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398-423 년 사이 (광개토대왕 - 장수왕)
어느 시점에서 고구려라는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다.
중국에서는 왕망(
기원전 45년 ~ 기원후 25년) 때부터
고구려라고 표기하다가(하구려 라고 멸칭하기도 함)
그 이후에 고구려를 고려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서길수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아래 시기에 국호가 바뀌었다.-. 위서에는 398년(광개토왕 영락 8년)에 처음으로 고려高麗 (고리로 읽음)로 표기
-. 송서에는 423년(장수왕 11년)에 처음으로 고려국高麗國 (고리로 읽음)으로 표기
그리고 당시 중국사서에 [려麗]를 반드시 [리]로 발음 하라고 강조를 하고 있다.
그러면 고구려와 고려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
결론만 먼저 말하면 아래와 같다
고구려 - 가우 고리 ( 가운데 + 고을 ) --> 고려 - 고씨 + 리아 ( 고씨의 나라 )
[ 가운데 우뚝 서있는 큰 고을] 이라는 뜻에서 [고씨의 나라] 로 의미를 전환하고
그에 맞도록 국호를 세글자에서 두글자로 줄인 것이다.
세글자 국호인 高句麗는 [ 고 + 구리 ] 로 구성되어 있으며 뜻은 아래와 같다.
고高 (가우 - 가운데에 해당하는 고구려인들의 발음, 중원인은 당시에 고 였음 ,
같은 글자라도 발음을 달리했음, 북경과 홍콩도 지금 같은 현상나타남)
구리句麗 ( 구리 또는 고리 --> 골 = 홀 = 성 = 작은 소국 = 도읍 ,
받침의 ㄹ 을 뒤로 빼서 발음함 , 갈비 = 가루비(일본)와 비슷한 현상)
가운데 있는
골(홀,성) 이라는 뜻으로 국호를 정한 것이다.
그리고 주몽은 자신의 성을 해解씨에서 고高씨로 바꾸었다.
부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장인의 나라인 졸본부여를 먹고 나서 그 이름도 버리고 고구려라고 국호를 정했다.
아마 주몽의 지지 세력이 바로 고구려현(현도 시절)의 사람들이 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금와왕이 죽고 대소가 부여의 왕이 되자 주몽은 아들 유리를 탈출시켰는데
이는 고구려현 세력이 기존 졸본 부여 세력(소서노, 비류, 온조 - 주몽의 아들이 아닐 것이다)과
맞짱뜨겠다는 신호인 것이다.
소서노는 자신의 아들 비류가 (비류,온조는 주몽의 씨가 아닌 것이다)
주몽의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을 기대하고
주몽이 전前부인 예씨와 아들 유리를 부여에서 데려오는 것을 계속 반대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주몽은 대소가 부여왕으로 등극하자
소서노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 유리를 부여에서 탈출시켜
전격적으로 태자로 삼았다.
그로 인해 졸본 부여 세력과 주몽의 고구려현 세력이 한판 붙었다가
그 와중에 40살의 팔팔한 주몽은 죽었을 것이다.
먼저 공세를 취했던 소서노 세력이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불리해지자 전격적으로 배를 타고 남으로 도망을 가서
백제를 건국하고 부여의 정통성을 이었다고 선포한다.
부여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뜻으로 국호를 백제라고 했을 것이다. (추후 이에 관해 글올릴 예정)
그 이후 고구려와 백제는 수백년간 철천지 원수로 피터지게 싸우게 된다.
수백년간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자신이 부여의 적자임을 주장했다.
그러다가 광개토대왕대에 이르러 410년에 동부여를 무너뜨린 후에
고구려은 더 이상 부여의 정통성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부여가 아닌 고씨의 나라임을 만방에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국호의 변경이다.
고 高 (
고씨 )
려 麗 (
나라 )
성읍을 뜻하는 구리(골=홀)에서
나라를 뜻하는 려(리어 = 리아 = 라 = 나라, 신라, 가라, ..) 로 바뀌면서
구句 자는 버리고
려麗 도 [리] 와 [려] 둘다 허용했을 것이다.
(조선 말기까지 민중들은 리, 사대부들은 려 로 발음하였음
고려취 高麗臭 = 고린내 , 高麗 ㅅ 적 = 고릿적 ... )
그리하여 지금까지
고구려가
가우구리 --> 가우리, 고리, 고려(고리어 = 코리아korea) 등으로 발음되게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당연히 [가우려] 라는 발음은 성립되지 않으며 있을 수 없기에 그런 발음은 없다.
고구려 라고 읽는 것은
려麗가 당시 중국 발음으로 [려] 였으며 오랜 세월을 그렇게 내려 오다가
요, 금, 원, 청 등의 만주 북방 세력이 중국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그 영향으로 [려麗] 발음이 북방식의 [리] 로 변하여
오늘날 북경 중국어는 [리] 로 발음 하게 되었다.
물론 북방의 영향을 적게 받은 홍콩에서는 려麗를 [리아] 라고 발음한다.
정리해보면
광개토대왕이 부여를 정복하고
백제와의 정통성 시비가 끝났음을 알리려고
고구려 ( 가운데 골 城 ) --> 고려 (고씨의 나라)
로 국호를 바꾸는 바람에 고구려가 고려로 된 것이다.
고구려 건국 초기 고구려인의 당시 발음은
가우구리 국호 변경후 고구려인의 발음은
고리 , 고려 (둘다 허용)
현재 중국인들은 북방의 영향으로
[고]발음을 [가우, 가오]로 바꾸었기 때문에
고려를
가오리 라고 함
18 세기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의 글에
청淸나라 아이들이 사신일행에게
[ 가오리 哥吾里 ....] 라고 부른 내용이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