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은 상대적임에도 각자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색즉시공입니다. 하지만 맞물려 돌아가더라도 각자의 성품이 다르고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합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성철스님의 법문대로 물질에도 물질수준의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단지 미미할 뿐입니다. (대표적 화두가 만유불성.)
그럼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하나의 세계에서 어떻게 객체들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는가? 이것이 부처의 지혜입니다. 각 존재들은 업으로 인해 불완전한 자유의지로 끊임없이 선택해 가지만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궁극의 자유(해탈, 깨달음), 즉 완전한 자유의지를 이루게 되는것은 거시적인 운명입니다.
거시적 운명은 결국 모두가 깨닫게 된다는 것이며, 이 또한 불법(佛法)입니다. 이로써 운명과 자유의지가 동시에 존재하게 됩니다.
자유의지가 있어 모두가 깨닫기 까지의 과정이 다르며 이 때문에 부처마다 성품들이 각자 다릅니다. 동일한 대자대비심을 깨달았으나 이를 베푸는 스타일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불가의 대표적인 화두가 "고개만 돌리면 피안이다."입니다.
강은 좌(左)로도 가고 우(右)로도 가지만(자유의지) 결국 바다(대자대비심)로 흘어가게 되는(운명) 이치(불법)입니다. 그런데 동해바다가 다르고 서해바다가 다른데 이것이 부처마다 다른 성품 즉 아이덴티티 입니다.
대자대비심이 진리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는 것이며 운명과 자유의지를 동시에 이루는 중도(中道)가 성립됩니다. 중도에 제일가는 뜻(중도제일의 : 中道第一義)이 대자대비심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대보적경에 이르길 제일의는 자비라고 합니다.)
공(空)에는 저러한 자유가 없으며 개체가 없습니다. 아(我)를 없애는 무아(無我)가 끝이거나, 모두가 범천(브라만)으로 하나되는 것 뿐입니다. 이를 컴퓨터 용어로 비유하면 포멧이라 합니다. 자신의 모든 전생의 선택과 수행이 전부 공해지기 때문입니다. 공에 함몰되면 정말 포멧됩니다. 공해지고 싶은 강한 자유의지를 부처님은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문제는 공에 혼자 떨어지지 않고 남에게 알린다는 것이며, 이는 남들까지 공에 떨어지게 만든 큰 악업이 됩니다. 공으로 포멧되기 전에 인과법에 따라 그 댓가는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염세에 빠져 포멧되고 싶다고 해도 님들의 업이 있기 때문에 그 댓가는 받아야 할겁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과가 포멧인 종말의 길입니다. 일체개고의 법에 따라 쉬운것이 없지만 결과가 포멧이라면 차라리 정신차리고 수행하는것이 낫습니다.
<<40권 대반열반경 中>> "만일 괴롭다고 말하면 어리석은 이는 이 몸이 무상하다 하여 모든 것이 괴롭다고 생각하고 몸에 즐거운 성품이 있음을 알지 못하며, 무상하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모든 몸이 모두 무상하여 날기와 같은 줄로 알거니와,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잘 분별하여 모든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하지 말지니, 왜냐 하면 나의 몸에 불성의 종자가 있는 까닭이니라. 만일 내가 없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모든 불법이 모두 내가 없다고 생각하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내가 없다는 것이 일부러 하는 말이요 실답지 아니함을 분별할 것이며, 그렇게 알고는 의심하지 말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