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얘기 게시글들 보다보니, 무함마드 깐수까지 생각나더군요.
빨갱이새퀴들 참 다양하게 대가리 굴렸었네요.
간첩은 간첩인데, 나름대로 학문분야에선 인정받았다는 조선족출신인 무함마드 깐수가 궁금해져 검색 좀 해보니, 2007년 이후론 나름 정치인들과도 어울리고, 활동도 자유롭게 하나봅니다.
북한전략센터 - http://www.nksc.co.kr/bbs/board_view.php?bbs_code=bbsIdx2&num=8908&page=22&keycode&keyword&sub_code
게시글중 발췌
......1996년 초여름 사람들은 안기부 발표에 깜짝 놀랐다. 삼복더위가 일찍 시작된 그해 7월 안기부는 "단국대 무하마드 깐수 교수가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던 특급 스타 학자였다. '레바논 출신' 역사학자로 책 '신라-서역 교류사'를 내놓아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학계는 깐수 교수가 '아랍인 학자'의 눈으로 한반도-이슬람 교류를 본격 연구해낸 데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필리핀 태생' '아랍인 학자' 같은 본인 설명은 애초 거짓이었다. 원래 이름이 정수일인 깐수는 함경도에서 북간도로 흘러간 유랑민의 아들로 중국 옌볜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25년, 북한에서 15년을 살았고 다른 나라에서 10여년을 보내며 국적을 세탁한 뒤 1984년 한국에 들어왔다. 남파간첩 깐수는 총선 정세 분석, 군사장비 도입 같은 수집정보를 주로 호텔 팩스를 이용해 북에 보고했다. 그는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된 깐수는 이듬해 서울고법에서 징역 12년,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았다. 2000년 여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 2003년 사면·복권됐고 대한민국 국적까지 얻었다.
2007년엔 보호관찰처분을 벗었다. 재판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생활체험을 통해 전향의사를 명백히 하면서 잘못을 뉘우친 점" "출소 후 제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인정했다.
▶그가 어느덧 일흔여덟 노년이 됐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차린 그가 번역에 해설을 곁들인 책 '오도릭의 동방기행'을 냈다. 엊그제 조촐한 기념 파티도 열었다. 오도릭은 14세기 아시아를 두루 여행하고 책을 쓴 이탈리아 수사(修士)다.
이 책은 '왕오천축국전' '이븐 바투타 여행기'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힌다. 정수일씨는 문명교류를 전공한 학자답게 이 네 권의 책을 번역하고 싶어했고 이제 '동방견문록'만 남겨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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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SBS - '무함마드 깐수' 정수일 씨 보호관찰 벗는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313490
기사중 발췌
......서울고법 특별5부(조용호 부장판사)는 19일 정 씨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없으므로 보호관찰 기간 연장을 취소해 달라"며 낸 보안관찰처분 기간 갱신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1996년 7월 <신라·서역 교류사> 등의 저서로 문명교류에 관한 독보적 연구업적을 인정받던 단국대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정 씨는 그가 대남 공작원으로 선발돼 필리핀 국적을 취득한 뒤 국내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됐다. 정 씨는 이듬해 서울고법에서 징역 12년 및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복역 중 2000년 8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한 다음, 2003년 4월 특별사면과 복권으로 잔형이 면제됐다. 출소 뒤 2001년 2월부터 그는 보호관찰처분을 받아 오다 이후 2차례에 걸쳐 기간 갱신결정을 받았고, 또 다시 작년 11월 법무부가 "배우자와 자녀들이 현재 북한에서 거주하는 등 보호관찰 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며 기간 갱신결정을 하자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