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나당 동맹을 맺어 외세의 힘을 빌려 동족 (고구려)을 멸망시켰으니 비판받아 마땅하다?
완벽하게 같은 언어를 쓰고 설날과 추석에 한복을 입고 외모도 똑같은 남한과 북한은 불과 반세기 전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였죠. 북한과 남한, 서로 동족, 같은 민족이라는 거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동족이니 서로 싸우면 안 된다? 게르만 민족들도 서로 죽고 죽이고 잘만 싸웠고 일본도 서로 치고받고 잘만 싸웠고
전 세계에 동족끼리 싸운 역사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동족이어도 사상이 갈리고 틀어지면 서로 죽고 죽이는 겁니다. 하물며 수천 년 전 존재했던 신라가 고구려 멸망에
일조했다고 신라 즐!!! 하는 건 어이가 없는 거죠.
삼국시대 당시 인구도 가장 적고 후기를 제외하면 영토도 가장 적은 나라가 신라였습니다. 살아남으려 발버둥 칠 수밖에요.
왜 고구려는 멸망당하면 통곡할 일이고 신라는 살아남으면 안 됩니까? 신라는 백제 또는 고구려에게 멸망당해 흡수당해도 되고 고구려는 멸망당하면 가슴 찢어지는 일이에요?
물론 안타깝죠. 게다가 삼국 중 영토도 가장 크고 군사력도 강했으니까요. 뭔가 저 넓은 만주 벌판을 누비던
고구려 군사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 뛰기도 하고요. 근데 그건 우리 생각이죠.
여러분과 제가 삼국시대의 신라 사람이었으면, 아~ 거 우리나라 제일 작고 군사력도 약한데 그냥 백제나 고구려에
흡수당해버리지 뭐 이렇게 생존하려고 발버둥 칠 거 있어?? 우리 모두 투항하자!!! 이랬겠습니까?
그럼 동아시아 국가 모두 인구도 제일 많고 영토도 제일 거대한 중국에 항복하고 흡수당해서 동아시아 전체가 중국인 돼버리지
뭐하러 그렇게 다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더군요. 중국의 힘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려는 시도는 사실 백제의 오랜 외교정책이었습니다.
신라는 삼국시대 후기에 백제가 개판되고 영토도 작아지기 전까진 그냥 고구려 따까리였죠.
당나라는 건국 초창기부터 백제, 신라와 모두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당나라와 더욱 가깝게 지냈던 나라는 백제였습니다.
신라의 우두머리가 여자인 선덕여왕이니까 자꾸 백제랑 고구려가 우습게 보고 시비 거니까 이참에 그냥 당나라 황실 종친을 왕으로 얹히는 것은 어때? 하고 말도 안 되는 치욕적인 제안을 신라에게 건넸 것도 당나라였고요.
472년 북위에 밀서를 보내 고구려를 침략해달라고 종용한 것은 백제 개로왕.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되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고구려의 장수왕이 군대를 이끌고 가
백제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과 그 귀족들을 모조리 처형해서 백제는 파탄 남 (475년)
시간이 흘러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백제 위덕왕이 수문제에게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하여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해준다면 백제는 수나라에게 고구려의 지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물자와
군사를 보내 협력하겠다고 약속함.
그리고 수나라는 실제로 고구려를 침공하였고 백제는 약속대로 고구려의 배후를 공격.
하지만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은 실패로 끝나고 백제는 오히려 고구려의 보복공격을 당하고 탈탈 털림.
그 후에도 백제 위덕왕은 수나라에게 고구려 재침공을 계속해서 종용.
위덕왕이 죽은 후 백제의 무왕 역시 자발적으로 수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며 수나라에게 고구려를 침략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수나라가 멸망해버리면서 이루어지지 못 함.
당나라가 중원에 새로 들어서자 백제 무왕은 당나라에게 고구려 침공을 거듭 요청.
이는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기로 결심한 것에 일조함.
642년 김춘추가 고구려에 가서 연개소문과 회담을 할 때 백제 성충이 연개소문에게 글을 보내서 고구려가 신라와
화친을 맺는다면 백제는 당나라와 협력하여 당에게 자원을 제공하고 고구려로 진격할 길을 안내할 것이라고 압박함.
결국 김춘추는 고구려와 화친 맺는 데에 실패함.
당태종이 645년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할 때에 외교관계에 있던 백제, 신라에게 모두 원군을 요청했는데
연개소문이 김춘추를 구금함으로써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는 완벽히 틀어지고 신라는 당나라에게 원군을 보내게 되고
백제 의자왕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한다면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던 선대 무왕의 약조를 깨고 당나라의 파병 요청을 씹고
오히려 신라의 배후를 공격합니다. 이 일로 당태종은 백제와 외교 단절을 하고 죽을 때까지 백제의 사신을 받지 않았습니다.
당나라의 미움을 자발적으로 산 것도 백제였고,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자 했던 신라의 시도를 밀서를 통해 물거품 만든 것도 백제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외세의 힘이 절실했던 신라는 당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이것을 보면, 현대 한국인의 민족주의 적 관점에서 판단할 때에 백제가 망할 놈일까요 신라가 망할 놈일까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백제가 망할 놈이 되겠죠.
하지만 같은 민족인 북한과 남한도 서로 멸망 직전까지 죽고 죽이며 싸우던 때가 있었는데
하물며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들에게 현대의 민족주의를 적용시키는 건 말도 안 되겠죠.
따라서 백제도 신라도 고구려도 그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득이 보일 땐 협력하고 아닐 땐 싸우며
서로 팽창하고 살아남기 위해 한 시대를 장식했던 국가들일뿐입니다.
즉 신라는 동족을 배반한 약아빠진 놈들!!!! 은 말도 안 되는 거라는 거죠.
그리고 고구려의 멸망은 백제 탓도 신라 탓도 아닌 스스로 그 힘이 다했기 때문입니다.
연개소문 사후 세 아들들의 권력 다툼으로 이미 고구려는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고
권력에서 밀려난 장남 연남생은 당나라에 건너가 당나라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많은 정보와 도움을 줍니다.
심지어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12개의 성을 신라에 바치고 투항하는 등 전쟁이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고구려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멸망을 제일 원했던 건 당나라였고 결국 스스로 분열하고 갈라지는 건 고구려였죠.
이걸 가지고 신라 개놈들!!! 같은 민족을 다른 나라와 함께 공격한 천일 공노 할 놈들!!! 하는 건
제가 볼 땐 코미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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