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역사를 구제해야 할 시간입니다.
방향은 크게 나뉩니다.
1) 현대사회, 미래에 역사가 쓸모없다라는걸 인정한다면 순수하게 폐쇄적인 체계에서만 '사실검증과 서사만 부여하는 정도'의 역사학으로 축소.
2)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통속적 역사이해를 뒤집어엎고, 역사가 쓸모없는 현대한국사회에서 역사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일.
1)번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영어열심히 배워야 하고, 글로벌 사회다 그렇게 허풍을 떨고 다니니 바람직한 '세계시민'으로서 역사를 탈락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더욱이 자유주의소비와 탈국가적 지평위에서 문화도 경제도 마구 유통되는 마당에 역사에서 정체성이나 얻자고 하는건 시대착오일 수 있습니다. 저도 영국사, 일본사 나름 모르는건 아니지만 동인도회사, 대동아공영권 거창하게 잘 쓰면 영국인,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건가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분명히 윤리적으로나 의미가 있는 역사의 위대함, 역사를 아는것 이를 둘러싼 것들은 증식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서 생활공간을 둘러싼 개인만족에는 역사는 무관심합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잘 즐기기 위해서 '커피의 역사'까지 들춰보는것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커피를 잘 즐길 수 있는 감성이 배양된다거나 소비하는 가격이 줄어든다거나 하는건 절대 아닙니다.
일단 몇몇 한국인들이 오해하는 '역사로의 도피'는 문제가 있고, 역사가 아닌 곳에서 싸움을 걸고 싸워야 하고 거기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보다 냉정하고 실존적인 지점이에요. 일본문화를 안 즐겨야 하는 이유를 과거 위안부와 역사에서 찾는게 아니라 지극히 문화소비와 수준차이, 그리고 하지 않아야 하는 자기당위성에서 구해야 하기에 거창하게 논리를 들이미는것보다 엄격합니다.
역사가 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환경이 자랐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던, 모더니티라는 말은 시대가 언제부터 구분되었다라는 뜻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은 몇 세기부터 근대이고 그 이전은 중세이고하는 통속적 입장만 가지고 있겠지만) '미래가 이미 도래했고, 과거와는 늘 구분되어야 하는 미래를 사는 시대'라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현대사회, 미래에서 역사가 필요없는건 미래가 역사없이도 그 규범성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당위성 자체를 현대에 박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현대라는 말의 정의와 동급의 말입니다. 변해야 하는 것,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앞으로 늘 열려 있으며 예전보다 더 앞선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라는 기대감이 내면화됩니다. '시간이 자원으로서' 시간관념이 싹트게 되고 가속화되며, 사회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라는 관념 자체가 현대가 됩니다.
엄밀히는 여기서도 역사가 완전히 탈락된건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로서의 과거로 역사를 이해하는 한국의 통속적인 역사이해에 본다면야 이런 현대사회와 정의에 비추어서 역사를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위에서 떠든 모던, 현대 이러한 담론 자체도 서구에서 건너온 곳이고 서구의 이해를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지금 한국은 서구사회를 열심히 추종했고 서구처럼 서구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다들 믿습니다. 자본주의경제, 과학기술, 국제무역, 문화생산과 수출. 대한제국 이전으로 돌아가자라고 말을 하는 바보는 없어요.
현대 한국인들이 오해하는 '역사'라는 것이 과거의 어떤 지점에 머물러 있으며 이러한 역사 지점을 지금 현재 불러와서 이를 얼마나 잘 따르는가가 핵심이 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 할때의 그 역사는 '과거로서의 과거'일 뿐입니다.
모더니티예술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고전적 예술문법을 비틀었다는 것에 있고 전형적인 예술표본들, 아름답다라고 하는 미적 범주들을 잘 따랐는가 여부에서 근본적으로 이탈하여 '이러한 쓰레기들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라고 제시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즉, 어떤것을 고정적으로 알고 따르는가가 예술이 아니라 그러한 예술 자체가 무언가를 늘 실천적으로 제시하는 과정 자체가 모더니티예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보다 후대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티도 어쩄거나 '예술'이라는 이념을 추구했으니 예술 그 자체를 해체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을 법하지만)
이 예술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너무나도 섭취하기 좋은 과거사의 특정 지점을 놓고 고전적으로 표본으로서 절대적 범주로서 인식하고 (특히 일제강점기이후의 근현대사) 현대사회에서 아무런 의미없는 반복을 해봤을 뿐입니다. 현대미술에서 '원근법'을 얼마나 지켰는가로 미적 평가를 하지 사람이 없듯이 정식화된 표본이 아니라 무엇이 역사인가를 규정하고 흔드는 끊임없는 실천이 핵심입니다. 현대 한국에서 '역사'는 그냥 알아야 할 과거로서의 역사일뿐 '실천'으로서의 역사가 되지는 못하고 입맛대로 현실회피로서 도피처로서 기능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할일이 없으면 과거로 슝 가버렸다가 '정체성게이지'를 회복하고 다시 돌아와서 망각하면서 살았던 그러한 과정에 불과하지요. 그러니 실제 삶은 현대적 기준을 요구하지만 한 구석에서 '과거로서의 과거'를 계속 살려둔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중요한건 '실천'입니다. 역사는 현대사회에 맞게 실천이 되어야 해요. 조선시대가 어떻니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로 해야 할 일은 조선시대를 현대 대한민국에 재현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한복입기도 그 예가 될 수 있어요. 과거의 연대기, 그러한 해석에 불과한 역사가 미래를 위한 강령과 도전이 됩니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아는건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에요. 진짜로 고구려를 재현하는 과제가 남아있어요. 자, 누군가는 고구려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알것을 강조하면서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라고 하지만 정말로 해야 하는건 '고구려같은 나라'를 이 땅에 등장시킬 수 있는가입니다. 중국과 싸워서 이길 수없다라고 자평하면서 '고구려'를 강조하는건 웃기지 않습니까?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이 문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통속적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지 않는지요? '미래'에 대해서도 몰랐고 그냥 표본화된 과거상식을 잘 알면 관념적으로 미래도 잘 대처할 것이다라는 밑도 끝도없는 종교적 신화와 마주쳐왔습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에 비판 없이 다 그런줄 알았지요.
역사를 구제하는건 이미 끝나버린 지식과 과거로부터의 압박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야 하는 당위성과 압박입니다. 고조선이요? 이게 왜 중요할까요? 너무 지나치게 과거로만 집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