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을하자면 이 인간들 참으로 역겹고 답 없는 인간들이다라는 생각이든다. 대자보 이벤트로 난 은근히 그에 준하는 보수 네티즌의 멋진 반박문이 나오길 바랐다. 그건 적이라도 멋진 적을 상대하고 싶다면 다소 낭만적인 기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일베의 반응은 멋진 반론이 아니라 훼손이었다. 상대의 주장을 받아친다가 아니라, 그 발언 자체를 훼손시키고 삭제한다는 대응. 그걸 보면서 통쾌해하는 보수 어린이를 볼 때 우리 사회의 '보수'란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멋대가리 없고 무식한 인간들을 칭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래 민영화에 대한 니모씨의 발언도 똑같다. 반대는 곧 나라를 뒤흔드는 일이란 거다. 그걸 무시해야 된다는 거다. 우리 사회에 민영화를 지지하는 사람이 몇 %나 될까? 아마 20%도 되지 않을 거다. 그 동안의 여론 조사를 보면. 어느 나라든 반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을 가지고 이들은 그 자체의 이견, 토론 보다는 국가를 입에 문다. 국가의 기본 구성이나 정의에 대해서 모르는 무식한 입들이 지껄이는 저질스런 발언들이다.
멍청하고 무식하고 나아가 멋대가리도 없는 보수 어린이들의 대응. 진중권이 한 발언은 틀리지 않았다. 장성택의 숙청은 바로 이런 벌레들의 내밀한 욕망인 것이다. 이런 통찰력은 철학적 통찰력이기도 하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서란 이름으로 남미의 독재자들을 지원할 때, 미국은 반 민주적 권력이 기댄다. 미국이 그렇게 없에고자했던 오사마 빈 라덴이 소비에트를 견제하기 위한 CIA의 충실한 동업자였다는 사실은 새롭지도 않은 일이다.
즉 미국은 제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반 민주적 권력체라서 분노를 느낀다는 우리의 보수 어린이들. 그 내밀한 욕망 속엔 우리 국가를 북한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똬리틀고 있고, 이와같은 낡은 무식한 용법과 세계관들이 보수란 이름으로 횡횡할 때 더 극단적인 상황들이 미래를 대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