점은 네덜란드인데.... 현재의 유전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한 조건에서 네덜란드인의 평균키는 185cm, 미국 백인은 178cm로 역전됨, 즉 영양등 생활여건이 개선되면 유전적 잠재력의 차이만큼 평균키는 결정되는것임....앞으로 30년지나면 아마 네델란드와 우리나라의 키가 그리 차이나지 않을겁니다.
프랑스인이나 일본인하고는 키차이가 많이 나겠죠? 유전적 잠재력의 차이만큼....
아래는 흑요석이라는 사람한테 하는 말입니다/
아래글에서 신나게 인용하신 오하이오 주립대의 Richard H. Steckel교수가 한 말입니다.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못알아먹는 모양이니 정확하게 얘기해주면 당신이 떠벌인 블로그에 원전으로 기록돤 Richard H. Steckel교수가 쓴 논문에 1850년대 프랑스인 150초반 개중 큰 독일이 160중반 이라고 써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