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서술할때 있어서 객관적인 용어, 해석의 여지를 축소시키는 용어를 써야 할 겁니다.
원래는 대논쟁의 서막 정도나 될 법한
'청나라는 중국인가?'라는 질문은 얼핏 단순하지만
청, 대청이라고 하는 국가의 본질과 구성, 그리고 중국이라는 의미까지 걸려 있는 누군가에게 중차대한 질문이겠지만 가생이에서도 논쟁이 걸려 있으니..
1840년 (겉으로는 청흠차대신의 일방적인 몰수에 저항한다는 명목하에서 광동에서의 무역제한을 해제한다라는 의미로 벌인) 영국의 아편전쟁 상대방이 '청'인가 '중국'인가는 해석의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좀 과격하게 말해서 이전 역사에 현대국명을 들먹이는 서양학자들도 학문적, 이론적으로는 실격이라고 보는 쪽입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대상은 '淸'이라는 정식국호를 가진 나라가 있고, 이 나라의 명명을 넘어서는 다른 용어의 사용은 '해석'의 차원인데 특히나 중화민족이라는 이름과 함께 역사를 재해석했던 1960년 이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해석일뿐입니다.
문제는 이런 이데올로기적 개입을 인지하지 못하고, 형이상학적 용어 '중국'을 꺼내면서 역사를 서술하는것이 타당한가의 여부인데
예를 들어서 세종대왕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의 왕으로 등극했다' 라는 문장의 진위를 본다면야 이 문장은 역사학에서 쓰여서는 안될 용어라는건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대륙의 역사를 놓고 논하는 와중에 아편전쟁에서 영국은 중국과 싸웠다라는 문장이 그럴싸하게 들리고 여기에 자각이 없는 이유는 '청나라가 중국이라는 인식'을 너무나 당연하게 의심하지 않고 배워왔기 때문이지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성했으며 자부심 넘치던 중국은 1842년 아편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중화사상은 여지없이 깨져나갔고, 중국인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이 문장을 객관적으로 다시 쓰면 이렇습니다.
1)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강성했으며 자부심 넘치던 -> 저자의 주관적인 평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역사책에서 쓰일 문장은 아닙니다. 수사학이라고 강변해도 소설에서나 쓰일 법한 문체들. 고로 삭제
2) 중국은 1842년 아편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 청나라를 중국으로 보든 안 보든 어떤 해석을 따르더라도 1842년에 존재한 나라는 청나라이지 중국이라고 하는 정치실존은 없으며 객관적으로 기술한다는 목적하에서, '청나라는 1842년 아편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라고 써야 맞습니다
정확히는 아편전쟁때문에 몰락했다라는 인과관계도 여지없이 부식되는건 마찬가지지만 논외라서 생략합니다.
3)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중화사상은 여지없이 깨져나갔고 -> 중화사상이 정확하게 뭔지 안다면야 상관없는 문장이 될 수도 있지만 아편전쟁과 중화사상을 연결할 끈덕지는 객관적으로 제시되지 못합니다. 더욱이 1842년 청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중화사상'으로 무장했는지, 그것이 서구열강 영국과 싸워서 패배한 주된 감정이었고 사상이었는지는 검토해봐야할 거리. 그러니 삭제.
4) 중국인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 중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중국인이라는 단위도 형이상학일뿐입니다. 마치 '임진왜란때에 일본군에 침략을 받아 비통해 한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들리는것과 동급으로 중국인이라고 하는 그런 용어를 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 '청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라고 써야 맞는 표현. 더욱 따지면 '자존심' 이런 용어도 역사에서 필요없습니다. 심리학에서 쓸 법한 용어를 역사에서 쓰고 있으니까요.
합친다면야
'청나라는 1842년 아편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고, 청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라는 문장이 역사학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입니다. 그 이상의 표현들은 역사가 아니라 정치적 문법으로 볼 뿐이지요. 객관적 사실, 눈에 보이는 사실만 쓰는 주의에 입각해서 엄정하게 쓰면 해석의 여지가 없는 수준으로 써야 맞습니다.
역사텍스트에서 검증도 안되는, 해석의 폭이 엄청 넓은 그런 정치적 이데올로기까지도 객관적 단어로서 자칭하면서 버젓히 통용되고 있고 그럴듯하게 소비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내에서 이러한 의식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딱히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것과는 무관하게도 역사, 역사적 저술에 너무나도 많은 형이상학과 관념론이 판 치는걸 알 수 있습니다.
( 논외로) 그런데 그렇게 역사에 과학과 객관, 실증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진짜로 과학적 방법과 객관적 문법, 실증을 엄정하게 사용했는가는 회의스럽습니다. 더욱이 서구에서 1900년대이후에 불었던 형이상학의 추방, 그리고 명제의 올바른 사용, 크게는 언어학적 전환이라는 분석철학의 등장부터 이 개념을 정확히 숙지하면서 이걸 꺼내들면서 해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듯이,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로 실증, 객관 거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정작 전위당역할을 하면서 열심히 싸우는 쪽은 따로 있고 기득세력을 옹호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요.
그렇다면 청나라는 중국인가요? 청나라는 중국을 넘는 중국초월적 제국이 아닌가요? 티벳에서 불교를 수호하는 화신이자, 몽골의 대칸으로서, 중국의 황제로서 존재했던 청나라는 중국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어쨰서 중국이 전유하는 나라가 되었죠? 비교해서 본다면야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아우르는 대영제국(이 표현도 좋지는 않지만) 그리고 제국의 식민지 인도에 있어서 인도인들이 캐나다와 뉴질랜드, 호주, 남아공을 아우르는 영국적 실체를 직관하면서 자국역사라고 인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논리는 왜 중국에 적용이 되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