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이 국가의 시작이다 혹은 연과 전쟁한 강성한 국가, 기자가 조선후에 봉해졌다라는 사료가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5000만의 사람들에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지요. 광개토대왕이 후연과 전쟁한다고 성을 빼앗았다 이런건 2015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 없습니다.
말하자면 '역사라는게 구성원의 사유를 결정짓는 중요한 틀인가?'의 여부인데 오늘날 현대과학기술문명을 발전시켜나가는데 있어서 형식적으로 합의된 공리계를 얼마나 준수하느냐의 '비역사적 과정'이 중요할 뿐이고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도 압박을 주는 '역사적 사유'가 기여해야 하는 역할이 크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현대사회에서 충실하게 자기 생활, 만족을 누릴 수 있고, 문명/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라는 뜻이 될 겁니다. 트렌디드라마 쓰는데 중요한건 사람들 욕망을 자극하는 배역, 배경, 플롯, 미장센이지 드라마를 잘 만들기 위해서 과거 드라마역사와 비평을 알아야 한답시고 그리스 드라마까지 찾아야 할 필요는 없거든요.
일면 단순해 보이는 이런 비판에 직면했을 때에 '역사'를 강조하는것은 그 변명의 폭이 크지 않습니다. 단지 당위적으로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윤리적 서술만 사회위에서 붕붕 떠다니고 있습니다. 이 시점은 현재 '일제강점기를 놓고 일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지금 한국에서 유통되는 일본화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모순적인 지점'을 놓고 비꼴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인 정체성, 사유만을 강조한 나머지 비역사적이고 실체적인 관점을 도외시해버리면서 도리어 역사가 이를 덮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거든요. 즉 일본만화를 소비하더라도 '바람직한 국사 패키지+특히 근현대사관련 인식'만 기존 사회가 고수하던 입장과 동조화를 시킨다면야 자신은 아무런 문제없는 사람으로 불러질 수 있습니다.
역사를 사회에서 추방시켜버렸거나 아니면 종말이라고 떠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건 역사적 공간에서 이해되는 한국이 아니라 비역사적 당위가 요청될 수 있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일본만화를 즐기는 것에 대한 변명은 '일본만화를 보더라도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있고 주류 사회와 같은 입장이다' 라는 것이 아닌 그 스스로의 소비환경에서 주어진 소비지평에서의 주체적 발전을 떠들 수 있는가의 여부이지요. 이렇기 때문에 현재 한국사회의 역사과잉은 어떤 의미에서 과잉이고 그것이 불필요하게 다른 사유를 정지시키고 무력화하며, 혹은 자기변명의 논조로 전유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하에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만화를 비역사적으로 변명을 한다면야 '근현대사'를 꺼내는게 아니라 바람직한 한국어의 사용과 보다 고양된 감수성의 개발을 예롤 들수 있어요) 그러니 한국인의 정체성이 현재/미래에 있는게 아니라 과거에 정형화된 반일형인간이 한국인의 표지인건처럼 (마치 독도, 위안부에서만 일본에 반대하면 끝인양) 세워지는 지점이 나오게 됩니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왜 역사가 중요한가'를 놓고 기존에 이해되는 것과는 달리 다른 무언가를 제시해야 맞습니다. 고조선, 고구려를 놓고 '올바른 역사'라고 강조하는 이유와 그 기저에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 역사와 이 역사가 지시하는 방향설정이 중요해집니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든 없든, 임나일본부가 실재했든 하지 않았든 지금 반도체공정을 미세공정화시키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굳이 무언가의 강박관념이 지배적이듯 '허구다'라고 파헤치는 사람들이 나오지요. (오해할듯 해서 말하지만 이러한 역사작업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인식의 과제가 현재에 무슨 답을 해줄 수 있는지 명백하게 떠들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낙랑군이 요서에 있다면 지금 한국은 달라질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인식에 개벽이 일어나서 전에는 바보였던 사람이 천재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은 될 정도로? 역사에서 정체성, 미래라고 우기고는 있지만 그 정체성과 미래는 무엇입니까? 굳이 역사가 아니더라도 이런 기능을 해줄 다른 것들이 많아요. 법, 정치, 문화 이러한 것들. 그렇다면 역사가 현재에 기능하는 실천적인 목적, 기능에 관해서 분명하게 파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능성, 불가능성을 먼저 깔아놓고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지만 한국사의 공간을 평양에서 요서로 옮겨놓는건 그 자체로 한국사와 한국이 어디까지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했어야 옳습니다. 한국은 결국 만주로 가야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