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가 세상을 시끄럽게하고 있습니다.사상 최악의 부류에 속하는 압제의 아래,
북한은 어떻게 되어 가겠지요?
그런데, 내(40대)가 초등 학생의 무렵에 들은 이야기에서는,
「북한은 공업이 발달하고 있지만, 남쪽의 한국은 경제가 늦은 농업국」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본 통치 시대에 한반도의 광공업의 설비 투자가 북측으로 모여 있었기 때문에일 것이다와
상상합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해, 한국은 가난하다라고 말하는 이야기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은 한국의 발전은 눈이 휘둥그레 지는 것이 있습니다.
경제위기를 경험했다고는 해도, 크게 북측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가난국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일약 발전시킨 중심 인물, 그것이 박정희대통령이지요.
몇년전의 한국내에서의 여론 조사로, 한국 역대 대통령중에서 제일 인기가 있던 것은 이 박정희였습니다.
한편, 내가 초등 학생의 무렵에 견문 한 신문 TV등에서는
박정희를 비도인 독재자로서의 비판 뿐이었습니다.
막대한 공적과 깊은 어둠의 양쪽 모두를 가지는 복잡한 박정희에 대해 말합시다.
※【주의】기억인 만큼 의지해 쓰기 때문에,
정확한 일은 제대로 한 성실한 자료를 자신으로 찾고, 조사해 주세요.
박정희는 도저히 궁핍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사범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 통치 시대였으므로, 사범 학교도 일본식입니다.
일본 군인에 의한 군사 교련도 있었습니다.
일본인 교관은 이미 박정희의 군사적 재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범 학교 졸업 후, 박정희는 학교의 교사가 됩니다만, 곧 퇴직합니다.
학교 퇴직 이유로서 전설이 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교장은 일본인으로, 교사들에게 일본식에 머리 모양을 단발이든과 명했습니다.
그렇지만 박정희는 조선식에 장발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근원으로 일본인 교장과 트러블이 되어, 교장을 때려 퇴직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듣습니다.사실은 나는 모릅니다.
박정희가 무직이 된 이야기는, 곧 일본 군인 교관이었던 인물에게 전해집니다.
하는 곳의 일본군장교는 박정희를 호출해, 그를 일본군의 사관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사관학교에서도 성적 우수하고, 일본에 유학.
박정희는 지금의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인적인 정신을 길러 갔습니다.
사관학교 졸업 후, 「타카기 마사오」의 이름으로 만주국군중위까지 되었습니다.
항일 게릴라를 이라고 일응이나 붙이고 있던 것 같습니다.
일본 패전 후, 이윽고 대한민국이 성립합니다.
박정희는 한국군에게 들어와, 재능을 발휘해 나갔습니다.
당시의 한국에서는 사상의 자유의 원, 공산주의 정당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군사관안에도 노동당(남노당)의 활동을 실시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도 남노당에 입당했습니다.
져널리스트가 되어 있던 박정희의 형(오빠)가 농촌에서의 쟁의에 말려 들어가 경관대에게 살해당해 버려,
곤궁한 형(오빠)의 가족이 남노당간부의 신세를 졌으므로,
은의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궁핍한 농민 출신이었으므로 본인도 사상적으로 공감하는 곳(중)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세계가 냉전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정치는 어려운 반공 정책으로 옮겨서 갑니다.
군내부의 사상 체크가 시작되어, 박정희는 체포되어 버립니다.
무서운 고문이 더해진 후, 군법회의의 판결은 사형이었습니다.
이미 다수가 사형 집행이 끝난 상태로, 박정희도 절체절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재능을 아까워한 군상층부가 감형을 움직여 사형 집행 직전에 구해집니다.
덧붙여서 좌익계 HP라고 생각되는 중에, 박정희가 당의 동지를 밀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형을 면했던 것이라고 하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좌익에 있어서는, 박정희는 불구대천의 적이므로,
단지 근거 없는 것 비난의 종을 찾아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실인가, 나에게는 모릅니다.
「왼쪽」에서는 배반자가 평가를 받아져
「 오른쪽」에서는 위험사상의 전력을 문제로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박정희에 있어서, 오랫동안에 걸쳐서 되풀이해지는,
깊은 상처, 또, 「어둠」의 일부가 됩니다.
그 후, 당분간은 박정희는 한직에 좌천 된 채로 있었습니다.
변화가 생긴 것은 한국 전쟁 발발이었습니다.
막상 전쟁이 되면, 박정희의 군사적 능력을 재우러에 가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차츰 두각을 나타내, 승진해 갈 것입니다.
그 후의 한국의 정치는 혼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군의 신진 장교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박정희를
리더로서 메게 되었습니다.
1961년, 군개혁파에 의한 쿠데타로 박정희는 실권을 잡습니다.
미국은 쿠데타를 기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어쩔수 없이 추인 합니다.
박정권의 정치의 특색은 모두의 여론을 무시해 강권적으로 개혁 정치에 매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특히 대일 외교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문답 무용의 아주 대단한 것으로,
일본과 국교를 연결해 조약을 체결하다니 터무니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일본과 손잡는 것 외에 길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반일 데모가 날뛰는 중, 반일 활동을 탄압합니다.
그리고 일본과 국교 수립, 조약 체결로 돌진했습니다.
이것은 대성공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의 기반이 되어서 갑니다.
그 후도 공업화나 농촌부에서의 세마울 운동등 차례차례로 강권으로 정치를 추진해 갑니다.
「유신」체제라고 하는 슬로건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나 만주국의 체제에 모방한 것이었다 것이지요.
북한과는 심한 대립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북한의 특수부대가 박대통령의 관저 근처까지
침입해 박정희암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
이것에 대한 보복을 위해 한국군도 북한 주석 암살을 위한 부대를 결성해,
비밀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그것이 1970년경부터, 박정권은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요구하는 자세로 전환합니다.
공중에 뜬 비밀 부대가 반란을 일으킨 사건(실미도 사건)도 있었습니다.
한편, 박정권의 부패가 나갔습니다.
박정희자신은 청렴결백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측근들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정권 내부에 이권을 둘러싼 드로드로로 한 썩는 냄새가 만연하게 됩니다.
일본의 재계와의 리베이트 유착이 문제가 되어서 갑니다.
특히 대통령 경호실장에 절대인 권력이 모여,
경호실장이 박정희를 조종하고 있던 가능성을 지적하는 문장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경호실장이 「그림자의 대통령」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이것을 탄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KCIA라고 하는 특무 기관을 통해서, 박정권은 비합법 활동에 손을 대게 됩니다.
선거의 부정하게도 손을 대어 버립니다.
김대중( 후의 한국 대통령)을 도쿄로부터 납치한 사건(김대중 사건)은
정권의 말기 증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때의 군개혁파의 쿠데타 동료의 사람들도, 박정희가 바뀌어 버렸다고 한탄했습니다.
1974년에 재일 한국인문세광이 박대통령 암살 미수를 일으켜,
유탄에 부인이 맞아, 박정희는 부인을 잃습니다.
1979년 부산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폭동이 발생해, 박정권의 위기가 다가옵니다.
정권의 종막은 돌연이었습니다.
하필이면 KCIA 부장 김재규에 의해서, 박정희자신이 암살되어 버렸습니다.
경호실장도 살해당했습니다.
암살 사건 당시 , 박정희는 측근등과 식사중이었습니다.
연석에는 여성 가수도 초대되고 있었습니다.박정희는 노래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과묵하고 과묵해서, 어느 일본군장교, 어느 공산주의 정당 활동가,
사형수, 어느 군사 정권 리더, 그리고 독재자···.
꽤, 어째서 어째서, 멋진 인물이 아닙니까?
13 코멘트
코멘트일이 낡은 순서 | 새로운 순서
TB 감사합니다 (아스와드)
2005-03-04 02:24:57
「대통령의 이발사」에 대한 기사에의 트럭 백, 감사합니다.
박대통령은, 플러스의 면에서도 마이너스의 면에서도, 전후 한국사를 상징하는 대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타나카 가쿠에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을)를 묻는 이상으로, 어렵고, 그리고 인간의 무엇인 가가에서라고 오는, 그러한 문제겠지, 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박대통령을 논한 기사가 수중의 블로그에 없기 때문에, 트럭가방은 사양합니다만, 앞으로도 가끔, 내비쳐 주세요.
TB감사합니다 (해)
2005-03-05 16:35:12
몹시 참고가 되는 기사의 트럭 백, 감사합니다.
나도 동년대이므로, 어렸을 적의 한국과 박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같은 느낌입니다.
이번 「대통령의 이발사」로 박대통령이 매우 매력적인 인물에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일반 시민에게도 아직껏 인기가 있다고는 몰랐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대통령 암살을 테마로 한 영화가 상영되거나 그 시대를 반추 하는 것이 많은 듯 하네요.
또 배견 하겠습니다.
TB감사합니다. (lignponto)
2005-03-15 21:16:29
나는, 그저께¤尹酉� 이발사�(을)를 봐 왔습니다.나는, 40세가 되었다뿐입니다만, 고교생 정도까지는, 한국은, 무섭다고 하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지금은, 그렇지도 않습니다만.또 놀러 옵니다.
감상 (Jin Yahata)
2005-03-17 10:58:05
매우 흥미롭게 받아보았습니다.박 전 대통령에 대해 솔직하게, 완전한 중립적인 눈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왜 일본의 매스컴은 이러한 시점에서 그를 보지 않았던 것일까.북쪽의 독재자, 김주석에 대해서는 예찬하는 바보스러운 보도를 해 두어.이와나미 문화인은 지금도 북쪽에 대해서 감싸는 자세를 바꾸고 있지 않습니다.그들은 북쪽에서 금전적인 무엇인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까.그렇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 미치광이 같아 보인 나라를 지지등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내가 한국인이다면, 「제일 훌륭한 대통령은 누군가」라고 (들)물어 틀림없이 「박대통령」이라고 대답하겠지요.
약간, 추가 수정했습니다 (노르트@관리인)
2005-03-18 08:44:13
조금, 기사의 본문을 추가 수정했습니다.
>아스와드모양
어서 오십시오.
타나카 가쿠에이도 대인물이군요.
>해 님
어서 오십시오.
한국이 재미있는 곳은, 대통령 경험자의 대부분이 사형 판결을 받았던 적이 있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의 경우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입니다만,
외는 다음에, 평가가 폭락이기도 합니다.
>lignponto양
코멘트 감사합니다.
한 때의 한국에는 무서운 면이 확실히 있었어요.
>Jin Yahata양
의미 깊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일본의 매스컴도 박대통령의 재평가를 해 주었으면 하지요.
나는 박대통령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의 쌍방으로 흥미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대하드라마가 될 것 같은, 장대한 역사극에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노르트는 독재자를 좋아하다, 라는 주위의 소리가 있기도 합니다만··.
(굳이 부정은 하지 않는다··)
TB 감사합니다. (투묘)
2005-04-22 20:52:19
모형의 타미야도 박대통령이란 관계 있는 것 같아요.이번, 거기에 붙은 책을 소개하기 때문에, 또 나의 블로그에 행차 주세요.
트럭 백 감사합니다 (스자쿠문)
2005-04-22 21:14:36
석가에 설법일지도 모릅니다만, 1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한국 대통령 열전」(지동 아사히저:중 공신서)
대전 후부터 20 세기말까지의 한국 정치사가 알기 쉽게 써 있습니다.나의 블로그에서도 타나카 가쿠에이의 이름을 냈습니다만, 박정희와 비교해야 할 정치가는 오다 노부나가일지도 모른다.아니, 유리우스·Caesar일지도 모르다.
역사는 깊네요 (락빈와)
2005-04-22 23:35:53
트럭 백 받아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면, 그 깊이에 놀랍니다.입장에 의해서 사상에 의해서, 사실을 판단하는 눈이 바뀌어 옵니다.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가능한 한 중립적, 공평한 눈을 가지고 싶습니다만 , 배우면 배울수록, 어디선가 자국을 정당화 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습니다.애국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만큼, 일본에 대한 생각 넣어를 의식했던 적은 없으러.
트럭 백 감사합니다 (kd999)
2005-04-25 21:18:15
첫 트럭가방이었습니다w
옛날은 한국잘 몰랐습니다만
한일 월드컵 이후 흥미가 끓었습니다.(다른 의미로w)
공부에 힘쓰지 않으면서 박대통령이, 어떠한 인물인가
잘 몰랐기 때문에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박대통령
2005-05-22 10:36:42
TB시켜 주세요.
영화안만의 대통령 밖에 몰랐습니다만
이 기사를 읽어 조금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영화를 보면서도, 일본과 한국에 도착해
좀 더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옵니다!
Unknown (Unknown)
2005-05-28 06:48:23
한국MBS텔레비전이 오늘, 박대통령 암살 직후의 현장 사진을 증언을 섞고 보도하는군요.
짓궂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 의해서 박대통령에 시선이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http://www.tokyo-np.co.jp/00/detail/20050528/fls_____detail__005.shtml
매스컴의 유도? (프렌치 프리게이트)
2005-11-27 14:04:23
TB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박대통령에 대한 당시의 보도는, 매스컴의 편향이었던 것 같게 생각되는군요.군인이면 그 만큼으로 악, 이라고 하는 공평한 검증이 부족한 태도입니다.
Thanks (짊어진다)
2005-11-30 14:03:38
트럭 백 고맙습니다 있었습니다.나도 정치가로서의 박정희에 대해서 강하게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잘못하지 않고 한국 근대화에 대해서 가장 공헌한 인물이지요 해, 존경하고 있습니다.그나 그 외 자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을 규탄하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에 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