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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0 16:36
[기타] 고구려 전문가가 본 고구려의 영토!2부
 글쓴이 : 유리수에요
조회 : 4,064  

싸웠다. 고구려 멸망 시점까지 말갈은 고구려와 분리시켜 볼 수가 없다.

수서에 기록된 말갈 7부 가운데 백산부, 안거골부, 호실부, 속말부, 백돌부는 고구려에

속한 부족들임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는 최근의 중국학자들의 발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불열부는 아예 기록조차 없어 단정하기는 힘들고, 흑수부는 유독 다른 계통을

지닌 읍루-물길과 연결되는 종족으로 여겨지는데, 흑수부는 고-당 전쟁 때에는 고구려를

도와 전쟁에 참전했다. 만약 고구려와 말갈이 전혀 별개의 세력이라면 어떻게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하나의 국가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겠는가?

가장 이질적인 흑수말갈 조차 고구려와 무관한 세력은 아니었다.

고구려가 말갈에 대한 어떤 통제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이

밝혀져 있지 않으나, 양자 관계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흑룡강가에 위치한 러시아의 국경도시 하바로브스크시 인근의 코르사코브스키 고분군

112호 고분에서 고구려의 금동불상과, 같은 고분군에서 고구려식 화살촉이 다량 출토된

것이다. 이곳은 흑수말갈의 거주지로 추정되는 삼강평원의 북쪽이다.

금동불상과 화살촉 유물은 고구려의 영향력이 이 지역에 사는 흑수말갈에 강력하게

미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고구려 전성기의 영토를 그릴 때에는 말갈의 거주지로 알려진 동북 지역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시 영토 개념에도 더 가까울 것이다.

손영종의 『고구려사2』의 지도는 고구려가 말갈 전역을 완전히 영토로 삼았다고

해석한 지도라고 볼 수 있다.

4.jpg


말갈 지역을 지도로 그릴 때에는 백산부와 속말부, 백돌부, 안거골부, 호실부 지역은

고구려의 내지에 그려 넣고, 연해주 북부와 삼강평원 일대의 흑수부 지역은 고구려의

변방으로 그리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고구려사2』 지도에 표시된 흑룡강 북쪽의 시베리아 지역은 고구려 영토로

표시할 수 있을까?

먼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고구려를 그저 주변에 존재한 가장 강대한 국가 정도라고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는 담비가죽을 비롯한 산물을 거래하는 상업 활동의

보호, 여러 부족들의 산발적인 내침(來侵) 방지, 여러 부족들의 병사를 차출하여

외부와의 전쟁에서 동원 등을 목적으로 이 지역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구체적인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구려가 이곳에 통치조직을

갖춘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것은 아직까지는 무리한 역사 추론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간혹 무력시위를 하거나, 외교관을 파견하고, 소수의

부족장들에게 고구려 관직을 주는 책봉을 하거나, 또는 고구려의 선진 문물을 하사

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구려를 따르게 하는 정책을 펼쳤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만으로 고구려 영토를 이곳까지 그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만약 현대 중국의 영토 표시 방법에 준하여 고구려 영토를

그린다면, 고구려가 숙신에게 조공을 받고 말갈 등을 제어한 것만으로도 북쪽 영토는

무한정 확대되어 그려도 무방할 것이다. 중국의 역사 지도에 고구려 영토에서 말갈을

제외시킨 것은, 수와 당의 영토를 그린 방식과 전혀 다른 이중 잣대로 지도를 그린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지도 표시 방법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북한의 『고구려사2』 지도

역시 지나친 과장이 있지만, 중국의 지도 표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겠다.

고구려 영토 표시에 있어서 또 하나 주목할 곳은 요서 지역이다. 대체로 고구려 영토를

표시한 지도에는 요서지역이 빠져있다. 일부 지도에 무려라 등 요서에 고구려 전진

기지가 있음을 염두에 두고 요하를 건너 국경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특히 고구려의 것이 아니면 모두 중국의 것으로 표시하는 안일한 지도 표기가 문제가

된다. 대다수의 한국의 역사지도에는 고-수 고당 전쟁 시기 양국간 국경을 요하로

표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수나라와 당나라는 요서 지역에 제대로 된 군현조차 없었다.

겨우 군사기지로 유성군 1개소에 인구 3천 남짓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를 근거로

광활한 요서 지역을 전부 수와 당의 영토로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요서 지역은 역대로 고구려의 주요 활동 거점이었다.

왕 명

년 대

고구려의 활동 상황

모본왕

49년

후한의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공격

태조대왕

55년

요서에 10성을 쌓음 ?

태조대왕

121년

후한 습격, 후한의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 등의 군대가 동원된 것으로 볼 때 전쟁 무대는 요서 일대로 추정

미천왕

313년

모용선비의 책성 공격 (요서의 중심인 대릉하 주변)

광개토대왕

395년

거란 정벌, 부산(負山), 부산(富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름. 의무려산맥을 넘어 요서 북부로 진격한 것 ?

광개토대왕

402년

후연의 숙군성(대릉하 주변) 공격

광개토대왕

404년

후연의 연군(북경 일대 또는 대릉하 주변) 공격

광개토대왕

406년

후연의 군대가 3천리나 쫓겨 다님 (요서지역에서 전쟁 ?)

광개토대왕?

408년 이전

유주자사 진이 북경 일대 지배 ? (덕흥리 고분)

장수왕

436년

북연의 수도 화룡(조양지방)에 진격, 북연 접수, 북위군과 대치

장수왕

479년

유연과 함께 지두우 분할 (대흥안령 산맥, 요서 북부)

문자명왕

502년

북위의 변방을 습격 (북경 일대)

안장왕

520년대

유성(조양)을 공격하여 평주사마 한상을 잡아 옴

평원왕

560년대

돌궐을 격파, 거란 지배력 강화

평원왕

578년 경

북주군과 배산에서 맞서 싸움 (요서 일대 ?)

영양왕

598년

수의 영주 선제 공격, 요서와 발해만에서 수나라 해군 격파

보장왕

644년

영주 공격, 요하 서쪽 무려라에서 적과 대치

보장왕

658년

적봉진 전투(적봉 지역), 두방루의 3만 군대 당군과 전투

보장왕

659년

토호진수(서납목륜하)에서 고구려군 당나라 신문릉 군대 습격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에게 요하는 내지 하천이지, 국경 하천이 아니었으며,

고구려군은 수시로 요서지역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광개토대왕 이후 고구려의 요서

지역에서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사서 명

내 용

후한서, 삼국지, 양서

사방 2천리

위서, 주서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

북사

위나라 때에 비해 3배,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

수서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

구당서

동서 3,100리, 남북 2천리

신당서

요수를 건너 영주와 접합

통전

수나라 시기에 이르러 점점 커져 동서 6천리

역대 사서에 기록된 고구려의 영토를 잠시 정리해보자.

고구려의 영토는 후기로 갈수록 넓어졌다. 특히 동서 6천리는 약 2,400km로 발해의

사방 5천리보다 더 크다는 표현이다. 북위는 고구려를 작은 술동이를 담을 거대한

술동이에 비유한 바 있다. 고구려가 북방의 강자 돌궐을 격파하고, 세계제국인 수와

당을 거듭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영토도 확대되었고 국력도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위서』<봉의전>에 따르면 봉의는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거란이 고구려의 호위

하에 북위의 백성들을 약탈하고 돌아간 일을 항의하였다고 한다.

문자명왕은 이 요구에 응하여 거란이 노략해간 재물과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낸 바가

있다.

이 기록을 보면 당시 북위는 고구려가 거란족의 상당수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고 거란의

종주국(宗主國)인 고구려에 항의사절을 보낸 것이다.

기존의 국사교과서 등은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라는 기록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다.

통전의 기록을 적극 해석해서 고구려의 영역을 그린다면, 거란의 거주지도 포함해서

지금의 요서 북부 적봉시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지역까지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거란족의 경우 전체가 다 고구려에 지배된 것이 아니라, 일부는 돌궐, 일부는 수

등에 의해 분할 지배되었으므로, 이 지역은 영토보다는 강도가 약한 고구려 세력권으로

이해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4. 고구려 영토 지도 어떻게 이해할까.

고구려 영토의 변천과 지도상에 영토를 표시하는 데 있어 몇 개의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지도는 고구려의 모습을 2차원의 도면에 표현해 내는 것이다. 단순히 고구려의 면적

만이 아니라, 고구려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하지만 영토가 넓다고

해서 국가가 위대하다거나, 자랑스럽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캐나다가 넓은 땅을 가졌지만, 1/50에 불과한 잉글랜드 보다 그 땅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는 적다. 면적이 넓다고 해서 제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흔히 민족주의 사학에서 고구려를 넓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몽골 초원의 1억 평 보다는 경주 일대의 백만 평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5.jpg


고구려에게 있어서 요하에서 한강에 이르는 비옥한 농경지는 국가의 핵심지로 당시까지

개간이 안 된 넓은 삼강평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한 가치를 지닌다. 고구려의 영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별 특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맹목적으로 크게만 지도를 그리는 것만큼이나, 민족의 영광만을 내세우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고구려를 보는 것이 못 마땅하다고 해서 고구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적용

하여 고구려의 내지만을 영토로 지도에 표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고구려가 제국이었던 만큼, 제국의 중심지대와 주변지대가 있다.

제국의 주변지대는 흔히 세력권, 영향권, 변방 등으로 말하기도 하며,

현대 중국식 표현을 빌리면 변강(邊疆)에 해당한다.

현재 중국의 역사 지도를 그릴 때에 중원의 정통왕조의 영역에 변강의 나라들을 포함

시키는 것처럼, 고구려도 내지와 그의 세력이 미친 범주에 대해서 함께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구려는 제국을 운영한 나라답게, 다양한 문화와 접촉하여 새로운 고구려

문명을 창출해냈다. 멀리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까지 왕래하고, 세계제국인 수와

당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맞서 싸워 이긴 고구려인의 힘은 그들 스스로가 가진 제국의

경영자라는 자부심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고구려의 주변지대를 영토에 그리지 않는다면, 고구려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가 없으며, 고구려인의 활동 무대도 잘못 오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지도는 학생들에게 중국이 현재의 영토만큼 넓은 영토를 고대로부터 갖고

있었다는 인식을 주입시켜준다. 그것은 그들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가 옛날부터 존재해

왔다는 만들어진 논리를 증빙하기 위해 만들어진 왜곡된 지도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

되었다고 비난하기에 앞서서 우리의 지도 표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고대 국가들에게는 오늘날처럼 명확히 측량을 해서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영토라고

하는 국경선이 없었다. 막연하게 이 지역까지 영토이고, 어디를 지나면 타국이란

개념이 전부였다. 즉 국가와 국가 사이에 완충지대가 매우 넓었다. 고구려에게 요서

지역, 대흥안령 일대가 대표적인 완충지대였다.

완충지대는 선이 아닌 면으로 지도에 표현되어야 한다. 특히 완충지대를 중국의 것이

라고 단정 짓는 기존의 지도는 분명 고쳐야 한다.

고구려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명확한 구분, 고구려의 주변지대를 어떻게 영토 지도에

표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개인의 저서에서는 다양하게

표시된다고 하더라도, 교과서에서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이 없었던 것은 반드시 개선

되어야 한다. 교과서에서부터 고구려의 천하, 또는 고구려의 중심부와 주변부 등의

제목 하에 고구려의 지배력이 미친 지역을 지도로 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 개인의 저서에서는 표현하기가 다소 힘들지만, 사회과부도나 국사교과서에는 반드시

지도를 지형도를 배경으로 그리는 것이 옳다. 그래야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어느 지역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 예를 들어 왜 삼국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고

노력했는지 -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를 통해서 역사를 읽는 것은 단지 어떤 나라가 얼마나 큰 영토를 가졌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가 어떤 지역을 언제 어떻게 차지함으로써 이후 어떤 역사적

변천을 겪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어떠한 자연환경에

놓여있는 국가이기에 어떠한 역사적 행동을 했는가를 이해할 단서가 지도에 포함되어

야만 한다.

지금까지 고구려 영토에 대한 지도는 얼마나 넓은가에 관심이 모아져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구려의 역사 전개의 이해를 돕는 지도,

즉 그들이 어떠한 자연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활동했으므로, 어떠한 역사상을 만들었

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지도가 그려져야 할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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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는밀란 15-03-11 08:25
   
현실은 북괴랑 프로레슬링중
BabyFaceSY 15-03-16 00:28
   
확실히 완충지대를 중국의 영토로 보는 것은 웃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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