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는 집에 큰 누각을 지었는데 누각 위에는 손님 1000여 명을 앉힐 수 있고 누각 아래에는 수레 100대를 나란히 놓을 만 했다. 누각 남쪽의 격구장은 길이가 무려 400여 보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싼 담장이 수 리에 걸쳐 뻗어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격구장에서 승려 3만명이 밥을 먹으며 경기를 보았다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기록에 나오는 400여보는 약 800미터입니다. 그리고 주위에 지금으로 보면 펜스같은 담장을 죽 두른 것도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원문을 보지 않아 추정할수 밖에 없는데, 800미터가 담장 4면의 전체를 뜻하는 것인지, 한면을 뜻하는 것인지 알수는 없습니다- 두가지 모두를 추정해 볼수 있는데, 만약 한면의 길이가 200미터를 뜻한다면 전체격구장면적이 4만평방미터가 됩니다. 만약 800미터가 한 면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가 되는데 64만평방미터, 말이 안되는 규모가 되죠. 따라서 첫번째 추정이 더 현실적인데, 여기서 한가지 단서를 덧붙일수 있습니다.
바로 기록의 '누각 남쪽의 격구장은 길이가 무려 400여 보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싼 담장이 수 리에 걸쳐 뻗어있었다.'는 구절입니다.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을 간행할 시기인 고려때 32.21cm를 1자로 본다고 하면, 1리는 576.72m가 됩니다. 그렇다면 '수 리'라는 복수의 표현으로 볼때 (과장된 표현이라 해도 최소 2리는 된다고 보고), 관중석을 포함한 외곽담장의 크기는 총 800미터를 넘어갈 여지가 충분합니다. 즉, 기록 그대로 표현했듯, 격구장 자체 (축구장으로 치면 잔디밭)가 총 800미터, 그리고 외곽담장을 포함하면 800미터가 훨씬 넘어가는 크기였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가장 커보입니다.
이와 쉬운 비교대상으로 잠실야구장의 크기가 좌우100미터, 좌우중120미터, 센터125미터입니다 (수용인원 3만 500명), 그리고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건축면적이 5만 7859㎡ (수용인원 6만 4,677명)으로 기록상 경기장자체만 약 4만 평방미터이고 관중석까지 포함하면 5만평방미터정도의 가능성이 보이는 최우의 격구장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최우는 이 격구장에 공을 들여 바닥이 바둑판처럼 정밀하게 평평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격구를 할 때 동네사람 전체를 소집, 물을 뿌려 먼지가 일지 않게 하는 일이 잦아 원망을 사기도 했습니다."
즉 당시 고려 귀족 최우의 격구장은 적어도 상암 월드컵 경겨장도 쌈싸먹었던 (아 다이어트해야 솔로 탈출하는데) 엄청난 크기의 경기장이였단 겁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사진입니다
그뿐인가요. 근처에 손님 1000명이 들어설수있는 누각까지 있습니다. 경복궁 경회루에 사람 1000명이 들어갈수있단 기록이 있으니 경회루 크기의 건물이 최우의 집에 있었단거죠. 또한 위에 나왔닷 승려만 30000명이 밥을 먹으며 경기를 관람할수있었던, 즉 최소 3만의 관중을 앉힐만한 거대한 관중석 또한 있었단거죠 (아마 1000명 누각은 VIP용, 걍 관중석은 평민용). 걍 푸른 초원에 줄만 쳐논 허술한 경기장이 아니였단 겁니다. 실로 어마어마하지않습니까?
당시 최우가 막장 귀족에 민간인 집 100채까지 헐어버리고 진 집이라 비정상적으로 큰집이긴 하지만 당시 고려 귀족들은 왠만하면 축구장만한 초거대저택에 살았단 사실들이 기록과 유적들로 발견되고있습니다.
밑에 저 하얀줄로 그려진 저 거대한 터가 (도로에 자동차도 보이시죠? 크기를 비교해봅시다) 고려 귀족 집 한채입니다. 여기 가생이 회원님들, 저 포함, 집 다합쳐도 저정도 크기 안될겁니다.
http://luckcrow.egloos.com/2443707
더 흠많무한건 이만한 대저택을 가진 고려의 한 귀족의 부인은 남편한테 "사내 대장부가 한번 태어나서 고작 요만한 집에서 살거냐"라고까지 했단겁니다 (와 신발 할말을 잃었습니다. 축구장 크기 집없으면 루저인겁니다 고려에선)
요약하면, 이토록 거대했단 귀족문화를 가졌던 고려인만큼 최우의 격구장은 과장이 아닐것이며, 더 무서운건 저만한 격구장이이 전국에 몇십개가 더 있었을거란거...아무리 최우가 막장이레도 귀족 한명 집에 저만한게 있었을정도니...
하여간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저번에 계속 백제가 일본에 세운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축만 올렸는데 다시 말하듯 결국 원조는 한국. 일본이 이제야 백제 문명을 이어가 꽃피울때 고려는 초거대 화려한 세계 수준급의 건축 문화를 건설한거죠. 콜로세움 부럽지 않습니다. 다만 아쉽다면, 경기장이 다 목재라 현존하는게 없다는거죠.
추가로 중국은 기마 민족도 아니기때문에 격구장 문화가 고려나 후에 조선만큼 성했을거라 보긴 어렸습니다. 사실 당나라때만 빤짝 유행...즉 이런 초거대 경기장 문화는 동아시아에선 한국이 거의 유일했다 볼수있겠습니다. 일본애들이 지들 가부키 극장 크다면서 자랑하면 이걸 보여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