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경(安遇慶)ㆍ이귀수(李龜壽)ㆍ지용수(池龍壽)ㆍ나세(羅世)가 좌익(左翼)이 되고, 이순(李珣)ㆍ우제(禹磾)ㆍ박춘(朴椿)과 우리 태조가 우익(右翼)이 되고, 최영이 중군이 되어 정주(定州)에 이르렀다.
태조가 여러 장수들이 패배한 것을 보고, 그들이 겁을 내어 힘써 싸우지 않았다고 말하니, 여러 장수들이 태조를 꺼렸다. 이때 적이 수주(隋州 평북 정주(定州))의 달천(㺚川)에 둔쳤는데, 여러 장수들이 태조에게 말하기를, “내일 싸움은 그대가 홀로 맡으시오." 하니, 태조는 여러 장수들이 자기를 꺼리는 줄 알고 조금 걱정하는 기색이 있었다.
이튿날 적이 세 부대로 나누어 쳐들어오므로, 태조는 가운데 있고 수하의 늙은 장수 두 사람을 좌우로 갈라서 각기 적의 한 부대씩 맡게 하여 힘을 내어 쳤다. 태조가 탔던 말이 진흙에 빠져 매우 위태로웠는데, 말이 힘을 내어 뛰어서 솟구쳐 나오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겼다.
태조가 적의 장수 두서너 사람을 쏘아 넘어뜨리자 적이 그제야 패주하였다. 두 늙은 장수가 칼을 뽑아 마구 치니 적이 벌써 패하여 도망하였고 티끌과 먼지만이 하늘을 덮을 뿐이었다. 처음에 최유가 몽고ㆍ한족 군사에게 이익으로 꾀기를, “고려왕이 장수와 군사를 협박하여 서북면을 지키게 하였으니, 신왕이 온다는 소문을 들으면 싸우지도 않고 흩어질 것이다.
일이 성공되면 고려의 재상 이하 사람들의 가산을 상으로 주겠다" 하니, 여러 사람이 모두 이를 믿었다. 압록강을 건너오자 우리 군사가 굳게 막고 한 사람도 항복하는 자가 없었다. 몽고ㆍ한족 군사는 우리가 그들을 꾀어 깊이 들어오게 하고 군사를 매복시켜 놓고 기다리는가 의심하더니, 달천에서 패전하자 그제야 최유의 꾀에 빠진 줄 알고 밤에 거짓으로 우리 군사인 것처럼 하여 큰 소리로 떠들며 경동시키매, 최유의 군사가 그 진영을 불사르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 달아났다. 우리 군사가 뒤쫓아 압록강까지 이르렀으나 도달하지 못하였다. 유인우(柳仁雨)ㆍ강지연(康之衍)ㆍ안복종(安福從) 등이 피곤해서 뒤떨어져 있으므로 이를 잡아서 죽였다. 저들 군사 중에 연경(燕京)에 돌아간 자는 겨우 17기뿐이었다."
-고려사 절요 권28권 공민왕3 갑진 13년(1364) 원지정 24년
<元史> 卷114 后妃 列傳과 고려사 절요 권28권 공민왕3 갑진 13년(1364) 원지정 24년의 기록은 같은 사건을 원사와 고려사절요에서 발췌한것 입니다.
단지 원사에서는 用兵一萬, 並招倭兵, 共往納之이라 하고 몽골조정에서 왜병을 동원하여 고려를 침략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음에 당시 왜란 존재는 열도왜가 아니라 대륙의 왜란것을 알 수 있죠.
윗 기록은 기황후가 고려 공민왕을 침략한 기록입니다.
이 기록에서 여말선초의 왜는 열도 왜(지금 일본)완 다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왜란 종족은 지금의 일본인 만을 통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일본인은 왜란 종족의 일부분일 뿐 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