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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22 13:30
[기타] 2) 우리는 70여 년을 그들에게 속아왔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4,052  

고려사에 나온 「신지비사」 일부는 『환단고기』를 통해서 전문이 확인된다.(고조선 삼한관경제 근거 자료) 6세 달문단군 때 신지 발리가 지은 이 「서효사」가 바로 저 유명한 「신지비사神誌秘詞」이다. 「서효사」는‘삼신께 제사 지낼 때 서원誓願하는 글(『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이다.
 
「신지비사」는 『삼국유사』 「보장봉로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 조와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에서도 일부 기록을 볼 수 있다. 단재는 『조선상고사』 제2편 3장 「신지의 역사」와 「조선상고문화사」 제2편 3장 「신지의 역사와 예언」에서 「신지비사」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였다. 단재는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한전韓傳> 등에 삼한三韓의 70여 국에는 각기 거수渠帥(군장君長)가 있다고 하였으며 그 중에 최고의 장을 신지臣智라 하여 이 신지가 곧 신지神誌였다고 보았다.
 
 
고려 숙종 때 「김위제전」에 인용된 「신지비사」에는“如稱錘極器, 稱幹扶疎樑, 錘者五德地, 極器白牙岡, 朝降七十國, 賴德護神精, 首尾均平位, 興邦保太平, 若廢三諭地, 王業有衰傾.”이라 하였다. 그 뜻은 단군조선의 삼한의 각 수도[三京]를 저울대[稱幹]·저울판[極器]·저울추[稱錘]에 비유하여, 삼신의 창조 원리를 적용한 신교의 삼신신앙이 영속되어 고조선 삼경三京의 균형이 잘 유지되면 삼한의 70국에게 조공을 받고 크게 번영하게 되며, 만약 삼신신앙이 쇠퇴하여 삼경의 균형이 깨어지면 바로 그날이 고조선의 종말이 된다고 후손들에게 경계한 것이다.
 
 
삼한三韓의 수도 위치_6세 단군 때 신지 발리는 자신이 지은 서사시 <서효사>에서 삼한의 수도를 저울대(소밀랑, 송화강 아사달), 저울추(안덕향), 저울판(백아강)에 비유하였다. 세 수도가 하나의 저울이 되어 균형을 계속 유지하는 한, 고조선의 태평시대는 보전될 것이라 하였다(『고려사』).
 
고구려 요서 10성의 명칭과 위치를 알려주는『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문구를 살펴본다. 여기에는 태조대왕 3년에 고구려가 요서에 쌓은 10성의 명칭과 위치가 나온다.
 
『조대기朝代記』에서 태조 융무 3년에 요서에 10성을 쌓고 이로서 한나라의 10성에 대비케 하였다. 안시는 개평 동북쪽 70리에, 석성은 건안의 서쪽 50리에, 건안은 안시의 남쪽 70리에, 건흥은 난하의 서쪽에, 요동은 창려 남쪽에, 풍성은 안시의 서북 100리에, 한성은 풍성의 남쪽 200리에, 옥전보는 한성의 서남쪽 60리에, 택성은 요택의 서남쪽 50리에, 요택은 황하가 북류하는 곳의 왼쪽(동쪽)에 각 있다.
朝代記曰 太祖隆武三年 築遼西十城 以備漢 十城 一曰安市城在開平府東北七十里 二曰石城在建安西五十里 三曰建安在安市南七十里 四曰建興在灤河西 五曰遼東在昌黎南境 六曰豊城在安市城西北一百里 七曰韓城在豊城南二百里 八曰玉田堡舊遼東國在韓城西南六十里 九曰澤城在遼澤西南五十里 十曰遼澤在黃河北流左岸」
 
「건안성은 당산 경내에 있고 그 서남을 개평이라 하며 다른 이름으로 개평이라 하는데, 당나라 때 또한 이를 개주라고 일컬었다. 建案城在唐山境內 其西南爲開平 一云 蓋平 唐時亦稱蓋州是也」 위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문구에는 건안성은 당산 경내 있고, 안시성은 건안성의 북쪽에 있으며, 요동성은 난하 동쪽 창려의 남쪽에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서울의 저명한 사학교수들은 모두 건안성, 안시성, 요동성은 요하 동쪽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구당서舊唐書』 「장검열전張儉列傳」 문구를 보면‘A.D 644년에 당태종은 요동을 정벌하기에 앞서 장검에게 번병(蕃兵)을 거느리고’,『삼국사기』에는‘유幽, 영營 2 도독부의 군사와 거란, 해, 말갈을 거느리고’라고 적혀 있다. 요동을 공격하여 그 형세를 살피게 하였다. 그랬더니 장검은 군사를 거느리고 요서에 이르러 강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 요수를 건너지 못하였다. 이에 태종은 장검이 겁이 많고 유약한 것을 보고 낙양으로 소환하였고, 그 해 11월 장검은 낙양으로 소환되어 당태종에게 지형과 군사행동에 대하여 말하니 당태종은 듣고 기뻐하여 장검을 당태종이 거느린 6군(어영군)의 행군총관에 명하고 거란, 해, 말갈 등 여러 무리를 거느리고 6군의 선봉에 서게 하였다.
 
6군은 어영을 호위하는 內, 外, 前, 後, 左, 右 6군을 말하는 것으로, 이때 장검이 6군의 선봉에 섰다고 것은 당제가 거느린 어영군의 선봉에 섰다는 뜻이다. 장검은 당태종으로부터 행군총관을 명받고 당제와 함께 이동하였는데, A.D 645년 2월 11일 낙양을 출발하여 3월 24일 정주를 지나 유주(幽州)로 가던 중 당태종은 보정 동북방 150리에 있는 신성로에서 장검에게 요동으로 가서 막리지를 요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稱莫離支將 至遼東 詔儉率兵 自新城路 邀擊之].장검열전에는 당태종이 명령을 내린 일자가 나오지 않으나, 3월 24일 정주를 지나 보정 동북방 150리에 있는 신성(新城)까지 가는데 며칠 걸렸을 것이므로, 장검이 신성로에서 나와 막리지 요격에 나선 날은 대략 3월 26-27일경으로 보인다. 이 신성의 위치는 탁군 신창현 서쪽 30리 되는 곳이고, 보정부 동북 150리 되는 곳이다.[涿郡 新昌縣..今新城東三十里. 補注] [保定府...新城 府 東北 150里 皇朝續文獻通考].
 
 
이 외에도 『환단고기』가 진서임을 알려주는 여러 증거들이『환단고기』 자체 내에 많이 들어있다. 문제는 그 증거들을 일일이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대하는 자세이다. 왜 식민사학자들은 자세히 연구하고 검토하지 않고 위서라고 낙인찍는가 하는 것이다. 민족사학자이건, 역사학계의 주류 사학자이건 누구라도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우선『환단고기』에 담긴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문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열린 태도와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환단고기』가 편찬, 간행된 것은『환단고기』의 앞에 붙어 있는 서문에 해당하는 범례에 따르면 계연수 선생은 자신의 동지이자 벗인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 두 사람의 자금지원으로 30부를 간행했다고 한다. 범례에‘기궐’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목판에 새긴 것으로 보인다.『환단고기』를 우리에게 전해준 이유립 선생은 1907년생으로서 해학(海鶴) 이기(李沂, 1848~1909)의 제자이자 계연수 선생의 제자였다. 그는 13세 때 삭주 지역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배달의숙이라는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는데 이 학교에서는 계연수를 위시하여 최시흥, 오동진 등이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유립 선생은 조선독립소년단에 참가하여 활동하는 등 소년시절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는데 특히 교육운동에 뜻이 있어 33세 때에는 신풍학원도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신탁통치에 반대했던 그는 1948년 남한으로 월남할때『환단고기』를 가져왔다. 이유립 선생은 1963년 대전 은행동에 정착해서 후학들에게 우리 역사를 가르쳤는데 그 때 사용했던 교재가 『환단고기』였다. 이는 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양종현梁宗鉉 씨가 직접 증언해준 사실이다. 양종현씨는 1966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유립 선생에게 사사했던 분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유립 선생이 갖고 있던 『환단고기』 초간본은 1976년경에 분실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유립은 월간 『자유』지를 운영하고 있던 박창암 장군(1923-2003)의 도움을 받아 의정부에 살고 있었는데 백내장 수술차 5일간 집을 비운 사이 집주인이 야반도주한 걸로 착각하고 집세 대신에 이유립 선생의 책들을 모조리 팔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환단고기』 원본이 사라지는 바람에 『환단고기』 위서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인류사의 여러 경전을 돌이켜보면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었다. 백번 양보하여 『환단고기』의 일부 술어와 연대 표시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사서와 다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시원 역사, 한민족의 국통 맥, 태곳적 한韓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밝혀 주는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식민사학자들은‘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한『환단고기』의 원본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조작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환단고기』 범례에서도 나오듯이 운초 계연수가 1911년에 만주 관전현에서 스승 해학 이기의 문중에서 전해 오던 『태백일사』(8권으로 구성)와 다른 4권의 정통 사서를 한 권으로 묶어 간행하였는데, 1920년 만주 관전현, 압록강 부근의 조선인의 사설학교 배달의숙(倍達義塾)에 일본 헌병대가 들이닥친다. 이 학교는 독립운동가인 석주 이상룡 선생과 송암 오동진 장군이 출연, 설립한 뒤 일대 독립군 및 그 자녀들에게 조선의 역사와 혼을 가르쳐오던 터였다.
 
일본 헌병들은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계연수선생을 체포하고 계연수선생과 여러 교사들이 수집하고 연구한 책과 저술, 자료 등 3천여 점을 강탈해 헌병대로 실어갔다고 한다.“헌병대가 강탈한 온갖 자료들 가운데는 당연히『환단고기』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일본 헌병들은 운초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펴낸 바로 그 인물인 것을 알고는 온갖 고문을 가하고는 사지를 다 잘라서 압록강에 내다버렸다. 그렇게 토막토막 잘려진 선생의 시신을 동포들이 수습하던 장면을 직접 목격한 분이 그의 제자인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다.
 
 
이유립 선생은 평안북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인 해학 이기의 제자 이관집의 아들이고 열세 살부터 배달의숙에서 계연수선생에게서 배웠다. 계연수선생과 이관집 선생은 일찍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환단고기』를 진정으로 그 전수자로서 희생되신 분들, 가신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옷깃을 여미고 정말 목욕재계하고 『환단고기』의 그 한 소식을 우리의 본래 원형역사, 원형 문화의 안목으로 그렇게 읽어야지, 제 눈에 제 안경으로 그냥 비판하고 훼손을 시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한민족의 고유사서들 대부분은 전란이 빈번하여 사서들이 소실된 경우가 많았고 외적에게 탈취되어 사라진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FONT>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궁궐과 많은 절, 건물들이 불에 타면서 그곳에 있던 서적들도 소실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유학에 물든 조선 조정은 우리 고유 사서를 민간으로부터 수거하여 궁궐에 비장하였다가 전란이나 화재로 사라진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신지비사神誌秘詞』, 『진역유기震域留記』, 『삼성밀기三聖密記』, 『조대기朝代記』, 『고기古記』, 『밀기密記』, 『대변경大辯經』, 『삼한비기三韓秘記』, 『삼한고기三韓古記』, 『해동고기海東古記』, 『고려팔관 잡기高麗八觀雜記』 등 현재 전해지지 않는 고유 사서의 이름이 나온다. 이렇게 한민족사의 참 모습을 확인시켜 줄 사서들이 거의 다 사라져버린 지금, 『환단고기』와 『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 등 몇 종의 책들이 겨우 전해지고 있다.
 
 
『단기고사』는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대진국을 세운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大野勃이 발해문자로 쓴(729년) 책이다. 전수 과정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1959년 국한문으로 번역되었지만, 6·25 사변 때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단기고사』는 구전되어온 자료를 토대로 복원된 것이다. 『규원사화』는 그 서문에 의하면, 북애노인北崖老人이란 인물이 숙종 2년(1675년)에 지었다.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조시대를 모두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는 『환단고기』와 상이한 부분이 있다.
 
『제왕연대력』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지은(890년경)대표적 저술 중의 하나로 신라 역대 왕력이다. 원본은 일제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홍종국洪種國이 필사한(1929년) 필사본만 전한다. 고조선의 1세, 2세 단군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이들 고유 사서 가운데서도 삼성조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만 아니라 상고시대 동북아 문화권의 정치, 경제, 풍속, 언어, 음악, 국제 관계 등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전하는 『환단고기』야말로 한민족 고유사서의 최고봉이라 하겠다.
 
1911년은 일제에 의해 사서 수거령이 내려진 해였다. 후대 사람들한테 한민족사의 뿌리역사와 혼이 담긴 『환단고기』가 전해져야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일제에 의해서 빼앗길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계연수 선생은 1980년에 공개하라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유립 선생이 죽기 직전 책이 나왔다. 1980년도 직전까지는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 정권의 군부통치 유신체제 시절로 표현의 자유가 금지되던 시기였다. 때문에 80년 서울의 봄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그동안 음지에서 숨어있던 민중서적과 금서들이 봇물터지듯 나왔다. 결과적으로 계연수 선생은 적절한 시기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알리라고 하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환단고기』는 우리 한민족이 근대사의 출발점 갑오동학으로부터 그렇게 무참하게 죽고 800만명이 죽었는데 그 역사의 중심에『환단고기』가 있다. 1910년 한일 합방된 그 다음해 그 첫해에 인류 창세 역사, 동북아의 원형문화와 역사의 뿌리를 밝히는 『환단고기』의 역사 경전이 나왔다는 것은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본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가지고 북한에서 내려온 한암당(寒闇堂) 이유립(李裕?,1907∼1986)선생이 대전에서 한 20년을 살면서 60년대 전후로 해서“커발환“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그분이 남한에 내려와서 고등학생과 대학생, 또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환단고기』를 대전 은행동에서 우리의 역사 원본을 가르쳤는데, 그 가운데 아주 머리가 뛰어난 양종현이라는 제자가 지금 청주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분의 증언을 작년과 재작년에 한 열다섯 시간 정도 직접 들었는데, 양종현씨는 60년대에 다른 사람들하고 이유립 선생님 면전에서 신해년 1911년에 나왔던『환단고기』의 초간본을 가지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창암 장군이 쓴 자유지에 이유립 선생이 60년대에 기고를 하기 시작할 때는 환단휘기로 책을 소개 했었다‘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 양종현씨는『환단고기』로 쓰여져 있었던 초간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증언을 하고 있다.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1864~1920)선생이 우리의 시원역사를 선언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일제에 잡혀서 죽도록 맞고 사지가 잘려서 압록강에 버려졌는데, 그 시신이 건져질 때 흐느껴 울던 열다섯 살 소년이 바로 한암당 이유립이다. 이유립 선생이 그 명을 아주 무섭게 가슴속에 새겼을 것이다.
 
 
1984년, 5년쯤 되어서 오형기 발문이 붙은 1979년도에 나온 책을 처음으로 받자마자 예전에 안방에서 밥먹던 밥상을 놓고 하얀 한지를 깔고 그리고 무릎을 꿇고 초저녁부터 새벽 날 샐 쯤까지 책을 보고서 덮었는데, 한 두 시간 정도는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게 진실이냐? 이게 한민족사의 진실이냐? 아는 내용은 아는 대로,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모르는 글자 있는 그대로 본 것이다. 그래도 책 내용의 큰 줄거리는 정확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때 가장 감명깊은 한 구절이 신라의 대표적 인물인 십성(十聖) 가운데 한분인 안함로(安含老, 579-640)선생의『삼성기(三聖紀) 상上』의 제 1구,“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우리 환족의 나라를 세운 것이 가장 오래 되었다. 환국에 대한 정의! 한민족의 한의 뿌리에 대한 정의! 인간에 대한 정의! 인간 본성에 대한 정의! 이 모든 것이 그 한 줄에 다 들어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핵심 메시지는 안함로의『 삼성기 상』, 원동중의『 삼성기 하』,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 이 다섯편의 책 속에 여러가지 형태로 정의가 되고 있는데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는 명구는 천하의 명문이다. 한민족의 뿌리,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가르쳐야 문화를 알고 또 그 문화를 알아야 역사의 원맥을 바로 세울 수 있다.『환단고기』를 가지고 교육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환단고기』는 번역본이 20여종이 나와 있는데『환단고기』라는 책의 뜻이 뭐냐? 그것도 정의가 된 그런 책이 없었다. 환단(桓檀)은 환단고기를 보면 천지의 광명이다.
 
『환단고기』란 천지광명, 환단(桓檀)을 체험하고 살던 옛사람들의 이야기책이다. 천지의 광명을 체험하고 살던 옛이야기, 시원역사 이야기, 이것을 인류학자들, 실제 고고사학자들이 “황금시절Golden Era”이라고 한다. 인간이 자연의 마음으로 살던 시대가 있었다. 이게 동서의 신화(神話,mythology)학에 들어가 보면 공통적으로 있다. 『환단고기』는“자천광명왈(自天光明曰) 환(桓)이요, 자지광명왈(自地光明曰) 단(檀)”이다. 천지광명의 주체가 천지광명을 체험하고 산 바로 그 사람! 인류 창세 역사의 문화 주인공, 그게 한(韓)이다. 그게 대한민국의 대한(大韓)이다. 『환단고기』의 역사관이 뭐냐? 그건 대한사관이다. 그건 천지 광명사관이다. 한마디로 이 우주 광명사상. 모든 종교의 근원, 동서 정치학의 근원, 동서 4대문명의 원형사상이『환단고기』에 있다. 그럼 우리 한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환단고기』를 한 글자로 요약하면‘밝을 환(桓)’이다. 밝을 환(桓). 지금도 밤이 되면 보름달이 떠 있을 때 아, 낮처럼 환하네. 신수가 환하군요. 훤하군요. 그 환(桓) 자를 쓴다. 나무 목木 옆에 뻗칠 긍亘. 광명이 무변광대하게 뻗쳐 있다. 온 우주에. 桓. 이 우주의 광명사상이 우리 한민족 문화의 원류다. 우리 문화의 원형, 역사관의 근원, 인성론의 바탕 인류 역사의 본질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초극해서 오직 한마디로 귀결된다. 우주의 광명 환桓.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그 문장은 둘로 분석을 할 수 있는데, 오환吾桓, 우리는 환桓이다. 나도 환이요, 너도 환이요, 그들도 환이요, 지구촌의 70억 인류가 다 환桓이다. 생겨난 모든 인간은 환이다. 우주 광명이라는 것이다.
 
『환단고기』의 우주론, 역사관, 신관, 모든 사상이 응축돼 있는 이맥 선생의 태백일사를 보면 환국본기에 “환자(桓者)는 전일야(全一也)요, 광명야(光明也)라”. 환桓이라는 것은 전일야(全一也)요,이 대우주 만유가 일체다. 아주 완전한 하나다. 한 덩어리, 한 몸이다. 광명야(光明也)라, 광명이다. 밝을 환(桓)속에 광명 그 자체가 바로 우주 만유의 존재 근거인 신神이다. 여기서 동서문화의 근본이 분화되는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 유일신관과 동방 한민족 소위 서방 한족(漢族)이 말하는 동이족, 동이 배달족의 문화 원류는 삼신(三神)이다. 서양에서는 일신(一神)론을 얘기하는데 여기는 삼신(三神)이다. 신神 앞에 삼(三) 자를 붙였다. 신神은 삼수법칙(三數法則)으로, 삼三의 원리로 우주를 구성한다. 극미의 세계나 극대 우주나 삼수법칙으로 만물을 구성한다. 시간과 공간, 생명의 구성 원리. 우리의 인식의 구조, 마음의 구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삼수(三數)원리로 구성돼 있다.
 
『환단고기』가 위대한 문화경전인 이유 『환단고기』는 어떤 책이냐 하면 결론은『환단고기』는 인간에 대한 정의와 인간 마음의 본성에 대해서 이것을 가지고 역사가 전개된 이 광명은 구체적으로 뭐냐? 그게 바로 신神, 이 신神에 대한 가르침, 이것을 이삼신설교(以三神設敎), 또는 이신설교(以神設敎), 이신시교(以神始敎), 또 주역의 관괘(觀卦)를 보면 옛날 성인은 신도(神道)로써 가르침을 베풀었다. 신교(神敎)다.
이 삼신문화(三神文化)를 모르면, 삼신의 우주론을, 삼신의 인간론을 모르면 인간과 자연, 우주와 그리고 인간의 역사 전개에 대해서 알 도리가 없다.
 
『환단고기』는 우주론과 신관과 인성론과 또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우주 광명세계를 모든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신성의 발현원리, 수행원리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그것도 유불선 기독교의 원형! 그 근원이 되는 인류 원형 문화의 신교(神敎)의 우주론, 신관, 인간관,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수행원리, 원형 수행문화 원리가 정리돼 있다. 이게 환국 시대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천부경(天符經), 여기에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관계에 대한 인성론의 문제가 담겨있고, 배달국의 개창자 배달환웅이 열어주신 우리 한민족의 신관, 신학의 원전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제 5장에 보면 인간이란 어떻게 구성 됐냐. 인간 몸속에는 삼신(三神)이 어떤 원리로 들어와서 성명정(性命精)으로 자리를 잡고 있느냐? 인간 본래의 성(性) 자리, 성품, 그 다음에 인간의 영원한 생명(命), 그리고 인간의 모든 기관을 살아 움직이는 동력원 정(精), 정精의 문제. 그리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를 통해 내려온 366가지 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덕목을 기록한 참전계경 이것이 우리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다.
 
 
『환단고기』를 처음 읽을 때 하늘에는 삼신(三神), 땅에는 삼한(三韓), 인간 몸속에는 삼진(三眞)이 있다. 이게 고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 문제다. 지금의 역사학계에서는 삼한관경에 대한 인식이 안된다고 본다. 이건 우주의 신관과 우주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단재 신채호선생 한 사람만이 알았다. 그러나 그의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에 대해서는 가타부타가 없고 지금까지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환단고기』가 진정한 영원불변의 위대한 문화경전이 될 수 있는 그 소이연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바로 삼신(三神(이 스스로 현현(顯現)이 돼서 그대로 스스로를 나타낸 것이 하늘과 땅과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수학으로 나타낸 것이 천부경이다. 天一, 地一, 人一이다. 사마천 사기 봉선서(封禪書)를 보면 전부 천지에 제(祭)를 올리는 그런 내용인데, 한나라 무제 때 궁궐의 동남방에다 태일전을 짓고 태일신(太一神)에게 천제를 올렸다. 전에“용의 눈물” 드라마를 보면 태종 이방원이 비를 내려주옵소서 하면서 태일전(太一殿)에서 천제를 지내는데,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까지도 태일신(太一神)에게 천제를 올린 것이다. 그 용의 눈물 드라마 세트장이 전주에 그대로 있다. 天一, 地一, 太一 사상의 원형이 동방 한민족의 삼신문화다.
 
삼신三神은 낳고(造化), 기르고(敎化), 다스린다(治化), 그러니까 삼신의 자체 본성, 신神의 고유한 자기 본성이 조교치(造敎治) 삼신이다. 여기서 기른다(敎化)는 말은『환단고기』에서 보면 진리를 열어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진리에 대한 근본 깨달음, 도통,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천지와 함께 하나 될 수 있는 태일(太一)의 인간으로 성숙되는 것이다. 신神에 대한 정의를『환단고기』는 너무도 명쾌하게 해주고 있다. 『환단고기』의 서두부터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유일신(有一神)이 재사백력지천(在斯白力之天)하사, 광명(光明)으로 조우주(照宇宙) 하시며, 광명으로 우주를 비춘다. 그 광명이 바로 신神이다. 그 신神은 삼신三神이다. 우리가 삼족오(三足烏)의 문제도, 태양신, 태양광명, 이런 것을 얘기하는데 근본은 삼신이다.
 
 
피타고라스가 태어난 사모스 섬의 피타고라스 동상에 삼(三)은 우주의 중심수다‘라고 희랍어로 새겨져 있다. 서양의 근대 철학자 가운데 화이트헤드가“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서양 문명은 피타고라스로부터 끊임없이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양 문명은 피타고라스로부터 꽃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수학자(프랭크 스웨츠)가 수년 전에 쓴“낙서(洛書)의 유산(The Legacy of Luoshu)”이라는 책에 선천 봄여름우주의 상극법칙을 이야기하는 그림 낙서(洛書)의 출처를 밝히면서 결론이 낙서(洛書)가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실크로드를 거쳐서 중동과 그리스까지 전달이 되었다고 하는데 피타고라스가 이 낙서(洛書)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가 말하는 수학數學이라는 것이 도서관(圖書館)의 어원(語源)이기도 한, 동방의 하도(河圖),낙서(洛書)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그런데『환단고기』에서 보면 천부경은 환국구전지서(桓國口傳之書)라고 한다. 환국桓國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5,800여 년 전, 배달국의 환웅천황이 백두산 신시(神市)에 도시국가가 건설이 되면서 삼일신고(三一神誥)가 있었다.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보면 신관(神觀)에 대해서, 천궁(天宮)에 대해서, 또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에 대해서, 이 세계에 대해서, 마지막에 인간에 대해서, 인물을 얘기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냐?
 
『환단고기』가 전하는 역사의 궁극 목적 『환단고기』는 역사의 창세 목적, 역사의 궁극 목적 그것을 오직 한가지로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천지와 하나 되어서 사는 인간, 즉 태일(太一) 인간이 돼야 된다는 것이다. 천지의 광명 인간으로 회복이 돼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단군세기 서문은 모든 종교 경전의 근본을 통할 수 있는, 그리고 역사관의 근본을 통할 수 있는 그런 큰 주제, 인간이란 뭐냐?, 인성론, 인간의 마음 세계에 대해서 이런 모든 주제가 응축되어 있다. 그 감동적인 얘기 가운데 무엇으로부터 우리 자아를 알 수가 있느냐? 거기에서 갑자기 우주의 삼신의 문제를 폭탄처럼 선언을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바로 나를 아는데 있다. 모든 것은 “선재지아先在知我”, 먼저 나를 아는데 있는데, 무엇으로부터 나를 알거냐?
 
“삼신일체지도三神一體之道”는, 대저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신 도는”재대원일지의在大圓一之義“ 하니, 무한히 크고, 무한히 원융무애하며 무한히 한 몸인, 일체一體인 그것은 하늘과 땅과 인간은 셋으로 무한히 크고, 삼신의 조화로서 원융무애하며, 하늘과 땅과 인간은 삼신의 조화성으로서 영원히 일체관계에 있다. 造化之神 은 降爲我性 하고, 조화신이 내려와서 나의 본성(性), 내 마음의 근원이 되고, 敎化之神 은 降爲我命 하고, 교화신은 내 몸에 들어와서 나의 영원한 생명(命)이 되었으며, 治化之神 은 降爲我精 하니, 치화신은 내 몸에 들어와서 내 몸을 다스리는 생명의 근거, 정기(精)가 되었다. 그리고서 부성자夫性者는 신지근야神之根也라. 대저 성性이라는 것은 인간 마음의 근원, 조화세계는 바로 신神의 뿌리라고 했다. 만물의 신, 만물의 신성이 생성되는 바탕이라는 것이다.
 
“성명정지무기性命精之無機는 삼신일체상제야三神一體上帝也시며”,성명정性命精이 일제一體, oneness, 하나가 된 우주의 조화경계에 머무시는 분이 바로 이 삼신의 조화권을 쓰시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이다.『환단고기』는 최종 결론으로 말할 때 하늘과 땅과 인간의 우주 삼계三界를 다스리시는 우주의 통치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민족의 문화의 대의인 제천문화(祭天文化)다. 그래서 우리 한민족의 문화는 뭐냐? 한마디로 제천문화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축제, 온 민족이 하나가 되고, 우리 온 민족이 새로운 천지와 하나 된 광명의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날이다. 그리고 부여 영고니, 무천이니 이런 구절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실체가 뭐냐? 바로 하늘과 땅과 인간, 삼계우주를 다스리시는 일상제一上帝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19세기 동학의 도조이신 최수운 대신사님을 통해서 1860년 음력 4월 5일날 선언이 됐다.
 
동경대전(東經大全) 서두를 보면 세상 사람들은 비와 이슬이 내리는 것을 자연의 조화로 아는데, 천주의 조화의 자취인 것을 모른다. 이게 동경대전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나서 도통할 때 이『환단고기』의 역사의 주인 되시는 삼신 상제에 대한 선언이 나온다.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아(汝不知上帝耶)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동학의 최수운선생이 하느님의 천명을 받아 인류에게 전하려 했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로, 세계 정치, 문화, 종교를 통일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출현할 것과 이 무극대도를 펴시는 하느님(天主)이 친히 이 강토에 강세하신다는 시천주(侍天主) 신앙의 시대를 선포하였다.
 
※ 만고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이 세상에 날것이니...이세상 무극대도 전지무궁 아닐런가(용담유사龍潭遺詞) ※ 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我國運數) 보전하네. (용담유사 안심가) ※ 호천금궐(昊天金?)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용담유사 안심가) 한국의 역사는 천년, 손발 잘려서 압록강에 던져진 운초 계연수, 굶어죽은 스승 이기(李 沂), 대종교의 홍암 나철 같은 분도 굶어죽었다. 우리가 그분들을 생각하고 800만 명의 학살, 그 비극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시대 무엇을 해야 되는가! 적어도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는 제대로 알고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대만, 일본, 중국은 물론 미주, 불란서, 독일 등 모든 지구촌 역사 교과서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부정하고 왜곡시켜 놓은 한국의 역사를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여서 역사의 진실로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서구사상에 젖은 한국인의 정서 속에는 조국의 역사와 고유문화 정신을 우습게 아는 무서운 독버섯이 깊숙이 뿌리박혀서 체질화돼 있다. 지금의 한류문화 음악, 드라마, 연극, 영화, 음식문화도 한류 문화의 중요한 한 요소지만, 그 근본은 잃어버린 한민족의 혼魂, 한류문화의 원형이『환단고기桓檀古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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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5-07-22 13:39
   
식민사관 까는건 좋은데, 그 결론이 결국 환단고기 만세로 흐르다니-.-;;
극과 극은 통한다고, 환단고기 나오는 문단부터 글 내림 ㅋㅋㅋㅋㅋ
두부국 15-07-22 14:14
   
다 좋은데 환단고기가 문제네요 저도 환단고기한테 낚인적이 있었으니까요

차라리 조선상고사 규원사화를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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