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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21 13:12
[기타] 북관대첩 진실이 뭔가요?
 글쓴이 : 오오타니
조회 : 3,785  

선수 27권, 26년(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1월 1일(병진) 5번째기사
함경도 길주의 적이 성을 비워놓고 도망하였고 정문부가 관북을 평정하다      
함경도 길주(吉州)에 주둔했던 적이 성을 비워놓고 도망하였다. 정문부(鄭文孚)가 관북(關北)을 평정하였다.
정문부가 1년이 넘도록 길주를 포위하였는데 비록 탄환이 무서워서 성을 공격할 수는 없었지만, 적의 땔나무와 마초가 조달되는 길을 차단하였으므로 적은 민가를 뜯어서 땔나무로 쓰는 등 그 형세가 점점 군색해졌다. 청정(淸正)이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인솔하여 북으로 들어가서 큰소리를 치며 ‘재차 관북을 평정하겠다.’고 하였다. 단천 군수(端川郡守) 강찬(姜燦)이 정문부에게 군사를 합하여 요격하자고 청하자, 문부가 유경천(柳擎天) 등 기병(騎兵) 수백 명을 보내 달려가게 하였다. 유경천 등이 순찰 중이던 적을 만나 수십 급을 참하였다. 청정이 드디어 대군을 이끌고 추격해 왔으므로 유경천 등이 후퇴했다.
청정이 재를 넘어오자 문부가 또 영동책(嶺東柵) 외곽에서 그를 맞아 싸웠으나 세 번 교전하여 세 번 모두 패배하였으므로 경성(鏡城)으로 물러가 지켰다. 청정이 마침내 길주성과 영동책 두 영을 철수시키고 밤에 재를 넘어 남쪽으로 돌아갔다. 문부가 이 소식을 듣고 즉시 날랜 기병을 거느리고 추격하여 함흥(咸興)에 이르렀으나 청정이 이미 안변(安邊)으로 들어가 버려 미치지 못하였다.
문부가 경성으로 돌아와서 의병(義兵)을 해산시킨 뒤 북쪽으로 육진(六鎭)을 순행하며 반민(叛民)을 찾아내 베고 번호(藩胡)를 어루만져 안정시켰으며, 모든 보(堡)를 수복하여 장령(將領)을 파견해 두었으니, 북변이 복구된 것은 모두 정문부의 힘이었다.


장문부에 올린 장계에서는 오히려 가토와 3번 맞서 패배하여 경성으로 물러났다고 써잇습니다..

보니까 가토와 붙기전에 길주성에서 천여명 규모의 왜적 600명을 사살했다는 말은 있지만

일단 가토 본진과붙어서 3번 패배하였고..... 인터넷에 떠도는 가토군 8천명 사상자는 도대체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군요... 가토군이 철수한것은 사실상 조명연합군이 4차평양성전투에서 고니시를 패배시키고

평양을 탈환하면서..... 우키타와 미쓰나라가 한양 이북의 모든 장수들을 한양으로 퇴각하라고 명령했으니

가토는 이미 예정된 철수를 한거죠

도대체 북관대첩의 왜군 사상자 8천명은 어디서나온건지 궁금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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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ong 15-07-21 13:30
   
그게 왜 궁금하신지? 북관대첩에 대해서는 퍙균보다 더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오히려 하꼬네에 화산이 폭발하여 오오타니 쪽이 없어지지 않을까가 더 궁금하지 않으세요^^?
     
오오타니 15-07-21 13:38
   
왜 비아냥 되시는건가요....... 혹시 내가 잘 모르는 역사절 사실이 있나 궁금해서 그렇죠...
     
sejong 15-07-21 16:06
   
제가 과민하였나 보네요^^ 일본 지명을 대명으로 갖으신 분이 조선의 대첩의 진위성에 대해 물어보시는게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호기심 수준은 아닌 듯 해서요.

역사와 관련된 호기심 항목은 무진장 많을텐데 왜 북관대첩에 대해 의심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만.... 역사적 사실을 규명한답시고 여기에 나오는 어설픈 답변을 다른 곳에 퍼날라 한국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를 갖은 ... 최소한 심점적인 일본쪽 우익이시지 않나 해서요...그렇지 않다면 논제를 잘못 던지신게 아닌가 하네요. 인터넷에서 찾아도 될 것을 한정된 역사 지식을 갖는 일반인들이 댓글을 다는 이 곳에 해당 시대를 전공하지 않는 역사학자들도 잘 모르는 기록을 가지고 와서 진위여부에 의심을 던지시는게 좀 그렇지 않나요?

역사적 사실을 빌미로 부정적인 역사관을 확산시킬 수 있는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 보다는 일본쪽의 기록의 신빙성에 호기심을 발동해 보시지요...일본서기와 백제의 서기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일본의 왕은 왜 성이 없는가...일본은 정말 만세일계인가...쇼와의 아버지이 다이쇼는 왜 정신병적 증세가 있었는가...뭐 이런 것이 여기 가생이의 역사적 호기심 주제에 더 잘 맞지 않겠어요?
          
오오타니 15-07-21 16:14
   
일본 지명이 아니라 야구선수이름입니다. 님은 너무 예민하게 구시는거 같으세요 일본 우익?? 뭔 이런 헛소릴 하시는데 저는 아베같은 새끼가 제일 싫고 관심도 없습니다
               
sejong 15-07-21 20:50
   
제가 오해한 듯 합니다. 죄송^^ 최근에 몇몇 친일성향의 사람들과 논쟁아닌 논쟁을 하다가 새로운 친일인가해서 님의 글에 비아냥하게 댓글을 달게되었는데 사과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
아뒤도업네 15-07-21 14:18
   
북관대첩사상자라기보단 북관대첩 포함해서 가토가 한양까지 퇴각하는 동안 입은 피해를 총집합해서 나온 피해 아니었던가요?
오는 길에 아사자들 역시 상당해서 2군이 한양에서 병력조사했을 때 2만 2천이 1만 4천으로 줄어서 거기에 기반한 정보인걸로 알았는데...
     
오오타니 15-07-21 14:19
   
솔직히 좀 말이 안되는게 2군은 2만2천으로 구성되었지만
가토군의 1만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1만 2천을 이끈 연합병력이엿죠
즉 가토군 사상자가 8천이라면 사실상 가토군은 전멸이엿다는건데.. 오히려 정문부는 가토와의 본대와전투에서 3번패배하여 경성으로후퇴하엿다는건 가토 본군과 맞서서는 거의 피해를 못줬다는겁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8천의 대부분이 전부 아사자라는 소리인데 말도안되죠..
          
제이드 15-07-21 16:20
   
동사,아사,실종,전사 모두 포함한 집계 아닌가요?
               
오오타니 15-07-21 16:22
   
근데 그 출처가 궁금해서요...인터넷에 떠도는 그런 사상자수를보면 너무자세해서 절대 조선쪽 기록은 아닐테고(당시 첩보력 고려해보면 더더욱) 일본쪽 자료라는건데... 일본 어느쪽 자료에서 나온건지 궁금하네요
바토 15-07-21 15:43
   
가토군 8천명 사상자 가 어디에서 언급하는지 링크하는게 먼저 아닌가요?
링크좀 줘보세요..
     
오오타니 15-07-21 15:50
   
https://ko.wikipedia.org/wiki/%EB%B6%81%EA%B4%80%EB%8C%80%EC%B2%A9

위키보면 사상자가 8864명으로 나오더군요....

사상자가 8864면 가토군 본대가 전멸 수준의 피해가 나오지 않는이상 불가능합니다
          
바토 15-07-21 16:04
   
헐 저숫자가 어디서 나온거지?
 잘해야 천여명일텐데
          
sejong 15-07-21 16:10
   
위키피디아는 네이버 지식인처럼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나온 글을 가지고 논제를 던지시다니요...세상에 위키피디아에 올린 글을 가지고 논제를 던지시는 분도 다 있으시요...
               
오오타니 15-07-21 16:20
   
아니 궁금해 할수도 있지 왜그러세요? 대첩이라는 전투명이 붙었으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서엿죠.. 실제로 북관대첩이라고 불리지만  왜군 사상자는 그리 많지 않은데 왜 북관대첩이라 불리는지 궁금했고 위키에는 사상자가 8천이넘는다해서 제가 모르는 다른 사실이 있나햇죠.
아비요 15-07-21 17:49
   
증거가 없스므니다. 조작이므니다.
돌개바람 15-07-21 18:28
   
아무나 편집가능한 위키는 너무 믿지 마세요 가토병력중에 전투에 의한 손실 그리고 아사및 탈영병 숫자를
다 합쳐서 한양에 집결했을때 가토가 이끄는 2군의 병력손실이그정도 됐을 겁니다. 참고로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받은 사야가가 가토휘하의 장수였죠 함경도에서 철수하는 과정에 낙오병및 탈영병이
꽤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죠 사학계에서는요,,
mymiky 15-07-22 00:52
   
가토의 군대가 제일 조선에서 쌩고생 했지요 ㅋㅋㅋ
함경도까지 가느라고 ㅋㅋㅋ
왜군들 중에서 제일 멀리 가봤고, 또 그만큼 제일 험난한 지역이라;;
조선에 투항한 항왜군들이 제일 많은 부대가 가토의 부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생하고, 힘들고, 배고프고, 다치고, 함경도 추위에 얼어죽고...

북관대첩때 한꺼번에 8천이 죽은게 아니라, 물론 북관전투에서 죽기도 했겠지만.
가토가 다시 내려와 다른 왜군들과 합류했을때,
그의 남아있는 군사들 수가 3분의 2가 줄어있었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거 같네요.

위키는 개나소나 뜯어 고칠수 있는 싸이트니,
완전히 믿지는 말고, 참고수준만 해서 봐야함.

북관대첩의 의의는 가토의 군대를 몇이나 죽였던간에
함경도를 다시 우리손으로 탈환했다는게 크고,
북관대첩에 이어, 남쪽에선 진주성 1차전투에서 승리해
전쟁초기 파죽지세로 쭉쭉 밀고 올라오던 일본군들에게 당하기만 하던
조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는 면에서 중요한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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