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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9 19:25
[기타] 중국 자존심 한나라, 고구려 강성함에 무너졌다
 글쓴이 : 대은하제국
조회 : 4,272  

고구리의 7대 태왕이 된 차대왕은 정적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측근들만을 중용하는 등 무도한 정치가 계속되자 일식·지진·가뭄 등의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났으며 민심은 이반되고 직언을 하는 충신들은 죽거나 떠나가고 말았다. 훗날 8대 신대왕이 되는 동생 백고도 멀리 산골짜기에 숨어 살았다. 참고로 <고구리사초·략>에는 백고가 태조대왕의 별자(別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차대왕 20년(165) 태조대왕이 병이 들자 상 태후가 찾아가 위로했다. 태조대왕이 “나는 모후가 남기신 명에 따라 형제간에 옥좌를 전위하고, 당신까지 그에게 양보했소. 그런데 당신은 수성에게 빠져 내 아들을 죽이고 백고도 내쫓았소”라 하며 “나는 죽어서도 당신을 지켜 볼 것이오”라고 말했더니, 태후가 아뢰길 “제가 곧 수성을 죽여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답했고 태조대왕은 크게 기뻐하며 생을 마쳤다.
상 태후는 차대왕에게 몰래 독을 먹였으나 독이 부족해 죽지 않고 창을 집어 들고는 태후를 해치려고 다가왔다. 그러자 명림답부가 장막으로 들어가 차대왕을 칼로 시해하고는 죽음을 숨기고 발상(發喪)도 하지 않은 채 측근 장수들을 불러 차대왕의 심복 수십 명을 모조리 주살하도록 명했다. 차대왕의 측근 모두를 제거하는데 열흘이나 걸렸으며, 그런 연후에 상 태후는 차대왕의 죄악을 열거하고 상황이 남긴 조서에 따라 차대왕을 폐위시키고는 백고를 맞아들여 즉위하게 했다.
77세의 나이로 고구리 8세 태왕으로 즉위한 신대왕은 영웅다운 풍모와 행동거지가 남다른 데가 있었으면서도 성품은 인자하고 너그러웠다고 한다. 즉위하자마자 대사면령을 내리고 차기 황위계승자였던 차대왕의 태자에게도 두 곳에 봉지를 주고 양국군으로 봉했으며, 명림답부를 새로이 국상으로 삼아 작위를 올리고 내외의 병마를 관장토록 했다. 고구리에서 국상이라는 제도는 명림답부로부터 처음 시작된 것이다.
 
청사에 길이 빛날 명림답부의 좌원대첩
 
우리나라 역사상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둔 사례는 많이 있다. 고구리 후기의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거둔 살수대첩과 당태종 이세민의 침략을 물리친 안시성대첩 등은 많이 알려져 있으나, 명림답부의 좌원대첩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뛰어난 계략으로 한나라 대군을 몰살시킨 좌원대첩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신대왕 3년(167) 유주의 공손역이 현도태수를 자칭하면서 쳐들어오자 이를 격퇴했으며, 이듬해 한나라 사람 경림이 현토태수를 자칭하고 쳐들어와 우리 군사 수백 명을 죽이고 노략질하자 이를 쳐서 물리치고 그들의 처자와 그림과 칼(圖釼)을 노획했다.
4년 후인 신대왕 8년(172) 공손역과 경림과 교현 등이 색두와 함께 병력을 합해 또 다시 대군을 이끌고 고구리로 쳐들어왔다. 신대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싸우는 것과 지키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가를 물었는데, 나가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겁을 낸다고 하여 자주 침략을 할 것이니 군사를 출동시켜 방어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 때 명림답부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라는 국토가 크고 백성이 많은데다가, 지금 굳센 군대가 멀리 와서 싸우니 그 칼날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또 군사가 많은 경우에는 마땅히 싸워야 하고, 군사가 적은 경우에는 지켜야 하는 것이 병가의 상식입니다. 지금 한나라는 천리 밖에서 군량을 실어 왔으므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며, 만약 우리가 참호를 깊이 파고 성루를 높이 쌓고 들판의 농작물을 치우고 기다리면 저들은 반드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굶주리고 피곤해서 돌아갈 것이니, 그때 우리가 날랜 군사로써 몰아치면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지공작전을 펼 것을 주장했다.
신대왕은 명림답부의 계략이 옳다고 생각하고는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기만 했다. 한나라 군사들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고구리는 맞서 싸우지 않고 굳게 지키는 수성전략만을 펴니 전투에서 고구리를 이길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식량이 떨어지자 한나라 군사들은 굶주리게 되었고 사기마저 떨어지자 한나라의 장수들은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려 했다.
이때 명림답부가 기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추격해 좌원(坐原)의 들판으로 몰아넣으니 굶주림에 지친 한나라 군사들이 맞서 싸울 힘도 없이 몰살당해 단 한 필의 말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신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명림답부에게 좌원과 질산을 주어 식읍을 삼게 했다고 한다.
 
역사학자 박은식이 쓴 <명림답부전>에는 고구리를 공격한 한나라 군사는 10만 대군이라고 한다. 10만 명의 군사와 말이 모조리 몰살되었다는 것은 명림답부의 지략과 고구리 군사들의 용맹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으며, 이때의 명림답부의 나이가 106세였다.
명림답부의 전술을 군사학에서는 청야(淸野)전술로 작전상 후퇴하면서 주변에 적이 사용할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 적군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이다. 고구리가 중국과 전쟁 할 때 주로 사용하던 전술이며,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할 때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침공하자 소련이 이 전술을 활용했다고 한다.
한나라는 좌원에서의 패배를 기점으로 하여 국력이 급속도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고구리를 침략한 수양제가 고구리와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패배를 거듭한 끝에 멸망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후 한나라는 정국의 불안과 가뭄 등 기상이변으로 민심이 이반되어 전국적으로 황건적이 들끓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되고, 유비와 조조 그리고 손권의 삼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명림답부의 좌원대첩은 제갈량이 신출귀몰한 병법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섬멸했다는 허구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명림답부의 좌원대첩을 모르면서도 소설 속 허구의 적벽대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역사 강역이 중국의 앞마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명림답부는 신대왕 15년(179) 가을 9월에 죽으니 나이 113세였다. 신대왕이 친히 빈소에 가서 애통해하고 7일간 조회를 파하였으며, 예를 갖추어 질산에 장사지내고 수묘인 20가를 두었다고 한다.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낸 고구리의 국상 명림답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중국역사의 아이콘인 한나라가 내부적 요인에 의해 위·오·촉 삼국으로 분열되었다고 하고 있으나, 실제로 한나라가 멸망하게 되는 이유는 고구리와의 수차례 전투에서 참패했기 때문이다. 장정 10만이 전멸하고 말 한필도 살아 돌아가지 못함으로써 생산력의 극심한 저하를 불러왔고 과부·고아가 양산되면서 사회적 불만이 극도로 고조되었기에 민란인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중국의 상징 한나라는 12년 후 고구리에게 다시 한 번 좌원에서 카운터펀치를 맞고는 멸망의 깊은 늪 속으로 빠지게 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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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 14-09-29 21:42
   
유주의 공손역이 현도태수를 자칭하면서 쳐들어오자 이를 격퇴했으며~


자  핵심은  유주같네요  유주가 어디일까요?
     
뭐꼬이떡밥 14-09-29 23:04
   
유주가 서해 쪽땅입니다
산둥반도 쪽에서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는 땅을 말합니다
          
스파게티 14-09-30 02:36
   
유주가 그곳이면 현도군 위치도 그부근이겟네요

그래야 태조왕때 쌓은 요서7성과  산서성태원공격등등  아다리가맞네요

저시설 지금의 요동은 이미 고구려땅 인증
맘마밈아 14-09-29 22:04
   
삼국지는 황하유역에서 지들끼리 조물딱 조물딱한거죠. 그 시대에 황하이북 산동지방등 중국 해안지대는 소위 북방민족의 강역이었죠. 거기가 문명이 없던 빈땅이 아니었습니다.
Windrider 14-09-29 23:54
   
삼국지는 1/10하면 맞는듯.너무 뻥을 심하게 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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