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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5 01:22
[기타] 조선 사대주의가 이렇게 심한가요?
 글쓴이 : 대은하제국
조회 : 3,306  

 
이정도로 심한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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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4-09-25 01:29
   
명이나 조선이나 왕조 초기고, 조선을 길들이기 위해 중국에서 간보기(?)을 할 요량으로
니들이 얼마나 정성을 보이는지 한번 보겠다고 나온거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체계가 잡히면, 조공량도 일정부분 감해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건, 청나라도 마찬가진데, 청 초기엔 중원에 입관할때까지 조선에서 일단 물자나 노동력을 뽑아먹자로 나왔다가, 차차 청왕조의 안정기에 들어가면서, 조공량을 감소시켜 줬거든요.
무리한 부탁은 장기적으로 볼때 그들입장에서도 손해입니다.영원한 화수분이란 없기 때문이죠.
어쨎거나, 조공은 실보단 득이 더 컸고, 가장 싸고 효율적으로 먹히는 방법이였다는 면에선
장점도 있습니다.
전략설계 14-09-25 07:10
   
조선왕조 집안 자체가 전주에서 함경도로 가서..
원-고려 국경지대에서 원나라 지방관리하던 집안이라..
큰 나라에 빌어먹던 집안입니다.
고려 사람이 원에 붙었다가 원나라가 망조가 드니 다시 고려에 붙는 드른 근성 보여주다가..
무주공산인 요동임에도 명나라에 미리 겁부터 묵고 쫄아서 회군했었죠.
세계 어느 나라 기본정책에 있을까 싶은 "사대주의"를 표방해서,
지 나라 버리고 큰 나라에 빌어먹던 집안이라 큰나라에 미리부터 쪼는 근성 보여줍니다.
그 자손들이 오죽하겄습니까..
광해군때 실리외교도 거부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임란때 파병한 망한 명나라 황제 신종 제사를 고종때까지 해온 정신은..
생존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들이 중국과의 군신관계를 자처한 면이 강하고..
그 이면에는..
조선의 지배층이 유교로서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 하였기에,
유교의 발산인 중국에 정신적으로 예속된 면이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고, 일본이 우릴 중국 속국으로 무시하는 것은..
고려시대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 뼛속까지 사대한 조선의 영향이 컸죠.
     
mymiky 14-09-25 09:39
   
당시, 요동이 무주공산 아니예요-.- 흔히들, 잘못 아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때 요동에 20만의 명군대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글고,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의 실제내용과 성과엔 거품이 많아서-.- 전 회의적으로 봅니다.
인조가 워낙 망삘이라, 요즘들어 광해군 재조명이 인기인데;; 글쎄요..
세자 광해군과 왕으로 즉위뒤 광해군이 행한 일들을 보면, 정작 왕이 되곤 왕자시절 보여줬던
명석함을 보기 힘들고, 정치적으로 뻘짓도 많았던건 사실이라..

그리고, 님이 뼛속까지 사대했다고 하는 조선에서
영조께 황제칭호를 올리며 칭제청원하는 에피소드도 있는건 잘 모르실 겁니다.
그 상소를 누가 올렸는가? 흔히 사대주의 골수빠돌이라고 흔히들 생각하는 서인노론들이거든요

근거는 이렇습니다. 청나라 호인들이 중원을 차지하고 있어, 진정한 천자가 없고, 정통성도 사라졌으니, 조선이라고 칭제를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가 요지였죠.

흔히, 소중화 사상이라고 기술되는데, (윤기라는 자는 소중화는 무슨,, 명이 망한 마당에 조선만이 대중화다고 주장하기도하고,, )어쨎거나 이같은 말은 조선이 중국 못지않는 문명국이란 자부심이 없으면 사실 나오기 힘든말입니다. 물론, 현대인이보면, 조선후기 사대부들의 정신승리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ㅋㅋㅋ
위와 같은 에피소드는 조선후기 중화계승의식의 급진화 경향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전략설계 14-09-25 12:41
   
당시 요동이 주인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죠.
(무주공산 = 주인없이 비어있는 산)
당시 명나라에게 요동은 원의 잔당을 정리하기 위해 북원과 싸운 전장터였다고 볼 수 있겠죠.
무주공산이었기에 조선이 들어서고도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추진했던 것이고..
최영에 이어 정도전까지 국제정세 감각이 떨어져 요동정벌을 추진한 것은 아닐 것이고요.
고려시대를 통틀어 한족이 요동을 차지한 적이 없었죠.
송 이전에 수당도 요동을 자기 영역으로 삼지 못했었고.
요동의 주인은 5호16국의 국가들 --> 고구려 --> 발해 --> 요 --> 금
으로 이어지던거라..
당시 사람들은 고려든 명이든 북원이든, 요동은 중원과 분리하여 보았습니다.
명이 요동을 차지한다는 것이 일종의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질 않았습니다.
현대 시점에서 보는 것과 600년 전에 요동을 보는 시각은 시간만큼 많이 달랐죠.
     
전략설계 14-09-25 12:51
   
어찌됐든 고려의 요동정벌군은 출병을 하였고.
명이 발끈해서 고려나 조선을 침공할 명분은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명이 반응을 보인 것은,
고려에게는 철령위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고..
조선에게는 정도전이 입조하라는 정도였지만 조선이 거부를 해도 왕자였던 이방원이
입조하는 선으로 끝냈습니다.

명이 요동에서 군사행동을 했던 것은, 요동의 점령이 아니라,
원의 잔당 정리에 목적이 있었고,
조선초기 조선을 냉대했던 것은 조선, 여진에 대한 견제의 목적이었습니다.
주원장부터 조선이 요동에 출병하면 막을 군대가 없다고 걱정했던 것은
기록에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최영이 요동정벌을 추진했지만, 요동의 항구적 점령은 불가능했다고 봐지지만..
전체적인 당시 상황이..
고려(조선)와 여진세력에 대한 명의 두려움이 있어..
철령위 요구에 대해서 고려가 저자세를 보이는 것보다 출병이란 강경책이 결과가 더 나았기에..
요동성 점령을 명과의 외교적 카드로 삼고,
단기간에 철군해도 큰 군사적 문제는 없었으리라 봐집니다.

명이 요동을 치는 것과 고려(조선)에 대규모 원정하는 것은
거리에 비추어 볼 때..
이거는 이제막 개국한 명으로서도 부담스런 일입니다.
중원을 한번도 위협을 못한 안남을 치는 것과는 다른 성격이죠.
에센 2만기병에 명나라 50만대군이 대패한 것은 차지하더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다만..
당시 주인이 없는 요동 한번 점령하고 빠지는 것이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봐집니다.
주원장 자체가 고려(조선)의 요동 개입을 부담스러워 했기에..
항구 주둔만 하지 않고 외교카드로 삼고 적절한 기회에 회군하는 수는
가능했다고 봐집니다.
          
mymiky 14-09-25 19:42
   
뭐가 무주공산이랍니까?-.-;;
님이 무주공산임을 주장하려면 근거가 있어야죠.
~이었을 것이다. 란 추상적인 표현보다

자료 하나 첨부해 드리죠
- 제목은 [고려말 요동은 정말 무주공산이였는가?] 입니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1205
          
전략설계 14-09-25 21:36
   
무주공산의 '주'가 주인할 때 주인 '주'자인데..
당시 요동의 주인이 있었나요?
'무주공산'의 의미를 모르시네요.
     
전략설계 14-09-25 13:01
   
조선이 뼛속까지 사대한 대상은 오랑캐인 여진이 아니죠.
영조때 칭제청원이라는 것도, 한족의 나라인 명이 있었다면 생각도 못할 위인들이고..
칭제청원하면서도 명나라 신종 제사 꼬박꼬박 했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중국이 아닌데 소중화라고 하는 것도, 자주적인 생각없이
뼛속깊이 중국이고 싶어하는 중국을 연모하는 사대근성이죠.
중국의 문물을 전해받은 것은 고조선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쉼 없는 현상인데..
명나라와 전쟁 한번 붙은 것도 아닌데,
명나라가 쳐들온 것도 아닌데..

사대가 자연스럽고, 소중화를 자랑스러워 하던 조선이라,
조선 양반이 끼고 살던 공자, 맹자 하는 유교의 근본이 중국(한족)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드네요.
          
mymiky 14-09-25 20:19
   
님의 말도 일부분 동의합니다.

사실, 조선의 입장에선 주변에 기껏 중국, 일본, 여진(또는 몽골)정도밖에 없었는데
그중에 가장 있어뵈고, 잘 나가는 애들이 중국이였던건 부인하기 어렵죠. 조선이
와.. 우리도 저렇게 중국처럼 되고 싶다~고 동경하며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던건 사실이고,
현제, 한국이 1세계 선진국들을 동경하고, 노력하듯이 말입니다.

현재는 짝퉁오명을 듣고 있으나, 물량빨과 인구력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대단한 나라임은 부정할수 없고,근대에 오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번창하던 나라기도 하구요.
고구려가 당이랑 싸웠고, 몇몇 전투에서는 크게 이겼으나
결국 전쟁에서는 졌습니다. 왜냐? 고구려의 내부분열도 있었지만
몇 차례 중국으로부터 공격으로 고구려 역시 국력이 쇠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명나라와 전쟁? 오늘날처럼 첨단무기로 싸우는 시대도 아니고
그야말로 인구빨로 싸우던 시대에 대국과 싸움을 한다는 것은 정말 모든걸 걸어야 하는 것이란건 자명합니다. 신라도 결국엔 당을 한반도에서 몰아냈으나, 그마저도 북쪽땅을 다 먹지 못하건 양국의 국력차이가 현실적으로 컸기 때문이죠.

사실, 중국같은 대국과 장기적으로 뭘 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러시아랑 중국같은 나라가 물량빨로 갑질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거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조선은 고려와도 많이 다른 상황입니다. 고려는 적어도 송, 서하, 거란, 금, 대리등 중원에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많이 있었고, 서로 견제할수 있었죠. 그마저도 원이란 통일왕조가 들어서자
반속국 상태가 되버렸고, 조선 역시 명이란 통일왕조가 들어서자, 상당히 골치아프게 됩니다.

그러면 방법이 2가지가 있겠네요.

1. 님처럼 자존심 세우고 한방의 이미지(?)를 후대에 얻기위해 명에 깔짝대거나
그 때문에 조공끊겨 국내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양국에 전운이 감돌아 백성들이 전장에 징집되어 왜 우리왕은 대국을 공연히 건들리냐?는 욕들어먹고 탈영병이 속출하고 민심이 왕조에 이반하는 상황을 맞이하거나

2.가늘고 길게 양국의 평화를 얻기위해 뽀대는 안날지 모르나, 좋은게 좋은거라고
현실적인 국익을 도모하거나

말입니다.

전, 사실 조선탓할게 뭐 있나 싶어요-.- 지금 미국이 조선의 중국인데 ㅋㅋㅋ

모두 서구식 교육 받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가고 싶어하고, 외제 좋아하고, 영어잘하면 뭔가 있어보이고, 생활 라이프 스타일도 어디 뉴욕커처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많고..
명 신종 제사지내는 걸로치면, 노인층들이 천조국의 미군 없었으면 우리나라 없어졌을꺼라고 작전권 연기하는게 당연하다고 성조기 들고 울고불고 하는 보수우익? 이데올로기에
대입되고;;

후대인들이 보면 지금 한국인들을 자주성도 없다고 말할지 모르죠
(지금도, 일부에선 있을것도 같지만..ㅋㅋ)
그리곤, 못 살아도 당당히 핵무장해서 미제국주의를 분쇄시키고 꿋꿋하게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했던 김장군의 북한이 더 뽀대난다고 찬양할 후손들이 분명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
               
호부 14-09-28 15:04
   
당시 고려가 요동정벌을 감행했으면 명도 어떻게 됬을지 모릅니다. 당시 겨우겨우 원의 잔당을 북으로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는데 아직 체제도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고 위쪽에 북원이라고 앞으로 수십년을 두고두고 싸울 후환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새로 강력한 적을 만들고 전쟁을 한다? 제정신을 가진 왕이라면 안하겠죠.
          
전략설계 14-09-25 21:42
   
자존심을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그 당시 상황은 명이 '철령위'를 달라는 상황이고.
고려에게 평안도, 함경도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함경도는 아직 전부 고려 수중에 들온게 아니지만)

최영이 요동정벌에 나선건 요동을 먹겠다가 아니라..
대국인 명이 일방적으로 철령위 달라는 것에 대한 고려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죠.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고.
이렇게 일방적인 대국의 영토 요구에 말로 피해갈 방법은 없는 것이죠.
대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대해
작은 나라가 무조건 기는 것보다,
작은 나라도 살아 있음을 보여줄 때는 말보다 행동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굿잡스 14-09-25 18:30
   
명의 무리한 말 요구가 있었던 건 사실이나  무슨 공짜로 갖다 바친게 아닙니다.

(조공은 예전에도 말했지만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오늘날 국제 자유무역같은

독특한 공무역의 일종임. 단순히 한쪽에서 갖다 바치는게 아닙니다. 그런식이면

주변국에서 불만과 반발로 서토왕조는 내내 주변 세력에 의해 침탈과 전란이 끊이지

않았을 것임.)

당시 북로남왜 어쩌고 해서 영락제기간이고 대대적으로 북방 유목민들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말이 필요했고 물론 이게 한편으로는 후방의 조선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려는 이중적 정치적 노림도

있었겠지만 저 링크의 그림처럼 마치 일방적으로 조선이 갖다 바쳤다는 식으로 비쳐지

는 건 잘못된 표현이군요.


<선불 10배로 후려 먹던 조선>

조선 초기 명나라는 3년 1공(貢), 즉 3년에 1번의 조공무역을 주장한 반면, 조선은 거꾸로 1년 3공, 즉 1년에 3번의 조공무역을 주장하였다. 조공무역이 세간의 인식대로 조선에서 명나라에 일방적으로 갖다 바친 것이라면, 명나라에서는 3년에 1번만 바치면 된다는데. 조선에서 1년에 3번 바치겠다고 주장할 까닭이 없다. 조공무역을 조선의 손해로 보는 것은 조공무역의 원칙을 모르고 나온 오해임.

 


 

명은 조선 초기에 금과 은을 조공품으로 요구했지만, 세종의 요구로 결국 말과 포로 대처하게 했다. 당시 북쪽으로 쫓겨난 몽골족은 호시탐탐 명나라를 칠 기회를 노렸다. 그렇기 때문에 명나라로서는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말과 포가 많이 필요했다.

 

조선초기 말은 조공무역의 최대품목이었다. 조선 개국(1392)부터 세종 10년(1428)가지 36년간 명에 조공무역한 말, 즉 조선이 명나라에 수출한 말은 총 5만 9천여 필이나 되었다. 명나라로서는 말이 급히 필요했기 때문에 선불 즉 비용을 먼저 지불하고, 말을 나중에 받아갔다. 이는 말이 조공이었지, 실상은 조선이 우위에 선 국제무역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을 보면 명나라 사신 단목지가 자신이 가져온 액수만큼, 먼저 말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태종은 말 값을 모두 받은 후에 보내주겠다며 거절하여다. 이처럼 말 무역은 조선 초 양국의 가장 중요한 조공무역 품목이었지만, 실상은 말 값을 한꺼번에 먼저 받고, 말은 나중에 제공하는 것으로 조선이 우위에 있는 무역 형태였다. 게다가 당시 명의 요구에 비해 말의 공급이 딸렸으므로 값도 비쌌다.

 

태종실록을 보면 명나라와 조선은 말의 국제무역가를 협의해 포로 환산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의정부에서 무역하여 바꿀 말 값을 정하였다. 큰 말 상등값은 상오승포(常五升布) 500필, 중등 값은 450필, 하등값은 400필이고, 중말 상등 값은 300필, 중등 값은 250필, 하등 값은 200필로 정했다. "                                                                                            - 태종실록 1년 10월 3일 -

 

승(升)은 삼베의 곱고 거칠은 정도를 표시하는데 1승은 80올로서 오승포는 품질이 중등인 삼베이다. 포1필을 쌀로 환산하면 5~6두(斗) 정도였다.(세종 19년 기록) 큰 말 상등 값이 오승포 500필이라면 쌀이 250~300두나 되는 대단히 비싼 값이다.

 

조선의 말 값은 왜 비쌌을까? 그건 조선에서 큰 말이 거의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역시 말을 여진족으로부터 수입해였다. 조선이 여진족으로부터 수입한 말의 가격은 다음과 같다.

 

"호조에서 상계하였다.

'말을 올린 야인(野人:여진족)에게 답례로 내려주는 물품은 큰 말의 상등은 면포 45필, 중등은 40필, 하등은 35필로 하며, 중질 말의 상등은 30필, 중등은 25필, 하등은 20필로 하며, 작은 말의 상등은 15필, 중등은 10필, 하등은 6필로 하는 규례를 정하게 하소서'

이에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 8년 1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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