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제가 썼던 글이 있어요. 어느분 글의 댓글로 썼는데..
김유신의 5만이 왜 계백의 3천과 다이다이 였을까? 라는 글입니다.
5만 Vs 3000 이건 게임이 안되는 전투에요.
단, 전부 전투병이라면 말이죠.
김유신의 부대는 전투병이 아닙니다. 그래서 3천의 계백에 속수 무책이었던 겁니다.
바로 군수물자(그냥 군량미)를 배달하러 가는 부대였죠.
그러니 5만의 대부분은 비전투병이고, 전투병이 2~5천 정도 밖에 안되었을겁니다.
그래서 계백에 걸려서 상당히 시일을 끌었고...
이윽고 부여에 당도했을때, 소정방으로 부터 꾸사리 먹죠.
"뭐 한다고 지금왔어? 우리 고생하는거 안보여? 당신을 군법에 넘겨 처형하겠다..."
실제로 처형 운운했습니다. 김유신을 말이죠.
나중에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를 칠때도 처음엔 실패했어요.
두번째에야 성공했는데...
두번 모두 군량미 끌고 가느라 힘들었다는 내용은 김유신 전기에도 나옵니다.
전투는 한적이 없는데, 처음엔 그냥 후퇴(아마도 당나라 부대의 사정 때문이었겠죠?)
두번째엔 국내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종료...
김유신의 부대(2차는 김유신이 아마 빠졌던 걸로..)는 고구려 군과 전투를 안했습니다.
왜 안했을까요?
당나라 부대를 막느라 군량미 실고 오는 신라군은 상대할 필요가 없다 이거죠.
신라를 비난해도 되는이유는 이겁니다.
신라는 처음부터 입조를 약조했습니다. 당나라에 신하로 들어가겠다고 한거죠.
그래서 당나라는 군대를 파병하고, 신라는 군량미를 부담하는 형식으로 전쟁을 합니다.
당나라는 이미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보급선이 무척 길어 부담스럽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나라때도 을지문덕의 보급선 차단 작전으로 인해 대패 했던 역사도 알고 있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역성혁명이잖아요.
양씨가 이씨에게 양위한.. 역성 혁명이요.
수나라나 당나라나 같은 나라다 이말이고, 수나라의 경험을 당나라도 잘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나라는 보급선을 길게 가져가면 불리하다는걸 알고 있었고, 때마침 신라가 입조를 약속하니 신라로 하여금 보급을 하도록 하게 한겁니다.
그리고 드디어 백제가 떨어졌을때...
당나라는 무열왕에게 안동도호부를 하사하죠.
그냥 백제땅이 안동도호부가 되는거지만 당분간 그 태수로 무열왕을 임명한거다 이겁니다.
신라의 왕을 자신의 신하로 임명한다...
이미 입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신라는 나중에 고구려가 떨어지고 나서 당나라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반란을 토벌하러 장군을 보내죠
이게 우리가 배우는 통일전쟁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의 신하로 들어가기로 약조..
백제, 고구려와의 전쟁에 군량미 조달
모반...
전쟁
이렇게 된게 통일사에요.
욕먹을만 하지 않나요?
고구려를 무너뜨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신하로 들어간 치욕적인 역사 말입니다.
당나라는 이런 신라의 껄끄러움때문에 발해가 설때만 제외하고 신라보단 발해에 더 가깝게 지냅니다.
이 신라를 구한말로 비유하면...
신라는 일본(혹은 청나라)가 두려워 청나라(혹은 일본)에게 식민지로 들어가는걸 자초 하는겁니다.
적어도 조선의 을사 보호조약은 강제된, 실질적으로 무효인 조약이에요.
하지만 신라가 했다면 합법적이고 자발적인 조약이 되었을겁니다.
이래도 신라를 욕 안한다면, 그게 더 이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