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설치는 여당 야당 찌질이들떄문에 묻힌건데
원래 경상도나 전라도나 서로 차별한적도 사이 나쁜적도 없었음
사실 고려시대부터 근대까지
진정한 지역감정은
기호파(경기도+충청도)vs서북파(평안도)
였음
이전에는 이쪽이 오히려 지역감정의 주축이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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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 지역은 고려의 개성, 고구려의 평양 등 옛 왕조의 고도(古都)가 많이 남아 있어서 문화적 전통면에서 자부심이 강했다. 몰락해 흔적이 옅어진 백제의 수도들이나, 유물과 사적들이 건재하지만 영향력을 많이 잃었던 신라의 경주와는 달리, 도성인 한양과 가깝고 지리적 요충지였기에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평양은 제2의 도시로 번영하고 있었으며 이 덕분에 그에 기인한 자부심이 강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서북 지역은 중국과의 교역 등으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서북 지역은 중앙에서 벼슬 임용 등에 차별 대우를 받았고, 결국 홍경래의 난 같은 극단적인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들끼리도 서북파와 기호파로 나뉘어서 갈등했다고 하니 장난이 아닌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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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도산 안창호가 "일본인들은 최근의 적이지만 기호파는 500년간의 적이기에 먼저 기호파를 박멸하고
독립해야 한다" 라고 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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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는 지역감정 하나로만 봐도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안창호는 ‘일본인들은 최근의 적이지만 기호파는 500년간의 적이기에 먼저 기호파를 박멸하고
독립해야 한다’고 했으며 여운형 등은 서북파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기호파 비밀결사를 자신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윤치호는
서북파가 오랜 세월의 억압 속에서 기독교와 근대교육을 받아들여 지도자들로 부상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서북인들은 일본인들보다
기호인들을 더 증오하기에 일본인들에 아첨해 기호파에 대한 비열한 계략을 동원’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기호인들의 결사는
응집력이 없기에 불가능할 것’이니 ‘허심탄회하게 교류하고 신사적으로 대하자’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듯했다. ================================================================================
실제 윤치호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서북파와 이승만,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기호파 간 서로 비난이 끊이지 않자 이런 것만 봐도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다며 일갈했다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4/04/001065000200404122208246.html
솔직히 전라도랑 경상도는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사이 괜찮았죠.
통일되면 남한vs북한
볼만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