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5-05-09 15:41
[기타] 한반도에서는 포부가 좁을수밖에없다.
 글쓴이 : 철부지
조회 : 3,623  

'한반도'란 지형은 최악이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유리한 조건이긴 분명하다,왜냐하면 한반도에 사는 인민들이 강한 성향과 거칠은 성격의 사람들이라면 주변국들을 능히 컨트롤 할수있는 위치이다 < 로마제국 >그러나 연약하고 나약한 심성 그리고 안으로 싸우는 기질이강하고 그에비해 외부로 표출되는 투쟁적 기질이 약하다면 고난의 위치임이 분명하다.무엇보다 한 국가가 터'를 잡는 데서는 위치가 무엇보다 소중했다 고려 시기때도 국력이 강했을때 항상 대륙으로 진출할려고 했다 이것은 영토회복이라 칭하는데 이것은 분명 무의식중에 대륙이 우리의 본고장이라는 데서 나오는 발로였을것이 분명하다 대륙 한가운데 수도를 정하지 않으면 언제나 위아래로 외침이 있을것이고 영토가 대륙이라면 '한반도'에 '침략자'들도 대륙으로 올라오기전에 한반도에서 결단을 볼수있는 아주 중요한 위치라 생각했을것이다.이렇게 지리적 '지형'의 최상의 조건이 '최악'으로 된것은 '대륙으'로 올라갈려는 기상이 꺽인데 있다 '고려때'성리학사상이 들어오고 대륙으로 올라갈려는 본성이 사라진것이 뭇내 안타깝다
 
그후 왕조가 바뀌면서 '선견지명'으로 몇번 시도는 했으나, 이 모두가 '소국'이 '대국'을 치는것은 이치에 어긋난다'반대에 부딧치고 좌절됬다 한국인은 분명 '반도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오랜세월 '반도지형'에 같혀 살아오고 거기다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한반도의 허리가 두동강났다 그로인해 섬 사람이 아닌,섬사람기질도 나타났도 폐쇄적이고 안에서 밖으로 뻗처나가려는 본능이 안으로 강하게 응축되면서 집안싸움의 도가 트인게 된것이다,그러므로 정쟁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았으며 끝내'일제식민지배'를 받게된것이다.
 
'정쟁'으로 '망국'으로 치달았다고 하는데 이에 반론을 하는 사람들 특히 "외국에서는 그보다 더했다 봉건지주와 농노와 싸움이 극에달했고,언제나 지들끼리 싸움이였다"반론을 하는데 동양이 그 시기에 문명과 과학이 발전 하다가 뒤처진것은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바로 '사상'의 차이이다 중세의 '신학적 사상'이 지상으로 끌어내려지고 '계몽주의'와 '과학'이 발달하면서 동양은 서양의 발끝에 위치하게됬다 '정신'과 '물질'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지,정신이 먼저있고 과학이 나중에 있는것이아니다 전자화 후자를 바꿔도 같은것이다.
 
정쟁은 어느나라에서도 다한다'정치제도'를 갖춘 나라라면 말이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먼저 서양은 정쟁이 극에달하면 어느 한계점에서 합리주의적 노선으로 선회하지만 동양의 차이는 곧 사상이 다르면 적'이고 죽여야 하고 아니면 유배를 가거나 삼대 멸하게 되는데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이러니 집안이 너덜너덜 해지고 '풍비박산'이 안나고 배기겠나.우리스스로 우리의 머리 수급을 운명이란 '사형집행인'에게 갖다 댄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것을 놓고보면 한국인 단점은 필연적인것이 분명하다 본성적으로 스케일이 크고 장대한 포부를 지녔던 민족이 이런 협소한 지형아래 국가를 '백년대계'라 하고 세웠으니 좁은 땅에 커다른 건축물을 지었으니 종래에 안무너지고 어떻게 견뎠겠는가, 국민이 그 안에서 작아지고 순응하며 포부가 컸던 백성이 밴댕이 소갈딱지가되고 서로물고 뜯고 싸우는 신경증이 안생이겠는가!
또한 기후가 봄. 여름.가을.겨울 이 있어 온 강산이 제 옷을 형형색색 갈아입어,온 국토가 수채화처럼 물들지만 그 안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은 기후의 강한 영향을 받지않을수없다.
 
'성향'이 '기후'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일 미루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하지'라는 나태한 근성이 생겨난 것이다,끄때 추워지면 언젠가 하겠지?'라는게 돼풀이되면서 원래의 '능동적'인 성향이'수동적'으로 변하고 '숙명주의'에 물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예술'을 보자면 전부 산'이고 정자고 그안에서 술퍼먹는 그림이다.예술은 그때 당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척도이고, 유럽은 귀족 그림이다 입체배경과 수학으로 하는 과학적 그림이 주 를 이루었다 서양은 예술도 과학의 힘에 압도해서 살아 남으려했으며 동양 당시 조선의 몽유도원도는 정태적이고 사물이 정지되있고 색감이 없는 그저 아름다운 절벽만있는 그림이라는데서 '역동성'을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척박한 '시배리아'가 우리 땅이였다면 아마도 '성향'이 달랐을 것이다,계절이 차이가 심한 '한반도'는 예능인이다 기술인을 탄생 시킬수있는 기후이지만 '군인'이나 '정치인' 그리고 대통령이나 '영웅'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부적합하고, 지금의 '러시아'를 보듯이 오로지 거칠고 마초 성향이 강하고 오로지 '군사력'이 최고 가치라 여기는 '러시아'와 같이 됬을것이다. 아니면 생각해 보건데, 고려때 중원 일부를 차지하고 '수도'를 '대륙'에 두고 한반도를 '기술'의 전진기지로 삼았다는 '거칠'은 성향과 '섬세함'이 조화를 이뤄 지금처럼 불품없이는 안됬을 것이라 본다.
이글을 보면 아주 강한 민족주의자 나라 사랑이 극에달아 듣기싫은 것은 한국인이 아닌 '중뽕'내지 '일뽕'으로 '정신승리'를 하려는 자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을 적은 것이다 당신들의 생각도 다를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토론의 담론이 아니다 곧 개인의 사유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그래도된다 15-05-09 15:43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
슈프림 15-05-09 15:56
   
그렇군요..
근데 한반도와 비슷한 지형의 로마제국은 왜 그렇게 흥했을까요...
이쉬타르 15-05-09 15:56
   
거대 자연 재난의 위험성을 우리 위정자들이 느껴야 하고 .....현재 반도에서 벗어나 안전한 대륙으로 국가를 옮기는 작업을 통해  ...민족이동을 해야 함
mymiky 15-05-09 16:06
   
님말씀처럼 하다,
까닥하다간 우리 후손들은 중화민족 만세를 부르짖을수도 있겠죠;;
인생 뭐 있나? 싶어서 100,200년 중원에 정복왕조 세워서 반짝하다가
과거의 영광 딸딸이나 치면서 자멸해갈지도 모르는거 아님?
지금쯤 중국어로 말하고, 한글 없이 한자로 쓰고 있었을 확률이
현실적으로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반도를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님이 마음에 들거나, 안 들거나 우리의 본진인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한반도 지형이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비교적 지진에도 튼튼하고
따뜻해서 농사잘되고, 석회질 없어 물 깨끗하고,,
우리 조상님들이 만주에서 남하했을때, 괜히 여기에 터잡으신줄 아시나 ㅋㅋㅋ
조상님들의 안목을 믿으세요.
     
이쉬타르 15-05-09 16:41
   
그건 아니죠 만주를 버린거 일부러 버린게 아니고 타국가에다 밀려서 상실한것이고 힘이 약해서 만주 같은 영토를 내준검니다
그런데 이후 몇차례 고토회복을 표방하고 추진하엿건만  적극성 부족이나 국력에서 미약으로 못해낸검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오래되면서 조선기에 들어와선 고토회복 의지는 아예 사라져버리고 대지나 사대주의를 국책으로 삼은게죠 ...이유는 무를 멀리한 나약한 성리학자들, 지나 문물에 심취한 존명 성향 양반들이 권력을 잡구 실세로 누려온거이가  최대 이유로 보아야 겠지요

글고 본문 주제는 중원 일부를 만약에 우리조상이 취했다면 ??인데 ..사실 중토로 안처들어가고 만주만 우리가 장악하구서 잘 개발해도 고구려시대  이래 누구에다 머리를 굽히질 않았을것이죠
헌데 동북아가 ,,,,
1, 만주기반 조선계 왕조
2. 중토 지나계 왕조
3. 북아시아 초원지대 의 제유목 민족들 국가들..
이렇게 3분 지계로 갔다면 오히려 동북아는 전쟁 없이 평온을 유지 햇을것입니다,,12세기 이래 몽고의 흥기 이유로서 고려가 만주지배를 못해서 라고 보구 싶군요
          
mymiky 15-05-09 17:46
   
고구려도 중국과 조공무역은 했어요.
물론 조공을 두고 머리를 굽혔니. 안 굽혔니로 들어가면 논문한편을 써야하니 패스하겠습니다.

단, 조선에 들어서면 원대이래로 고려국력이 약해져있었고, 말기에 요동정벌을 하려고 하나
어쨎거나 실패했지요. 공민왕때도 우왕때도...정도전도 그렇고..
젖먹던 힘까지 내서, 요동성을 치는덴 성공했으나, 우리가 계속 수성을 할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문제거든요..

게다가, 명나라가 여진족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랑캐라고 그냥 무시하고 관심을 안 두었더라면 모르겠지만. 초대황제인 주원장부터 여진족 관리에 공을 들여서,
사실상 조선이 그 사이에 끼기가 껄끄로웠어요.
이성계와 이방원이 여진족 족장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하사품도 내리고 했으나
명나라 황제는 그것보다 더 줄수 있다고 물량빨, 자금빨로 나오니.. 다 그쪽으로 붙었거든요.
sm에서 중국애들이 한국에서 돈 버는거보다, 중국에서 돈 벌수 있으니,
쏠랑 도망가버리는 모습과 비슷했어요;;;

3.북아시아 초원지대 유목민족 국가들이라..
사실 원나라가 망하고, 오랫동안 자기들끼리 내전중이였는데-.-;
섬나라도 아니고 애네들은 대륙에 있기 때문에
여파가 우리에게도 미쳤을지 모를 일입니다. ..
(청나라가 몽골을 장악하게 된 이유도,
어찌보면 지들끼리 싸운다고 힘을 다 빼서 그러함..)
그것은 그것대로 평온하지는 않았을듯?ㅋㅋㅋ
슈프림 15-05-09 16:13
   
예전부터 의문인데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한민족도 중원의 패자가 되었을까요..
     
mymiky 15-05-09 16:29
   
고구려는 딱히 중원에 가서 나라 세울 욕심은 없었어요.
          
두부국 15-05-09 18:06
   
그렇게 됐다면 지금쯤 우리는 이미 중화만세 외치고 있었겠죠
이쉬타르 15-05-09 16:34
   
동북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은 몽골 초원을 지배하는 유목 민족들이고 고구려만해도 이들에다 밀리고 할판 였죠(기마 전투부대도 고구려는 강하지 못햇다고) ..그래서 중토로 처들어가기에는 군사력에서 부족할 거라 봄니다(만주를 비워두고서 중토로 진격한다 할시에 ...북방 유목 민족이 고구려군 후미를 기습할거라)
글고 우리민족의 민족성 같은데 ,,대대로 땅 늘리고자 하는 욕심이 별로 없습니다..우리민족에 대해 평하자면 현재 자리만 지키고 여기서 잘 벗어나려들 안합디다(정주적 특성이 강함)
     
mymiky 15-05-09 17:32
   
몽골족은 12세기나 되서나 역사무대에 등장하는 애들이고,
고구려 시기로 말할 요량이면 선비족들이 유명하죠.
실제로, 고구려랑 푸닥거리를 많이 했던 애들이고,
수당도 어찌보면, 선비족 혈통이 다분하구요//

욕심이란 것도 사실, 자기가 뭔가 부족하다는걸 느껴야 노력을 하는겁니다.
일본보세요. 자연재해 많으니 옛날부터 안전한 땅에 대한 강렬한 분출욕구가 가득하잖아요.
유목민들이 정주민족 땅에 나는 꿀을 빨려고, 말이 살찌는 가을만 되면, 미리 기나긴 겨울준비를 하기위해 약탈하러 오잖아요.

뭐, 처음부터 우리민족이 그러진 않았겠지만
점차 이 땅에 적응해간거죠.
고구려도 남쪽인 평양으로 수도를 왜 옮겼을까요?
사실, 고구려 땅은 커도, 실질적으로 사람 사는데는 압록강변 근처와 한반도의 북부입니다.
그 위에 퉁구스족이 살긴해도, 지금도 거긴 인구가 적죠. 척박하거든요.
지금이야 현대에 들어, 산업화가 되면서 지하 광물자원의 가치가 알려지고 난뒤엔
말이 달라졌지만 ㅋㅋㅋ
오죽하면, 러시아가 큰 얼음덩이로만 보던 쓸데없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헐값에 판게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우스개소리가 괜한게 아님.
          
이쉬타르 15-05-09 17:54
   
허허 압록강하구  두만강을 경계로 한게 조선의 대륙하고 경계가 세워진게 다른 이유에서가 아님니다,,강을 이용하는 방어작전에서 유리해서이죠..그뿐이 아니고 반도라는 특성상 북으로부터 침략에 대해 좁은 폭의 전선이 주어지므로 방어가 유리하고  글다보니 고려기 부터 이 반도에 만족하구 머므르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조선시에는 아주 굳어져 버린게죠..그런데 반도란게 너무 협소하고 농경지도 부족 자연히 국력이 약해지고 그러니 강대한 북방 제민족들 침략에 무수하 당하고 당하고를 반복 해온게죠
개인적 시각에..만주 상실하고나서 특히 우리가 군사에서 약해진것이 기병대를 육성을 못햇단점으로 봄니다
말은 넓은 목초지를 가져야 길러지는데 좁은 국토의 한반도,평지가 부족한 한반도는  그런 조건을 제공믈 못합니다
 체격이 작은 말,힘이 약한 말만 가지구선 결국에 기병간 전투에서 패배를 초래 할겜니다 글고 유목이든 목축을 해야 하는데 농경만 하고 농민으로 구성한 군대란게 평지에서 전투에서 유약 할수 밖에 없단게죠
               
mymiky 15-05-09 18:05
   
넓은 목초지에서 자란다고, 체격이 자라진 않아요-.-
걍. 종자가 다른겁니다.
현대에 흔히보는 말들은  대부분 서양에서 개량화시킨 말이구요.
심지어, 조선에서 없던 서양말이 사극에 버젓이 등장하죠.
서양말들이 포스는 있거든요 ㅋㅋㅋㅋㅋ
아시아쪽에 말은 원래 짜리몽딸?한 말이예요.
고구려시대 사람들도 과하마를 타고 다녔어요.
몽골인들도 그 작은 말타고, 유럽까지 나간거구요.
특별히, 반도가 농경지가 부족하진 않아요. 농사도 잘 되구요.
괜히 조상님들이 남하하신게 아니라니까요ㅋㅋㅋㅋㅋ
만주땅에서 대규모 농사에 성공한건 현대과학의 도움 덕분입니다.
옛날엔 일부분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어도, 그외 대부분은 수렵이였죠.
                    
이쉬타르 15-05-09 18:10
   
그게 몽골이나 여진에서 수입한 말들을 국내에서 길러서  번식을 해도 작고 약한 말만 나오더라,,란게 당시 조정에서의 국산말  육성 결과 였던 게죠 ..아시아계 말들이 크기가 작은데 국산 조선말은 이들보다 더 형편 없고 했던거라 이점이 국방상 문제였고 ..그리고 전투용 말은 무조건 크고 힘이 좋아야 하는게죠
                         
mymiky 15-05-09 18:20
   
왠지 그 대목은 몽골, 여진말들을 수입해 기르면서,
근친교배에 따른 허약함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아님, 몽골인이나 여진인들보다 조선인들이
말에 대한 사육법에 서툴렀을지도 모르구요.

조선시대때도 고려때와 마찬가지로, 말은 제주에 보내 기르게 했는데
제주도에 원황실에 납품되는 목장이 있었기 때문이죠.
고려시대때도 마찬가지로 몽골말을 기르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조선에서 똑같은 종자를 들여와 길렀는데 문제다?-.-

그럼, 기르는 사육자 능력을 살펴봐야 할듯한데
고려시대때는 제주도에 몽골인 관리들이 들어와 관리했어요.
그중에 제주도 사람들이랑 통혼도 하면서 살았죠.
말기르는 관직은 세습되었던거 같고  나중에 최영이 탐라를 치면서,
이들을 투항시키거나 잡은 이야기가 유명하죠.
                         
이쉬타르 15-05-09 18:32
   
예전에 본인이 어류를 길러보구 했었는데 열대어 취미 란게죠...꼬기들 길러본 사람은 다 아실것이나 좁은 어항에다 넣고 기르면 체격이 작아지고 일정크기 이상 안 큼니다
반대로 아주 큰 대하 같은 강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어류는 사람 몸만한 크기도 나옴니다,,즉 생물의  체격은 자라는 환경의 물리적 크기에 비례 된단 게죠

필요한 말을 전부 직수입만 할수는 없으며....조선은 (고려도 그렇지만) 막강 기병대의 육성은 원천적으로 힘들었던 게죠
                         
mymiky 15-05-09 18:46
   
고려나 조선이나 막강 기병대 육성이 어려웠다는 점에선 동의합니다.
고려가 요동정벌에 끌고간 기병대가 2만명+알파인데,
몽골병이나 만주팔기들이나 말위에서 생활하는게 걍. 일상생활이죠.
전투가 곧 먹고사는 생활인 사람들이니깐.
그건, 밑에 센츄리온 님이 잘 설명해놓으셨어요.
                         
Centurion 15-05-09 21:33
   
그런 논리라면..
요즘 한국 말목장에서 외국 종자로 말 키워도 다 짜리몽땅이겠죠.

그냥 몽골말이든 조선말이든 종자가 거기서 거기면 덩치도 비슷합니다.
몽골기병들이 타고 다니는 말도 그냥 짜리몽땅이라 유럽 기사들한테 비웃음 샀죠.

어디 한번 조선 말기 기병마 사진이랑 현대 몽골말하고 크기 비교해보실래요?

http://news.chosun.com/site/data/img_dir/2007/08/15/2007081500651_0.jpg
몽골 말

http://photo.jtbc.joins.com/news/2011/12/16/20111216154500152.jpg

대한제국 기병들이 타던 말
          
이쉬타르 15-05-09 18:02
   
부여는 북만주에 근거를 두고 발전 해온 나라 인데 당연히 북부 만주 도 다 생산이 되고 사람이 삼니다
요서나 요동은 기후상 다 농사를 할수가 있고 ..산악지대는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해도 군사적 방어에서는 유용하여 적이 침공을 잘 막아냄니다
고구려 마지막 수도는 평양으로 택한것이 평안도 지역 농사에서 나오는 생산력 때문인데..개인적으로 고구려가 도성을 요기에  지은게 잘못으로 보는데 ...보다 국토 동끝으로 해서 ..동부 만주의 지금 연변 지역이 최적일거라 보는 입장이라..이정도 위치이면 워낙 멀어서리 당나라 대군이 몰려와도 쉽게 점령이 안되죠
               
mymiky 15-05-09 18:13
   
북만주도 사람살고, 생산이야 되겠죠. 근데 그 수준은요?-.- 남쪽 사람들과 비교가 안되죠.
지금도, 저기 북반구까지 사람들이야 물론 살죠. 어찌 사느냐?가 문제지 ㅋㅋㅋㅋㅋ
사람이 밥만 먹고 사나? 아니죠. 고기도 먹고, 김치도 먹고, 이것저것 먹어야 튼튼해지죠.
고구려가 평양으로 내려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북방민족들은 보통 밑으로 내려가고 싶어해요. 지들이 봐도, 밑에 놈들이 잘먹고 잘사는게 눈에 보이거든요. 제말은 북방민족들이 야만이니 어쩌니 하는게 아니예요 ㅋㅋㅋ
오해는 마시길. 다만, 이같은 이유는 모두가 환경 때문이라는거죠.
                    
이쉬타르 15-05-09 18:26
   
허허 몽골 비롯한 유목 정권들이 세력 형성이 된 지역은 다들 춥고 황량한 초원지대로서 농사는 안되도 다들 먹고 살만은 했었죠
유목이 그래도 생산성에선 아주 황이 아닌것이 고구려 당시에 초원국가 지역 보다도 고구려가 더 가난 했담디다..그런데도 문화는 고구려는 중토 정권에 못허진 않을정도도 제법 발전 됬엇죠

그리고 초원지대에서 중토로 처 내려온거이가  자기들이 군사력이 강해서 이길만 하다 보니 처내려 온것이고 ..그게 초원민족들의 발전 전략 엿던 겜니다(즉 농경지대을 우세한 무력으로 정복해서 농경민을  착취하고 수탈 하는 국가 전략임)
                         
mymiky 15-05-09 18:39
   
먹고 산다는데, 유목민의 식문화는 걍. 고기입니다.
지천에 말고기, 초원에 들쥐고기, 아님 말려서 육포 뜯어먹고 그런거죠.
풀? 야채? 그런건 말이 먹는데 사람이 어째 먹냐-.-;; 그리 생각했고
바다는 본적이 없어 해산물도 무지했으며, 가끔 바이칼이나 그런데서 나는 민물고기는 부족마다 먹는데도 있고, 안 먹는데도 있고..

고구려 당시에 초원국가 지역보다 더 가난했는데, 문화가 제법 발전되었다?-.-
이 무슨 코메디같은 말인가요?
고구려가 먹고 살만해지니, 문화도 번창해지는거죠-.-
한국보세요. 가난해서 먹고 살기 바쁠때 외국에 우리나라 있는줄도 몰랐죠;;
그런데, 경제성장 하고난뒤 한류다 뭐다 열풍이 불고 있죠.
아무런 기반이 없는데, 뭐가 문화가 번창하나요?
사람은 배가 불러야 문화타령도 가능해진답니다;;

하물며, 이 세상에서 쌀만큼 부양능력이 최강의 곡물이 없어요.
왜 중국인들이 인구가 많은줄 암?
쌀농사가 잘되는 지역엔 원래 사람이 많아요.
                         
남궁동자 15-05-09 18:55
   
유목민들이 약탈을 하는 이유 : 생산력이 딸려서 일정 이상의 인구 부양능력이 없으니 잉여인간들 처리용.
보통 열에 하나정도 성공.
                         
이쉬타르 15-05-09 19:02
   
고구려가 더 가난 햇단건 고구려사 연구한 학자 말인데( 서영교 란 사람)....그리고 유목민족들이  부유해도 문화는 안만드는데 정주를 하지 않음으로서 이동식이라 ,,그리고  말 타고 싸우는 전투에만 몰두 해온지라,,,,고도의 자기들 문화를 만든 유목 민족이란건 역사상 존재치 않죠..

고구려나 이후 조선계 왕조들 모두가 사실은  상대적 비교에서 다 가난한 국가 였지요
                         
남궁동자 15-05-09 19:11
   
유목민들 문화 있습니다만? 누구맘대로 유목민들 문화를 무시하시나요? 정주를 하지않는다고 문화가 없나요? 유목민들도 부유해지면 국가가 생기고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선이 가난했다면 상대적으로 부유한 대륙사람들은 사람은 왜먹었나요? 식인종인가요?
                         
이쉬타르 15-05-09 19:14
   
하핫...유목민들이 쥐고기를 먹는 다니?? 그런 이상한 괴변을 대체 어데서..유목민들 주식이란게  소고기 양고기이고 육식만 합니다(물고기도 안먹는다고)..우리는 농경을 해도 곡물 생산이 부족해서 가난해서 하류층은  보리나 감자가 주식,,이랫죠,,헌데 유목민은 오직 고기만 먹는데 식생활에서는 농경민 보다 더 나은 조건이죠

 글고 유목 민족은 국가를 세운후 ..중토 지배를 안햇어도 동서 육상지역 통상에서나 상인들에다 세금을 거두워 얻는 이익이 상당 했죠..이런 논쟁에서보면 이상한 고정관념이  강한데... 유목민족= 가난하다 ..이런검니다
                         
이쉬타르 15-05-09 19:19
   
고도로 발전이 된 문화라든가 사상이라든가 철학등은 다 정주 생활에서 나오는 것이고(유목생활은 정착 없이 이동해다니는 그러거임).... 도시를 세우고 건물이나 물건을 만들고해서 생겨나는게죠... 유목민족들이야 10에 10로서 문화 같은거는  무시 했죠,,

다만 동서간 문화교류에서 중요한 역활을  하긴 했으나 원래 유목민이 그거를 한게 아니고 상인들이나,포교자들  여행자들이 한검니다
                         
남궁동자 15-05-09 19:21
   
초원은 생물량이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애시당초 농사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목으로는 절대 인구가 일정 수 이상으로 늘어날 수 없습니다. 농사를 하면 식량이 부족하면 하층민들이 풀뿌리라도 캐먹지만 유목은 그냥 굶어죽는겁니다.
그리고 고도로 발전한 사상은 돈에서 나오는 겁니다. 정주생활을 하던 유목생활을 하던 부유하다면 문화는 고급스러워집니다.
애초에 고급문화는 지배계층의 전유물이니까요.
                         
mymiky 15-05-09 19:31
   
고구려가 가난하니 어쩌니는 국가초기단계에서
약탈경제로 연명하던 시절의 이야기고

유목민족들도 당연히 문화 있죠. 걔들도 사람인데ㅋㅋㅋ
전 없다고 한적은 없는데요-.-?

하핫...유목민들이 쥐고기를 먹는다니??(- 님이 모르시는 모양이지만;;)
몽골 [타르박] 이란 야생 쥐고기 유명한데요-.-;;  몽골인들이 좋아하는데;;
물고기도 먹습니다.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를 먹죠.(자가스)
거긴, 무슨 물고기, 무슨 물고기 잉어, 붕어,이런 이름이 없음.
걍. 물고기는 모두 자가스임 ㅋㅋㅋ
 
우리는 농경을 해도 곡물 생산이 부족해서 가난해서 하류층은  보리나 감자가 주식이였죠? 헌데 유목민은 오직 고기만 먹는데 식생활에서는 농경민 보다 더 나은 조건이죠???

-혹시, 고기먹으니깐 더 잘산다? 그리 막연하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이 무슨 중국인들의 고기론도 아니고-.-;;

유목 민족은 주로 상업에 재주가 있었다는건 잘 알겠는데, 그건, 이동하면서
이리저리 교역에 종사하기 때문이죠.
원나라가 최초의 종이지폐인 교초를 만든게 괜한게 아닙니다.
단, 아이러니하게도, 원나라의 패망원인 중에 하나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폭망이라는;;;
Centurion 15-05-09 17:29
   
고구려가 훗날 선비, 거란이나 여진, 몽골이 제국을 이루기 전의 초기 인구보단 많을 걸요.
(기록상 대략 70만 가구, 1 호당 5명 잡아도 한 350만 이상)
(몽골 같은 경우는 고작 남녀노소 합쳐서 100만 좀 넘는 수준. 여진족도 백몇십만 좀 넘는 수준)

그런데 인구도 적은 북방민족들이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건..
유목/수렵생활이 사실상 군사활동과 아주 닮아있는데다..(기동과 야영, 활과 말타기에 능함)
성을 쌓고 거기에 병력을 분산배치하기 보다.. 그냥 세력을 하나로 뭉쳐 정복활동에 나섰기 때문이죠.

헌데, 고조선도 그렇고, 고구려는 엄연히 농경민족이라,
성을 쌓고 농사짓고, 방어에 치중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수당전쟁시기 고구려의 병력배치를 보면 성마다 많게는 1만~1만5천 병력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많은 성들을 생각해보면.. 병력이 어마어마해지죠.
최치원이 고구려, 백제 100만 정병 타령하는게 거짓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남자란 남자는 다 징집하면(농병일치, 국민개병제) 300만 인구로도 100만이 될 수도 있죠.
(어린애랑 노인 뺴놓고 청소년,청년,중년,장년층 남자 싹 긁어모으면)

그런데도 그 성들을 비워놓고 몇십만을 운용하는 사례가 잘 없었습니다.
국운이 걸렸던 수당전쟁 시기 같은 상황 빼고선 말이죠.

하지만 인구도 백만 좀 넘는 유목민족들은
10만 이상 20만 가까이 병력을 뽑아 전쟁에 올인해버리는 경우가 많죠.(이쪽도 청장년층은 죄다 군인)

그리고 얘네들은 말타고 초원을 가축들이 풀 뜯어먹을 곳으로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하루에 몇십킬로씩 이동하는건 그냥 일상생활입니다.
배고프면 활로 사냥해서 짐승 고기 먹는것도 일상이라 궁술 실력도 생계랑 직결되는 수준이구요.

사는게 군사훈련인 유목민족이랑.. 농사짓다 끌려온 농경민족이랑 전쟁하면 어찌될까요.
한쪽은 그 비싼 말도 몇마리씩 끌고다니며 타고 다니는 기병들이고, 한쪽은 투벅 투벅 걸어다니는 보병이지요.
그래서 인구도 얼마안되는 유목민족한테 중국이 번번히 깨지고 정복당한거지요.

고구려가 반농/반목의 나라라고 보긴 사실 힘들고, 수렵은 좀 했어도, 농경에 중점을 둔 나라라서..
결국 정주민족이었고, 어느 정도 영토가 확보된 뒤로는 무리하게 대외전쟁과 영토확장에 매달리지도 않았죠.

하지만, 고구려 영향권 밑에 있던 거란과 말갈족이
나중에 고구려보다 훨씬 대단한 스케일의 정복전쟁을 성공시키는데..
이게 바로 유목/수렵민족의 특징이랄 수 밖에 없는 부분이구요.

사실 조선만 하더라도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 인구의 10배나 되는 인구였지만..
중국을 침공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진족은 조선의 인구 1/10, 명나라 인구의 1/100 수준으로 그걸 달성했죠.
고려나 조선이 여진족보다 인구가 적어서 못한게 아니라,
단지 농경이라는 요소가 인구에 비해 군사활동에 촛점을 못맞추게 한 것 뿐입니다.
     
이쉬타르 15-05-09 19:28
   
잘못 기재된 부분이 보이는데 .................유목민들이 활을 잘 쏘구 전투력이 강한거는 자기들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지(주변 4방 각지가 도둑 들, 강도단들임) 기르는 가축들 잡기위해서가 아니죠,,기르는 가축은 그냥 칼 한자루도 다 도축합니다
          
mymiky 15-05-09 19:38
   
님.. 청나라 팔기제도-이거 사냥체계에서 나온 시스템입니다;;;
          
Centurion 15-05-09 19:48
   
유목민이라고 자기가 키우는 양만 잡아먹고 살진 않아요. 이것 저것 사냥도 하고 그러죠.
보통 몽골초원쪽은 유목이 발달했지만, 게다가 북만주가 뿌리인 몽고족(실위족)은 본래 수렵민족입니다.
얘네들은 8세기 후반부터 몽골초원에 흘러들어가 돌궐족 잔당들에게 유목을 배웠죠.
그리고 몽골애들이 유목만 하는게 아니라, 매사냥이라던가, 활로 사냥하는 장면은 영화같은 매체에도 자주 나오는 장면이죠.
          
이쉬타르 15-05-09 20:44
   
아이구 참...이렇게 말이 안통해서야,,유목 민족=가축을  길러서 먹고삼 ,,수렵 민족= 사냥을 해서 먹고삼,,

고구려인은 누가 지칭하기를 수렵민족이라던데 ,,짐승이란게 주로 산지에서 살고 초원에서 안살죠,,글고 고구려 주요 수출품이 짐승의 모피였죠
               
Centurion 15-05-09 21:16
   
말이 안통하는건 그 쪽이네요.
제 글에 반농반목보다 '수렵'이라고 딱 적어놓고 있구만.

게다가 초원에 산다고 양고기만, 기르는 가축만 잡아 먹을거라 생각하는 그 쪽이 더 좁게 보는거죠.
애시당초 몽골 초원에 사는 애들도 수렵은 합니다.

그리고 초원이라고 사냥할 짐승이 없는 것도 아니구요.
몽골초원에서 유목하는 애들도 사냥 많이 합니다.

https://www.google.co.kr/search?q=%EB%AA%BD%EA%B3%A8+%EC%82%AC%EB%83%A5&newwindow=1&biw=945&bih=725&source=lnms&tbm=isch&sa=X&ei=vPpNVae9CMi58gWa-4CYBg&ved=0CAcQ_AUoAg

걔네들 활 솜씨가 뭐 조선 사람들마냥 활터에서 과녁보고 쏴서 실력이 늘었을까요? 자기네 양떼 쏘아맞추던걸로 늘었을까요?
당연히 사냥으로 늘었죠.

그리고, 고구려는 유목(떠돌면서 양떼 사육)보다는 수렵(사냥) 형태였고,
그것보다 농사가 기본이었죠. 고구려 기병이 안장 밑에 뭘 넣어놓고 먹던가요? 청국장 아닙니까? 콩이에요 콩.

고구려 성터에서 뭐가 발견됐죠? 불에 탄 쌀입니다. 
*******************************************************************************************************************
http://tadream.tistory.com/5698
무등리2보루의 탄화곡물은 남한지역에서는 최초로 발견된 고구려군 식생활 자료로 고구려인의 주식이 쌀과 조 등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황해도 안악고분의 벽화도 부엌에서 시루로 밥을 짓는 광경이 묘사돼 있어 고구려 귀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쌀밥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여겨진다.
**************************************************************************************************************************

애시당초 전쟁하는데 사냥만으로 식량조달했으면 고구려는 그 세력을 유지도 못하죠.
그냥 간혹 단백질 보충용 육식인거지. 쌀을 대체할만큼의 주된 식량이 아님..
               
mymiky 15-05-09 21:17
   
유목민:(Nomad)
일정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하여 항상 목초지를 찾아 다니며 이동 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옛날부터 건조지대 초원이나 반 사막 지대에 거주한 민족

유목민 유형
-수렵 채집형/ 목축형/ 소요형(逍遙 돌아다니는 유형)이 있다.

수렵-채집형 : 계절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찾거나 사냥감을 찾아 떠남
목축형 : 가축 떼를 기르고, 그들과 함께 이주
소요형 :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장사

유목민은
수렵-채집형과 목축형이 섞인 형태가 많다.
          
뚜리뚜바 15-05-09 23:23
   
자기가 기르던 가축을 왜 활로 잡아요;;
Centurion 15-05-09 18:11
   
그리고 농경민족이 인구가 많더라도.. 보통 징집하고, 뭉쳐서 올려보내면,,
적으면 몇천, 몇만, 많게는 몇십만인데..(총병력이 몇백만이라쳐도..)
인구 적은 유목민족도 한판 해볼만한 병력이죠.

즉, 엘리트 기병인데다, 그 머릿수도 한판 회전을 벌이는데는
중국의 띄엄띄엄 올라오는 대응군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던게 당시 유목민족인데..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 올라온 중국의 보병들이 각개격파, 축차소모 당하는게 일반적인 양상이었죠.

유목민족의 엘리트기병 10~20만이 오늘은 하북성의 보병 위주의 10~20만 족쳐버리고,
내일모레는 하남성의 보병 위주의 10~20만을 족쳐버리는 씩으로 격파를 해버리니..
발이 느린 보병 위주의 군대로는 대응이 안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같은 보병 위주로 구성된 군대로 전쟁을 벌이면 양측 모두 기동성이 부족해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소모전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유목민족은 빠른 기동력으로 그걸 커버친거지요.

조선이 청나라보다 인구가 10배인데도..
띄엄띄엄 올라오던 근왕군 몇만 단위가 각각 올라오다가..
청나라의 기병위주의 대군에게 각개격파당한것도 그런 이유구요.

결국, 유목민족은.. 전쟁수행에 아주 적합한 형태의 생활양식을 가졌다..~
그래서 정복왕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요런거죠.

이런 기동전과 각개격파는 나폴레옹이 잘하던 것이기도 했죠.
나폴레옹이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을 각개격파하려다
후퇴하던 프로이센군의 절묘한 타이밍의 합류로 워털루에서 패했지만..
     
두부국 15-05-09 19:15
   
고구려는 다민족이 아닌가요? 고구려 기병에 대부분 거란족이나 선비족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mymiky 15-05-09 19:41
   
고구려가 다민족 체제인건 맞는데
기병 대부분은 고구려인들이지.
거란족, 선비족도 물론 일부 편입?되어 있기야 했겠지만.
그야말로 애네는 부용민족인거구요.

청나라 팔기병도, 만주팔기를 비롯해
하부조직에 몽골, 한8기, 고려좌령, 솔호(퉁구스계)인들이 편입되어 있듯이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Centurion 15-05-09 20:16
   
대부분은 아니지요.
엄연히 고구려와 그 부용세력인 말갈 등한테 당하는 입장에서도..
고구려군과 말갈 기병은 따로 분류해서 구별하고 있습니다.

당나라조차도 고구려군 포로와 별도로 말갈 병력은 파묻어 죽였다고 기록해뒀죠.
한마디로 외부인 눈에도 외형적으로도 구별이 될만큼 복장이나 장비의 차이가 있었다고 봐야겠죠.

고구려는 여러 벽화를 보더라도, 중장기병이든 경기병이든 전형적인 고구려인이 활동했습니다.
          
뚜리뚜바 15-05-09 23:25
   
거란족, 선비족 구분이 엄연히 존재 했습니다. 거란이 기병으로 동원이 된적은 있어도 고구려 기병이 거란인적은 없습니다.
남궁동자 15-05-09 18:47
   
정신병은 부끄러운것이 아닙니다. 극복해나가는것입니다. 당신도 해낼수 있습니다.(성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 031-639-3700) (용인정신병원 : 031-288-0114) (가족사랑 서울 정신과 의원 : 02-2068-7486) (송신경정신과의원 : 02-734-5648) (신경정신과의원 : 02-517-9152) (동민신경정신과 : 02-353-2325) (솔빛정신과의원 : 02-359-9418) (인천 참사랑병원 : 032-571-9111) (부산 동래병원 : 051-508-0011~5) 당신도 해낼수 있습니다.
     
옷닭서방 15-05-09 20:13
   
적극추천
이쉬타르 15-05-09 19:25
   
고구려는 기병대가 거란족들이 맡았고 고구려는 원래 보병이 중심이며 기병대가 약한 편이죠,,고구려가 강한것은 농성전에서이고 침공해온 적을 이러하게 물리치고 했죠
고구려 전성기에는 중갑형 철기병이 전투력 중심 였단점이고 이거만 예외적이죠
     
남궁동자 15-05-09 19:28
   
전세계 어디서나 기병은 보병에 비해 고급병종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급병종을 피지배민족인 거란족들에게만 맡겼다? 만약 거란족들이 반항하면? 애초에 어떻게 복속시켰고요? 헛소리도 정도껏 하시죠.
          
이쉬타르 15-05-09 19:32
   
흐흐 ..이분은 자료를 더 읽으셔야....고구려내 거란인은 고구려인 하고 상호 부조 관계 였었음(말갈족도 그랫고)..고구려는 성을 잘 쌓아놓고 여기서 방어를 하는 전술이라.... 적이  기병대라 할지라도 충분히 통함
               
남궁동자 15-05-09 19:40
   
... 고구려의 기본전략은 선제공격입니다만? 애초에 기병이 약하면 유목민족을 무슨수로 복속시키나요? 말타고 튀면 끝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시죠?
               
mymiky 15-05-09 19:43
   
당시 거란이나 말갈은 부족들끼리 나뉘어져 있었고,
어떤 부족은 고구려에 우호적이나, 또 어떤 부족들은 그렇지 않거나
다양했습니다.
뭐, 후자보단 전자가 많았을꺼라 생각은 하지만.
오랫동안 푸닥거리를 했던 흑수말갈이나
당나라에 붙은 설인귀, 이해고(애네들 친당파 거란족들)가 없다곤 못하잖아요?
     
Centurion 15-05-09 20:08
   
고구려 기병들은 크게 중기병과 경기병으로 나눠집니다.
고구려의 기병 비율은 대략 20~25%, 보병은 75%~80%로 추정됩니다.
이 중 중장기병과 경기병 비율은 5:5 혹은 4:6으로 추정됩니다.

즉, 고구려군의 중장기병은 대략 전군의 8~10% 가량 정도로 추정됩니다.
(대한민국 상위 10%가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 위치가 대충 감이 올듯..)

당연히 중장기병이란게 비싼 갑옷과 그걸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말로 구성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병종이고, 이건 복속시킨 부용민족을 데려와서 써먹을 수 있는 체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핵심 7군단 양기사, 수기사에 조선족, 짱개, 외노자 알바 배치하는 꼴이죠)
당연히 고구려군 내부에서도 귀족 급의 무사계급이 맡을 수 밖에 없는 위치지요.

그리고, 거란족이나 말갈족 같은 병력은 그냥 별도로 외인부대 취급하며 써먹었지.
같은 고구려군으로도 보지 않았죠. 고구려 입장에서든, 고구려하고 싸우는 입장에서든..
죄다 고구려군과 말갈 부용세력 군대를 따로 구분해서 기록했죠.

한마디로 고구려 기병세력과 말갈, 거란 얘네들은 애시당초 별도임..
옷닭서방 15-05-09 20:10
   
그리스/ 네덜란드 로마제국/ 징기스칸 시절의 몽골/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지랄염빙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는 현재 서양문명의 뿌리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미국은 로마제국의 확장판이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조이며  해상패권국이였다.
몽골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은 하나같이 거대제국 옆에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일어선 위대한 나라들이였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로마는 그저 몇몇 촌락에서 시작했으며,
그리스는 스파르타에게 다굴당하는 도시국가였으며,
몽골은 나라도 없는 지역이였다.


한국은 세계사를 휩쓸 나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굳이 개떡같은 환빠질이나 국뽕질이 아니여도,
드라이한 분석만 놓고본다면 한국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이렇게 일어선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그리스/네덜란드/로마/몽골....
모두 하나같이 터무니없이 적은 인구로 시작해서 세상을 지배하고 휩쓸었다.
nyamnyam 15-05-10 00:00
   
비슷한 조건을 가졌던 로마제국은 예외인가요?
     
Centurion 15-05-10 00:24
   
로마제국은 주변에 절대강자가 없었습니다.
사실 고구려의 전성기도 중국의 분열기였던 5호 16국 시대였고..
망한 시기는 중국의 통일왕조 시기인 당나라 때였죠.

본래 중국이란 나라는 춘추전국시대처럼 수많은 소국으로 갈라져 있어야 되는 곳인데..
이게 한덩어리가 되면 주변국에선 침공하기 사실상 어렵죠..

근데, 유목민족들은 앞서 말한 여러 이유로 남다른 전투민족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걔네들이랑 부딪힌 중국 왕조들이 1/100 밖에 안되는 적은 인구의 유목민족들에게
군사적으로 패배해 정복을 당했죠.

물론 로마제국도 농경민족이었지만, 포에니 전쟁을 계기로 해군력을 증강해..
이 전쟁에서 해외원정을 벌이며 해양패권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탈리아 반도를 벗어나 사방팔방으로 확장하게 되구요.

로마 주변엔 그리 위협적인 절대강자가 없었던거고..
반면 한반도 주변에는 유럽도 떨게한 훈족(흉노족)이라던가, 마자르족, 몽골족 같은 나라들과 세계 인구 1위 국가인 중국 같은 나라가 버티고 있어서 상황이 다릅니다.

당시 15~19세기 유럽만 해도 인구가 강대국이라는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투르크 같은 나라들도 인구 1~2천만, 많아야 3천만 수준이었어요.
          
옷닭서방 15-05-10 03:33
   
이분이 3천만을 우습게 보시네....

중국 명나라 초기 인구가 2천만이였소이다.  상상이가슈!!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투르크.... 가 뭐시 어쨌다구요??
               
Centurion 15-05-10 06:12
   
(단위 만)
BC 10000(신석기 시대) 100
BC 2000(하 우왕) 1355
BC 300(전국시대) 3000
BC 221(진 통일) 1200
BC 202(한 고조)  1500
AD 2(한 평제) 5959
AD 57(동한 광무) 2100
AD 157(동한 환제)5600
AD 265(3국시대)   767
AD 517(북위 효명제)3000
AD 609(수 양제)   4600
AD 618(당 고조)   1200
AD 755(당 현종)    5300
AD 976(송 태조)   618
AD 1110(송 휘종)   4700
AD 1187(송효종/금세종)6900
AD 1291(원 세조)         6000
AD 1470(명 헌종)         7185
AD 1711(청 강희)         2462
AD 1795(청 건륭)       30000
AD 1839(청 도광)       40000
AD 1931(민국시대)    47480

http://blog.daum.net/icomm/95

중국 인구는 한나라시절에 이미 5천만 돌파하였소!
그냥 걔네들은 툭하면 전쟁, 질병, 기아에 죽어가다가,
다시 금방 또 금방 그 수준을 회복하는데
왜냐하면.. 미등록인구가 졸라 많음. 특히 전쟁 벌어지던 혼란한 시국에 특히 많음.
(인구 767만인 위촉오 삼국시대도 학자들은 실제인구 4~5천만 이상 추정)
게다가 지금 봐도 알겠지만, 종족 번식에 남녀 모두 골몰함..

**********************************************************************

베네치아 공화국

투르크와의 충돌에서 겪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15세기 말 베네치아 시는 인구 18만으로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크고,
분명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23]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는 약 7만 평방킬로미터였으며 인구는 210만명에 달했다.
(동시대 인구는 영국 3백만, 이탈리아 전체 1천 1백만, 프랑스 1천 3백만, 포르투갈 170만, 에스파냐 6백만, 독일/신성로마제국 1천만)

http://ko.wikipedia.org/wiki/%EB%B2%A0%EB%84%A4%EC%B9%98%EC%95%84_%EA%B3%B5%ED%99%94%EA%B5%AD%EC%9D%98_%EC%97%AD%EC%82%AC

오스만 제국

17세기 제국 인구가 대략 3천만 정도로 추정되는데,
동시기 프랑스 인구가 2천만이었다. 양국의 영토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18]

오스만 제국의 영토 중 상당수가 사람살기 어려운 땅이라는 점과, 프랑스는 농토의 비율이 높아서 비슷한 면적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봐도 인구가 많은 편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이것도 전성기때의 인구다. 말기인 1914년에는 2500만에 불과했다.

카를 5세의 제국이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을 사실상 다 장악하고 있었는데도 유럽 내 영토의 인구만 놓고 보면 동시기 프랑스와 간신히 비슷하거나 조금 많았을 정도니. 사실 현재의 프랑스 인구가 독일이나 오스만 투르크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뿐인 터키에게 도 밀리는건, 이는 19세기 중반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시기까지 프랑스가 출산율이 낮은수준에 머물면서 인구증가테크를 제대로 타지못한게 크다.

인구학자들이 만약 프랑스가 이 당시에 인구증가 테크를 제대로 탔으면 인구 1억을 넘는 인구대국이 되었을것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면 말 다한 셈.

https://mirror.enha.kr/wiki/%EC%98%A4%EC%8A%A4%EB%A7%8C%20%EC%A0%9C%EA%B5%AD

*************************************************************************

뭐시 어쨌다구요?
제가 혼자 지어낸 말 하는 줄 아슈?
반푼이 15-05-10 18:16
   
원래 우리 조상님들은 싸움을 싫어 했어요 그개 원인이죠..이젠 지구에서 땅따먹기는 그만하고 더 넓은곳을 바라봐야죠...
 
 
Total 2,91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918 [기타] 일제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남북 분단이 되었지요 (14) ellexk 05-10 2903
2917 [기타] 중국은 경제파트너 미국을 동맹국 그건 꿈 (3) 철부지 05-10 1702
2916 [기타] 발해를 세우게 해준 영웅 가르친링과 송첸캄포[ 졘뽀… (5) 두부국 05-10 5365
2915 [기타] 조선이 요동지역에 그렇게 관심이 없던게 기후도 있… (8) 11학번 05-10 2736
2914 [기타] 언어라는게 참 신기하네요 (3) 목요출생 05-09 2272
2913 [기타] 한반도에서는 포부가 좁을수밖에없다. (56) 철부지 05-09 3624
2912 [기타] 민족주의가 없는 국가의 병폐 DNA 논란. (8) 철부지 05-08 3155
2911 [기타] 중국은 영토욕심은 엄청난 돼지입니다 (2) 두부국 05-08 2159
2910 [기타] 밑에 분..Thorgeirr님..여기에 다시 쓴점을 이해해주세… (175) mymiky 05-08 3912
2909 [기타] 솔직히 한국인들의 조상이 북방에서 왔다는 증거가 … (194) Thorgeirr 05-07 5510
2908 [기타] 고구려가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핀란드 블로그 (7) 근초고왕 05-07 2889
2907 [기타] 고구려는 천자의 나라, 왜? 두부국 05-07 2741
2906 [기타] 중국의 고구려역사왜곡의 근거와 반론 (4) 두부국 05-07 3520
2905 [기타] 몽골지역에 남아있는 고구려 성터 (12) 두부국 05-06 5389
2904 [기타] 헐버트가 아끼던 제자 (10) 인간성황 05-05 2730
2903 [기타] 한중일 삼국 헌법 전문 (북포함) (7) 해달 05-05 2340
2902 [기타] 개략적으로 그려본 고구려 영토 변천사 (19) 꼬마러브 05-05 14646
2901 [기타] 무능한 송나라 황제들의 처참하고 비참한 모습 (24) 두부국 05-05 8491
2900 [기타] 중국인들에게 뭘바라시면 안됩니다 (8) 두부국 05-04 3046
2899 [기타] 상해 임시정부의 국사 교과서 "신단민사" (12) 바람노래방 05-04 2843
2898 [기타] 우리나라의 기원을 한사군에서 찾는게 맞다! (13) 조이독 05-04 2699
2897 [기타] 윤내현 교수님의 고조선 연구를 기반으로 한 고조선 … (2) 바람노래방 05-04 6529
2896 [기타] 카작 김정민박사 "한국과 중앙아시아 고대사 유사성" (3) 환빠식민빠 05-04 3076
2895 [기타] 카자흐스탄 김정민 박사 강의 "케레이의 이동" 정말 … (2) 환빠식민빠 05-04 4399
2894 [기타] 만주.간도. 연해주.대마도. 각시털 05-03 1761
2893 [기타] 역사니 뭐니, 만주벌판이 정복이니 뭐니...하는 놈들… (38) 옷닭서방 05-03 3392
2892 [기타] 잊혀진 역사 부여 (3) 두부국 05-03 1902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