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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05 23:25
[한국사] 발해의 민족 구성원에 대해서 논란이 많군요..발해인이 기록한 역사기록이 남아있는게 없어서 안타깝네요ㅜㅜ..
 글쓴이 : 꿈꾸는자
조회 : 2,239  

고구려가 멸망할때 668년에 당이 확인한 고구려인구가 69만 7천호 입니다...대략 400만정도 되는 인구죠...

물론 한호를 몇명으로 잡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뀌겠지만 고구려를 연구한 학자들은 400만정도로 잡더군요...

이중에서 고구려가 망하고 당나라로 평양성과 인근에서 20만이 끌려가고 신라로도 10만이 끌려갑니다..

거기에 대동강이남의 고구려 영토는 신라가 점령하면서 대동강이남의 고구려인들은 신라백성이 됩니다...

참고로 이일대가 고구려의 중심 평양성일대죠...인구수가 많을 겁니다...평안남도 황해도 함경남도지역에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까지 신라의 영토가 되서 많은 고구려인이 신라백성으로 바뀌게 되죠...

이런데도 오늘날 고구려인은 전부 중국인이 됐으니 고구려와 대한민국은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짱께와 왜구들 그리고 식민사학자나 쓰레기등은 다 죽어야 겠죠...

고구려가 장수왕때에 충청도 충주까지 점령하고 충주에 국원성을 세우죠...남쪽 국내성이란 뜻으로 고구려가 이 지역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수있죠...한마디로 부수도를 세운겁니다..그와 함께 경북 일대도 점령하여 100여년간 충청도와 경북일대까지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이들은 고구려인들이 아니란 말이냐....짱께들 왜구들....에이 욕나오는 군요....


잠시 주제를 벗어난 얘기좀 적을게요^^

임진왜란직전에 조선인구가 최소 800만에서 최대 1200만까지로 오늘날의 학자들은 추정하더군요...

그리고 임진왜란직후에 인구가 최소 200만에서 최대 400만정도로 역시 학자들은 추정하구요...

이자료에서 알수있는게 나라에 힘이 없어서 적군을 막을 힘이 없어 전국토가 적군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전쟁이 장기전이 되면 백성들은 무더기로 죽어나간다는 겁니다...

적군에게 죽은 조선군이나 조선백성은 많아야 수십만으로 아무리 잡아도 100만이 넘질 못합니다...

이 몇배나 되는 백성들은 전란으로 농토와 집을 잃고 가장 많은수가 굶어주고 또 못먹어서 전염병으로 많이 죽고 집을 잃어서 겨울엔 혹한으로 또 수많은 백성이 얼어죽어서.. 전란이 자국영토내에서 오래 지속될수록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고 하더군요...


반면에 고구려군은 수나라와 전면전만 4번...당나라와는 전면전만 3번을 치뤘고 당나라와의 국지전은 수십번이 됩니다...

그리고 고구려군은 이 모든 전면전에서 마지막 세번째 전면전을 제외하고 모두 승리하고 적을 전멸시킵니다...

백제가 멸망하기 전까지 1년이 넘기는 전면전쟁이 없고 모두 몇개월안에 침략군을 전멸시키고 당연히 그럴수있는 강력한 군대와 고구려군의 전략,전술의 승리 였고 이런 고수전쟁..고당전쟁 합쳐서 약 70여년간 벌어진 장기전을 수행할수있었던건 백성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면서 전쟁을 미리부터 잘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걸 추정할수 있습니다..보통 고구려는 평소엔 평지성에 거주하다 전쟁이 터지면 산성으로 들어가서 수성전을 벌였고 또 적과 야전에서 맞붙어서 물리칠 힘이 있었다는 거죠...

고구려군의 야전능력은 수십만 혹은 100만이 넘는 적을 단 몇개월만에 적을 전멸시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것만 봐도 알수있죠....적보다 적은 병력으로 적의 대군을 물리친다는건 강력한 군대 그중에서도 강력한 기마군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것도 추정할수있을 겁니다..고구려 멸망으로 기록이 없다고 해도...

반면에 제대로된 야전능력이 없는 조선군은 임진왜란때...7년이 넘도록 적을 물리치지 못해서 적이 오랫동안 정복지를 유지하게 만들고 전쟁을 장기간으로 끌고갔죠..적의 수장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철군령이 내려져 적이 스스로 물러날때까지 계속된 전쟁만봐도 야전능력이 없는 군대와 야전능력이 있는 군대의 차이를 쉽게 알수있을 겁니다...

쓰다보니 주제에 벗어난 글들도 좀 끄적였네요^^''


본주제로 넘어와서.....

고구려와 당과의 고당 3차 전면전에선 이미 남생파와 남건,남산형제의 대립으로 고구려는 내분중이었고...

내분중에 남생이 당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게되고 당고종 실은 측천무후가 명령을 내려서 1차로 당나라군 50만이상이 투입되죠...그후로도 지원군도 계속 투입하고...

거기에 남생은 당에 투항하면서 고구려에 복속된 거란족 5개 대부족(거란족은 8개의 대부족으로 나눠졌는데)과 남생이 이끄는 고구려군등을 이끌고 당에 투항하고 연정토는 고구려 남부를 수십개 성을 들고 신라에 투항하면서 결국엔 고구려가 패망하게 되죠...

고구려는 666년 부터 668년까지 평양성이 함락될때까지 약 3년간 전쟁을 계속 수행했고 이 기간엔 절망적인 전쟁이 계속 됐고 고구려가 패망하는 시기였기에 많은 고구려군과 고구려백성들이 죽어 갔을 겁니다...

고구려가 지금까지 치뤘던 고당전면전과는 다르게.....

이때 적어도 고구려군 수십만이상이 죽었고 백성들도 역시 전쟁중에 최소 수십만은 죽었을 겁니다...

거기다 고구려 패망후에 30만이 당과 신라로 끌려가고 대동강 이남의 고구려인들은 신라 백성이 되고...

나라를 잃은 백성들과 유민들은 많은 수가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겨울엔 얼어 죽었을 테니...

고구려 패망후 수년간 고구려 인구가 최소 절반정도는 감소했을 걸로 추정합니다...

그러면 많아야 200만 정도 이것도 고구려가 조선과 다르게 광활한 영토를 가졌고 당군의 진격로가 아닌 고구려 동부와 동남부..그리고 중부는 전란을 비껴갔기에 추정할수 있는 수죠...

거기다 고구려인들은 반농반목으로 조선처럼 농사만 짓던 사람들도 아니고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목축과 수렵도 행했기에 그정도는 살아남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있었기에 대조영이 고구려 패망후 30년만인 698년에 발해를 건국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패망후 30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고구려의 후계국가가 세워졌는데 갑자기 그 땅에 고구려인이 아니라 말갈족이 백성의 대부분이다...이건 뭔가 말이 안되죠...갑자기 그 넓은 영토에 고구려인은 다 어디가고 말갈족만 남나요....더욱이 발해가 건국된 동모산 일대가 바로 고구려 동부지역으로 당군의 진격로가 아닌 지역들로 고구려인들이 별다른 피해없이 그대로 살아가던 곳입니다...

이걸로 추정할수있는건 당나라 즉 떼국넘들의 붓대끝 논리로 멋대로 지들 쓰고 싶은대로 춘추필법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적은겁니다...당은 올리고 발해는 낮추고....

그리고 이기록등이 현재는 유일한 기록으로 남게되서 저들의 붓대끝 논리가 오랜시간이 지나서 정설이 되버린거죠...비극입니다ㅜㅜ...


본주제에 벗어난 얘기 하나더....

발해의 영토중 가장 논란이 많은 발해의 서쪽영토 요동반도일대는 언제 발해의 영토가 됐는냐는 건데요.....

나당연합군은 평양성일대를 초토화하고 평양일대의 백성들을 당과 신라로 끌고 가고 초토화된 평양성을 버리고 요동에 안동도호부를 두지만 이것도 714년에 요서 평주로 안동도호부를 이전합니다...

왜냐구요?...발해군이 요동을 수복했기에 이전 한겁니다...그렇지 않다면 멀쩡히 잘지배하던 요동반도를 버리고 요서 평주로 철수할리가 없죠...

수십년후 발해군이 수륙으로 732년~733년 수군은 산동반도 등주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육군은 요서 지역을 공격하고 유주일대까지 진격하자....당나라는 유주절도사가 16개주와 요서 평주에 있는 안동도호부 군사까지 징발해서 발해군을 막게 합니다..

이 기록에서 알수있는건 발해군이 바다를 건너 당나라 산동성 등주를 공격하고 요서를 공격했다는 거죠..만일 발해가 요동반도를 이미 점령하지 않았다면 발해군은 요서가 아닌 요동을 공격했다고 기록될겁니다...

요동을 점령하지 않으면 바다로 나가 산동을 공격할수도 없고 육로로 요서를 공격할수도 없기 때문이죠...

잠오네요....쓰다보니 이것저것 뒤죽박죽으로 쓰게됐는데 퇴고는 없습니다...귀차니즘^^...다들 굿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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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16-12-06 00:44
   
조선과 고구려의 비교는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비교 입니다.

고구려는 조선과 같은 농경 국가가 아닙니다. 반쯤은 유목 국가죠.
말씀하신대로 고당 전쟁만 수십여차례...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미 을지문덕때에 농지를 불사르고 도망가는 지연전을 펼친바 있습니다.
적에게 식량을 주지 않는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이긴건 농경에 큰 비중이 없다는 걸 뜻합니다.

반면 조선은 농사에 비중이 높습니다. 그러니 농지를 불사르는 일은 별로 없고, 농지에 농삿꾼(피난 가거나 어디 숨었으니)이 사라져서 큰 타격을 받죠. 당장 명나라 군량을 대기도 벅차서 굶어 죽는 농민이 허다 했다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유성룡의 징비록에 적혀 있죠?)

그리고 조선의 남쪽 해안은 고려시대때부터 시작해서 주로 왜구들의 침범에 대비한 일시적인 성들입니다. 즉 왜구가 쳐들어오면 피난 하는 성입니다. 즉 오래 버틸 생각이 없었던 성들입니다.
왜냐하면 왜구들은 잠시 쳐들어와서 노략질 하고 다시 가버리기 때문에 그때만 잠깐 들어가서 숨으면 되는겁니다. 길어야 1~3일정도만 버틸.. 그런 목적의 성들입니다.
애초에 왜구들은 성을 공격하질 않아요. 왜냐하면 노략질이 주 목적인데, 굳이 튼튼한 성을 공격해서 뭐 합니까? 그걸 함락시킨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게 아닙니다. 손쉬운 평야의 집들만 털면 되는겁니다.

고구려는 달라요. 고구려는 거점방어를 하는데, 거점방어의 약점은 고립입니다. 포위해서 공격하면 언젠가는 식량이 바닥나고, 결국 항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약점을 극복하고자, 비상식량 같은것들을 잔뜩 비축하고, 또 공성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방어 시설도 구비를 합니다.

이게 조선의 남해안 성과 고구려의 방어 성들의 차이 입니다.

당연히 도둑질하러 온게 아닌 정복하러 온 왜군들에게 함락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버틴다고 해봐야 1주일도 못버틸거구요. 왜? 식량 준비가 안되어 있을게 뻔한 성들입니다.
     
슬퍼하지마 16-12-06 06:36
   
저는 고구려에서 초기는 수렵 약탈 정복 위주 경제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요동평원 평양 일대의 곡창 지대를 먹으면서 농업사회화되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성에도 쌀을 몇년 분씩 비축해놓던데 (비록 고 수 전쟁에서 거의 소모해 버리기는 했지만..)
유목이라면 수성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노스 16-12-06 08:01
   
고구려가 반유목적이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맞지만, 농경에 큰 비중이 없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고구려의 숱한 대당 전쟁 말기, 당이 직접적인 침략은 잠시 포기하고, 소규모의 침공을 반복해서 고구려가 농업에 치중할 수 없게 만드는 소모전을 조장해 고구려 백성들을 굶주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몇만에서 수십만 정도의 작은 규모의 유목 민족들이 하듯이, 비정기적인 수렵, 목축, 약탈 정도로 수백만 고구려 인구의 대다수 식량 수요를 감당했다는 건 옳지 않고, 고구려의 중요 산업은 분명 농업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조선의 방위체제 역사 역시 간단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조선 초에 님께서 말씀하시는 고구려식 거점방어 형태와 유사한 진관제가 조선에도 생겼다가 중기에 들어 해체되고 다시 진관제가 보완된 속오군이 생기고 다시 오군영이 생기는 등...

고구려와 조선의 차이점을 논하시는데, 나라가 북쪽에 위치해 있어 왜구들과 접전을 벌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고구려 성과, 조선의 남해안(?) 성을 비교하시며 마치 조선의 대표적인 성은 남해안 성밖에 없는 듯 말씀하시는 건 좀...
애당초 지역과 상대에 따라 설치 목적성이 다른 성들을 비교 구분하시는 건 옳지 않은데다, 하물며 고구려 성의 대표적 방어체제인 '치'와 '옹성'이 조선 성에도 보입니다.

님께서 지적하시는 조선 남해안 성의 모습에 대한 님의 해석은 차라리 군인들만 거주하며 식량 생산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던 일본 성의 모습에 가깝고, 역시 한반도 성을 대표한다고 할수 있는 조선 산성의 경우에 성 안에 대량의 식량을 저장하는 것은 물론 종종 농사까지 지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지역에 산성을 지으며 보통 수개월에서 1년 이상도 버틸 수 있습니다.
말씀처럼 조선 성들이 식량 비축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남한산성의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말씀드린대로 식량은 원래 대량으로 성내에 비축하는 것이 원칙인데(임경업 장군의 백마산성의 경우처럼), 병자호란 시기 광주 목사 한명욱은 산성으로의 식량 수송이 백성들을 번거롭게 한다며(상인들과의 야합설도), 산성에서 40리나 떨어진 창우리에 식량 갑사창을 만드는 희안한 짓을 했고, 그 후 인조와 만 오천에 달하는 군사들(평소보다 더 많은)이 한 달 정도 밖에 버티지 못할 식량 밖에 없어 난공불락 산성에서도 항복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국가와 국민성의 차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 그 인물의 '무지나 부패'(...)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 옳을 겁니다.
(고구려 민족과 우리 민족은 다르다는 말씀이 아니시길)
          
타샤 16-12-06 18:18
   
저는 그런 옹성이 없다고 말한게 아니라 남해안의 성들은 외적의 침략보단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다보니 공격에 무방비인 측면이 많다는걸 말씀드리는거에요.

실제로 동래성이나 부산성 같은 경우는 (단 하룻만에 떨어졌지만) 수비성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몰려온 탓도 있었지만 식량 비축도 많지 않았구요.
     
고독한늑대 16-12-06 16:32
   
조선과 고구려를 비교하네..
차라리 조선은 농경시대이고 대한민국은 산업화시대를 거쳐 이제는 정보화시대까지 왔으니..
농경비율이 적이지고 있는 현실에 조선은 대한민국 역사가 아닌가?????

분명 한반도는 삼국시대 이후로 농경이 발전되었다는 사실이고..
백제가 농경기술을 중원을 통해서 들여와서 한반도가 농경을 본격적으로 시작한것인데..
뭔 이런 황당무괴한 주장을 하는지..
     
Marauder 16-12-06 17:23
   
이주제가 뭐길래 이렇게 길고 많은사람들이 신경쓰는건지모르겠네요. 한번읽고 내가 잘못읽은건가 싶어서 세번더읽었는데 일단 본문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해를 돕기위해 잠깐 언급한 임진왜란 조선군 vs 고구려 비교부분에서 방어능력과 상관없는 전체적의 힘의 차이와 야전능력차이에 따른 공격전의 문제를 거론한거지 이래서 빼앗겼다던가 쉽게 땅을 내준 조선이 문제다라고 하진않았는데 말이죠. 제가 잘못이해한건가요?
          
타샤 16-12-06 18:19
   
제가 보기엔 왠지 조선이 너무 허술하다는데 촛점이 있는것 같아서 적은 댓글입니다.
본문의 글이 제목과는 동떨어진 것 같고, 또 대단히 길고 두서가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었거든요.
               
Marauder 16-12-06 19:11
   
왠지 그럴거같긴했습니다만 여러명이 동시에 댓글이 주르륵 달리니 이게 그렇게 중요한내용이었나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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