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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6 19:41
[기타] 중국 사극 속 대제국 고려(大帝國 高麗) 의 위상
 글쓴이 : 대은하제국
조회 : 9,996  

 
 
 
 
 
 
 
 
중국 대만의 '소년포청천' 이라는 사극입니다. 비록 드라마일지라도, 황제국 고려의 위상과 그런 고려와 송의 관계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위 동영상은 '소년포청천'의 한 장면인데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송나라를 방문한 고려의 황태자(皇太子)가 무례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행패를 부리지만, 송나라 대신들은 이 발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또한 고려 황태자의 암살기도가 있자 고려의 태자는 그것을 눈치체어 사흘 내에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송 황제를 찾아가 한소리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또한 고려 태자를 환영하는 연회에서 고려 태자는 '송은 여러모로 고려보다 못하다' 라는 발언까지 하게 된다.
고려 태자가 송에서 암살당하여 죽게 되자, 송 조정은 고려가 쳐들어 올것을 두려워하여 두 파로 갈라져 싸움을 벌이고 송 황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또한 이 사극에서는 고려의 임금을 '고려 황제' 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고려와 송나라가 동등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고증한 셈입니다.
또한 당시의 기록들에도 고려가 얼마나 강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당시의 기록에서도 고증됩니다.
희녕(熙寧) 3년(1070), (()에서 고려(高麗)의 사신을 접대하는 옛 준례가 없어 백성들이 퍽 괴로웠는데, 규정을 만들어 반포(頒布)하고, 비용은 모두 관()에서 지급하도록 조칙(詔勅)하였다. 또 고려(高麗) 사신이 중국말에 익숙하지 못한 까닭으로 재리(財利)를 엿보는 자들이 사사로이 왕래할까 염려하여 고려(高麗) 사신이 이르는 곳 마다 왕래를 금지시켰다.
희녕(熙寧) 9(1076) 에 또 최사훈(崔思訓)을 보내 오자, 중귀인(中貴人)에게 명하여 도정(都亭서역(西驛)의 예()에 따라 객관(客館)을 수리하여[167] 고려(高麗) 사신들을 더욱 후하게 대우하도록 하니,사신으로 오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정화(政和) 연간(1111~1117) 에 고려(高麗)의 사신을 국신사(國信使)로 승격시켜[203] 예우(禮遇)가 서하국(西夏國)보다 위에 있었고, ()나라 사신과 함께 추밀원(樞密院)에 예속시켰으며, 인반관(引伴官압반관(押伴官) 등도 고쳐 접관반(接館伴송관반(送館伴)이라 하였다
흠종(欽宗)이 즉위하자 축하 사신이 명주(明州)에 도착하였다.어사(御事) 호순척(胡舜陟)고려(高麗)50년 동안이나 국가(國家)를 미폐(靡敝)케 하였으니 정화(政和) 이후로는 사신이 해마다 와 회(() 등지에서는 이를 괴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선화(宣和) 4년(A.D.1122; 高麗 睿宗 17), 고려의 가렴구주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건염(建炎)] 3년(A.D.1129), 고려(高麗) 사신이 우리의 허실(虛實)을 정탐하여 금(金)나라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니,

마침내 조서(詔書)를 내려 고려(高麗) 사신이 오지 못하도록 중지시켰다.
그 조서(詔書)는 대략 다음과 같다.
'짐(朕)의 만년에 실로 변고가 많아 온 중국의 백성들이 강적인 [금(金)나라의] 침입을 받았소.
그들은 이미 국경을 깊숙이 짓밟고서도 병사를 일으켜 침입을 중지하지 않고 있어 장위(仗衛)를 잠시 강호(江湖)로 이주(移駐)시켰소.
만약 이​ 때에 사신이 정말 온다면 관원이 그 신변을 경호하지 못할까 염려스러우니 변방의 난리가 그침을 기다려 빙문할 시기를 묻겠소.
사신의 수레를 들여 놓기 위하여 진관(晉館)을 무너뜨림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한관(漢關)을 닫고서 조공(朝貢)를 거절한 것은 전례(前例)를 따른 것이 아니오.
평소의 고려(高麗)의 마음을 헤아리건대 나의 뜻을 이해하리라 믿소.'
<송사> ​『고려열전』​中
'하물며 우리나라에는 문물(文物) 예악(禮樂)이 행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므로'
『고려사』세가 문종 12년 中
<송사> 의 기록은 고려 사신​​이 얼마나 대접받고, 송나라가 고려에게 변명하는 처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으며 <고려사> 의 기록은 고려의 문물이 발달하여 중국과 교류하여도 별 이득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고려의 이런 자부심은 고려 중기 사람 진화가 금나라 사신으로 가는 길에 지은 시 '봉사입금(奉使入金)' 에서도 보입니다.

서쪽의 꽃은 이미 쓸쓸히 시들어가고
북쪽의 성도 아직 어둡고 캄캄하네
조용히 앉아서 문명이 밝아오는 아침을 기다리니
하늘 동쪽에 붉은 해가 솟으려 하네.
서쪽의 꽃이란 중국을 뜻하는 말로 송나라의 몰락을 알려주고 있으며, 북쪽의 성이란 거란, 여진 등을 일컫는 말로 아직 앞날이 어둡다는 것을 뜻합니다. 더하여 하늘의 동쪽에 붉은 해가 솟으려 한다는 것은 고려에 해가 뜬다는 말로 고려인들의 자부심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고려인들의 기록에도 고려가 황제국임을 증명하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황제폐하(皇帝陛下)께서 조칙을 내려 이르기를..우리 황제폐하(皇帝陛下)께서도 지극하신 정의로..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975년)


금상황제(今上皇帝)의 만세를 기원합니다.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977년)
광종대왕(光宗大王)이 황(皇)위에 올랐다.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1025년)


엎드려 황제폐하(皇帝陛下)의 덕이 하늘과 땅에 떨치고..
보현사석탑(1044년)


황상(皇上)께서 결(訣) 패일(佩日)..
부석사원융국사비(1053년)


황상(皇上)께서 천조(踐祚)에 오르시던 병술년 봄 정월에 이르러..

칠장사혜소국사비(1060년)
성황(聖皇)께서 국척 원신을 지극하게 기리는 것이다.

이자연묘지명(1061년)


무릇 우리 황(皇)의 아들들은 모두 공의 생질이 되니...태자(儲皇)와 후비, 친왕 등에 이르러서는..
이정묘지명(1077년)


공이 황후(皇后)의 인척이므로 더욱 총애하여..황후(皇后) 안에서 공을 불러..
최계방묘지명(1117년)


5남 응추는 황자(皇子)인 극세승통에게 의탁하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이식묘지명(1156년)


태자(儲皇) 역시 그 아름답고 고움을 슬피 여겨 특별히 제물을 내리고 각별히 총애하는 뜻을 보였다.
왕영녀왕씨묘지명(1186년)


때는 황상(皇上)께서 즉위하신 원년 모월 모일이다.
개천사석탑(1214년)


황태제(皇太弟) 바로 신종(神宗)이다.
최충헌묘비명(1219년)
이러한 기록들만 보아도 고려인들의 기상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사극은 순수하게 실제 역사의 기록을 토대로 고려의 위상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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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다르메 14-09-26 21:07
   
재밌고 중요한 장면이 있네요.

11분 50초에 보면 송의 군대는 동북쪽에 집중돼있어 서북쪽의 요한테 유리하다면서 고려보단 서북쪽의 요가 더 큰 걱정거리라고 합니다. 또 고려의 병사가 변경에서 설쳐대는것을 염려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지도를 보면 송과 고려는 요에 막혀있고 국경이 접해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고려영토는 조선보다도 작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만주, 요동일대에 걸쳐서 더 넓었을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어모장군 14-09-26 21:43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과 다른 기록들이 많이 있죠.
고려사에 송이 고려에 금을 치는데 길을 빌려달라 했다는 기록도 있고 말입니다.
교과서에 배우기에 송과 금은 국경이 맞닿아 있는데 고려에 길을 빌려달라는 것은 말이 안맞죠.
jclulu 14-09-26 21:57
   
이런 역사적 사실을 우리 사학계 스스로가 인정을 안하고 식민/사대/패배주의 사관만 숭배하니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나..ㅉㅉ
사학계도 언젠가 확 뒤집혀야 함...
나와나 14-09-26 22:38
   
그래서 소동파가 고려를 엄청나게 싫어했죠

송 황제에게 고려 사신들을 추방시키라는 상소문을 몇 번이나 계속 올리기도 했고

고려 사신을 대접하는 데 쓰이는 10만 관도 넘는 돈들을 국내에 쓰면 백성들 수 만명을 구휼할 수 있다며 한탄했고

나중엔 '고려 오해론'을 내세우면서까지 엄청나게 미워한...
     
나와나 14-09-26 22:50
   
“처마와 기둥이 춤을 추며 담장 밖으로 날아오르고, 뽕나무는 도끼를 맞아 쓸쓸하게 서있네. 오랑캐에게 다 주어 노비가 되게 했으니 이들에게 보상해줄 길이 있을 지 모르겠네."
"簷楹飛舞垣牆外 桑柘蕭條斤斧餘盡賜昆邪作奴婢 不知償得此人無”

-소식시집, 소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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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소동파가 1085년 덩저우 지주로 부임하던 중 하이저우의 고려정(고려 사신의 숙소)을 보고 지은 시인데요

송나라가 이 고려정을 짓느라 막대한 자본과 노동력을 쏟아 부어서 송나라 백성들이 굉장히 헐벗고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도대체 고려정을 얼마나 화려하게 지었길 래 그랬을 까요
          
대은하제국 14-09-26 23:58
   
진짜 어이없는건

일본 중국은 없는역사도 만들어내는데

우리는 있는역사도 없다고 하는거죠

이미 함경북도에 기원전 3800년대 청동기 유물이 발견 됐다고 들었습니다만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일본 기록에도 고조선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하는거죠

저는 배달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가 홍산문화죠
          
지나가던이 14-09-27 14:38
   
2222222222 동감~
북창 14-09-26 22:46
   
진짜...이런 사극을 외국 사극에서나 볼 수 있고...자국의 사극에선 항상 적들이 처들어 오면 수도부터 옮길 생각부터 하는 것들 투성이니 원...
역사책에서도 고려는 송나라에 사대를 했다고 처배우고 있으니...ㅋㅋㅋ
먹물새우깡 14-09-26 23:14
   
사대는 조선시대밖에 없음...

한민족이 언제 사대했다고...

망국통일의 주역 김춘추, 김유신도 당나라 소정방의 30만 대군을 파묻어버렸는데....
Windrider 14-09-27 00:57
   
일제가 너무 심하게 왜곡을 해놔서.이병도 라인도 문제고. 강단사학이 정신을 차려야할텐데.
멍게 14-09-27 01:08
   
조공관계라는 것도 당시 사정에 따라 다른데 무조건 우리가 가서 갖다바친걸로 배우고 있죠
우리가 아는 굴욕적인 그런 관계는 명나라 초기나 청나라한테 져서 인조가 머리 조아릴 때 였죠
aosldkr 14-09-27 03:20
   
저 때 고려는 말그대로 동아시아 패권국이었죠.
송도 설설 기던 거란 10만 기병을 귀주에서 전멸시키다시피 했으니 무력으로는 세계구급에 든다 해도 별 무리가 없었을 시절. 송나라를 중국이라고 상국대우를 해줬으나 사실 다이다이 해도 별 무리는 없었죠. 그로부터 오는 고려인들의 자존심은 상당했을 거고요.
송으로서는 당연히 고려 놓치면 말그대로 오랑캐한테 뭐되는 상황이라....
하지만 사대는 했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전략설계 14-09-27 09:07
   
이런 인터넷논쟁에서 조선을 까고 고려를 띄우면,
조선은 조상이고 고려는 먼 고대인 정도로 보는 분들에게 욕 듣는게 한두번이 아닌데..
그래도 제가 이런 곳에서 고려와 조선의 차이를 자주 언급한 것은,
윗글처럼 고려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대접 받고 큰소리 떵떵치고 살았습니다.
위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려 왕이 송나라 황제까지 충고까지 합니다. "거란(요)보다 여진을 경계하라고"
결국 그 말이 들어맞았는데, 송나라 황제가 엄청 언짢아했다네요..
고려는 그런 위상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사대', 임란에서 육전자체에 정규병력이 부실했던 점(수군, 의병 제외)을 까는 것은,
같은 땅덩이에 같은 후손인데도, 고려와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고려와 비교해 조선을 까는 것은 조선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못한 것 때문이지 비하가 아닙니다.
전략설계 14-09-27 09:10
   
송 입장에서는 고려가 요나라 뒤에서 버텨주기 때문에..
생존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요나라가 전연의 맹을 맺고 송나라 전선의 병력을 고려에 투입하고 고려와 여진 전선을 정리한 후,
그 병력을 가져다 남송을 정복하려 했던 것 같은데..
결국 고려가 이걸 스돕시켜준 것이라, 아무리 대접한들 부족함이 없는 것이고..
금도 북중국에 머물고 만족한 것도 고려라는 금 후방을 노리는 세력이 있어,
동아시아가 삼각축이 형성된 덕택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
주적의 뒤 편에서 주적을 견제해주던 고려는 송에게 있어 두고두고 우방중에 우방이죠.
전략설계 14-09-27 09:15
   
통일이 되면 국호를 '고려'로 바꾸고 고려의 정신을 계승하고, 조선은 잠시 잊어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려의 정신이 있어야 동북아에서 생존할 수 있습니다.
외세에 기대고 외세를 스스로 불러와서 망한 조선은 미국이 없었으면,
완전히 일본으로 흡수돼가는 상황이었죠.
21세기 동북아정세는 우방보다는 지 힘으로 제각기 생존해야 할 시기라..
역사도 고려의 이런 점을 집중 조명할 필요가 있어보이네요.
     
멍게 14-09-27 18:58
   
하지만 꼭 고려는 진취적이고 조선은 아니다 이렇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조선이 작은 분쟁이야 늘 존재했지만 큰 분쟁이 200년 가까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명이 너무 강해서 주변에 설치는 나라가 없었던 점이 크죠

그에 비해 고려의 초기 200년은 생존을 위해서 거란, 여진 전쟁을 했죠

만약 조선도 초기부터 북방에서 위협이 가해져서 고려시대와 같은 세력균형을 유지할 기회가 존재했으면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전략설계 14-09-28 11:43
   
고려는 지방에 지방관 파견도 못하고, 왕이 피난가는 과정도 지방 패거리들하고 목숨걸고 싸워가며 피난가야 하는 나라의 체계도 갖추기 전에 거란침입을 당했습니다.
200년 평화시여서 전쟁준비 못했다.. 그런건 다 변명이죠.
이순신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후 전쟁을 확신하고,
그 짧은 시간에 거북선을 건조하고 함선을 늘리고 요새를 구축하고..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것이죠.
뜻이 없어서 그 모냥이죠.
15만 보병의 왜군을 다른 나라 군대까지 불러서 막아야 하는 것은 대단히 쪽팔린 일입니다.
평화여서 못 싸웠다..
병자호란은 멀로 변명하실건가요. '이괄난' 때문이다...
평화여서 못하고 전란이후라 피폐해서 못하고 언제 제대로 싸워볼까요..
          
shrekandy 14-09-28 12:32
   
평화시기에 전쟁 준비 안하다 된통 당한게 조선만 있는것도 아닌데...미국도 진주만 똑같은 이유로 당하지 않았습니까? 일본이 공격해올거란 통신을 수십번 들었지만 조선이 여진족 문제에 올인하고 뒤를 비웠듯 유럽에만 집중하고 뒷통수를 내줬죠. 조선이나 미국이나 일본이 그정도 대병력을 끌고 올줄은 모른거죠. 그리고 조선보다 훨씬 자원, 돈많던 미국도 1차 대전 직전까지도 정규군이 고작 22만이였습니다. 평화기시기니 군대가 필요없던거고요. 반면 군대가 준비만 되있으면 이기나요? 2차대전당시 세계 3위 규묘 군사력의 프랑스는 마지노선 파고 별 준비를 다했지만 임진왜란 조선보다도 더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언제 제대로 싸울건지는 얘네한테 물어보시죠

게다가 님은 200년 평화의 영향을 모르시나 본데, 지금 초강대국들과 북한 아래있는 대한민국도 60년 평화밖에 안겪은 주제에 군대 줄이자, 10만도 충분허다, 가산점 폐지, 이러고 생쇼하는데 그 4배의 시간동안 평화를 겪은 조선이 계속 긴장을 바짝 타고있어어했단 말씀이신가요. 해이해지는건 당연한거였습니다. 게다가 신하국으로 조공도 꼬박꼬박 200년 가량을 바쳐온, 사이도 나쁘지 않았던 일본을 상대로 말입니다. 어떻게 500년전 사람들한테서 지금도 못하는 정책을 기대하십니까.

고려야 요나라 전쟁때 국가기반이 선지 얼마안된 불안기라해도 애초에 후3국을 통일할 수준의 무력으로 시작된지 얼마안됬던 시기고 그렇게 치면 무력으로 일어선 조선도 초창기엔 강하지 않았습니까.

조선이 잘했다가 아니라 조선이 한게 이렇게 욕먹을짓은 아니란겁니다
          
전략설계 14-09-28 13:24
   
거란침입은 고려가 생기고 나서 60-70년 뒤입니다.
후3 통일할 때 무력이 남아있겠습니까.. 그 당시 사람이 없는데..
무력이라면 이후 후손들 무력이겠죠.
윤관이 17만 대군으로 여진을 치러 동북으로 떠난게, 거란 침입이후 100년 평화를
맞은 이후였습니다.
뭐땀시 고려는 100년 평화시에 대군을 일으켜서 힘든 전쟁을 한답니까..
바로 20년 안팎으로 금나라 세워지고 금나라때 고려는 털끝하나 못 건들였죠.
평화시에 고려와 조선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민족은 평화시에 대충대충 다 그런거라고 넘겨짚어서,
그러지 않았는데 그랬다 하면..
윤관장군과 고려시대 조상들 억울해할 일입니다.

평화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변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조건 평화라면 초전부터 박살나고 외국군 불러오는게 공식인가요??
동서부전선에서 연합군과 소련군을 동시 상대한 독일의 전력 전술(전격전) 조직력 정신력을 감안하면,
탱크 대수만 맞췄지 단독으로는 애초에 독일 상대가 안되는 프랑스였고요.
30년전 1차세계대전을 겪었는데, 프랑스가 평화시에 당한 것도 아닙니다.

평화시 기습이 아니라 마지노선을 깔아야 할만큼 독일의 전력이 위협적이었던 것이고..
이미 프랑스치기 전에 오스트리아, 체코 합병하고 폴란드까지 친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은 기습당한 후, 자력으로 일본 눌렀죠.
왜 임란을 여기다 비교한 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이 미국처럼 자력으로 일본 눌렀나요??

우린 임란이 개전하고도, 수군, 의병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육전 병력 동원하지 못하다가, 명나라 군대 불러와서도..
바다에 1만씩 따닥따닥 붙어있는 애들 몰아내지도 못했죠.

자꾸 평화시에 당했다고 하는데..
임란 막판인 1598년 9월.. (전쟁이 7년차입니다)
지 나라 쳐들온 적을 치러가는데..
소서행장의 순천왜성에 명군 22,000, 조선군 6,000 (수군은 명군 19,000, 조선군 7,000)
1598년 1월..
가등청정의 울산성전투에 명군 36,000, 조선군 1만..
적을 자기 땅에서 몰아내는 것도 명군에 의지하는 판입니다...
전쟁 끝날 때까지 이 모냥이었는데, 이게 평화시와 먼 상관이랍니까??
지 나라 땅 적 내모는 것도 외국군대에 의존하는 데..
이거 쪽팔리지 않습니까??
부끄러운지 몰라요??
그니까 일본한테 중국 속국 속국 소리 듣는겁니다.
중국애들 우리한테 은연중에 깔아보죠.
전쟁한 지가 7년째입니다. 전시상태에서도 요 모양이었습니다.
1594년 시무차자 다른 글에서 얘기했지만..
평시 정규 전투 상비군이 2천명으로, 유성룡이 한탄을 합니다.
1594년 전시상태의 상황을 제가 알까요 님이 알까요..
국가가 먹이고 무기를 대주며 상시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군대 2천명..
전시중에도 이 모냥이라 명군에 의지할 수밖에요.

당시 조선에 나가 싸울 장정만 200만이 가까이 될겁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쌈나면 외국군대(명) 붙들어메고 대접하는 의존하는 그 근성이 문제입니다.
고려는 북진주의죠.
조선은 사대주의입니다. 나라만든정신이 '큰나라를 섬기자' 는 겁니다.
그니까 조선왕이 황제한테 조아리고 핀잔듣고 전쟁을 이렇게 하죠.
고려시대까지는 생각도 못할 일인데.
부끄러운줄 도모르고 그 후손들까지 이게 당연한 방식인줄 알고..
평화시에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습니다.

전쟁중에도 수만 병력을 일으켜 싸워서 적을 우리 손으로 몰아내겠다는 생각 없이
오로지 명나라에 의존하는 선조와 중신들 정신상태 잘 아시죠.
그 사람들이 군대를 소집하고 전장에 보내고 총지휘할 핵심수뇌부인데..
그 정신이 사대로.. 자주와는 쌍벽이죠.
명나라 신종 제사만 잘 지내줬던 그 정신으로는,
평화시나 전시상태나.. 임란 100번을 해도 똑같은 결과였을 겁니다.
왕은 외국군에 의존하고,
의병과 똑똑한 장군 몇만 딸랑 적과 제대로 싸우는..
(시간관계상 이후 내용에 대한 답변은 몇일 걸리겠습니다)
               
shrekandy 14-09-28 14:23
   
아니 뭐 그렇게 치면 프랑스외 대부분 2차 대전때 먹힌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미군 도움으로 독립한거 아닌가요? 이 국가들중엔 1차대전에 휘말리지않은 국가들도 다수있는데요. 다 미군에 의존해 독립했으니 사대주의라고 욕해야하나. 아예 미군이 인천상륙작전 주도한것도 사대주의라해야되나요...우리 후손들이 같은 실수? 걍 미국 꺼지라하고 우리 혼자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다 상대해봅시다

그리고 조선 자체가 침략을 많이 받아본 적이 없는데 님이 타국이 더 많이 쳐들어욌음 외세 힘을 빌렸을지 말았을지 어떻게 아시나요? 말도 안되는 가정이십니다

그리고 예전 군대 모병 방식은 걍 농민 나이 적당한 사람들 선별해서 군대에 들여오는 방식이죠. 정작 정규군 수는 조선군이 명군에 밀렸어도 전국에서 활약한 의병들 또한 대부분 조선의 관리나 선비들이 이끌었던 말만 의병이지 정규군이나 다름없던 상황입니다. 다만 일본이 조선 영토를 분리시켜논것처럼 점령해가니 정부랑 접촉이 잘 안되서 의병 형태로 싸운거죠. 결국 수만명의 병력을 일으켜 세운거 맞습니다만? 다만 국토가 토막 토막이 났는데 잘도 몇만씩 정규군으로 모짐하겠슴다.

그리고 명나라군이 수만 많았지 평양에서 발 묶여 있을때 조선군은 이미 여진족 상대하던 정예군이 몇달만에 일본군 박살내고 쭉 남아합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임란당시 승전수는 조선군이 65번, 일본군이 40번으로 우리가 더 많습니다만? 맨 남쪽에서 왜성들땜시 막힌거 가지고 뭐라하면 안되죠. 심지어 공격도 조선이 더 많이 먼저 때립니다. 밑에 통계자료입니다

http://majestyperson.com.ne.kr/imjinpercent01.htm


보시다 싶이 조명 연합군이 싸운건 고작 8번이고 나무지 수십번은 님이 욕하시는 조선 관군 주도로 승리한겁니다만?

님 말대로 1만씩 따닥따닥 붙어있는 애들 3배 이상 군대로도 못이긴 명나라 참 ㅂㅅ인듯

고려는 북진이요? 시대가 같나요? 고려땐 대륙이 제대로 원나라 이전엔 통일이 안된 아비규환 상태였고 조선땐 확실한 명나라라는 통일국가가 집권했죠. 그렇게 고려가 북진 북진해서 조선의 영토가 결국 고려보다 넓었나봅니다. 조선 아니였으면 두만강까지 진출 못했을지도 모르죠.

명나라 제사는 베트남도 지내고 걔네도 소중화 외치고 잘 살았고요, 조선도 명나라 제사 지내고 소중화 거쳐서 결국 오히려 조선만의 문화를 더 발달시키고 청나라에 사대안했다고 할수있겠네요

그리고 솔직히 유성룡 발언은 과장이라봅니다. 아니 조선 수군만해도 1만5천에서 3만이라는 대군으로 임란때 시작했는데 2000이 전국 상비군이라니...말이 됩니까. 애초에 유성룡도 위급해지자 이순신 모함하고 팔아먹던 놈.

하여간 여긴 해외라 님 답다는 시간이랑 제가 답다는 시간대가 바뀔거 같네요. 여긴 지금 밤이니
                    
전략설계 14-09-28 15:54
   
시간이 없는데.. 답변 안드릴 수 없어서..
유성룡이 1594년 왕에게 올린 보고서 시무차자에..
전국에 병사가 군적상 14만6천이지만 보급병들 빼고 실제 전투병 8천,
이 8천도 2천씩 4계절 교대하다보니, 실제 전투할 수 있는 상비군은 2,000명..
역사스페셜 "8천 조선군 16만 대군에 맞서다"편에 방영된 내용입니다.

평화시가 아니고, 개전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당장 전투가능한 상비 정규군이 2천입니다.
이건 유성룡이 선조에게 보고하던 내용이라, 저하고 님하고 논쟁할 꺼리가 아닙니다.
불리한 내용이라고 아무런 근거 없이 죽은 유성룡하고 논쟁할랍니까??
왕한테 군비태세를 보고하는걸 거짓말을 치겠습니까..

명군이 잘 싸웠다는 것도 아니고..
승전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00번을 승전했든 1만몇천씩 바닷가에 몇년씩 죽 치던 애들 밀어내야 끝나는 전쟁이었
는데..
명이 잘 싸웠다가 아니라,
전쟁 7년차에도 고작 6천, 1만씩 보내는게 쪽팔린단 얘기입니다.
죄다 남해안에 붙어있는데. 한성 수비한다고 병력이 묶여있었겠습니까..
평양 방어한다고 묶여있겠습니까..

임란때는 서울로 진격하는 애들 신립이 대충이라도 나가 싸우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정유재란때는 서울로 직격하는 왜군을 명군이 천안서 맞섭니다.
명군도 수원으로 퇴각했지만.. 명군의 규모가 있고 명량해전 여파로 왜군이 퇴각합니다만.. 이런거 안 쪽팔리나요..
적이 우리 수도를 치러 올라오는데, 우리나라 군대는 안보이고 외국군대가 맞서주나요.

고려는 평화시에 17만을 거병했습니다.
전시중에도 조선 조정이 군사적으로 보여준 것이 뭔가요??
이순신과 의병 외에는 관군, 정규군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었습니다.
평화시란 것을 일시적인 기습의 변명은 될지언정..
 7년전쟁 동안 무력한 조선(수군, 의병 제외)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습니다.
                         
shrekandy 14-09-28 16:20
   
님 뜻을 이제 더 잘 알겠습니다. 근데 저도 여기 새벽 3시라 ㅠㅠㅠ과제하다가 답변답니다.

음 유성룡이 뭔말은 한건지 인제 자세희 알겠습니다. 사실 저도 알던거긴 한데 하도 오래 안봐서 까먹고 있었네요.

그리고, 이건 걍 제 의견이고 님이 반대하셔도 되는데, 솔직히 별로 안 쪽팔려요.
아니 오히려 전 조선이 남쪽에 1만씩이라도 꾸준히 투입한게 더 놀랐습니다.
하지만 님이 왜 쪽팔려 하시는지도 이제 이해가 가고 동의는 안하지만 동감은 가는 부분이 있긴하네요

1차대전때 프랑스도 영국군덕에 겨우 수도를 지키는등 기타등등같이 연합군의 손으로 수호받은적은 많잖아요? (의외로 프랑스 역사가 고대부터 지금가지 한국사랑 많이 비슷하단 말이죠...100년 전쟁도 임진왜란같고...). 일단 기억나는 예로 베르됭 전투당시 더 소수였던 독일군에 털린 프랑스군은 지원온 영국군 따까리로 싸웁니다. 이렇다고 프랑스 국민들이 프랑스가 한심하네 뭐네 하지 않습니다

근데 다시 통계로 돌아가서, 이미 소수 정예 조선군한테도 계속 쳐발려서 구석에 밀린 일본군을 굳이 명나라가 대군까지 몰아서 공격해주는데 이미 군사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연합군 소속의 조선이 자기 희생을 더 크게 했어야할까요? 걍 남은 군사로 황폐화된곳을 복구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물론 일본군을 먼저 완전 축출하고 나서 하는게 더 이로웠겠지만 명나라군이 40000씩 데리고 오는데 1만짜리 왜군이 그렇게 잘 버틸것이라곤 조선측에서도 생각을 못했을겁니다. 아마 남은 군사들은 국가 재건하는 동안 명나라군 잘 써서 일본군 다 퇴출하고 끝!! 할줄 알았겠죠.

그나저나 다시 고려로 돌아가면 고려의 평화기랑 조선의 평화기랑은 확실히 다릅니다. 고려는 평화기레도 요-송-고려 라는 삼각형을 유지할 힘을 계속 유지해야했던거죠. 반면 조선은, 다시 말하지만 그딴 삼각 관계고 뭐고 없습니다. 애초에 일본 자체가 요, 송, 여진같은 위험적 존재가 아니라 200년 동안 조공 바치고 왜구 같이 토벌하던 나라 아니였습니까. 게다가 대마도 정벌로도 2번이나 싸워서 이겨봤고. 고려랑은 걍 상황이 다릅니다. 도대체 국가대 국가전에서 한국이 일본한테 털려본 적이 있어야 경계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명나라도 처음에 조선이 일본에 털리자 못 믿었고.

마지막으로 조선이 고려처럼 몇십만 대군을 뽑아내깅엔 너무 빨리 일본에게 첫 해동안 땅을 내줬습니다. 군사력을 모집하려해도 안되죠 당근.

정유재란땐 위에 이미 제가 말한 명나라 참전 이유로 대군을 일으키지 않은것 아닐까요? 쪽팔릴수도 있지만 가장 실용적인 방법일수도 있습니다
               
호부 14-09-28 15:15
   
조선이 초기에 일본에 발린건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조선은 대비가 안되어 있는 반면에 일본은 철저히 준비를 하였다는 겁니다. 실제로 조선의 방어전략인 제승방략은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그 약점을 철저히 꿰뚫어 보았고 이로인해 별 힘을 못쓰고 한양이 점령당한 것이죠.
두번째는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침탈한 점입니다. 왕위 침탈로 인하여 왕위의 정통성이 흔들렸고 이로인해 이후 왕권보다 신권이 강력해졌고 후대의 왕들은 늘 신하들의 반란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이로인해 초기 강력했던 조선의 군사력은 후대로 가면서 거의 없는 수준이 되었고. 그마저도 신하들의 반란을 염려해서 군권을 왕실에서 틀어쥐고 내주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오욕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수양의 반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shrekandy 14-09-28 15:40
   
그렇게 약화된 조선군한테 저 통계처럼 쳐발린 일본군도 참 노답인것같습니다 ㅋ
                    
전략설계 14-09-28 16:03
   
전사를 드라마로 공부하고 자존심으로 얘기하지 말고..
전문 전사책을 조선꺼, 고려꺼 사서 공부하세요.
말 대답 해주기도 힘드네요.

칠천량에서 깨진 조선 판옥선 수하고, 이순신장군이 23번 승전할 때 깨트린 왜 함선수하고
아마 비슷하거나 큰 차이 안납니다. 함의 크기를 생각하면 더 더욱..
역사는 양면성이 있는겁니다.
신립의 탄금대전투도 저쪽에선 조선군 1만을 학살한 대승인 것입니다.

노답인 왜군한테 도륙된 조선 백성이 얼만대요??
노답인데 국가가 왕조가 백성들을 그렇게 희생시키나요..
진주성 깨부쉰다고 일본군 10만이 진주로 움직일 때, 조선군, 명군, 의병(곽재우)은
지켜만 봤죠..
몇전 몇승이요?? 그런 확률을 당시 도륙된 진주성 사람들한테 들이대보죠??
스포츠경기도 아니고 다 필요없는겁니다.

임란으로 조선에 100만명의 인적피해가 있었다고 하는데..
진주성 함락되면 성내 조선인들 도륙된 수만 수만이죠..
부산성터 지금도 공사한다고 땅 파면 임란때 해골 나옵니다.
전쟁전이든 전쟁중이든 한 10만만 정예병으로 육성해서 죽기살기로 싸웠다면.. 그렇게까지 인적 피해가 생기지 않았을겁니다..
전국토가 유린되지도 않았을거고.
저렇게 인적피해가 심한 것도 큰 패배인 것입니다.
난중에도 조정이 정신을 못 차리고 명나라에 육전을 기대고 꼴랑 2천 정규병만 준비한 정신으로 전쟁을 끌고 끌어서 수 많은 백성이 도륙을 당했는데..
이렇게 피해를 보고도 언제까지 알량한 자존심으로 이겼다 이겼다 할꺼입니까..
                         
shrekandy 14-09-28 16:26
   
드라마로 공부 안했습니다만? 위에 친절하게 썻더니 기분 잡치네 요거 언제 쓰셨데.

간단히 말하죠.

이긴건 이긴거죠.

그럼 200년 전쟁 준비도 안한, 님 말대로라면 사대주의 캡 국가인 조선을 정벌도 못하고 결국 물러난게 자랑입니까?

아니 애초에 일본인들은 임진왜란을 히데요시 최대의 망작, 실패로 본다는건 아세요?

일본에서 히데요시, 노부가나, 이에야스 이 3사람이 영웅 취급받는건 아시죠?

근데 히데요시 찬양자 아닥시키는게 바로 임진왜란 결과랍니다.

일본애들은 지들이 대패, 흑역사, 쓸모없는 전쟁이라는데 왜 우리가 이럼?

그리고 님말대로 조선 상비군이 2000뿐이였다 칩시다. 근데 통계 보니 20만 대군이 고작
 2000에게 개전이후 첫해에 14번을 패하고 고작 3번 이깁니다. 이걸 노답이라고 하는겁니다

님처럼 따질꺼면 고려 몽고 항쟁도 다 부질없는 걸로 하세요. 그렇게 따짐 고작 3,4만명 수준 2군 상대로 경주까지 털리던 고려가 참 강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려. 한 30만명 모아서 북경까지 쳐들어가지 ㅉㅉ

걍 제가 볼땐 님은 이상만 추구하고 계세요

조선까들은 조선이 이상만 추구하고 실용성을 배척해서 망했다고 까면서 실제론 자기들이 이상만 보고 있으니 나원 참
                         
전략설계 14-09-28 16:50
   
고려를 침략한 요 성종때 거란병과 몽골은..
당대 세계최강의 기병들입니다.
송을 군사적으로 쳐부순게 거란인데..
일본은 머를 했는대요??
히데요시 하면 세계적으로 까빡 죽어야 합니까..
일본 전국시대빠 아니시죠?

명 치러 간다는 일본 쌩보병 30만이 건너와도..
요동쯤에서 만주기병들한테 도륙당할겁니다.
일본 쌩보병이 세계적으로 보여준 것 머 있나요. 머 있는데요??
우리나라 기본적으로 쳐들온게 30만, 40만입니다.
거란이 30만으로 쳐들어오면 40만을 거병한 것이 고려입니다.
20만을 북계에 성들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니 막은겁니다.
고려가 외침에 조선처럼 1만씩 따딱따딱 내보냈으면,
진즉에 우리나라 중국 일개 성 돼 있을겁니다.
거란이 이전처럼 30만이 아닌 당대 세계 최강 10만 기병만 가지고 고려 침입하다
몰살당한게 강감찬의 귀주대첩입니다.

풍신수길이가 영주들 힘 뺄라고 벌인 임란때 조선 활약상 높일라고,
전국시대빠까지 하나요??
제대로 된 기병 하나 없이 15만 깡보병이 동북아에서 멀 할 수 있는데요??
당태종 군대, 거란 요나라 군대, 몽골 군대..
애들은 전쟁머쉰 아니고, 일본깡보병만 전쟁머쉰이래요..
깡보병은 지들끼리 성따먹기나 할 때 필요한 것이지..
중원으로 외부로 나갈 때는 기동성 없이는 안되는겁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벌판을 깡보병으로 멀 한답니까..
중원을 무대로 싸운 당태종 휘하의 전술가나 장군들이 들음 섭섭하겠네요.
유성룡이 역사적 기록도 부정하더니, 인제는 전국시대 빠 하나요??
                         
shrekandy 14-09-28 17:26
   
아나 여기 새벽 4시니까 마지막 답변입니다. 적어도 12시간 안엔 제 딥변 못 볼거고 졸려 죽겠으니 짧게 밀하죠

제가 왜 전국시대 빤지 어이가 없군요

애초에 님이야말로 뭔 해괴망측한 가정에 상상이나 하면서 뭐 어쩐잔겁니까?

뭐 요동에 오면 30만 만주기병들에게 도륙? 당시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했던 기병이 비로 조선 기병인건 아세요? 자뻑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근데 신립의 기병도 털렸는데 만주군이 생판 첨보는 조총에 잘도 승리하겠습니다. 일본은 당시 유럽 전체보다도 많은 조총을 갖고있었다고도 하며, 임진왜란때 대다수는 창으로 무장했다해도 이미 몇만 수준의 조총병을 가진게 일본군

무슨 인간들이 쌍령전투 하나땜시 기병이 조총병 다 격퇴할걸로 착각하고 자빠졌네요

애초에 그 만주 기병 청나라 군대 바르던 러시아 코삭군을 전멸한게 조선 조총병이거늘...

내가 지금 짜증나는게 난 고려에 자부심있고 고구려도 자부심있는데 님의 망언때문에 님 논파해주려고 그 국가들을 깍아내리는게 참 싫습니다

근데 댁은 댁이 말같지도 않은 말을 하더니 그것때문에 한 제 예나 말을 이해도하지않고 전국시대 빠니 뭐니 개소리나 하는군요

웃기지도 않습니다

역사에 if는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다 한번은 if를 상상해 보는거 이해합니다. 근데 님의 if는 걍 망언 투성이군요

고려가 그나저나 20만 도적집단 홍건적한테 개경까지 내줬었죠? 그 잘난 요나라, 원나라 막고 뭐임? ㅋㅋ 에휴 진짜 고려 가기 싫은데 님때문에 흑역사 다 들춰내는구려

1차 홍건적 침임땐 홍곤적 40000에게 서경까지 내줬는데 왜 10만 대신 고작 2만 모아서 싸웠는지 참...

일본군이 뭘 보여줬냐고요? 님 ㅂㅅ이세요? 아니 일본이 애초에 뭘 보여줄수 있기나 한 상황입니까? 뭘 보여주려면 상대가 있어야하는데 상대가 지리적으로 임진왜란 조선군, 명나라군밖에 없었을수 밖에 없었던 나라한테 무슨 더 많은 전과를 보여달라는 말인데 뭐 하잔 거죠? 애초에 세계 최강급 명나라군 여러차례 더 적은 수로 발라버린거보면 일단 일본 육군이 당시 상당한 군사력이란건 바로 답 안나옴? 깡보병이 그렇게 허접해서 결국 제국주의의 주인공이 되었나봅니다. 애초에 많은 서양 학자들이 당시 일본군을 무진장 높이 평가하거늘 ㅉ

그리고 님 말 잘하셨어요. 역대 한국을 쳐들어온 대군은 다 북쪽에서 왔죠. 당시 조선은 여진이 임진왜란 직전까지도 경계대상 1호 였고 임진왜란 도중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일본군은 이제 다 구석에 몰렸으니 명나라 군으로 로테이션 돌려서 싸우고 나머지는 국가 복원, 그리고 다시 북방 경계에 치중하게했겠죠. 아니 실제로 그랬단 기록 또한 봤습니다. 지금 세벽 4시니 나중에 찾으면 보여드리죠. 읽은 기억이 나니까요.
실제로 후금의 탄생으로 당시 왜 조선이 그렇게 북방에만 집중했는지 답 나오죠

마지막으로, 병자호란 이괄의 난도 뭐 부질없는 핑계라는 개소릴하던데, 산해관도 못넘던 청나라가 명나라 엄덯게 멸망 시킴? 이자성의 난덕분임. 근데 더 작은 조선에서 수도까지 또 아작나는 난이 일어났는데 참으로 변명이로다 그쵸?

걍 망상 좀 그만하세요
                         
전략설계 14-09-28 17:45
   
틀린 얘기 지적해주기 짱나네요.
조선 조총병이 어쨌다고요??
사르후전투에서 여진 기병 정면돌격에 도륙당한게 조선 조총병입니다.
교과서에서 들은 몇개로 함부로 상상하려들지 말고 분명한 것만 얘기하기 바랍니다.
                         
aosldkr 14-09-29 00:32
   
그렇게 따지자면 전략설계님이 제시하신 역사적 사례들도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이 나오는데요. 저는 shrekandy님 말 쪽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되긴 하네요.
                         
aosldkr 14-09-29 00:53
   
게다가 고려도 처음 거란한테 임진왜란 저리가라 할 정도로 깨진 걸로 아는데요. 거란이 자기네들도 피해가 나니까 후퇴한 거고요. 귀주대첩은 세번째 침략때 이야기죠. 몽골도 고려정부가 통치 반포기하고 사십년간 짱박혀있어서 그렇지 백성의 고통과 피해는 임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shrekandy 14-09-29 01:58
   
전랙설계// 이미 말 안했습니까? 쌍령전투 하나만 버고 조총 보다 기병이 강하단 개소리하지말라고. 진짜 그랬음 이후 유럽의 제국주의는 총보병이 아닌 기병 위주로 갔어야죠 근데 그랬나요? 당시 쌍령전투의 패배 원인은 기후와 조선 조총병들이 아직 조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늘... 님의 망상이 한심해서 말도 안나오네요. 만약 조선 조총병이 훗날 나선 정벌때처럼 훈련 잘 받고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있었다면 청나라 기병대 따윈 잽도 안됬네요

그리고 왕조실록보면 사르후 전투당시 모래바람이 불기 전까진 조선군이 만주 기병을 여러차례 격퇴했다고 나옵니다만?

일본 조총군에게 무너진 신립 기병대 고작 500명이 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여진족 기병대 1만기 줘 패고 다닌건 아나요?
                         
전략설계 14-09-29 09:57
   
//aosldkr
고려가 거란한테 어떻게 깨져요??
소손녕이 80만이라고 뻥쳐서 쳐들온거 서희의 지략으로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고..
재빨리 성을 쌓고 군비를 강화해서..
거란과의 최전방인 의주 흥화진성은 거란침입시 한번도 안 뺏겼는데..
광군을 조직해서 30만씩 거병하면서 순수 고려의 힘으로 거란에서 물리쳤기에 본문에서처럼 송한테 대접받고 큰 소리치고 살았는데..
지나라 전쟁에 1만씩 따닥따닥 내보내다..
왕이 의주까지 도망갔다가 명으로 망명요청하다 명 황제한테 쪽팔리게 야단맞고..
바다에 붙어있는 애들 몰아낼때도 외국군대 1/3, 1/4도 안되는 병력 내보내고..
이게 어떻게 똑같아요??
                         
전략설계 14-09-29 10:00
   
//aosldkr
몽골침입때 고려가 그렇게 버티지 않았으면, 원나라 일개 성 됐을겁니다.
비록 무신정권이 정통성이 없어 지들 살길만 찾았지만..
장기간 버틴 것에 대해서는 시피보이지 않고 중국에 흡수 안된 이유로,
칭찬할 일입니다.
저기 러시아, 중동까지 몽골계 나라가 세워진 마당에..
고려라는 나라가 이어지고, 중국에 흡수되지 않은 것은 버텼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에서 유별나게 버텼기 때문입니다.
seharu77777 14-09-27 11:20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아마 가장 섞어빠진 곳이 아닐까 하네요~
지나가던이 14-09-27 14:58
   
친일사학계 : 부들부들
전략설계 14-09-29 10:13
   
//aosldkr, 너 한번만 더 '개소리' 'ㅂ ㅅ' 하면 쌍욕 나간다. 나 욕 잘해~

내 글에다 조선은 평화시에 전쟁을 맞았기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고 댁이 반론을 해서 논쟁이 시작한 것입니다.

유성룡이 왕에게 보고한 1594년 시무차자에 전투병 2천이라는 것을 언급하니..
"이순신도 급할 때 버린 놈"이라 유성룡을 매도해서 못 믿을 얘기했지만.. 역사적 사실이라 댁이 인정을 했고.
평화시가 아니라 전쟁중에도 군비를 갖추지 못한 나라가 조선입니다.

"고려는 개국할 때 그 군사력으로 거란을 맞아 싸웠다"고 댁이 반론을 제기해서.
--> "개국한지 60-70년뒤라 그 군사력이 아니다"고 했고
--> "윤관이 17만 병력으로 여진을 팼을 때는 거란전쟁이 끝난 지 100년간 평화시였다"고 하여
      생각의 차이지 평화시가 변명이 될 수 없다고 근거를 댔습니다.
"거란, 송, 고려의 삼각축이라 군비를 늦출 수 없다"고 또 다른 얘기를 하였는데.
--> 고려나 조선이나 외침을 당한 것은 비슷한 정도입니다.
      고려가 거란, 몽골의 2번의 큰 외침을 받았고.. 막판에 홍건적,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면.
      조선은 임란, 병자난의 2번의 큰 외침을 받았고.. 막판에 동북아 전쟁터가 되어..
      외부의 위협은 비슷했고..
      여진도 불과 7년 임란기간동안 부족을 통합해 중원을 위협하는 항상 위험세력이기에..
      조선이라고 맘 놓을 상황은 아니고..
      1590년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로 보낸 황윤길이 전쟁이 난다고 하였고..
      김성일은 정탐 역할로 1년을 일본에 머물렀습니다. 누가 시켰을까요??
      임란은 평화시라고 변명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591년 전라좌수사에 임명된 이순신은 나주에 나대용 제안으로 거북선을 만들고도
      남은 시간입니다.
      이렇게 전쟁을 대비한 사람은 뭔가요??
전략설계 14-09-29 10:31
   
1598년, 임란 7년전쟁이 끝나고 나서,
1616년, 누루하치가 허투알라에서 후금을 건국하고,
1618년, 명나라 무순을 점령하고,
1619년, 후금을 치러간 명나라 조선 연합군 10만이 사르후전투에서 도륙을 당하는데..
1624년, 이괄의 난이 나고,
1627년, 정묘호란으로 평양이 함락되고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가는데..

10년뒤, 1637년, 병자호란이 나는데.. 이것도 기습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괄난은 13년전이라 강산이 한번 바뀔만한 시간이 흘렀고..

조선은 평화시도 아닌 정탐꾼을 보낼만큼 전쟁의 기미를 사전에 알았고..
이순신같은 제정신 박힌 사람은 미리 전쟁준비를 한 것이 그 증거로,
평화시에 조선이 기습당했다고 하는 것은 댁같이 "우리나라 만세"에 도취한 사람들의 거짓말입니다.

임란에서 병자호란으로 가는 시간은..
전쟁이 임박한 상황임을 모를 수가 없는 상황임에도..
정묘호란때 평양성이 점령된 판이었습니다.
병자호란은 개판중의 개판입니다.
적은 의주, 안주를 지나도 온지를 까마득하게 모르고, 청나라 군대가 개성에 오고서야 피난을 준비합니다.
군대체계라도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평화시(?)에도 개판,
전시중에도 정예 상비 전투병 2천,
전쟁 터질거 알고도, 적이 온지도 모르는 개판..
조선은 언제 제대로 싸웁니까?
평화시입니까? 전시중입니까? 전쟁징후가 있을때입니까?

그러고 조선 말기에 가서는..
군란(임오군란)이 난다고 왕비가 청나라 군대 불러와서 시아버지 잡아가게 하고..
민란(동학의난)이 났다고 관군 깨지니까 일본군 불러와서 백성들 잡고..
왕비 결국 일본군 칼 맞고 갔는데..

외세에 의존하고 외세 불러 좋아하고 그러다 불러온 외세에 망한게 조선왕조입니다.
언제 제대로 싸웠답니까??
변명좀 하지 말고..

평화시는 평화시여서 못 싸웠고..(임란)
병자호란은 임란으로 피폐해서 못 싸웠다고요..
고려의 요동정벌은 홍건적, 왜구침입 받으면서 끝난 직후에 출병한 것입니다.
편할 때 한 줄 아세요...

평화시에는 윤관이 17만 출병하고..
홍건적이 내려오고 왜구가 들끊는 말기 난세에도 요동출병 자진해서 2번 감행했습니다.
역사를 님 꼬부라진 혀루  이리저리 변명해서 소설질 하지 말고, 역사를 써져 있는 그대로 봅시다..
전략설계 14-09-29 10:45
   
일본에 대해서..
1590년만 해도 히데요시가 관동의 호조 치러가는 상황이고..
이에야스가 굳건한 상황에서 첫째아들은 죽은 히데요시가 나이먹고 지 대를 있는 친자식도 없는 상황에서,
먼 덕을 볼려고 명을 조선을 치고 하는 것은..
영주를 힘 빼기로..
조선 출병한 영주들은 그 나름대로 힘을 빼고, 출병 안한 애들은 토목공사니 뭐니 해서 나름대로 힘빼는
상황으로..
250만석의 이에야스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자체적으로도 총력전을 했다고 할 수 없고,
일본의 상황이 불안정하기에,
히데요시가 조선에 넘어와서 지켜보고 상세하게 간섭하는 것도 아니어서..
조선에 출병한 영주들도 조금 불리하면 명군과 정면대결을 피하고, 해안에 성짓고 전투를 피하고,
지 세력 보존에 여념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명이 떨어지면 10만이 움직여서 진주성을 아작내는 상황이라 누가 건들지도 못합니다.
일본내도 직전까지 내전을 벌인 상황이고.. 이에야스와 친한 세력들이 있는 상황에서..
늙어가는 히데요시, 관백인 조카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러가지인 상황에서..
임란때 일본군도 최선을 다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본군은 국가대국가로 싸워본 적이 없는 내란용 군대였습니다.
금강 하구 백강구전투에 보낸 왜병 3만, 시마즈가 오니까와 친 정도 외에는
국가대국가 전쟁을 못 해본 애들로..
전국시대 어쩌고 해봐야..
고 옆동네 하나씩 때리는 수준의 땅따먹기 겜을 한 애들이라..
500킬로 800킬로 보급로 유지해보는 연습 해볼리가 없습니다.
히데요시가 막판에 장악하고 호조처럼 한 영주치러 일본 각지의 영주들 군대를 총동원해서
움직여 본 정도.. 요 정도 연습한 애들이라..
내란용 군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임란에서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깡보병이다보니.. 부산에서 평양가다 멈췄습니다.
바다로 보급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뒤에 병자호란을 보더라도 바다보급없이
옆나라 치는 군대는 많고.. 몽골이 금을 치고, 중원을 칠 때 해상보급은 얘기도 없습니다.
육전으로 육전대로 보급하는 것입니다.. 거란침입도 마찬가지고..
해상보급 없이는 평양가다 지 알아서 스돕하는 것.. 깡보병의 내란용 군대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병자호란의 청나라 기병을 보면..
다른 나라 치는 전쟁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보여줍니다.
깡보병은 먹는 거에 비해서 진군이 느려.. 옆 동네 치는 수준이 아니면 가다가 보급문제로 서게 돼 있습니다.
전략설계 14-09-29 10:52
   
일본조총병에 대해서..

부차전투에 잘 모르나 분데..
13,000명의 조선군이 명나라 동로군에 편입돼서.. 부차 벌판에서 도륙당한 전투입니다.
벌판에 나간 조선조총병은 싹 전멸하고 언덕에 있던 병사들만 살아서 포로가 된 전투로..
8,000~9,000 정도 죽은걸로 봅니다.

내가 왜군이 만일 조선을 먹고 명 친다고 만주를 기다가다가는 여진기병에 도륙당한다고 했습니다.
왜 조총병이 기병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말뚝이라도 박아야 합니다.
이 경우 일본은 공자로 끊임없이 진군을 해야 하는데..
만주의 넓은 벌판에서 어디서 기병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가시노전투같은 상황은 아닐 것이고, 여진기병도 준비가 안될 때 때리지..
나가시노처럼 조총병이 진지 정비한 상태에서 돌진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명을 치기 위해서는 계속 이동을 해야 하는 조총병이라..
만주 넓은 벌판에서 어느 한 타임만 방심해도 여진기병에 작살난다는 것입니다.

임란때 조선에 출병했던 5만~8만 명군에 대해
육전에서 일본군이 딱히 우세를 보였다고 할 수 없는데..
1619년 사르후전투에서,
3월1일 명나라 두송의 서로군,
3월2일 명나라 마림의 북로군,
3월4일 명나라 유정의 동로군,
몇일만에 10만 명군을 괴멸시킨 것이 여진기병입니다.
이자성이 난 일으켜서 명이 망했다고요??
그렇게 내부 반란이라도 이용해서 중원에 명암을 내밀려면,
이 정도는 해야됩니다.
똑같은 명군을 상대로 왜 조총병과 여진 기병이 보인 차입니다.

일본군은 내란용 깡보병뿐이라, 부분부분 적이 수세에 몰려도 적을 깨끗이 정리할 수가 없어,
우세한 전쟁이 끌 수밖에 없는데..

넓디넓은 본토에 명암을 내밀려면 강한 기병, 기병이 주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 얘길 하는겁니다.
전략설계 14-09-29 11:16
   
전쟁은 타율이 아닙니다.
몇전 몇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해야할 1번의 승리가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워털루전투나 거란10만 기병을 몰살시킨 귀주대첩도 1승일 뿐이고..
이순신장군 23전 전승에서 격침시킨 왜함선만큼
조선 판옥선을 침몰시킨 칠전량해전도 단지 1승일 뿐입니다.
몇전 몇승했으니까 조선이 이겼다 잘했다.. 이런건 야구해설가나 할 얘기입니다.
2천 정규병 있는 나라에 몇전 몇패했으니까 왜군은 노답이다..
요런거이 말 장난이라는겁니다.
몇전 몇패니 해서 야구 타율같은 것 갖다 붙여서 독특한 주장하지 말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바다에 성 짓고 적에 머물러 있으면, 공성을 해서 적을 몰아내야 전쟁이 끝나는 것입니다.
조선군 공성때 얼마 갔습니까??
전쟁을 끝낼 수 있기에 100승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1598년 전쟁 막바지임에도..
명군이 3만 가는데..
왜성 공성하는데 꼴랑 조선군 6천이니 1만이니 병력이 가고..
요것도 어쩌고저쩌고 말장난하든데..
소서행장, 가등청정 성 앞에다
조선군 6천명만 딸랑 들이밀면 도륙당할 판이라 그 병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성 근처도 못갈 병력입니다.
조선 독자적으로 공성을 못하고 명군 가니까 따라 간 것입니다.
쪽수 싸움으로..
울산성 공성이 실패한 것도 왜군이 6-8만의 지원군이 왔기 때문으로,
일정한 쪽수 없이는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쪽수라도 채워주니까 공성이라도 간 것입니다.
조선엔 그리도 사람이 없답니까..
지나라땅에 들온 적 내몰려고 가는데.. 중국애들이 3배수, 4배수가 되는 판이니..
변명만 쳐하지 말고 부끄러운건 부끄러운줄 알아야  반복되지 않은 것이고..
몇전 몇승이니 해서 그걸 합리화하면, 다음에 이런 꼴 당해도 당연한줄 압니다.
그것이 역사관이 노답입니다..

임란사를 한번 쭉 읽어보기 바랍니다.
이 전쟁에는 조선군이 1만이상 등장하는 병력이 없습니다.
광교산전투에 참가한 병력(3만-6만)은 군대라기 하기 뭐한게..
지휘체계도 없고, 농민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와키자카 2천에 와해되는
차마 군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립이 서울서 데려간 오합지졸 1만, (오죽하면 배수의 진을 치고)
임진강전투 때 1만,
평양성 공성에 1만,
울산성 1차전투에 1만..
육전에서 1만 이상이 안 보이고, 거의 이거이 전부입니다.
지나라에 백성들 코베가고 100만의 인적피해가 있는 상황에서..
군적에 정규병 2천에.. 실제 전투에도 육전에서 1만 동원한 것은 4-5번 보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의 몰골입니까??
대신 짱개들 5만-8만이 그 자릴 채워서 지 나라 전쟁도 아니고 열심히 싸운건 아니지만,
쪽수 채워서 존재감으로 전선이라도 형성합니다.
40만 요 성종 침입에 30만을 거병한 고려, 100년 평화시에도 17만을 거병해 금 되기 직전에 여진을 줘어팬 고려,
홍건적 침입과 정규병에 다름없는 왜병과 싸워가며 피폐한 상황에도 5만을 요동에 보낸 고려..
이게 님 눈깔로는 비교가 안됩니까??
상관도 없는 진주만이 나오고 마지노선을 갖다 대지 말고.
똑같은 민족에 같은 땅땡이임에도,
왜 조선이 이렇게 무력한 것에 대해서는 시인을 합시다이~~
그래야 "이러한 차이가 생긴 이유"에 대한 그 다음 얘기를 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shrekandy 14-09-29 13:13
   
다 몰아서 씁니다. 고려-요 전쟁에서 2차 전쟁은 고려의 패배 맞음. 강조가 뻘짓해서 개경까지 함락당하고 왕실은 나주로 피난가고 결국 고려쪽에서 항복함. (여기서 강조는 그래도 첫 몇전투 이겼다 그럼 님이 말하는 전쟁에서 타율은 중요하지않단걸 부정하는 꼴인걸 아시길). 그래서 요나라는 기분 좋게 고려한테 철수해주는 댓가로 이런 저런 조약 삥 뜯어감. 특히 고려가 요에게 친조하는 조건. 근데 이걸 또 뒤통수 치고 안 지킨 고려에 화가난 요가 다시 10만 기병을 보내고 이게 3차 고려-요 전쟁임. 그리고 여기서 귀주대첩이 나옵니다. 부슨 고려 전쟁사 제대로 알지도 못하네요

고려-몽골:
조선도 애초에 그렇게 일본을 잘 막지 못했다면 먹혔거든요? ㅋㅋㅋ 애초에 몽골 6번 40년 동안 침략해도 계속 휴식 기간도 있었고 고작 2-5만 정도 데려온거임. 6번 몽골이 끌고온 군사수 다 합해도 한 20만도 안될꺼료? 근데 임란때 일본은 그 수를 한방에 갖고왔고 그걸또 정유재란 때 까지해서 거의 3-40만을 끌고옴. 1차 임란때 20만, 2차 정유재란때 14만 정도. 즉, 고려는 맨날 3,40만 상대해도 이겼는데 조선은 고작 20만에 당했단 말또한 성립이 안됨. 토탄 34-40만으로 보는게 말됨. 즉 님이 님 함정에 빠지심.

유성룡:
유성룡이 상비군이 2000밖에 안된다고 한탄한 기록이 있단것만 동의했지 그 기록에 여전히 과장이 없다거나 진짜 100프로 정확하단 소린 안했음. 난독증?

그리고 유성룡이 무슨 엄청난 영웅적 인물인걸로 알거있네 ㅉ. 유성룡이 이순신 깐거 몰라요? 유명한데? 아니 애초에 선조실록에서의 유성룡 평을 봅시다

《선조실록》
 재상으로서의 그릇이 작고 붕당에 대한 마음을 떨치지 못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면 용납하지 않았고 임금에게 바른 말을 고하지 못하여 대신다운 풍절이 없었다

알겠음? 그래서 난 유성룡 2000설 못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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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본론으로 다시 들어가서 뭐 고려도 60,70년 평화다 하셨는데요, 60년 평화랑 200년 평화는 땅과 하는차입니다. 조선도 건국 이후 한 6,70년 된 세조때는 군사력이 43만명이였는데요? 아세요? 이때 일본이나 명이 쳐들어왔음 님이 좋아하는 대병력 끌고가서 박살냈겠죠. 아니, 아예 세조때 조선은 한술 더 떠서 명나라 제독이랑 연합해서 명나라를 공격할 생각까지 합니다. 고려가 이정도 깡이 있었나? 명사 보면 대륙이 조선때문에 떨엇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비교를 정확히 해야죠. 그뿐인가요, 고려는 호족들의 사병경계, 또 호족은 중앙군 경계, 또 후삼국의 혹시 모를 부흥 세력 견제까지 고려는 대군을 지킬수 밖에 없어요. 외부 사정만 있던게 아님

조선이랑 고려랑 침략수는 비슷하다 하는데 이것도 말도 안되는 비교임. 고려-요 전쟁에서 몽골까진 기간이 상당함. 반면 조선의 임란에서 병란까진 기간이 훨씬 더 짧음. 10년임 강산도 바뀐단 소린 요즘 세상에서나 먹히는 소리고, 옛 기술력갖고 국토가 죄다 유린당했는데 10,20년 내에 복구시키는건 말도 안됨. 예로 한국이 6.25전쟁 이후 세계 기록적으로 발전했지만 어쨋든 이것도 국가 재데로 원상 복구하는데엔 15-20년 정도 걸림. 근데 이괄의 난, 임란으로 피폐해진 국가를, 심지어 국토의 농토 거의 반이 없어진 상황에선 500년전 기술력으로 10년안에 원상복귀? 꿈 꾸세요.

고려 1차 요동정벌 예기 하시는데 그래봤자 1차 요동정벌은 원나라 망해가고 홍건적땜에 정신없어서 요동에 관심도 못 갖고 있을때 고려도 고작 1,5000명-3만명 끌고 가서 이긴거임. 그정돈 솔까 조선도 나진정벌등으로 군사수는 더 적지만 보여줌. 그리고 후기 조선 군사력을 너무 무시하시는데, 영정조때 조선의 군사력은 일본을 다시 압도합니다만? 청나라,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선진적이고 강했던 군대가 이때 조선 군대입니다만? 조총도 20만 정 이상에 총알도 1000만개 이상. 천보총같은 서양 머스킷급 총도 만들고, 판옥선은 임진왜란때보다도 훨씬 더 커져서 40m 급이 되서 서양 갤리온 대선이랑 거의 크기는 동급이 됩니다만? 하지만 이렇게 딱 60,70년 적당한 평화기간에, 청나라 때문의 적당한 긴장감이 있던 시기의 조서을 쳐들어 오는 놈이 없는데 무슨 조선은 언제 제대로 싸우는지 는 왜 물으세요? 누가 이때 쳐들어와야죠 뭐 어쩌라고요. 이래서 님이 쏟아 붇는 가정들이 다 망언과 헛상상이란 것.

히데요당시 도쿠가와가 건재하고 자시고 해도 임진왜란때 히데요시가 보낸 군사수는 자기 휘하, 즉 거의 모든 일본 군대의 절반 이상입니다만? 즉 사활 건거 맞는데요? 애초에 히데요기가 죽을때 '기어코 조선을 정벌 못하는구나" 하면서 한탄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만약 님 말대로 영주들 힘이나 좀 뺄 요량으로 공격한거면 이런 말 왜함? 또한 일본군은 최대한으로 싸우지 않았다니요? 평양 이후부턴 걍 조선 관군에 발리기 시작한거고 명군 피하고 방어전에 치중한건 이처럼 수적은 조선 관군한테도 저 통계에서 보여준것처럼 쳐 발리고 있는 상태에서 어느 미친놈이 공겨전을 합니까? 다시 말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첫 1년 이후에 일본군은 걍 조선 관군에 발리고 있었습니다. 몇달만에 경상도까지 밀렸지요. 이런데 무슨 더 수까지 많은 명군한테 공격전을 하길 기대하는건지 ㅉ.

일본군이 국내용 군이라서 어쩌란거죠? 그렇게 따짐 삼국지 중국 국가들, 영주들은 국대 전재보단 국내 전쟁만 죽어라 하면서 큰놈들이데 고구려, 선비족, 오환, 월남, 남만, 서융 다 잘만 쳐 부수던데요? 국내든 국외 전쟁이든 삼국지 국가들은 80년 정도의 혼란기동안 국내전쟁으로 얻은 노하우와 군사 전법등으로 국가대 국가전쟁에서 승리했음. 그럼 무려 80년도 아니고 200년을 국내 전쟁하면서 훈련한 일본군이 허접 군대란건 뭡니까? 역사학자들중 님처럼 일본군 무시하는 사람 없는데요? 게다가 신식 무기인 조총 무장에 여러 장군들이 이미 왜구 생활도 해봐서 조선의 여기저기도 잘 알았고요. 미국은 해외 전쟁 많이 해봐서 미-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을 걍 발라버린줄 압니까? 다 자원빨도 있지만 남북전쟁등으로 축적된 노하우와 이때 개발된 기관총, 철선, 지뢰, 수류탄등으로 이긴겁니다.
     
shrekandy 14-09-29 13:23
   
또 홍건적, 왜구같은 도적 집단을 조선 후기 서양 열강, 일본등과 비교하는데 말이 됨? 기술력, 경제력부터 겜이 안되는데? 광무개혁으로 국민소득, 무기 질에서 꽤 따라잡았지만 기간도 너무 짧앗고. 동학 농빈군들 한테 관군이 깨지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왕실 입장으로 타국 군대 빌려서 진압하는게 이해가 안되나요? 당연한건데? 조선 후기는 더 시대적으로 가까운 현대랑 비교해야하고 까막득히 먼 고려 말기랑 비교하면 안되죠. 그리고 현대엔 반란이 일어났는데 동학 농민처럼 정부가 쓸어질 위기면 미국, 러시아같은 국가 힘 빌려서 진압하는건 흔한데요?  역사를 볼땐 그 시대의 당사자의 입장에서 봐야지 요즘 시각에서 보는건 바보짓입니다. 요즘 시각에서 그 시절 일의 결과로 나온 교훈을 지침할순 있어도말이죠. 별개의 문제입니다. 생각해봅시다. 님은 깡패 두목인데 님 파에서 반란세력이 님 추종 세력 다 죽이고 지금 님 벽에 세워놓고 칼로 죽이려하는데, 알량한 자존심으로 걍 죽을레요 아님 옆에 라이벌 세력한테 도움이라도 빌어서 일단 살고 이후를 도모해보실레요? 후기를 도모하는건 애초에 역사적으로도 많이 있던 일이였고요.

또한 조선이 일본에 정탐도 보내서 어쩌라고요? 다시 말하지만 히데요시가 님 말데로 도쿠가와한테 발 묶여있는 상태에서 20만이나 데리고 거병할줄 누가 암? 히데요시가 조선 정탐꾼에게 "나 20만 데리고 갈꺼임 ㅇㅇ" 이렇다고한 기록이라도 있었음? 끽해야 예전 왜구들처럼 2만 정도 올줄알았고 그 정도는 님이 욕하는 1만 연타로도 쉽게 부숨. 이순신은 그리고 세계에서도 아주 특출난 위인인데 이순신이 이랬으니 이걸 못한 조선 조정은 바보다! 하는건 준수한 성적의 학생한테 "넌 국내 성적 1등 못하니 멍청이구나!' 하는것과같은 개소리임. 아 그리고 욕할꺼면 하시던가. 전 친절하게 반론을 썻으나 님이 갑자기 비꼬면서 난리쳐서 나도 그렇게 한거니까. 욕 잘한다고요? 퍽이나 자랑이다 ㅋㅋ
     
shrekandy 14-09-29 13:43
   
병자호란:

다시 말하지만 요즘 기술과 인구로도 전국이 유린된 전쟁후 10,20년안에 상태 복귀는 불가능.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기는 개뿔. 그건 과학 기술이나 문화예기고요. 그니까 발라드 시대에서 K POP 시대같은걸 말할때는 먹힐수있는 말이고 실제로는 씨도 안먹히는 소리. 한국만 봐도 2004년 이랑 2014 년까지 패션, 유행이 바뀐거지 뭐 건축술이 바꼈소 무기 질이 엄청 달라졌소...

즉 님은 무슨 이괄의 난 13년 후라 변명이다 하는데 이것도 말이 안된단 거임.

그리고 뭣보다 병자호란땐 조선 정부 자체가 유능한 인물이 없었단걸 잊지 말것. 유능한 인물이 없으면 대군이고 자시고 제국이고 뭐고 없는겁니다.

사르후/부차전투 를 모르긴 왜 모릅니까. 근데 왕조실록에 조선 조총병이 청 기마병 여러번 격퇴했다고 써있다니까요? UNESCO 지정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역사서로 지정된 책이? 다만 역풍에 바람/기후가 갑자기 바뀌어서 역으로 한판에 당했지만 동시에 이렇게 기후가 갑작스럾게 바뀌지 않았다면 조선 조총병이 청 기마대 완파했을걸요. 더군다나 조선군은 이때 장창병들로 유럽처럼 조총 부대 수비까지 시켜줬읍니다. 무슨 조총병이 만주에 갈때마다 말뚝 박을 필요없었다고요.

님도 알거아녜요 결국 유럽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한건 기병이 아니라 조총/깡보병. 그리고 귀주대첩 고려군도 깡보병이였던건 알죠? 깡보병이어야 대군이 가능한겁니다.

또 다시 말하는데, 명을 이긴 여진 기병을 털어먹던게 조선 기병이고, 또 이걸 털어 먹은게 일본 조총병인데요? 뭐또 신립은 늪에 빠졌네 뭐네는 걍 일부엿을 뿐이고 신립은 그때 패 이후로도 여러번 일본 조총군에게 돌격을 수 차례 해봅니다만 다 끔몰살.

전쟁은 타율이 아니라뇨? 꼭 중요한 전투 1번이 다라고요? 우리가 왜 고구려가 위나라한테 패할때 선전했다, 잘 싸웠다라고 하나요? 임진왜란 급으로 털렸는데 말입니다? 그 중요한 1번 전투 못이겨도 타율론 고구려가 더 잘 싸웠기 때문인뎁쇼? 추가로 위나라 군대 깡보병이였는데 고구려 철기마를 초반엔 당했지만 나중엔 완파했죠. 깡보병좀 그만 무시하시죠.

하여간 이렇듯 중요 전투 1번도 중요하지만 타율의 중요성을 부정하다니...뭡니까? 그리고 조선이 중요한 1번의 승리를 했냐고요? 한번이라도?...어이가 털리네요. 수십개 있는데요? 더 적은 수로 몇달만에 일본군을 경상도까지 몰고간 조선군의 수차례 승리가 다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대첩이 아니고 뭡니까? 다 중요한 1방인데요? 이렇게 중요한 승리를 높은 타율로 날린 조선 관군덕에 몇달만에 일본군이 경상도로 몰렸는데 뭐라니...그리고 유명한 행주대첩, 명량해전, 기타등등.
 명나라가  쪽수 채워줘서 공성이라도 했다?" 아니 조선군이 일본 상대로 공성을 한게 왜성들 몰려있던 경상도 지역 한계입니까? 그 이전 뺏긴 조선 성들을 도로 뺏는건 공성 아님? 뺏긴 조선성들을 다시 뺏을때 조선군은 벌판에서 싸웠답니까? 다 일본군 상대로 공성한거데 그것도 명군 도움 없이.  그리고 님은 200년의 노하우로 만든 왜성의 방어 시스템을 너무 무시하네요. 왜성은 벽에 누각이 바깟으로 삐죽 나온채 있어서 사다리로 데기도 어렵고, 적이 뚤린 성벽 위에서 공격하는게 아니라 작은 창문사이로 공걱하니 화살로 맞추기도 어렵고. 심자군 전쟁에서 그 수많은 이슬람군이 몇백밖에 안되는 군사들이 지키는 십자군 성 정벌하는데 더럽게 애먹은 이유가 같은 이유입니다. 첨 보는 성 종류를 공략해보는 조선이나 명나라 입장에선 당연히 고전하고, 이런 상태에서 명나라가 몇만씩 군대로 싸워주는데 조선이 괜히 대군 보내서 피해만 키울일도 없죠. 여진족도 다시 살피고 이참에 명나라 힘도 많이 빠지면 명나라가 조선한테 입김 불기도 좀 어려워지고. 그리고 저번 통계에서 보여줬지만 명나라군이 공성 포함 임진왜란 그 긴 전쟁중 실제로 싸운수는 일년에 고작 1번 꼴인데요? 총 8번. 근데 공성이 조선 관군활약이 아닌 명나라 빨에 그나마 한거다? 소설 쓰에요.
전략설계 14-09-29 17:31
   
고려-거란 전쟁이 어쨌다고요??
고려의 상대는 섬나라 내전용 깡보병 15만이 아니라,
이미 송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거란의 장군들 그 병사들,
당대 세계 최강 거란 40만 대군이었습니다.
조선처럼 오합지졸 1만 한달걸려 모아서 따닥따닥 내보냈으면 겜이 됐겠습니까??
북계에 10만 병력에다 강조가 30만을 거병해서 고려도 40만으로 맞선 전쟁입니다.
개경이 함락당하고 항복했다고요??
항복한다고 조선 임금처럼 땅에다 대가리 쳐박았답니까??
전황 자체가 임란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거란 40만 압록강 넘어오자마자 의주 흥화진(이후 백마산성)에서부터 막힙니다.
흥화진을 점령못하니, 병참과 심양의 중간기지격으로 무로대에 20만을 남겨놓고 내려오는데.
다음 성인 통주성도 점령을 못합니다.
임란때 부산성에서 평양성까지 일사천리였죠. 전라도지역 빼고는 함경도까지 다 털렸죠.
곽주성 하나 점령합니다.
그 다음 평양성 점령 못 합니다.
양규의 특공대가 곽주성 재탈환하는 통에..
압록강 넘어서 거란군이 점령한 중간기지할 성이 하나가 없는 상황에서..
모 아니면 도로 200킬로 거리의 개경을 직공합니다.
고려군은 전부 북계에 가 있어 이 개경을 지킬 병력이 없어 현종이 피난을 간 것이고,
인조같이 모자라게 붙잡히게 항복해야 하는 상황이라, 당연히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고려군이 북쪽의 주요 성을 전부 점령한 상태였고..
개경에서 노획한 물자를 마지막 보급품 삼아 거란군도 회군할 상황에..
고려가 강화조약을 맺으니, 거란이 덮석 문 것입니다.
왕이 여진족한테 대가리 꼴아박는 추잡스런 꼴을 보인 것도 아니고..
거란도 강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돌아갈 길이 까막득한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는 "강화"라고 나오고, 다른 데에서도
양규와 하공진의 정전교섭으로 화의가 성립되었다고 하는데,
어디에 항복이란 말이 나오나요??
"강화, 정전"과 "항복"이 똑같단 말입니까?
우리가 북한하고 정전했다고 하지, 항복했다고 합니까??
인제 역사를 창작하네요??
그렇게도 고려가 싫습니까??

제2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거란군 40만중 20만이 남아했지만, 기록상 3만을 잃었고,
동사, 병사, 공성 등 감안하면 최하 5만은 잃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반해 고려는 개경이 불탄 것 외에는 단 하나의 성도 잃지 않았습니다.
사로 잡힌 강조와 강화사절로 가서 요성종의 총애를 받은 하공진은 끝까지 소신을 지키다,
살해됐습니다.
지든 이기든 이정도 싸우면 나는 박수를 칩니다.
"양규"라는 영웅을 배출한 전쟁입니다.
언제 국군방송을 봤더니, 임용한선생이 한국전쟁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이 "양규의 활약"을 꼽더군요.
어디 고려-거란 2차전쟁을 임란에 갖다 댑니까??
2년전부터 전쟁기운을 느꼈으면서도 1만 오합지졸 충주로 보내다 깨지니까,
바로 텅 비어서 서울 버리고, 임진강끼고 1만 보내다 잘 싸웠지만,
그 장수 모함으로 죽이고..
평양성 내주고.. 의주로 가서 망명한다고 하다 황제한테 나무라는 말 듣고..
그렇게 사리분별이 안됩니까?/
다른게 안 느껴집니까?/
내가 다른 사람 생각을 개조시킬 수 없는 것이고.. 안 느껴진다면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만.
없는 역사 만들지는 마시고..
고려 조상님을 잘 싸운 걸 아무런 근거없이 오히려 항복이라고 없는 사실로 왜곡해서
비하하지는 마세요.
전략설계 14-09-29 17:53
   
고려-몽골 부분에 대해서..

몽골항쟁은 고려가 잘 싸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랜기간 항복하지 않고 버텨서 원에 합병 안된 점에 의미를 찾습니다.
그 이유로는 무신정권이 강화도에만 최정예병력을 갖다 놓고 지들 살 궁리만 하고,
외부에는 신경을 안 쓰고 알아서 지키라는 식이었습니다.

몽골병력은 적게 왔는데..
몽골 정예병이라면 싹 털어봐야 10만 정도 나오는데..
3만 가지고 러시아 정벌하는 애들을 두고..
일반적 기준을 가지고 몽골애들 병력을 논할 순 없는 것입니다.
몽골 10만기병에 당시 맞설 나라도 없고..

유성룡에 대해서..
유성룡이 왕에게 군비를 보고한 1594년 시무차자 내용은..
댁이 인정하고 안하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란중 조선의 군비를 내가 아는 것도 아니고 댁이 아는 것도 아니며..
시무차자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래서 국영방송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이 된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 자료 없이 인정하기 싫다면, 딴 데 가서 혼자 얘기하는게 낫지..
같이 토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기록에도 조선군이 1만 몇천 이상으로 움직인 기록이 없는게 임란입니다. (광교산전투 제외)
중앙에서 관리하는 상비 전투병 2천이란 것과 일맥상통한 내용입니다.
유성룡이 이순신을 깐네 어쨌네 쓸데없는 소리할 필요가 없다고요.
이순신을 깠으면 그게 어쨌다고요??
팩트만 얘기를 합시다.
전략설계 14-09-29 18:10
   
세조 40만설 퍼트리지 마시고, 임란만 얘기를 하자고요.

홍건적 침입
제1차 침입 1359년 서경 함락,
제2차 침입 1361년 개경 함락

왜구침입
1350년~1390년 (1389년 박위 쓰시마정벌)

1388년에 5만 병력으로 요동을 치러가는데..
이거는 평화시입니까??
왜구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1년뒤 또 쓰시마 치러갑니다.

이걸 평화시라고 할까요, 전쟁중이라고 할까요..
공부 못하는 애한테 못하는 이유 대라면 날 새가면서 댈겁니다.
평화시니, 전쟁중이니, 머를 갖다대도 조선의 사대 문약함은 변명할 수가 없으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를 갖다대니 말라는겁니다.
임란이 평화시에 맞이한 기습이었습니까??
2년 전에 보낸 통신사는 왜 보냈고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겁니다.
공부 못해도 이유는 다 댈 수 있습니다.
지금 아시안게임하는데 지는 이유는 다 댈 수 있습니다.
있는 팩트만 놓고 보면 조선과 고려는 평화시든 전쟁중이든, 전쟁이후 피폐기든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걸 댁의 말로 대충 얼버무려서 없는 것처럼 할 수가 없습니다.

임란 어디에 장수의 명령체계가 잡힌 5만 병력이 나옵니까??
병자호란은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 넘어온줄도 모르고 남한산성 올 때까지 터치 한번이 없습니다.
임란 끝나고 40년입니다.
2년전에 정탐까지 보내놓고, 한사람은 전쟁난다고도 했는데..
임란은 평화시에 당한 것이다.. 끝
병자호란은 피폐해서 싸울 수 없었다.. 끝
언제 잘 싸울랍니까?/
평화시는 평화시여서 못 싸우고, 전쟁뒤에는 각성도 할 법인데..
전쟁뒤에는 피폐해서 못 싸우고..
또 그담 평화가 오면 평화시여서 못 싸우고..
한번 당하고 나면 피폐해서 못 싸우고..
댁 논리면 잘 싸울 날이 없겠네요.
전략설계 14-09-29 18:23
   
평양성 전투부터 조선관군에 일본군이 발려요??
지금 장난칩니까??
꼴랑 4천명 수비하다가 평양성 뺏기고..
반격한다고 조선군 1만 갔다가 성밖에 있는 왜군 수십명 죽이다가 왜군이 성에서 튀어나오니까,
도망간 것이 전부인데..
평양성부터 관군한테 발려요?/
좀 팩트만 얘기합시다.

나중에 이여송이 명군 4만 오니까, 거기에 관군 1만이 껴서 평양성 탈환한 것이고..
조선관군만으로는 성밖에 돌아다니는 애들이나 몇 잡았지, 공성 시도하지도 못했습니다.
좀 역사적 사실만 얘기합시다.
고려-거란 2차전쟁을 임란에다 갖다 비교하는데,
거란군 압록강 도하하자마자 200킬로도 안되는 지척의 평양성이지만 점령 못했습니다.

몇전몇승 타율 좋아하시나분데.. 전쟁에는 그런거 다 필요없고요.
명군 없었으면 조선관군만으로는 공성 시도도 불가능했다 요거이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실이네요.
역사를 자꾸 만들어써서 입이 다 아픕니다.
역사를 "우리나라 만세"로만 좁게 보지 말라고요. 있는 그대로만 보자고요.
관군에 발려요??

선조가 몽진한 의주성 앞에 평양성을 공성조차 못하는 조선관군인데..
전쟁의 그 다음이 어딨고, 미래가 어딨나요??
이런 전쟁의 중요한 길목에서
조선군 독자적으로 공성을 성공시켜 1승을 해야 관군이 왜군을 발렸다고 할 수 있는겁니다.

1만수천의 왜군이 지키는 성을 1만급으로 어떻게 공성을 합니까??
공성 하라고 보내는 선조가 미친늠이지..
쪽수가 있어야 멀  하는데..
조선쪽에 쪽수조차 없는 전쟁인데.. 몇전몇승 타율이 멀 의미하는대요??
고려-거란 2차 전쟁 고려쪽에서 40만이 전쟁에 투입됐고..
비록 강조가 장기두고 여유부리다 대패했지만, 고려군 사망자도 3만 이상입니다.
오고가는 쪽수 급이 다르고, 그러니 송을 누른 거란대군 앞에서 야전을 펼친 것입니다.
1만 정도 따닥 따닥 가뭄에 콩나듯 내는데.. 먼 전쟁을 합니까..
2년 전에 정탐보내놓고도 그런 정신자세니,
황제한테 야단맞아가며 망명 퇴짜 받아가며, 외국군대 불러와서 평양성 공성한 것이죠.
딱 고 수준이니까 고런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외국군대에 기대고 얼마나 은혜롭게 생각했으면,
나라 없어진 지 300년이 다 되가는대도 중국황제 제사 챙겨서 지내고..
전략설계 14-09-29 18:57
   
일본 내부 상황에 대해서..
일본은 전력을 다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1590년에 호조 정벌로서 그나마 일본의 내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그건 외관상일뿐, 우에스기는 나중에 이에야쓰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여서..
이 복잡한 정세속에서 어린 자식의 늙은 히데요시가문을 영주들이 맘속에서 충성했겠냐 그겁니다.
세키하가라 이전에도 히데요시쪽 영주들이 이에야쓰쪽으로 넘어가고, (가등청정 등)
세키하가라 전투중에도 히데요시 진영에서 싸우는 놈 안 싸우는 놈 그제서야 나타나는 상황에서..
히데요시가 언제부터 관백이었다고..
조선에 출병한 다이묘들이 열심히 자기 병력 소진해가며 싸우겠냐 그겁니다.
그러니 툭하면 정유재란때 직산에서 명나라가 크게 사고 치지도 않았는데..
그걸 빌미로 해서 남해안으로 겨 내려가고..
조선에 온 다이묘들은 자기병력 보존이 제1의 과제였고..
바닷가에서 전쟁끝까지 죽치고 논 것입니다.
히데요시도 인제 막 일본내 영주를 정리한 상황에서..
이에야쓰한테 빌빌대면서.. 비록 교토에서 동쪽으로 영지를 밀었지만 250만석씩이나 선물해서
미련한 짓이나 하고..
이에야쓰가 수 틀리면 영주들 전부 들고 일어날까봐서..
그러다 정권이 넘어가는 빌미를 제공했는데..
히데요시가 일본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조선을 치고 명을 칠까요.
그걸 믿는다면 순수한 것입니다.
히데요시는 히데요리가 장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 싶은 그런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이까지 영주들의 힘을 빼고 "일본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임란을 일으켰다고 봅니다.
1590년에 일본내 전쟁이 끝났는데, 바로 전쟁준비에 들어간 것은,
히데요시가 호전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김정일, 김정은 호전적이라고 표면 그대로 보면 순진한 것이고, 생존을 위한 방어적인 것으로 호전성을 보이는데
히데요시의 조선침략도 이와 똑같이 내부에서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영주들이 딴 마음 먹고 서로 연합하고 하는 것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
조선 나가서 힘을 소모하고, 안 나간 다이묘는 대규모 성을 짓는 토목공사에 동원해,
자금을 소모시키는 것으로,
이에야쓰도 결국 막부 열고 이와같은 영주의 힘을 빼는 정책을 폈기에, 특이한 것이 아닙니다.
전략설계 14-09-29 19:08
   
통신사에 대해서..
선조가 황윤길과 김성길을 일본에 보낸 것은, 일본이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힘을 한 곳에 모은 소식을 듣고나서
보낸 것입니다.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니라, 전쟁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정사인 황윤길이 전쟁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걸 받고 안 받고 조선조정에 달려 있는 것으로..
부사도 아닌 정사가 전쟁이 난다고 했음에도 전쟁준비를 안했다면 그건 조선 조정의 무능입니다.
두 사람 의견이 갈렸다면 반반이지, 천재만 알아듣는 것은 메시지가 아닙니다.
선조가 명해서 일본을 정탐하러 통신사를 보냈다는 사실에서,
평화시에 뒤통수 맞았네 이런 소리 할 필요 없다 그것입니다.
통신사 정사, 부사를 임명한 것은 1589년이니 3년전에 이미 불길한 낌새를 챈 것입니다.
전쟁중에도 적이 서울로 치고 올라오는데도,
인구 1천만에 가까운 나라가 1달을 서울서 모집해서 1만 오합지졸 만들어내는 그 정신으로,
전쟁의 낌새를 느꼈다고 제대로 준비했겠습니까?? 전쟁나서 수도가 위협받아도 그 모냥인데..
전략설계 14-09-29 19:15
   
"사르후/부차전투 를 모르긴 왜 모릅니까. 근데 왕조실록에 조선 조총병이 청 기마병 여러번 격퇴했다고 써있다니까요?"

어디에요?/ 기록좀 봅시다.
부차전투 직전에는 명나라 유격 교일기가 채촉하고 쭉 이동만 하다가..
후금 기병 500명 교일기가 공격한 뒤 조선군보고 마무리 지으라고 했는데, 추격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동로군 명군 본진 전멸하고 임란때 왔던 유정도 전사합니다.
뒷날 부차에서 조선 조총병 여진 기병에 싹쓸이 되는데..
사르후/부차에서 조선 조총병이 먼 승전을 올려요?

그러고 기후가 아니라 여진부락에 불이나서 연기가 났다는 말이 있는데.
연기나서 총을 못 쏠 상황이면, 여진기병도 못 움직였으리라고 전문가들은 보네요.
1619년 3월 4일 기후가 어쨌다고요? 또 변명인가요..

몇일 사이에 명군 10만이 싹 없어졌습니다.
요게 여진기병입니다. 기병과 조총이든 뭐든 깡보병의 차이입니다.
한번 기회를 잡으면 끝을 볼 수 있는 것이 기병이고 깡보병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략설계 14-09-29 19:30
   
"님도 알거아녜요 결국 유럽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한건 기병이 아니라 조총/깡보병. 그리고 귀주대첩 고려군도 깡보병이였던건 알죠? 깡보병이어야 대군이 가능한겁니다."

--> 강감찬의 고려군이 깡 보병이라고요?? 틀린 얘기네요.
      귀주대첩에서 결정타를 메긴 부대가 고려군의 김종현 철기병 1만이란 얘기는 첨 듣나 보죠.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은요..
      첨부터 끝까지 거란이 얻어터집니다.
      깡보병이 기병을 어떻게 쫓습니까??
      귀주대첩도 개경을 포기하고 지 나라로 거란군이 회군하는 와중에 조우한 것으로..
      고려가 깡보병이면 거란은 피해서 올라가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도망가다 도망가다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상황까지 고려군이 추격해오니,
      회군중인 거란군이 귀주에서 결판을 내려고 한 것이었는데..
      귀주에서 강감찬의 고려군이 깡보병이란 말은 그냥 거짓말입니다.
      거란전쟁 수십년에 이 3차쯤 올쯤되면 고려군과 거란군은 편제도 비슷해지고,
      기량도 비슷해집니다.
전략설계 14-09-29 19:42
   
"더 적은 수로 몇달만에 일본군을 경상도까지 몰고간 조선군의 수차례 승리가 다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대첩이 아니고 뭡니까?"

--> 일본군이 퇴각한 시작이 어딥니까??
      평양성 수복입니다.
      평양성 수복을 누가 했습니까??
      몇달만에 조선군이 일본군을 경상도로 밀어내요??
      1592년 4월에 임란이 시작돼서, 평양성 수복한 것이 1593년 1월입니다.
      이때도 조선군 1만은 왜군 매복에 걸려서 손실이 많았고요, 4만 명군이 각종 대포로 때리고 들어갔는데..
      벽제관 전투에서도 조선군은 명군 후방에 위치했고요.
      행주산성전투는 전라도의병 2천명이 올라와서 전투를 벌린 것이고..
      의병, 수군의 활약은 인정하지만..
      관군이 몇달만에 경상도로 왜군을 밀어내요??
      임란전사책이 없으면 인터넷이라도 검색하시고 글 쓰시고요.
      내가 댁 역사관 교정하는 사람도 아닌데.. 쌩노가다네요..

      명군 없이는 평양성 근처에서 어기적거리고 공성시도도 못해본 관군이 어쨌다고요??
      임란의 주전선이 부산-한양-평양-의주 라인인거 아시죠..
      임란때 벽제관에서는 명군 뒤라도 조선군이 따라다니기라도 했지,
      정유재란때는 임금 계시는 한양으로 치고 올라오는 왜군에 맞서는 조선군이 없습니다.
      명군이 제지합니다. 왜 우리나라 전쟁을 외국군이 막아줍니까?/ 쪽팔린지 압시다.
      쪽팔린지 알아야 사람입니다.

      명군이 직산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맞서주는 군대가 없으면..
      한양까지 직공이죠.. 또 한번 한양 뺏길뻔 했습니다.
      한계가 1만인 조선군 따닥따닥 1만씩 야전에 내보냈다가는 포위돼서 도륙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부산-의주 라인이나, 울산성, 순천왜성 같은 대규모의 병력이 맞붙는
      주요 전장에는 조선군이 아예 안 보이거나 조연 역할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이런 것인데.. 타율놀이합니까?/
      한양 쳐들어오는데 맞서지도 못하면서 몇전몇승이 먼 필요가 있습니까..
전략설계 14-09-29 19:56
   
그러고.. 평화시의 윤관의 여진정벌은 동북아 정세가 어쩐다고요??
거란이 망해가는 판이고, 100년간 고려에 전쟁이 없었습니다.
고려와의 전쟁으로 쇄잔해진 거란의 능력으로는 고려를 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삼각구도라.. 그래봐야 평화시입니다.

명을 잡은 여진기병을 조선기병이 털어먹고, 그 조선을 일본이 털어먹었다고요??
일본 조총병 예찬론자가 나오셨나붑니다.
조선이 임란전에 여진 몇번 쳐들어간지 아십니까??
조선이 여진기병 몇천하고 한번이라도 붙은줄 압니까??
가면 마을 불사르고.. 보내놓고도 전과가 없다는 말 나옵니다.
마을좀 불사르는걸 붙었다고 할 수 있나요??
 
임란때 일본 깡보병들이 명군 제대로 두들기던가요??
그 명군이 20년 뒤에 만주에 가서 몇일 사이에 여진기병에 10만이 없어집니다.
조선기병과 여진기병이 수천이라도 제대로 붙은 적이 없고..
명군, 왜군, 여진기병은 요렇게 정리가 되네요.

하물며 깡보병으로 만주를 거쳐 요동으로 어떻게 갑니까..
부산-평양선 보급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인데..
동북아에서 깡보병으로 중원을 넘보던 군대가 있던가요??
총포류를 일본만 썼나요. 대포는 명나라가 강했고, 함선의 포병도 조선이 더 강했지..
화포류가 일본의 전유물이랍니까.. 중국에서 퍼진게 돌고돌아 다시 아시아로 돌아온 것이지..
느릿한 보병으로는 보급하다가 나르는 사람이 다 먹어치우는 판이라..
전장의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임란이 보여준 것입니다.
전략설계 14-09-29 20:06
   
"이런 상태에서 명나라가 몇만씩 군대로 싸워주는데 조선이 괜히 대군 보내서 피해만 키울일도 없죠. 여진족도 다시 살피고 이참에 명나라 힘도 많이 빠지면 명나라가 조선한테 입김 불기도 좀 어려워지고."

--> 바로 요런 생각이 "사대주의"입니다.
    평양성을 수복할 때도 한양을 치고 내려갈 때도, 외국군대 앞세워 꼽사리 낀 것을..
    명나라 보태주는데 우리가 군대 내보내서 왜 피해보냐고요??
    "지나라를 지가 지키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사대근성입니다.
    그런 생각이기에 글을 그렇게 썼나봅니다.
    임란때 조선의 왕과 신하들이 딱 댁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죽이 맞네요..

    그래서 그렇게 대국을 불러와서 피해보기 싫어서..
    3년전부터 전쟁의 낌새를 맡고도 준비 하나 안하고.. 꼴랑 1만 오합지졸 보내서 다 죽이고..
    대국에 기대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왕은 서울을 방어할 군대도 준비하지 못하고..
    혼자 살라고 튀고.. 평양성 4천 수비병 남기고 튀고..
    대국한테 기댈라고 망명요청하다 황제한테 디지게 욕먹고..
    혼자서 1만 보냈다고 평양성 근처서 놀다 돌아오고..
    대국군대 4만 오니까.. 같이 싸우다가.. 벽제관에서도 뒤에 따라다니다..
    바닷가에 있는 애들.. 5만 10만이든 일어나서 몰아내면 빨리 끝날 전쟁..
    꼴랑 6천, 1만 명군에 꼽사리 껴서 공성하다가.. 실패하고..
    풍신수길 디지니까 그제서야 끝난 전쟁..

    결과적으로 100여만에 이르는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
    잘한 일입니다.
    대국의 군대가 있으니까 병력을 덜 내보는게 피해를 줄여요??
    진주성에서 죽은 조선사람만 7만명입니다.
    머를 아껴요?? 머를 아껴서 무슨 피해를 줄여요??
    전쟁나면 적 물러날 때까지 총력전이지, 대국군대 왔다고 우리 병력 아껴요??
    그것이 외부에 의타하는 "사대주의"입니다.
 
    지금까지 사대주의자가 사대주의에 물든 조선왕조를 변명한 것이었네요.
    이거는 정신개조할 사항이지, 토론할 꺼리가 아니네요.
    댁하고 나하고는 생각이 많이 틀리니, 사대주의에 취한 얘기는 혼자 하기 바랍니다.
     
aosldkr 14-09-30 00:03
   
그건 님의 주관적인 역사관이죠. 애초에 명나라한테 원병받았다고 우리나라 병사를 적게 투입하는 건 전 딱히 평화주의적인 입장에선 뭐라 할 판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주성에서 죽은 조선인들은 일반백성이 대부분인 걸로 알고 있고요.

그리고 위에 저 분이 써 주셨듯이, 2차 거란 침입때에 왕이 열몇명이 안되는 신하랑 궁녀 데리고 임신한 왕후까지 챙기면서 피난간 사례는 임진왜란에도 없는 걸로 보이는데요.
그리고 임진왜란 종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행주대첩은 관군이 합세해서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관군에서 마련한 화차가 없었으면 끝났을 게임이었기도 하고요. 이외에도 진주대첩이나 수군의 전과들도 결국엔 관군 아닙니까? 이순신도 따지고 보면 관군인데 말이죠.

애초에 님 의견 자체가 '고려는 자체적으로 난 극복 했으니 조선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정도인데, 금나라에 사대하거나 몽골에 항복해서 나중에 하는 꼴 보면 꼭 그렇다고도 못한다 봅니다.
          
전략설계 14-09-30 19:20
   
조선은 임란에 있어 명나라 군대를 의지해 병력을 적게 투입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 군대 투입전부터..
병력이 없었습니다.
적이 서울을 향해 오는데, 신립이 서울서 한달을 모은 병력이 고작 1만입니다.
평화주의적 입장요??

왕이 피난가는 과정이 머 그리 중요하답니까..
누구처럼 백성들한테 돌맹이 맞고 피난가는 것도 아니고..
오랑캐 앞에서 대가리 쳐박은 것도 아닌데..
공성에 실패해 중간 보급기지가 없는 적이 누구도 예상 못한 개경직공을 펴서,
북쪽에 다 군대가 나가있어 왕만 피신한 것을..

행주대첩이 종전에 영향을 미쳐요??
행주대첩이 있었던 년도나 알고 하는 얘기입니까??
전쟁 발발하고 1년도 안된 1593년 2월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서울 수복하기 전에 벌어진 전투를 가지고 종전에 영향을 미쳐요..
내가 이런 글에 왜 답변다나 싶네요.

의병과 수군의 활약은 계속 인정해오던 터입니다.
육전에서 상시로 적과 대치할 수 있는 지휘체계를 갖춘 대규모 병력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것이 임란엔 없다는 것이고, 있어도 여기저기서 급조한 1만 정도 4-5번 나오고 끝납니다.

진주대첩이 관군이요??
논개가 임란 의병장 최경회의 첩인지 모르나요??
비록 김시민 목사 휘하의 관군이 있었긴 하지만, 진주성에서 항거한 주력은,
진주시민과 전라의병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평화주의자여서 병력 아껴서..
진주에서만 7만이 순국했는데.. 그렇게 병력 아껴서 뭐하게요??
명군 혼자 다 할 것 같으면 전쟁이 7년 갔겠습니까??
우리가 개전하면서부터 일치단결해서 10만이라도 조직적으로 체계를 갖고 병력동원했다면,
전쟁도 빨리 끝나고, 코베갈 일..
진주성 사람들 7만 목숨 잃을 일도 없었고, 그게 평화인 것입니다.
조총 앞에서 평화를 병력 덜 내는 걸로 찾아지나요??
     
shrekandy 14-09-30 12:30
   
에효...돌아버리겠네. 이게 제 마지막 답변입니다. 여기 미국 어제까진 일요일이여서 긴 답변 쓸 시간이 있었으나 저도 주말 끝나서 바쁘고 시험 연타로 준비해야하거든요. 누구처럼 긴 댓글 11한개 달 잉여인간이 아니라서여

1. 고려-거란 전쟁
아니 다시 말하는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생각보다 많이 조총무장 안했다고 하는 사람은 봤어도 님처럼 걍 깡보병 열라 후진 군대라고 하는 미친놈은 본적이 없네요. 그리고 aosldkr님이 써주셨듯 2차 전쟁때 고려는 강조 30만 잃고 걍 털리고 요나라한테 고려왕이 친조하는 조건으로 전쟁 끝낸거 맞거든요? 님이 갖고 있는 자료가 어쩌라고요 인터넷만 뒤져봐도 모든 자료가 친조라고 하는판에.
고려가 막판에 잘 싸워서 거란 군을 궁지에 몬건 맞지만 당시 서경도 함락당하기 직전이였고 고려왕은 선조보다도 더 추잡한 모습으로 피난에 솔까 고려가 마지막에 치른 대승 정도는 조선도 임진왜란 막판에 노량해전처럼 이름 댈수있읍니다만? 까먹지 마세요 이순신과 수군또한 엄연한 관군입니다
하여간 선조가 일본한테 조선왕이 입조한다라는 조건으로 1차나 2차전쟁 끝냈음? 2차 여요나 임진왜란이나 막판엔 한반도 국가의 완승으로 끝났는데 이걸 보고 고려는 요나라가 더 짱이니 만세고 조선은 이겨도 ㅄ이고 이런 뭣같은 소리 좀 하지 맙시다. 고려나 조선이나 초반에 개 털리고 막판에 승전한건 똑같습니다. 고려는 다만 원래 한국에서 시작부터 강한 북방 경계선이 침공당한거고 (일본군도 이 북방 경계선에 다르니 조선 동북면 정예군에 썰리기 시작했고) 조선은 원래 허약하고 침략도 받아보지 않은 남부 전선이 사상 최대의 대군으로 침략받은 거라서 조선의 상태가 더 처참해 보일뿐.  고려 조상님일 잘 싸운걸 욕되게 하지 말라고요?그럼 조선 사람들은 우리 조상 아님? 그리고 님이 예전에 올린 글 봤는데 무슨 강감찬이고 자시고 다 유럽 군주들인가에 비해 허접하다란 뉘앙스로 써놨구만 여기선 또 위대한 조상이란건가? 뭐지 이 이중성은?

고려-몽골:
러시아를 3만으로 정벌이라뇨 첨엔 한 2만 가져갔고 후엔 35000 + 40000 보병까지 총 75000, 모두 다 합쳐서 100,000으로 공격합니다만? 그리고 몽골 10만 기병에 맞썰 나라가 없다니 몽골에 승전한 나라가 한두갠가, 그 송나라만 해도 40년을 왔다갔다  할정도로 팽팽히 싸웠는데.

유성룡:
애초에 역사스페셜이 100프로 확실하단 근거도 없고 오히려 요즘은 환빠물 먹었다고 까이는 프로이기도 하죠. 참고로는 좋습니다만 그거 방송 하나가지고 으어으어라니요...
그리고 님이 자꾸 1만 1만 거리는데 이것도 잠깐 생각해보면 답 나오는데 짜증나네요. 요나라, 몽골이랑 전쟁할때 한국이 수군을 썻나요? 안했습니다. 근데 조선은 일본과 싸울때 수군도 썻기에 군대가 양분되었으니 당연 육군수가 고려때보다 작아보일수밖에 없고, 또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관군 수군이 임진왜란 발발할때 최소 5만 대군이건 알죠? 당시 무적함대 스페인도 수군이 고작 15000명인데 5만 관군 대군입니다. 이건 포함 안시킴? 이순신은 뭔 의병 해적임? 

자 그리고 유성룡 기록봅시다

"신립이 충주에 이르니 충청도의 여러 고을들에서 8천여명이 징집되었다." -16세기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유성룡이 즉시 모집한 장사(壯士) 8천 명을 신입에게 소속시켜 떠나게 하였다.
... 인근 고을에서 거둔 군사는 겨우 8천 명이었다." -선조수정실록

서울 8천 + 인근 고을 8천 = 1만 6000명.
여기에 징비록의 충청도 8천을 더한다면 24000명.

 이뿐일까요?

조선 왕조실록 선조실록은 아ㅖ 10만 대군이였다고 합니다

"변란이 있을 처음에 신립(申砬)이 도순찰사(都巡察使)가 되어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조령(鳥嶺)에서 적을 방어하였는데,
신립이 험조한 곳에서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고 평원 광야(平原廣野)로 영입(迎入 :적군을 유인)함으로써 좌우에 적이 가득 차서 미처 교전도 못하고 10만의 정병(精兵:정예병)이 모두 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끝내는 경성(京城)을 지키지 못하고 임금이 파천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變初, 以申砬爲都巡察使, 領大軍, 禦賊于鳥嶺。 砬不爲據險把截之計, 迎入於平原廣野, 左右彌滿, 曾未交鋒, 而十萬精兵, 一敗塗地。
遂使京城不守, 乘輿播越, 痛哉!
-선조실록 71권, 29년(1596 병 신 / 명 만력(萬曆) 24년) 1월 24일(신묘) 3번째기사

당시 대패가 부끄러워 패전손실을 줄이길 좋아하던 시대에 떡하니 10만을 잃었다고 써있네요. 뭐 이게 태반이 당시 농민이든 뭐든 애초에 당시 모든 국가들은 징병제가 없었고 모병제에 농민을 나이 되면 군대에 차출하는거니 딱히 다를것도 없습니다. 다만 200년 평화기였기에 훈련이 안되었겠지만. 그밖에 난중잡록,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 서정일기등 많은 기록들이 수만의 군대라고 씁니다. 과장이든 아니든 당시 조선군은 분명히 대군을 끌고 왔고, 바다에서도 이순신의 대규묘 5만이 버티고 있었고. 아니 애초에 님이 1만 이상 병령 투입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 망할 칠천량도 2만이상의 대 수군을 끌고 간겁니다만? 만약 이순신과 원균이 고려때처럼 육지에서만 싸웠다면 이 7만 대군또한 육지에서 싸웠겠죠

- 세조 40만설:
아니 이게 왜 팩트가 아님? 님 어이가 없는게 자기 주장만 팩트고 남말은 다 허구하네요.

弘治四年,戶九百十一萬三千四百四十六,口五千三百二十八萬一千一百五十八  명사  홍치4년 (조선성종19년)  호수 911만 3446 인구 5428만 158명     대저 병졸(兵卒)은 정예(精銳)함을 귀하게 여기고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인민(人民)은 무려 1백만 호(戶)나 되는데 그 중에서 활을 잘 쏘는 병졸이 30만 명이고, 정예(精銳)한 병졸이 10만 명이며, 용감한 군사가 3만 명입니다  세조 12년 병술(1466,성화 2) 

어때요? 심지어 제가 나중에 기록 또 보여드리겠지만 이때 세조 시기 조선이 명나라 도독인가랑 연합한게 발각되서 명나라가 뒤집힌 기록도 있읍니다. 이게 건국후 70년 이후로 고려-요 전쟁때 랑 비슷하고 즉 조선이 허구한날 남한테만 기대던 사대주의 국가가 아니라고요 ok? 사대주의 국가가 명나라 쳐들어 갈 기미를 계속 보이고 다닙니까? 고려는 요나라, 송나라 쳐들어간다고 거의 공식선포한적 있나요? 분명 고려도 큰소리 땅땅치던 대국이였지만 조선도 그에 못지 않았걸라요? 근데 님은 무슨 갑자기 뜬끔없이 임란 얘기만 하제요 핀트도 못잡고 있소?
          
전략설계 14-09-30 19:23
   
내가 한번 경고했을건데 "미친놈 첨본다"라고 욕질해서,
존칭 필요없다는 걸로 받아드린다.
너는 욕하고 존칭하냐?

고려가 2차 거란전쟁에서 항복했다면서 미친놈아??
이제 와서 말 바꾸냐??
어디에 고려가 거란한테 항복했다고 나와있다고.. 그걸 찾아내라고 미친놈아??

니 눈깔에는 정전하고 항복하고 똑같냐??
우리가 북한하고 정전했지 항복했냐 미친놈아??

러시아 제베 몽골기병 2만으로 다 쓸고, 3만으로 튜튼기사단까지 다 쓸었는데..
10만 몽골기병에 45만 호라즘군대까지 무너지고..
10만 몽골기병에 안 무너질 나라가 어딨어??
고려도 몽골하고 40년 전쟁했는데, 대국인 송이 40년 버텼다는게 먼 소리여..
몽골하고 전쟁해서 버틴 나라가 어디여..
몽골기병하고 붙어서 제대로 이긴 군대는 이집트 맘루크 말고 누가 있어..
오스트리아 비인까지 쳐들어가고, 원나라 하고 남긴 칸국들이 그 증거여..
아시아에서 바다 일본하고 정글 베트남 말고.. 누가 살아남았어..
고려는 몽골에서 지척이여..
몽골에 승전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여?? 어디가 그렇게 승전했는데..
원은 칸국은 머여..
영토가 로마, 나폴레옹, 당태종하고는 비교가 안돼.. 그렇게 설치고 다닌게
그 군사적 힘이 있다는 것인데..
인제는 고려 까고 싶어서 몽골군대도 까냐??

그래서 학계에서 8천, 8천, 8천 더해서 탄금대에 조선병이 2만4천이란걸 믿든??
역사학자도 다 분별이 있어..
1594 유성룡의 시무차자는 구체적으로 당시 정규 병력 상황을 열거놓은 기록이여..

"군적 상의 전체 군인 수는 145,620명, 이중 정로위, 갑사, 별시위 등의 정예병은 23,620명, 그런데 정예병 중 전투원은 7,920명, 나머지 15,700명은 전투원을 지원하는 보인, 즉 비전투원이고 그나마 8,000도 안되는 전투원이 항시 국방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1년에 3개월만 근무하고 교체되어 평상시에는 2천의 정예병만이 국방을 맡았던 셈이다."
라고 10명 단위까지 정확히 나오니.. 역사학자들에게 정설로 인정을 받는 것이고..
실전에서도 임란에서 조선군이 1만 이상 병력이 안나와 이를 입증하는 것이지.

저기서 군적만 빠지면 조선병력 14만6천이 되는 것이라..
세조때 43만 누가 믿어??
윤관처럼 군사편제에 장군명에 병력얼마 딸려보내고, 실전 상황을 봤을 때..
17만 병력을 믿는 것이지.. 사서에 한줄 있다고 그걸 믿어?? 현실성이 있어야지..
43만이 동원되서 훈련이라도 했던 기록이 있냐..
43만이 어디에 어떻게 배치됐단 기록이라도 있음 믿어줄게...
군적상의 병력이지..

세조때 피부병도 못 고치고 병치레로 고생한 사람인데..
명 정벌하려고 했다고??
효종때 북벌은 들어봐도 세조때 명 정벌은 첨듣는 소리다.. 기미를 보였다는 머여??
천명이라도 압록강 건넜냐??

10명단위까지 나와 있는 시무차자의 내용을 부정하기 위해,
'세조 43만설'에 '기미를 보였다' 요런걸로 도배를 하면, 전부다 인정이 되고,
전부다 부정이 되냐..
남들이 다 수긍할만한 걸 대라..
"세조가 43만을 일으켜서 명 정벌을 준비했다" 그거지.. 소설을 써라이~
          
전략설계 14-09-30 20:09
   
뜬금없이 임란얘기를 하냐고??

니가 조선이 평화시에 임란을 맞아서 잘 싸우지 못했다고 해서 시작한 논쟁이여..
미친눔 아냐??
     
shrekandy 14-09-30 12:42
   
그리고 계속 강조하는데 님은 200년 평화에 군사력 약화가 자꾸 핑계라고만 하는데 님이 바로 그 약화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조선 보다 더 험약한 환경인데 군대 10만으로 축소하자, 군사는 집지키는 개, 군 가산점 폐지 거리는 나라가 바로 현재 대한민국입니다. 고작 60년 평화입니다. 님이 바로 댁이 욕하는 현상을 겪고 있으면서 500년전 국가에선 그럼 안된다고요? 뭔 개같은 논린가요? 대한민국이 잘하고 있다가 아니라 이런 해이해짐은 당연한겁니다.

고려가 계속 위기속에도 정벌을 나간거면 그건 특출나게 칭찬을 해줄 문제지 조선을 깔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역사적으로 연타로 내뻣은 나라가 계속 힘을 어떻게든 쥐어짜는 나라가 더 많을것 같습니까 평화시기에 갑작스런 공격으로 초반에 고전하거나 멸망까지하는 나라가 더 많을것같습니까? 이건 초딩도 알수있는 상식입니다. 님 하는짓보면 자꾸 우등생으로 잘 갓던 조선을 고려같은 특별생 케이스에 자꾸 비교하는 꼴입니다. 이순신 같은 천재를 괜찮은 인물들로 채워졌던 조선 정부랑 비교하는 바보같은 망상입니다.

그리고 2년 전에 정탐...하아 돌겠네. 그래서 어쩌라고요? 제가 이미 말 안했음? 알아도 설령 20만을 끌고올거란걸 어떻게 알았겠냐고요? 조선 기록에서 히데요시가 20만을 끌고올것같다고 예측한 자료있음 올려주세요. 항상 일본은 끽해야 2만 정도 왜구로만 침략했었고 조선도 님 생각보다 임란때 준비 꽤 해놨습니다만? 수군만 봅시다. 이게다 이순신 혼자 덕이라고요? 조선은 9대 왕때부터 평화는 긴데 전선 판옥선은 쓰이질 않아 썩어 들어가자 판옥선 다수를 파괴합니다. 이건 돈이 많이 나가니 당연한겁니다. 근데 임란 시작하자 그 없어졌던 판옥선이 대포랑 모든게 풀 탑제된체로 200척정도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이게 준비를 안한겁니까? 동래성 전투때도 송상현이 주역이긴 하지만 나무 많이 심고 철못을 여기 저기 깔아놓고 함정 파놓고 하는등 준비 꽤 잘해서 훨씬 적은 병력으로 일본군을 한번은 패퇴도 시키죠. 즉 조선도 자기들이 예측한 범위내에선 준비를 잘한겁니다.

또 선조실록에서 조선이 얼마나 전쟁을 꽤 잘 준비했나 자료입니다

"대장(大將) 신입(申砬)과 이일(李鎰)을 제도(諸道)에 보내어 병비(兵備)를 순시(巡視)하도록 하였다. 이일은 양호(兩湖)693) 로 가고,
신입은 경기(京畿)와 해서(海西)로 갔다가 한 달 뒤에 돌아왔다....
신입은 본래 잔포(殘暴)하다고 일컬어졌으므로 수령들이 두려워하여 주민들을 동원하여 길을 닦고 공장(供帳)하는 비용도 대신의 행차와 같이하였다."
-선조실록 26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2월 1일(임진) 1번째기사

"삼가 살피건대, 소방에서는 지난 신묘년2216) 여름에 일본의 적추(賊酋)가 요승(妖僧) 현소(玄蘇)를 보내어 와서 변문(邊門)을 두들기고 투서(投書)하였는데,
그 말이 아주 도리에 어그러졌으며 소방을 협박하여 저들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소방의 군신은 이를 절통하게 미워하고 근심하면서
반드시 적변(賊變)이 있을 것을 알고 곧 사신을 보내어 경사(京師)로 달려가 아뢰게 하였습니다. 또 순찰사(巡察使) 김수(金?)를 경상도로, 이광(李洸)을
전라도로, 윤선각(尹先覺)을 충청도로, 순변사(巡邊使) 신립(申砬)·이일(李鎰)을 경기·황해도로 보내어 군정(軍丁)을 점열(點閱)하고 군기(軍器)를
수조(修造)하며 성지(城地)를 선축(繕築)하게 하였습니다" -선조실록

알겠음? 언제든 대군을 마련할수 있는 준비를 한것을?
          
전략설계 14-09-30 20:14
   
징집할 인원이 부족해서 병력을 줄인단다.. 니가 애를 많이 낳던가??
그게 임란하고 먼 상관이여??
미국에 있으니까 여기 사정을 모르냐??
애들이 줄어~~

니 말은..
평화시까지 못 싸우고..
전시에는 전시여서 못 싸우고..
전쟁 끝나면 피폐해서 못 싸우고..

언제 싸울래??
적이 니 사정을 기다려줘??

그러니 망명간다고 황제한테 야단맞고..
불과 30년만에 여진족 앞에다 왕이 대가리 쳐박고 그 망신 산거지..
우리나라 역사에 왕이 죽음 죽었지, 그런 망신스런 경우가 있었냐??
니 내 앞에서 대가리 꼴아박아도, 안 쪽팔리냐??

명나라 대군 있으니 병력 아낀다고 조금 나간 것이라고??
그래서 100만명 희생시키냐..
그거는 모자른거여.. 궤변이지..
니 집에 강도 들었는데 옆집 사람 왔다고 너는 안 싸워 니 가족 다 보낸단 소리 아녀??
이런걸 미친놈이라고 하는거여..
          
전략설계 14-09-30 20:31
   
2년전에 정탐 갔는데 20만 올줄 어떻게 알았냐고??
옆차기한다.. 불길한걸 느꼈으니까 정탐을 보낸건 사실아녀.

20만이든 10만이든 전쟁이 난다는 것을 아니까 보낸거 아녀??
니말처럼 평화시에 뒤치기 당한게 아니란 소리다.

이순신장군이 나대용이 연구한 거북선을 건조하고도 남은 시간이고..
이 1-2년 동안에 전국적으로 성을 정비한다니까..
전쟁에 손 놓고 있는줄 알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봐바..
어떤 전쟁이 평화시에 갑자기 뒤치기 당하냐..

고구려--수당 침입을 먼저 알고 조양을 먼저 쳐서 시비를 걸어.. 전쟁 날줄 알고 먼저 시비까지 걸어..

무슨 강 건너 개떼 넘어오는 것도 아니고 대군이 넘어오는데 어떻게 뒤통수 맞듯이
모르고 당하냐..

거란 -- 큰 전쟁 앞두고 80만이라고 뻥치고 넘어와..
여진 -- 금을 만들기 직전이라 싹수가 달러..
몽골 -- 거란 잔당들이 쫓겨와..
명 -- 철령위 달라고 해..
일본 -- 전국통일해서 조선 침략할거라고 조선에 꼬잘러..

티 안내고 평화시에 갑자기 당하는게 어딨냐..
대국 군대가 있으니 병력 아끼자는 너나 그런 한가한 생각하는거지..

수군은 이순신 덕이라네..
경상수군이 어딨고, 충청수군이 어딨어..
1591년에 전라좌수사 부임해서.. 전라좌수사 담당지역 전부 순찰돌고..
판옥선 건조하고 거북선 건조하고..
다 이순신이 혼자 한 것이라네..

그렇게 전쟁준비를 잘했는데..
가장 중요한 탄금대전투에서 1달을 한양에 뒤져서 1만을 만들어내나..
준비가 안됐단 소리여..
실제 상황을 보라구??
임란전 판옥선 200척 어딨어??
한양도 거져 버리고.. 병력이 어딨냐구 준비를 잘했는데..
강조군대는 거란과 맞다이하다 죽은 병력만 3만이여..
그거이 전 병력도 아니고.. 주요성들 다 지키고.. 곽주성하나 줬다가 양구가 다시 뺏어서..
압록강 건너에 거란이 중간기지 삼을 기지들 성이 하나가 없었어..
오합지졸 1만 뒤지고 뒤져서 내보다 배수진으로 다 보내고..
한양 거저 버리고.. 평양 4천 수비시키다 바로 내주고.. 의주로 가서 망명준비했는데
먼 준비를 잘했다는거여??
그걸 준비를 했으니, 망명신청이나 하고 왕이 오랑캐한테 대가리 땅에 쳐박고 용서를 비는거지..
     
shrekandy 14-09-30 13:19
   
또 사대는 많은 나라도 중국에 한거고 오히려 고려보다도 조선이 확실하고 안정적이게 여진, 일본, 유구한테서 안정적으로 200년이나 사대를 받은 2인자 패권국으로 군림했는데 왜 우리한테 사대한 쟤네는 떨거지라고 욕 안함? 우리가 사대한것만 사대임?  그리고 명나라 힘으로 일본을 치는게 사대주의라고요? 님 사대주의 뜻 모름? 진짜 사대주의 때문이였음 오히려 명나라 천군은 더 안전하게 놓고 우리가 더 싸웠게요 성스런 명군들 모셔야 하지 않것어? 오히려 명군은 일본군이랑 싸워서 죽게 놓고 우린 국토 회복하고 또 명나라 군 약빨 다하면 지친 일본군 우리가 치는 이런 생각은 실용적이고 오히려 중국 뒤통수치는 사대주의랑은 먼 생각임. 그리고 남의 나라 힘만 빌려서 싸운다고? 통계나 다시 보시고요, 통계는 거짓말 안하니까. 조선이 얼마나 많이 남의 나라 힘을 빌려 싸웠다고요 105번 전투중 꼴랑 8번? 하이고 생쇼도 이런 생쇼가 없음. 그리고 말했잖아요? 살인마가 칼을 목까지 들이밀었는데 옆의 라이벌이라도 불러서 일단 후일을 도모하는게 당연하지 않나고. 여기에 반박 해보시던가. 뭐 어차피 이번이 내 마지막 답변이라 볼일도 없지만.

일본 내부 상황 어쩌고...뭐 어쩌라고요? 그래요 분명히 영주들 힘빼는 목적도 임진왜란에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사활을 건 전쟁이 아니란 헛소린또 뭡니까?  하나가 맞으면 무조건 하나는 틀려야한단 논린가요?  분명히 히데요시는 죽으면서 '기필코 조선을 정벌못하는구나'하면서 눈물까지 흘린 기록이 있습니다. 가생이에도 예전에 올라왔었는데 찾아보세요. 내가 또 찾아서 올리기 귀찮지만 나중에 아예 개시판에 올리죠 뭐. 다시 말하지만 사활도 안건 전쟁에 이런 유언을 남길 인물이 없으며, 또한 사활도 안건 전쟁에 총 40만을 보낸다고요? 중국인구도 안되는 일본이? 뭐 소립니까? 오히려 사활을 걸고 조선을 치는게 영주들 힘 더 빼는걸수 있는것도 생각할점.

-사르후 전투

(조선 왕조실록)
 '몇 번의 화포사격으로 적을 격퇴하였지만, 갑자기 모래가 섞인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불이 꺼지고, 그 바람 사이로 후금군이 달려와 척살했다

보시듯 사기같은 모래바람 불기 전엔 조선 조총군이 님이 좋아하는 청기병을 분명 몇면 격퇴했습니다. 연기가 아니고 그리고 모래,바람입니다. 연기는 뜬끔없이 왜 나옴?

아니 애초에 님처럼 깡, 그것도 조총병 무시하는 사람들 첨봄. 옛날 마케도니아 제국이나 로마가 보병으로 흥했지 기병으로 행했소? 그 많은 유목제국들이 결국 조총의 힘에 굴복했고 전쟁사 봐도 이후 쌍령전투같이 기마가 이긴 전투보다 총병이 이긴 전투가 훨씬 더 많아지는데 뭐 하잔건지...

그리고 귀주대첩군 깡보병 맞조. 1만 철기병? 20만 8000군대중 고작 기병이 1만인데 이게 기마 군대입니까? 그리고 요나라가 계속 남하하다 털리고 다시 후퇴하다 기다린 고려군을 조우하자 바로 공격을 한건데 뭘 후퇴를 계속 하다 하다 결판이라뇨...다시 말하지만 걍 조우하자마자 거란이 선제공격합니다. 그리고 고려 지리도 잘 모르는 놈이 무슨 피하긴 뭘 피함. 깡 보병이였기에 반밖에 안되는 10만을 데리고 강감찬이 애먹다가 나중에 등장한 고려군이 갑작스레 거란군의 뒤를 쳐서 이긴겁니다

조선이 여진이랑 얼마나 싸워봤냐고요? 허구한날 싸웠는데 뭔 소리야? 아까 말 안 봣음? 신림의 500기가 여진 10000기 격파한거? 10000기를 상대한게 동네 개싸움으로 보입니까? 그리고 애초에 여진 자체가 조선 통제속 반 식민지였는데 큰 전투가 생길리가 없죠 인간아
          
전략설계 14-09-30 20:40
   
코베가고 지나라 백성 끌려가고 100만명 인적피해 입어서 사대 실용주의 좋겠다~~
니 조상 코베가는 사대주의 해서 좋겠다..
니가 칼을 안 드는데 누가 니를 지켜주냐?? 이 쓰레기같은 것아..

서울을 쳐들어오는데.. 다 숨고 1만 내보내놓고 대국을 활용해??
이 모지라..
니 말대로 세조때 43만 병력이 있었던 나라다.
다 흑사병걸려서 씨가 말렸냐..
100년전에 43만 병력 보유한 나라가, 왜 1만만 내쳐보내냐고??
또 정탐 보내놓고 평화시라고 변명할래..

우리땅에 전쟁하는데.. 명군을 일본군하고 쌈 붙인다고??
전장터가 우리고..
왜군이 여자 생각나면 명나라땅 가서 겁탈하것냐..
니 조상 코를 베가고, 니 조상을 겁탈하는거여..
한사람이라도 칼을 들어서.. 왜군을 몰아내야지..
지나라 땅 전쟁해서 병력을 아끼고 명군하고 일본군하고 쌈 시켜서..
그래서 100만명 인적손실 봤냐??
좋은 생각이다 이 모지라..
하다 하다 별 변태 털거지같은거 다 보네..

6.15때 UN 무쟈게 왔다.. 미군 5만이 죽었어..
그럼 미군하고 중국군 싸우라고 우린 병력 아끼자고..
우리나라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이여..
진주성 7만은 명나라 사람이여..
우리 땅에 전쟁이 벌어지면, 빨리 몰아내야지.. 우리 나라 사람이 죽어나가고..
병자호란 얘기하면 피폐하다고 하는데..
왜 피폐해졌냐?? 7년을 끌어서 그런거여..
빨리 몰아내야지.. 명군을 이용한다고 병력을 안내..
니 집안에 도둑들어도 옆집 사람하고 도둑하고 맞다이 하기 기다려라..
가만보니 병자수준이네..
          
전략설계 14-09-30 21:02
   
사르후, 부차에서 조선조총병이 여진기병 몇번 이겼다며??
그 근거를 대라구..
재촉하는 명나라 군대 따라서 이동만 원없이 하다,
한번 전투로 다 죽고 다 포로가 됐는데..
헛소리 지껄였으면 책임을 지라고 모지라.. 너하고 얘기하는 시간이 아깝다..

귀주대첩에 고려군이 20만 8천이 동원됐다고??
너 나하고 장난치냐??
근거 대봐..

고려군에 기병이 얼마인지, 보병이 얼마인지 기록이 없어..
강감찬군이 얼마인지 기록에 없어..
기록이 없는데 니가 머라고 20만 8천이래??

대갈이 있으면 굴려봐..
보병이 기병을 어떻게 잡어..
거란 황실정예기병으로 10만 왔다가 수천 살아 돌아갔다..
9만 몇천 기병이 보병에 따라잡혔냐?? 보병에 기병이 못 도망가고 살육돼??
기록이 없으면 대가리를 굴리라니까..
세계 어떤 기병이 보병에 따라잡혀서 90%이상이 몰살당하냐??

귀주대첩 20만8천 고려군 근거 대보고, 기병 1만뿐이란 것도 근거 대봐..
귀주성에서 나온 강감찬군은 말 한마리 없었다냐??

니탕개는 누루하치가 통일하기 전에 일개 추장이여..
부족 단위 기병에 조선이 계속 깨지고 성도 포위되고 수적으로 열세를 겪다가
몇번 이겼어..
그게 조선기병이 여진기병보다 더 쎈 근거여??
그럼 병자호란은 머냐??
먼데 쪽 한번  못 쓰고.. 대가리 꼬라박냐고??
여진족 추장 니탕개 상대가 아니라,
국가대국가로는 여진기병과 붙으면 요렇게 되는거여??
얼마나 빨리 왔으면 왕이 피난도 제대로 못가요..
니탕개가 여진 전부를 대표해??
싸워도 싸워도 임란만큼 쪽팔린게 없고.. (수군, 의병 제외)
임란 보다 더 쪽팔린게 병자호란이여..
아무 것도 없어, 남하하는 청나라부대를 막는 부대가 조선에 없어..

이미 정묘호란으로 한번 당했자나.. 신호 충분히 준거여..

피폐하기 전에 평화시에도 정탐까지 보내놓고.. 정사가 전쟁난다고 했는데..
1만 만들라고 1달이 걸려.. 오합지졸을..
병자호란은 그도저도 없어..
피폐하기 전에도 피폐하고도 다 똑같은데..
니 생각대로 명나라 대군이 있는데 왜 싸워였어..
황제한테 말 몇마디 조아림 되고.. 야단 듣더라도..
정 안되면 요동으로 망명가면 되지..
청나라 오면 대가리 쳐박음 되지.. 먼 일 있었어..

니는 미국에 있다는 사람이 사고는 조선 선조때 사대주의에 취해있다..
외국에 있다고 깝짝거리지 말고 니 나라 바른 역사나 제대로 배워..
어디서 사대주의 흉내내냐??
          
전략설계 14-09-30 21:51
   
일본에 대해서..
전국시대를 갖 수습한 정도지, 일본은 전투만 없었을뿐 내부적으로 여전히
권력싸움중이었고..
잠깐 수길이가 권력을 쥔 정도였지.. 다 통합을 시킨 것이 아니란 것이..
그 이후 과정을 보면 알어..
수길이 쫄따구들 태반이 사후에 이에야쓰 쪽으로 넘어가는데..
누가 자기 영지 군대를 희생하가면서 조선하고 죽어라 싸우냐 그거야..
요 부분을 얘기한거여..
바닷가에 죽치고 있는 것도..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에 싸움을 위해
힘을 아끼기 위한 것이라니까..
이렇게 설명해도 모르나..
1592년 첫해에는 열심히 싸웠다고 봐..
전라도 방면 빼고는 전황도 좋았고.. 조선점령이란 희망이 있었기에..
평양성 내주고 한양 뺏기고 부터는 .. 자기 병력 보존으로 간 것은 분명하고..
진주성처럼 맘만 먹음 10만씩 가서 때릴 수 있었지만,
수길이가 직접 명령해야 듣는 시늉이나 하지.. 안 시킴 안 한다니까..
코베어 와 하면 코 베가.. 명령 안들음 찍히자나..
하지만 안 시킨 것은 안한다니까..
일본 정국이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몰라..
히데요시 사후에 어떻게 될지를 모른다고..
임란중에도 히데요시 조카가 반란일으킨다고 시끄러웠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는 커녕.. 거기도 내정이 복잡했어..
우리같이 세자라고 책봉하고 장성한 세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천한 것이 정권 잡아서.. 후계체계도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외국에 가서 누가 죽어라 싸우겠냐..
일본은 여까지 할게..
shrekandy 14-09-30 12:59
   
평양성 전투부터가 아니라 평양성 전투 이후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내가 그정도도 모르는 ㅄ인줄 아나...하여간 명군은 서쪽으로 내려가고 당시 조선 관군과 고려때부터 내려온 최정예 동북면 조선군이 동쪽으로 내려오는데 명나라가 발 잡혀있어서 시간 잡아먹고 으어으어하는 동안 조선군은 실제로 급속도로 남하함. 통계 몇번 보여줘야함? 나중엔 더 자세한 통계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조선 관군만으로 공성 시도도 못했다고? 영천성 탈환은? 현풍성 탈환은? 영산성 탈환은? 경주성 탈환은? 성주성 수복은?  길주성 수복은? 죽산, 음죽성 탈환은? 이거 외에도 조선 관군이 단독으로 공성해서 일본군으로 부터 성 뺏은 전투가 수십개입니다만? 말 안했어요? 명나라군은 고작 8번 싸웠다고? 통계 볼줄 몰라요? 님좋아하는 팩트만 예기하시던가

타율이 중요하지 않다고요? 전쟁사를 평가하는데 어쨋든 가장 중요한게 타율입니다. 아무리 저도 타율이 그 국가의 국력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예로 여몽 연합군이 일본 쳐들어갈때 2차 전쟁에선 몽골군이 많이 고전하고 패전도 합니다. 게다가 일본군이 결국엔 태풍때문이라도 승리도 하죠. 어떻게 보면 운빨이지만 어쨋든 큰 한방의 승리고 결국 여몽연합군은 패주합니다. 근데 당시  몽고의 국력이 일본보다 떨어졌나요? 아니죠. 실제로 타율론 몽고가 일본군을 더 많이 이겼다는 타율에서 당시 두 나라의 국력또한 가늠이 됩니다. 그리고 위에 말했던 고구려의 예도 있고.

님처럼 결과만 본다면 마지막에 고작 1방으로 쓰러진 발해는 레알 허접 사대주의 국가네요 헐

그리고 사대사대 거리는데 아까 이미 말했지만 조선은 고려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중국을 까는 면도 임진왜란 전까진 강했고 님처럼 중국을 킹왕짱 한건 임란 이후에나 있는일. 그리고 명나라 제사는 명나라 멸망이후 많은 주변국가들이, 심지어 일본까지 했단 기록이 있으며 이걸 토대로 조선은 신 소중화사상을 키워 오히려 더 독자적인 문화와 발달된 이데올로기를 갖게됨. 님 말대로라면 지금 6.25 도와준 미국 고마워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세대 모두 사대주의 꼴통이군요.

그리고 님이 또 착각하는거 하나. 조선이 왜 1만씩 따닥따닥 보냈는지 나도 추측이고 님도 모름. 오로지 당시 조선 사람들만 암. 즉 사실 이걸 평가할땐 선조의 잘못된 판단/전술이라고만 봐야지 전 국가가 꼴통이라고 보는 편협한 시선은 집어치우시길. 나라 장군이 판단 하나 잘못하면 그 나라 전체가 노답이라는 이상한 논리는 어느나라 논립니까? 사실 조선이 보낸 연인원보면 거의 5,6만은 될텐데 님은 걍 이걸 한번에 멋있게 짜잔! 하고 왜 보내지 않았냐는 말 아님? 이건 무슨 큰 장난감 좋아하는 애기 같군요. 1만씩 보내거나 5,6만을 한번에 보내던 당시 조선은 대군을 보낼 여력이 없었던게 아니고 (이미 수군 숫자에서 증명) 걍 막판에 전술 실패거나 아님 내가 말한것처럼 명나라 써먹어서 하려던게 더 맞을 가능성이 큼. 즉 님도 무슨 애나 좋아하는 거함거포주의같은 소리 그만 하시길. 전쟁은 영화가 아닙니다.
     
전략설계 14-09-30 21:19
   
영천성에 왜군 몇명 있든??
현풍성에 왜군 몇명이든??
내가 언제 그런성 공성 못한다고 했냐..
따닥 따닥 1만까지는 만들어내니.. 몇천이나 몇백 왜군 있는 성은 조선군이 공성이 가능하지..

하지만 평양성전투는 조선군 혼자 힘으로 되냐고??
"조선군 1만 평양성 가서 성밖에 노니는 왜군 몇십명 죽이고,
왜군이 평양성문 밖으로 튀나오자 공성 시도도 못한 채 돌아왔다.."
이것이 팩트여..

한양을 탈환하는데 있어 중요한 벽제관 전투에서..
조선군이 한 것..
피흘리고 퇴각하는 명나라군 몰골 보는 것이었어..
벽제관 전투에 조선군 얘기 나오든??
내가 얘기했지..

조선군도 공성을 해.. 근데 전쟁을 이길려면.. 만수천씩 왜군이 들어가 있는..
평양성이나.. 남해안의 왜성들을 점령해야 전쟁을 끝내고 승리한다니까..
조선군이  병력이 안돼서 요거이 안돼..
영천성 백번 먹어봐라 전쟁 끝나나..

1만씩 보내는 이유를 모르것다고..
그거이 능력이여..
아무렴 왕이 피난가는 판에 니처럼 명나라 이용한다고,
병력 아낀다고 신립이 1만만 모았겠냐??

명나라 몇번밖에 안 싸웠다고 하는데..
평양성 쳤지.. 벽제관에서 싸웠지.. 결국 왜군들 퇴각했지..
평양부터 한양까지는 명나라 이여송군 4만이 1593년초에 밀어붙인거여..
조선군이 주가 아니여..
물론 행주산성에서 전라도의병.. 이건 의병이여..
의병2천이 잘 싸워서.. 왜군 한양퇴각을 부추긴건 사실이지..
그러나 이 병력으로 평양성의 왜군이든 한양의 왜군을 치지는 못해..
소수는 성이나 길목의 고개에 숨어 수비는 돼..
공성은 못해.. 그니까 전쟁이 길어지지..
공성은 수비가 우세한데 수비가 병력마저 많음 공격하는 쪽 개학살 당하는거여.
조선군 단독으로 1만만 평양성 가니까.. 소서행장 군대가 성문밖으로 튀나오자나..
만만하거든..
같은 전투병일 때 쪽수가 이리 중요한 것이고.. 1만만 동원가능한것 쪽팔린 줄 알어..

정유재란때도.. 명나라가 직산에서 큰 승리한게 아냐..
하지만 일본군이 한양을 칠려면 이 명나라군 4만 정도를 쳐내야 가능한 일이라..
아예 자기 영지 군대 피흘리기 싫어서 포기를 한거여..
일종의 전선 개념이라.. 이 정도 군대 없이..
꼴랑 조선군 1만만 나가서, 가등청청, 구로다군 상대하라면 신립군대처럼 도륙된다니까..
그니까 정유재란때는 한양 직공하는 적을 막는 조선군도 없어..
쪽수의 힘이라까..
왜 1만인지 모른다고.. 그게 임란에서 조선의 한계고, 내가 줄곳 지적하는 부분이여..
1만 가지고는 어느 전투든 나설수 없어..
귀주에서 거란 황실을 상대로 신립이 처럼 오합지졸 1만 가지고 상대했음 쓸리는거여..
뒤통수 때린 부대가 고려 최정예 철갑기병 1만 김종현군이라니까..
고려의 1만이란 이럴때 1만이여.. 그것도 오합지졸이 아니라..
요럴 때 1만 나온다니까..
우리나라 쳐들온 외적들은 다 한가닥하는 애들인데..
1만으로 머를 하냐??
백성들 다 죽어가는데.. 죽어라 모으고 모은게 1만이라 그래서 내가 지적하는 것이여..

명나라 대군 소모시킬라고 안 내보낸다는 니 소리가 궤변이자 역겨워.. 덜 떨어진 소리지..
그판에 다 죽어나가.. 진주성처럼..
조선인 코로 무덤을 쌓았는데.. 머를 아껴 모지라..
아껴서 전쟁 다 끝나고 나서 10만 대군 만들래??

니 말대로 임란때 명군 소모시키고 죽어라 조선군대 아꼈어..
근대 청나라 쳐들어왔는데 어떻게 됐냐??
아낀 부대 다 어디가고 왕이 대가리 꼴아박고 있냐??
병자호란은 피폐해서 못 싸운다며..
니 말이 안 맞자나..
피폐해져서 못 싸우는데.. 멀 아꼈어??
아끼지도 못하고 그냥 피폐해졌네..
전쟁은 조기에 끝내야 국력을 아끼는거여..
땅 반년 개간 안한 것하고.. 몇년 개간 안한거하곤 하늘과 땅 차이여..

임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만 5만-10만인데..
주로 일 부릴만한 장정 데려갔지.. 노인들 데려갔겠냐..
아껴??
머를 아껴??
저런 장정들 몇만이라도 모아서 정규병력 만들어서 전쟁 빨리 끝내는게 좋은거야 모지라..
별 해괴망측한 모지란 소리 다 듣는다..
시차 안 맞아서 해까닥했냐??
병력 아끼고 안 싸워서 장정들 일본으로 다 끌려가서 좋겠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고, 백성들이 여기저기서 끌려가고 도륙되는데,
실전에 못 나오는 병력은 그냥 니 대갈속 공상이여..
그런건 암 필요두 없어..
     
전략설계 14-09-30 21:24
   
전쟁에 연인원은 몬 소리냐??
연인원이면 5,6만이라고..
어디 공사하냐?? 피라미드 공사해?? 연인원 따지게..

윤관 17만병력을 동북에 보내면.. 그 병력 여진하고 싸워.. 싸워서 성을 쌓고 수비를 해..
이거 연인원 따져보까..
하다 하다 연인원으로 5-6만을 만드냐..
그럼 임란때 일본은 100만 되겠고.. 거란침입시 고려군 연인원은 한 수백만 되겠다..
말 만들어서 계속 늘어지게 말고..
할 말 없음 아닥해..

임란사 책 보면.. 전투에 조선군 1만 정도가 4-5번 나오고 끝이여..
니 말대로 20만 쳐들오고 아무리 못해도 10만씩은 쳐들어오는데..
1만 데리고 어디를 가서 싸워??
어디를 공성을 해??
말 다 했지..

연인원으로 뻥티기 해서 좋아?? 취하냐?? 만족해??
보기 추하다..
shrekandy 14-09-30 13:22
   
하여간 자도 바쁘니 이만 끊죠. 더 할말있음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우리가 승리한 전쟁이다"란 책 읽어보세요.

그리고 님이 착각하는게 있는데, 전 조선이 임진왜란때 한짓이 칭찬받을 짓이다 라고 한적 없읍니다만? 혼자 확대해석하고 놀고있네요. 다만 님처러 조선을 사대주의 빠 수꼴 국가로 표현하고 욕할 나라는 아니란 예기임.
     
전략설계 14-09-30 21:26
   
야 조선의 기본정책이 "사대주의"여..
조선 사대주의로 몰아세우지 말라고??

정신좀 차려라.. 시차가 아직도 안맞냐..
전략설계 14-10-01 08:15
   
끝으로..
제2차 고려-거란 전쟁은 강화조약이고 정전협상이여..
말이 고려왕 입조조건이지, 거란군 돌아갈 때 곳곳에서 고려군한테 얻어맞아서,
돌아가는 길에만 수만이 죽어나갔다..
이게 항복이여??
을지문덕이 우중문한테 공이 많다고 하면 그게 칭찬이든..
말은 그렇게 하고 가는 길에 디지게 패는게 고구려-고려 전술이여..
니가 역사를 쓸래.. 가는 길에 수만을 황천으로 보냈구만.. 사서에도 없는 항복이래??

거기에 반해..
임란은 강화조약에 조선은 끼지도 못했어..
우리 땅에서 조선만 빼고 명나라-일본이 강화협상했는데..
이거 안 쪽팔리믄 사람새끼가 아니다잉~
이거 안 쪽팔리믄 어디서 한국사람이라고 하지마.. 한국사람 격 떨어진다.

평화시니까 준비 못해서 20만이 올지 몰라서 깨질 수도 있지~
강화조약 우리 빼고 대국끼리 할 수도 있지~
명나라 대군 소모도 시킬겸 우리 군대 아낄 필요가 있것지~
전쟁 끝나면 피폐하니까, 그 다음 전쟁은 왕이 땅에 대가리좀 쳐박어도 되것지~

또 평화시 와서 쳐들어오면 또 짜부라져야지~
그다음은 피폐하니까 오랑캐 앞에 왕이 대가리 쳐박아주고~

언제 싸울래?? 언제 한번 제대로 싸울래??
조선이 한번이라도 외세에 제대로 싸운 적이 있었냐??
고려는 거란침입이 예상되니까 전국적으로 30만 광군을 조직해..
이때는 중앙에서 지방에 지방관 하나 못 보낼 때여..
열악한 고려는 했는데 조선은 왜 못해..

조선은 '사대주의' 들고 나올 때부터 우리 힘으로 우리 땅 지킨다는 생각을 버린거여..
니같은 대국이 있는데 머하러 나가서 싸워..
목숨 아껴야지..
임란때 아껴서 병란때 잘 싸웠냐?? 더 잘 뚫렸자나..
니같은 생각을 그때도 했으니까,
외국군대나 쳐불러와서 강화조약에도 못 끼고.. 대가리 꼴아박기나 한거여..
생각이 문제라니까..

공부 못 한 애들 변명은 수만가지지만.. 공부 못한 사실은 바뀌지 않어..
쪽팔린 전쟁한 조선도 니처럼 변명은 수만가지지만..
쪽팔린 전쟁한 사실은 영원히 바꿀 수가 없는거여.. (수군, 의병 제외)
shrekandy 14-10-06 12:15
   
와 ㅋㅋㅋㅋ 시간 좀 주말이라 나서 답 달러 왔더니 몇갤 단거여 ㅋㅋㅋㅋ 하이고 뭐 이거 일일히 다 답변할 시간은 없고 걍 제가 말한 책 읽어보시고 왜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가 임진왜란 초기 연패는 조선의 평화시기였다하는지 알아나보세요. 솔까 평화시기는 변명이다 하는 인간은 님밖에 못봤으니까요. 나중에 또 토론하면 좋겠네요. 꽤 재밌었는데
깡통의전설 14-10-11 12:58
   
와~ 덧글 기네요. 당시 중국은 지금의 중국만큼 대국이 아니었습니다. 크지도 않았고 인구도 많지 않았죠
기마군으로 무장한 고구려군을 송은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shrekandy 14-12-23 16:11
   
까먹고 있어서 인제 단다. 워낙 길어서 니가 반박을 해도 딱히 답할 생각도 없고. 이거 쓰는데 몇주 걸림.

이러니 내가 니 개소리에 더 이상 반박글을 안올리지……개소리가 넘 많아…

1. 세조
니 난독증이 정말 걱정된다. 쳐들어갈 기미를 보인다고 했지 언제 진짜 선전포고 했다고라도 했냐? 그리고 피부병이랑 전쟁이랑 뭔 상관이냐? 하여간 당시 세조때까지도 조선의 엄청난 국력은 기록들을 통해 잘 반영되있다.

그전에 니가 43만이 구라라고 하는데 일단 너야말로 그게 레알 구라라는 증거를 가져와바. 일단

명사:
천순 3년 변경 장수가 보고하길 건주삼위의 도독이 몰래 조선과 결탁하였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중국이 병이나다

세조실록
야인과 왜인들은 모두 우리의 번리이고 우리의 신민이니 왕된 자는 똑같이 대우하고 차별을 없이 하여 혹은 무력을 사용기도하고,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 북적, 이것은 하늘의 끌어들이는 바이지, 나의 슬기와 힘이아니다. 흑룡강, 속평강, 건주위, 올량합, 이만주 동창등 심처 야인과 삼위 달자가 관문을 두드리고 입조하기를 청하거든, 그 종인을 줄여서 후대하여 올려보내라

-보다시피 주변국, 만주와 일본을 상국으로써 다스리고

세조실록
누가 조선을 일컬어 예의를 아는 나라라고 하였는가? 이 일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건너뛰는 따위가 아닙니다. 어찌 무례하기가 이와 같습니까?

-이거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와서 개 무시 당하고 한 소리다. 뭐 조선이 맨날 명나라 똥꼬나 빨던 사대빠라고? 지랄도 풍년일세.

그뿐이랴?

요동 도사(遼東都司) 왕상(王祥)이 말하기를, ‘요동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은 대장(大將)의 의모(儀貌)가 있었는데, 이제 과연 발란 반정(拔亂反正)2142) 하였다.’ 하고 탄상(嘆賞)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그때 세조(世祖)가 농사에 힘쓰고 학교를 일으키고 군사를 양성하기를 일삼아서, 궁병(弓兵) 백만을 길러 오랑캐[夷狄]를 제압하려고 결심하고 진법(陣法)을 익히고 군사를 훈련하니, 왜인과 야인들이 모두 위덕(威德)을 흠모하여 다투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단종 10권, 2년(1454 갑술 / 명 경태(景泰) 5년) 1월 6일(무오) 5번째기사
김우을두합 등이 야인들이 세조를 알현하고자 원함을 아뢰다


알겠냐? 이야 명사, 조선왕조실록까지 다 조선이 당시 강한 대군과 명나라를 두렵게 할 수준의 군사력을 갖췄다고 말해주는데 넌 뭐라고 꼴깝을 떠는거니? 뭐 좋아 당시 조선군수가 정확히 43만은 아니였을지도 몰라. 근데 당시 조선이 명나라를 위협하고 지역 패권국으로 존재할 수준의 군대를 갖고있었단건 확실하다.

그리고 왜 43만이나 있었는데 100년만에 어디갔냐고? 이쯤되면 걍 ㅄ인증. 고작 100년? 아니 ㅋㅋㅋ이괄의 난과 명란사이 고작 12년은 강산이 바뀔 시간이라면서 세종에서 선조 까지 100년은 짧은 시간으로 표현하는 니 머리는 정상이냐? 니 표현으로 바꿔말하면 강산이 10번은 쳐바뀔 시간동안 저 43만이나 되는 대군을 쓸 상황이 없는데 그럼 정부가 돈 아끼려고 당연히 군대를 줄이지 유지시키겠냐? 이쯤되면 초딩 인증.

2. 귀조대첩 병사수 기록에 안나오면 20만 안되냐? 당시 귀주대첩당시 강감찬이 상대한 요나라군이 8-10만인데 상식적으로 귀주때처럼 이 대군을 완전 포위한 체로 싸울 라면 당연 20만은 필요하지 똘빡아. 만약 이 20만이 게다가 보병이 대다수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왜 소배압의 그 많은 기병을 상대로 고전한 거냐? 고려사에 20만이라고 안 써있었다면 니가 지금까지 주장한걸 보면 기병>보병이다. 근데 강감찬은 뒤에서 레알 운빨로 정예 기마병 1만이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진 오랜 기간을 소배압한테 고전해, 무려 포위한 상태에서도 말야. 근데 니말대로라면 기병이 보병에 우위고 강감찬 군이 대다수 기병이였다면 소배압한테 이렇게 고전할 일이 없지 븅딱아. 고전한 이유는 결국 니 논리로라면 당시 거란군을 포위한 군대가 깡보병이 대다수였단 거다. 지가 지 무덤을 팠네 ㅋㅋㅋ

그나저나 고려가 고구려도 못한 기병 20만 만드는 게 유목민족도 아닌 나라가 가능했다고? 그럼 윤관이 맨 처음 여진이랑 싸워서 졌을 땐 기마병 다 어디로 갔냐? 세조때 “고작” 100년만에 병사 43만이 없어졌는데 고려는 왜 여요전쟁 “고작” 20년만에 기마병이 다 없어져서 처음 2차례 여진정벌에서 뒤지냐? 게다가 나중에도 별기군 만들 때도 결국 주력 군은 보병. 이뭐병?

그리고 보병이 어떻게 기병을 따라잡냐고? 그럼 딴 보병 다 모였을 때 고려 1만 기병은 뭐하다가 마지막에 늦게 나타난 거지? 게다가 지나라 길인데 ㅋㅋ

3. 고려 항복
당시 2차 침입때 고려가 거의 승리한건 맞지만 결국 건 조건은 친조야…왕이 요나라 궁궐가서 머리 박겠다고…물론 안 했지…근데 내가 왜 이렇게 말한줄 알아? 니놈 시각이 딱 이래서야….막 병자호란 임란 상황 당시 뒷배 경은 똑바로 보지도 않고 문화, 정책, 이런 제도 발전은 죄다 무시하고 고작 전쟁사 몇 개 지껄이면서 조선은 쓰레기레…고려가 요나라 상대로 잘 싸운거 맞아. 근데 나도 너 처럼 앞뒤 다 잘르고 한 부분만 보면 얼마든지 당시 고려는 친조를 약속하고 초반에 털렸으니 ㅈ망 국가 이럴수 있단다…이제 니 시각이 얼마나 또라이같은지 알겠냐?

또 몽골군. 분명 고려가 몽골과 40년이나 싸우고 독립을 유지한건 자랑스러운 역사야. 근데 나도 너처럼 역사를 평가하면 고려를 또라이 국가로 만드는거 한순간이야. 결국 몽고랑 잘 싸운건 당시 고려인들 이지 고려 정부는 아니니까. 예로

무신정권 벌어지며 개판이 되고 사방에서 난리가 벌어지는 도중에
갑자거 거란 유민들이 수만명이나 밀고 내려오고

그 뒤에는 몽고군 등장
처음에는 잘되나 싶더니 전쟁 벌어지고
자신들을 지켜줄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는 처음엔 좀 싸우더니 계속 쳐들어오자
그냥 섬으로 도망감

그리고는 병사 한명 안보내고 성에서 궁궐짓고 이상한 식물들 모으고
섬에 나무도 못 베게 하고 아무튼 놀고 먹고 마시는 동안에

내륙에선 백성들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무지막지한 몽고군에 그대로 노출

너무나 겁이 나고 무섭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과 자기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나라는 도망갔는데 백성들이 나서서 싸우고

간신히 좀 몽고군이 물러나는것 같아 환호성을 지르려고 하는데,
몽고군 있을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던 정부군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세금 내놔라!" 하면서 수탈, 폭력을 행사하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
 
결국 몽골에 굴복하고

이름도 까마득한 대륙의 쿠빌라이 칸꼐서 전혀 상관도 없는 일본을 침공하신다고 함
그 배를 만드는건 다 고려 백성들

졸지에 끌려와서 전혀 상관도 없는 전쟁을 위해 배를 만드는데,

그 할아버지가 몽고에 항복한 매국노 집안의 손자인 홍다구가 나타나서

채찍으로 떄려가며 고려 백성들을 지독하고 잔인하고 혹독하게 두들겨 댐

그렇게 이가 부러지고 등에서 피가나고, 물에서 나가지 못해 구더기에 다리가 썪어나갈 정도로 배를 만들고

원정에 필요한 군량도 수탈당함

왕까자 나서서 제발 좀 사정 봐주라고 빌지만 전혀 반응도 없고

그렇게 악몽같은 시간이 지나자 사방에는 원나라 세력에 빌붙어서 알량거리는 권문세족 천지에

그들에게 나의 피같은 땅이 빼았기고, 전혀 이유도 없이 노비가 되는데
뺵이 너무 쎼서 피눈물 나지만 당할수밖에 없고

너무 힘들어서 종교에라도 의지하려고 하면
수련을 해야할 중들이 전부 땡중이 되서
고리대금업하면서 돈놀이를 하고
백성들을 때려잡고


이건 살아도 사는게 아니다 나라 전체가 지옥이다 싶은데
수탈도 힘겨운데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들
엄청난 숫자의 홍건적이 나타나 무자비하게 털리고 수도까지 함락되고

홍건적을 피하면 갑자기 여진족이 봉기하며

여진족을 피했더니 이번엔 원나라 군벌들이 쳐들어오고

그것도 도망갔더니 이번엔 왜구가 전국을 유린

연해의 해안은 모조리 왜구의 놀이터에 관군은 손도 못댐
심지어 강화도나 황해도까지 왜구가 나타나서 백성들을 죽여대고

이런 판국에 왕은 무얼하느냐

갑자기 멀쩡하게 길을 가는 백성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즐거워하고

자기 놀곳을 만든다고 민가를 헐어버리고 그 민가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기 놀곳을 만들게하고

갑자기 나타나서는 여자 없냐 해서 없다고 하니까, 다짜고짜 도끼로 머리를 쳐 두드림

여자가 있으면 개처럼 끌고가서 일국의 왕이 무슨 건달패거림 처럼 강간을 놓음

이야 고려가 퍽이나 자랑스런 나라네?! 그뿐인가

고려사절요 당시 니가 빠는 정복왕 공민왕 우왕 보면

내용이 죄다 외적 침입

특히 1350년부터 1380여년 정도를 보면 무슨 기록의 절반이 왜구 침입

왜구가 쳐들어왔다 관군이 도망갔다 (이야 해적집단 따위한테 ㅌㅌ)

홍건적이 쳐들어왔다 백성들이 도륙당했다

해안가에 사람이 살지를 못한다 내륙까지 왜구가 들어온다 (으어 내륙까지! 정부군 다 어디갔노?)

나하추가 쳐들어왔다 여진족이 쳐들어왔다

조세도 못 걷는다 도성까지 위험하다 (정규군도 아닌 도적, 해적집단 한테)

결국 운좋게 이성계 최영 덕에 승리. 근데 아까 너 이순신의 활약, 대비는 조선의 업적으로 안치던데 그 시각이면 최영, 이성계 업적도 고려랑은 상관없게 취급해라 짜슥아. 이순신 업적이 조선의 것이 안된다면 이성계나 최영이 외적 물리친것도 결국엔 고려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한심했고 무장 운빨이였다 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까지 올수있다고…

이렇게만 보면 고려가 무슨 제대로 된 나라나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려가 항상 왜구한테 털리기만 한 허접이였나? 너나 나나 알잖아 아니란 걸. 저 송나라 굴욕시키고 놀았잖아 근데 왜 세조 시록에서 보이듯 지역 패권국으로 전성기땐 200년을 군림한 조선을 욕하냐고. 니 같은 시각이면 로마제국도 한순간 쓰레기로 만들 수 있어.

4. 임란 대비
아놔 그래서 뭔데 조선이 당시 일본군이 20만 끌고올거란걸 알수 있는 기록이나 증거가 있냐고 이놈아…한반도가 역사상 남부로 쳐들어온 군사가 , 특히 일본에서 온 군사가 많아봤자 2,3만인데 어떻게 20만이나 끌고올거라고 예상함? 자꾸 고구려-고려 이 지랄 하는데 얘넨 맨날 그쪽으로 큰 나라들이 접하고 쳐들어온 나라들이야. 상대가 달라… 그뿐이냐 이 서토국들은 일본과 달리 한국 쳐들어오기 전에 실제로 주변을 평정하고 와. 즉 전쟁 의지가 뚜렸해보이고 그 군대 규모도 파악이 된다 이거지. 수나라 고구려 오기 전에 주변국 대군으로 편정하고 쳐들어옴. 당나라도 똑같이 주변국 평정하고 쳐들어옴. 요나라 발해 멸망시키고 송나라 떡실신 시킴. 몽골은 금나라 멸망시킴. 이러니 당근 고구려-고려는 상황 파악이 더 빠르지 이것아…당시 일본이나 훗날 여진족이 이정도 팽창성을 보여준적이 있냐고…일본 같은 경운 아예 보여줄수도 없지 섬에 고립되어있으니 근데 조선 관리들이 초인들도 아니고 일본이 어떻게, 얼마나 많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올 건지 아냐고…그리고 고려는 20만도 아닌 5만 해적집단한테 쫄아서 개경도 함락 당할뻔하고 왕이 피난갈 준비까지했어…고려는 뭐 더 훌륭하게 남쪽 침입에 대비한줄 아니?  그뿐인가? 당시 징비록을 보면:

“당시 나라는 평화로웠다. 조정과 백성 모두가 편안했던 까닭에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나의 동년배인 이로 도 내게 글을 보내왔다”

봤듯 정부 머리들 말고 심지어 백성들도 당시 왜 전쟁 대비하냐고 불평하던 게 당시 조선 상황이다. 아니 백성들도 불평 불만인데 정부에서 어떻게 전쟁 대비를 하냐? 도대체 일본이 국가 존망이 걸릴 정도로 대규모 침입을 한단 근거가 있었어야 백성들을 설득하던 할거아냐? 특히 당시 전쟁 준비는 한반도 남부를 해야 하는데 이 지역 주민들은 전쟁이란거 자체를 거의 본적도 없다. 을묘왜변 있었으니 핑계다 할거면 뒤져라. 임란 직전 시각으론  니가 좋아하는 강산이 무려4번은 바뀔 40년이란 시간 전이였으며 당시 사람들 수명을 볼 때 그거 겪었던 인간들은 거의 다 죽었지. 게다가 조선은 문치주의, 유교사회라 당대 국가들 중에선 그래도 백성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던 나라. 근데 이런 상황에서 올지도 몰랐던 20만 대군을 위한 방비를 하라고? 니는 갑자기 pc방에서 재밌게 놀다 정부가 이유없이 끌고가서 성 쌓아라 하면 “옙!” 하고 할거냐? 니 글들을 보면 죄다 사람 심리란 건 하나도 안 들어가있고 무슨 전쟁을 토탈워 게임 하듯 보고 있어. ㅉ.  또한

"삼가 살피건대, 소방에서는 지난 신묘년2216) 여름에 일본의 적추(賊酋)가 요승(妖僧) 현소(玄蘇)를 보내어 와서 변문(邊門)을 두들기고 투서(投書)하였는데,
그 말이 아주 도리에 어그러졌으며 소방을 협박하여 저들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소방의 군신은 이를 절통하게 미워하고 근심하면서
반드시 적변(賊變)이 있을 것을 알고 곧 사신을 보내어 경사(京師)로 달려가 아뢰게 하였습니다. 또 순찰사(巡察使) 김수(金?)를 경상도로, 이광(李洸)을
전라도로, 윤선각(尹先覺)을 충청도로, 순변사(巡邊使) 신립(申砬)•이일(李鎰)을 경기•황해도로 보내어 군정(軍丁)을 점열(點閱)하고 군기(軍器)를
수조(修造)하며 성지(城地)를 선축(繕築)하게 하였습니다" -선조실록

저 상황에서 이 정도 대비면 할만큼 한 거지 뭐가 더 불만이냐고 이 넘아…그리고 당시 경상도도 나무 심고 대포 운송하고 그 뭐냐 못 같은 무기 하여간 죄다 깔아놓고…이 정도면 할 수 있을 만큼 한 거지. 다시 말하지만 조선의 임란 대처가 훌륭했다고 하는 거 아니거든? 하지만 저런 백그라운드를 볼 때 조선은 할 수 있을 만큼 한 거라고 이 자식아. 도대체 몇 번을 말해줘야 알아 쳐먹냐? 전쟁이 난 단걸 알기만 하면 그 적군의 규모까지 알 수 있냐고 미친놈아. 너도 조선이 토지세 제도 고치려고 세종때 15년이나 걸쳐서 전국 국민 투표도 하고 상소제도란게 있어서 글만 알면 평민이고 천민이고 왕한테 직접 편지까지 보내 불만을 표출할수 있었어…나중엔 영정조땐 격쟁이란 제도까지 만들어서 지도자와 백성과 소통을 세계에서 유래없는 급으로 선진적으로 만들어놔…근데 전국에서 이 국민들이 왜 전쟁 준비하냐고 불평 쇠도야…그럼 이런 현대적 정치체제를 갖고있는 조선에서 어떻게 국민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업을 펼치냐고 정부도 일본이 얼마나 큰 침공을 할지 파악이 안되는데?
그뿐이냐? 나탕개의 난 예기 했지? 애초에 난 왜 니가 1만-3만 군대나 끌고 올수 있었던 나탕개를 일개 촌동네 족장 수준으로 보는지 이해안가지만 이때 조선이 좀 고전하고 바로 대비 체계를 갖춘다.
1. 궁기병 집단의 체제를 여진족과 같은 중기병 중심으로 변경
2. 부족한 병력의 보강을 위해 천민의 신분상승을 대가로 한 모병체계를 도입: 서얼과 공사천도 무과 응시 가능해짐
3. 기존의 화포가 기동력이 부족한 점을 보강하기 위해 경량의 승자총통 도입
4. 지역 방어 중심의 진관제에서 중앙에서 병력/지휘관을 파송하는 제승방략으로 변경
즉 조선이 맨날 준비도 안하고 살던 또라이가 아니다. 다만 일본군을 맞게 된 저 위에 개혁들은 어디까지나 니가 좋아하는 여진족 같은 북방 적군용이라 남쪽으로 쳐들어온, 게다가 유래없이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한테 먹히지 않아…하지만 저 개혁이 먹히지 않았다고 조선을 쓰레기로 취급할수 있냐? 그게 말이 되는 논리냐? 어쨌든 그나마 나탕개의 난 수준의 전투라도 일어나는 곳은 항상 위치가 한정되어있었고 때문에 그 외의 지역 주민들이나 주지들은 자연스레 나태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뭐, 주변국이 침략의 낌새가 있으니까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맞아 맞는 말인데 그게 어느 사회나 쉽게 이뤄지진 않는다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냐……고려야 귀족들이 사병도 갖고 있었으니 서로 강해지기 위해 경쟁용으로 사병도 늘리고 애초에 국민을 깡그리 무시하는 귀족주의 나라였으니 걍 백성들 강제로 모아서 대군도 모으고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조선은 달라. 애초에 그런 국민 착취 국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인데 똑 같은 짓 하면 나라 이미지가 퍽이나 좋겠다? 마지막으로 저렇게 국민들이 비 협조적인데 징병제도 아니던 나라에서, 고려처럼 사병제가 있던 나라도 아닌 국가에서 국민들이 퍽이나 모병에 응하겠다 그치?

또한 추가로 일본에 간 통신사 중 전쟁이 일어날 거요! 한 애들도 20만 오데요 라도 주장한, 아니 알던 놈이 있냐고? 2차대전때 쿠르스크 전역때도 독일군은 끝까지 소련군 병력이 얼마나 해당지역에 동원됐는지 알지 못했어…정찰기 수백대 띄우고 첩보요원, 부선 감청 다 해도 소용없었다고…근데 조선 정부에서 퍽이나 당시 상황을 똑바로 평가할 수 있었겠다 이놈아. 게다가 니 말한데로 통일도 못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누가 엄청난 기존 중국 국가들에 필적하는 대군을 끌 고올 생각이나 했겠냐고. 니 자꾸 헛소리하는데 이 20만 온다고 정확하게 알았단 증거 갖고와...  선조도 그래도 사헌부에서 그런 고속 승진은 절차에 어긋난다는 상소를 번려하면서 이순신을 비롯한 실전경험 있는 무장들을 승진시켜 포스트에 배치시켜. 이게 대비를  안 한거냐? 뭐 이순신 홀로 대비를 해? 그럼 이순신 배치시킨 조정은 뭔데? 이순신이 대비를 잘했음 그것도 관군의 업적에 끼워야지 뭐란겨? 또 위에 말한 나탕개 의 난 이후 군대 개혁은? 경산도에 해군, 무기 밀집시킨건? 내가 봤을땐 니 잉여짓도 보면 걍 pc방에서 토탈워나 하는 ㅄ인듯. 조선은 할만큼 했다.
 
또한
징집할 인원이 부족해서 병력을 줄인단다.. 니가 애를 많이 낳던가??
그게 임란하고 먼 상관이여??
미국에 있으니까 여기 사정을 모르냐??
애들이 줄어~~>>>>>>>>>>>>>>>>

이건 뭔 개소리냐? 애들이 줄어~~~? 그래서 어쩌라고 군 가산점 제도 문제랑 군사들을 군빠리라 부르면서 깔보는거랑 현재 한국 국군 무기가 죄다 고장만 나고 있단 현실 기타 등등이 징집할 군사수랑 뭔 상관인데? 군대 축소는 인구 현재 감소랑 관련이 있지만 그 외에 또 많은 군대 관련 문제들은 인구 감소가 아니지 이놈아 한국 살면서 거기 사정을 모르냐?
그리고 남한 나온김에 다시 말하지만 지금 남한 상태는 일본 조선 상태보다 더하면 더하지 들 긴장감드는 상황이 아냐…조선과 달리 주위에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이란 미친놈들이 뒤덮혀있어…근데 위에 말한 문제들이 고작 50년 평화 땜에 나타나…게다가 대한민국 50년 평화는 뭐 완벽했냐? 중간 중간 베트남전, 걸프전, 연평도 해전등 꽤 있었지만 소용없어...즉 을묘왜변이 있었다고 (게다가 이게 무슨 국가전도 아니고) 40년후 임란때 대비 잘했어야 했다란 개소리는 안통하는 거라고…
그리고 조선왕이 여진족 앞에 대가리 박고있는게 뭐 어쩌라고? 분명히 짜증나고 교훈을 얻을 역사이긴해…근데 이 븅신아 넌 우리 조상이 무슨 슈퍼 히로인줄 아냐? 여진족은 훗날 명나라도 먹고 몽골도 먹고 티벳에 위구르에 서토 역사상 가장 큰 제국 중 하날 세우는데 그런 애들한테 우리는 한번도 꿇었음 안 된다? 뭔 개 같은 논리냐? 우리보다 군사수 몇배나 많고 경제력 많은 중국도 전에 속국이거나 유목민족에게 무릅 꿇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거늘 아따 우리 조상님들은 무조건 100전 100승 해야된당께? 이게 뭔 개소리레? 뭐 당시 인조와 그 당시 조선을 뭐라 하면 아무도 뭐라 안하겠지만 너같이 그것만 보고 역사의 흐름은 무시한체 조선은 쓰리게 우우 거리는 쓰리게들은 노답이다 정말……왜 사니…인조 욕함 아무도 뭐라 안 그래…근데 조선 500년을 고작 전쟁사 하나만 보고 욕하는 짓은 초딩도 안 할거다 ㅋㅋㅋ
5. 조선군 왜 1만밖에 안되었냐
이건 첨엔 나도 가정이라 했지만 더 연구해보니까 답이 탁 나오더라고 ㅋㅋㅋ 물론 내가 원하는 결과로 ㅋㅋㅋ
일단 니가 착각하는게 있는데 조선이 명나라 대군을 보내고 우린 소수만 보내쟈는 조선이 명나라를 숭상하는 사대때문이 아냐 이 븅신아. 만약 그랬다면 어이고 천군은 우리가 지킴 거리고 더 필사적으로 싸웠던가 했겠지. 당시 기록을 보면 오히려 조선은 명군에게 “싸우지 않을 거면 차라리 명군이 최대한 적게 주둔하는 게 좋다”라고 까지 주장해. 근데 나라에 명군은 바글거리고 음식은 수탈해가네? 어 그럼 마침 일본군이 털려서 전면 후퇴하고 이젠 동남부에 울산성등에 밀집해있는데 이 밥 쳐먹는 하마들이 뒈지면 우리 군량미도 아낄 수 있겠는걸?! 그럼 저것들을 전면에 세워서 명나라 군이 일본군에 타격 많이 주면 우리야 좋고 또 중국 애들이 많이 죽으면 군량미도 들 먹어쳐델 테니 일석 이조네?! 올~ㅋ? 이해감? 그리고 미군이랑은 다르지 병시나 미군은 6.25때 우리한테 물품, 음식까지 줬으니 명나라처럼 음식 아끼게 되져나버려라 대상이 아니지 그걸 비교라고 해놨냐 ㅉ.

그 외에도 이유가 있어. 뭐 평양성 전투등이야 당시 조선군이 사람도 거의 없는 최북단까지 밀렸을 때이니 당근 군사를 소수밖에 못 보낸게 당연한 건데 왜 이걸로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고…그렇게 꼬우면 당시 막 함경도 인구나 같고와봐 과연 니가 원하는 10만대군 만들수 있는 지형인지…하여간 당시 울산성 같은 동남부 쌈박질은 1597년경, 즉 임란 다 끝나갈 떼야. 이제 일본군도 전의를 상실한 애들이 많고. 게다가 이 일본군이 만든 왜성이란 게 당시 조선군이나 명군이나 첨보는 형식이야……성벽 위가 뚫여있는게 아니라 누각이 있는데 그 누각도 살짝 밖으로 나오고 그 밖엔 또 더 나온 지붕이 있어서 도저히 이건 뭐 걍 사다리 막무가내로 걸고 조총이나 활 쏴서 함락 시킬 수 있는 성이 아니야…일본군이 200년이란 내전으로 얻은 노하우로 만든 신식 요새지. 이런 첨보는 난공불락 성을 공격하는데 조선군은 당시 임란 막바지라 걍 포위해서 굶겨 죽이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야…실제로 가토 기요마사인가 군대도 아사해서 뒤질뻔했고…근데 왜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구지 아까운 목숨 바치며 싸우냐고 그것도 신식 요새 상대로? 삼국지 안 읽음? 원소가 조조한테 왜 패했냐 걍 기다림 이길 전쟁을 오히려 속전속결하려다 뒤졌지. 공성전이란게 무조건 사다리 걸고 싸워야 되는게 아냐 무식아. 역사보면 걍 포위하고 냅두는 경우도 많아…일본군처럼 몰리면, 특히 당시 피폐해진 조선 국토 때문에 먹을 것도 없고 날씨가 더럽게 4계절 뚜렸해서 죽을 맛인 일본애들 상대로 뭐하러 대군보내서 희생하냐…걍 1만씩 보내서 조금씩 흐뜨리는 이런 전술은 예전부터 많이 있어왔어…이걸 사대네 국가 역량이네 뭐네 하는 니가 바보야…까딱했다 제갈량 30만 학소 3000도 못이긴 꼴 나서 또 상황 역전되면 어쩔레? 니가 책임짐?
마지막으로 조선 당시 민간인들의 심리 때문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울산성 전투당시 1만 조선군중 5000이 도망가 버렸다…그래…그럼 넌 또 당시 조선이 군사 통솔도 못할 수준의 지휘관만 키운 무능한 나라거리겠지…근데 이 바보야 애초에 평화가 지속된 장교들은 어느나라나 전쟁 경험도 짧고 겁 많은게 태반이야…괜히 전쟁 초창기일 때 조정에서 니가 말하는 임란 대비 하라고 장군들하고 군사들, 특히 수군 경상도에 많이 보내놨더니 다 적군 보자 마자 도망쳤겠냐…하여간 다시 울산성 가서 당시 장군은 무려 권율이야…즉 사람들이 조선이 문제네 할만한 인간은 아니란거지…근데 그 행주대첩의 권율이 호구라서 군대 통제를 못했겠냐? 당시 조선인들 대부분은 장기간 전쟁으로 조총이니 뭐니 하는 잡설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일본의 조총등에 공포심이 컸었어…이건 2차대전때 프랑스도 비슷한데 나중에 자료 보여줄거지만 당시 프랑스의1차대전의 트라우마로 전쟁에대한 패배의식 deafeatism이 프랑스가 고작 1달만에 독일한테 점령당하게 한 여러원인 중 큰 원인 중 하나란 건 서양에서 정설이야…똑같이 조선인들도 정유재란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던거지. 실제로 용인에서도 대부분 도망치다 죽어버리고. 사람 심리란걸 전쟁에서 무시하면 안되. 당시 조선 사내들이 무슨 스파르타 인이냐? 당시 조선 인구가 800-1000만인데 여러 의병단체들중에 1만이 넘는 애들이 없어……당시 모집 가능한 인원은 200만인데…뭔 소리냐 대부분 당시 조선인들 대부분은 걍 쫄았단 거야. 물론 초반에 조총이나 일본군에 대한 공포심이 조성되기 전까진 죽을 각오로 싸운적도 많아…근데 그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 마저 당시 병사들중 적군이 무서워 탈영한 놈들이 부지기수에 안 도망간 놈도 벌벌 떤다고 주구장창 나와. 도대체 이런 권율,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휘하의 군인들도 이 모양인데 어느 남자 놈이 군대 모집의 응하겟냐? 다 도망가거나 숨거나, 심지어 당시 민간인들중에 살려고 친일짓하는 놈들도 많았어. 이유는 간단해 아까 징비록에서 봤듯 조선인들은 오래된 평화로 나태해졌고 군사란 애들도 말이 군사지요즘으로 치면 아침에 창 좀 찔러대고 저녁엔 소녀시대 보면서 헤헤거리고 포커 치던 순진한? 애들이야……근데 이런 애들 앞에 왠 평생 칼 싸움만 한 놈들이 장군들은 뭔 도깨비 모자 쓰고 오는데 막 본적도 없는 총을 쏴 되네?! 그 뿐만 아니라 미친 ㅋㅋㅋ 코랑 귀를 잘라 제껴. 괜히 지금도 우는 아이들에게 에비!이비! 하고 하는 게 아니지…얼마나 트라우마가 심했음 지금도 저 말이 남아있냐…

니가 머리가 있다면 전쟁 중 공포형성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겠지. 니가 좋아하는 몽골군이 많이 썻던 방법이기도 하고. 조선 사내들이 5-10만 포로로 끌려갔다고 너 말했지? 말 잘했다 왜 그 많은 애들이 반란 한번 안 일으켰을까? 사람 심리란 거야.  네 주위 동료들, 전우들, 지인들과 가족이 목이 잘리고 귀가 잘리고…여진족이랑 싸웠을때도 이정도로 잔인한건 못 봤어…그럼 뭐냐 걍 오줌 지리는 거야… 하여간 때문에 조선인들 중엔 모병에 응하지 않고 숨어있던 인간들도 무진장 다수에 그래도 맘 먹고 응한놈들도 결국 옆에 전우 죽고 난리 나자 걸음아 나 살려라야…이건 뭐 어쩔수가 없어 자라온 환경이 그런걸…근데 이런걸 가지고 니처럼 나라가 후졌다라고 할순 없지. 역설로 오히려 조선이 사람들 참 순진하고 편하게 상게해줬단 말도 되고 어쨌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든 나라를 욕하는건 초딩도 바보짓이란걸 아니까. 즉 조선이 1만씩 밖에 안보낸 이유는
진상 명나라 놈들 써먹고 + 사람들이 겁에 질리고 패배주의에 쩔어 모병에 응하지도 않고, 해도 도망가기 바쁘고 + 걍 일본군을 포위해서 아사시키기만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야.

뭣보다 넌 나라 복구를 우습게 보는거 같은데 당시 조선은 한반도에서남부가 제일 크게 유린 당했어…이건 레알 한반도 역사상 유래가 없었어. 한번도 이정도 규모의, 그것도 파괴적 군대가 한반도 남부로 외침한 경우가 없었어. 뭐 당나라가 백제에 13만 끌고온건 좀 케이스가 다르고 (애초에 한반도 국가랑 연합해 들어온거니까). 근데 고구려 고려는 북쪽 척박한 지역이 당해서 비옥한 남쪽은 남았으니 그럴저럭 살만한데 조선은 달라…가장 비옥한 남쪽이 아주 털렸고 고로 밥줄이 끊겼어…근데 니 생각엔 사람 목숨 허비하지 않고 땅 복구가 날까 쓸데없이 어차피 이길 전쟁에 사람 다수 투입해서 죽이겠냐?
결론은 너야 말로 나처럼 논리적으로 1만 “밖에” 못보낸 이유가 국제 역량이 딸려서였단걸 설명해봐…니 말 보면 말만 길지 죄다 걍 1만 보내니 역량 없음 연속 뻘소리야…
마지막으로 조선 군은 결국 사람 많은 중요 거점은 점령 못했다 하는데 니 이름은 전략설계인 주제에 전략설계는 잘 모르냐? 얌마 당시 평양까지만 해도 조선은 척박한 북쪽에 처박혀 있었기에 뽑을 군사도 별로 없었어. 근데 그 없는 놈들 어떻게든 딸딸 긁어서 중요 거점에 올빵하라고? 님  미침? 만약 그래서 그 대군 다 잃음 어쩔 겨? 그럼 바로 조선 끝임. 차라리 주변 영천성같은곳 점령해서 중요 거점 주변을 장학해 식량, 군대 루트도 확보하고 적 진지들을 고립시키는 것도 좋은 전술이야. 근데 이걸 니 판타지대로 대군 만들어서 쇼 하라니 에효…
그리고 당시 일본군이 최선을 안 했다 거리는 데 좀 제대로 된 근거를 보여주길. 걔들이 진짜 일본 사정이 급해서, 걍 이쯤 가도 되서...라고 쓴 난중일기 같은 뚜렸한 기록 같은게 있음 보여줘……없으면 나도 너 같은 추측은 해. 당시 일본군이 일본 사정이 급박해서 그랬다고? 그럼 애초에 정유재란때 압록강까지 갔을 때 더 힘내서 조선 빨리 접수하고 대기하거나 일본일에 주시하면 만사 형통 아님? 어차피 명나라랑도 니 말데로 강화도 하잖아… 걍 조선 다 먹고 명나라랑 타협한 뒤 영주들은 지들 땅 넓히고 편안하게 있으면서 일본 상황 보는게 좋지 왜 바보같이 배후에 적을 남겨둠? 네 주장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오히려 당시 일본 놈들이 하도 농지 파괴해서 기근과 여름 질병 때문에 일본 애들이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단 말도 많다. 또한 이순신과 의병들이 보급 루트를 다 끊어버렸지. 게다가 북방에선 드디어 조선 최정예들도 내려와 + 명군. 걍 일본애들이 한계를 보인거야 븅딱아. 어디서 그걸 미화하려고 하고 있어……

글고 일본군이 깡보병이라서 후지다? 얌마 영정조 글에선 일본군이 니가 빨아 제끼던 유럽군처럼 라인배틀했다고 빨더니 여기선 또 뭔소리? 깡보병이 기병보다 후졌던건 총이 개발되기 전이고 니 말대로 총든 보병이 쓰레기면 왜 제국주의는 유목제국이 아닌 유럽이 이뤘니? 뭐 라인배틀에서 총병도 기마병한테 취약했단게 보병 자체가 후졌다걸 말해주진 못하지 그건 걍 진법의 문제고 그렇게 치면 기병 진법중엔 약점이 없나…게다가 임란때 조선군이 깡보병 일본군따위한테 고전해서 후지다고? 당시 나탕개 난 평정한후 조선은 오히려 북방 여진 같은 기마병을 상대로 한 개혁들을 내놨어. 위에 보여줬었지? 근데 일본은 오히려 깡 보병이라서 안먹힌거야…즉 조선이 일본군한테 고전한건 조선이 쓰레기라서가 아니라 당시 개혁을 새로 했더니 하필 테스트 할놈이 여진 같은 기마위주가 아닌 총보병 위주 국가여서 그런거라고 알간?

또한 임란 기록보면 죄다 1만 찔끔씩이라는데 이건 뭔 개소리야...용인 전투 5만, 이일 2만, 칠천량 2만 5000 다 어디다 팔아먹었냐…당시 수군 2만 5000이면 스페인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인데 말이지…뭐 또 그럼 용인 5만 오합지졸 이러겠지…근데 그것도 웃김 애초에 당시 군사 체계란게 일본이나 조선이나 걍 백성 결국 필요할 때 모병, 끌어다 쓰는 거였지 뭐 다르냐…다만 일본애들은 전쟁 경험 만땅 조선, 특히 남부민들은 전쟁, 전투경험 무.
자 임진왜란을 끝내기 전에 넌 왜 내가 예전 진주만 예를 들었더니 반박 못하냐? 진주만 뭐야 일본이 중국 만주 야금야금하는 대놓고 군사 행동하는데 미국이 하지말라고해서 생긴거 아냐. 그럼 미국 대사가 여러 번 미국한테 일본 폭격간다!!!라고 했는데 미국 뭐함? 걍 필리핀 그 맥아더의 필리핀도 뺏기고 진주만 때 걍 개 털렸지. 임진왜란 상황이 더 정보력 좋았던 20세기에도 일어난거라고 이놈아…그리고 미국이 자력으로 일본군 몰아내서 비교가 안 된다고?...진짜 너 뇌 암 걸렸냐? 미국 홀로? 그럼 일본과 더 가까운 위치에서 싸우던 영국-인도군, 호주군, 중공군, 소련군, 대한 독립군, 동남아 독립군세력들은 뭐냐? 다 어따 갖다 쳐 버렸냐고 이놈아… 일본이 만약 얘네들도 없었고 전력이 모두 동부로 쏠릴수있었다면 미국이 패하진 안았겠지만 전쟁은 훨씬 더 길어졌을 가능성도 많아 이놈아. 애초에 일본 제국 당시 땅 크기에 지역만 봐도 미국에 맞먹는 자원 과 인력을 얻었는데 게다가 바다로 미국으로부터 보호받았고.  이눔이 독립군 무시하냥 ㅋㅋㅋ
영국군도 비슷하지. 어느 정도 예측하고도 버마 잃고 인도 동부 잃을까 봐 당시 600만 무고한 인도 주민 음식 뺏어서 아사시키고. 뻘 짓도 이런 뻘 짓이 있냐? 조선은 양반이야 이놈아. 그렇다고 미국, 영국인들이 지들 역사 쓰레기라 부르지 않아 ㅉ. 오히려 저 600만 아사시킨 처칠을 빨면 빨지.

자 이제 병란 들어갈건데 이건 짧게 할거야. . 난 너 같은 백수가 아니라 이렇게 시간 버림 안된데 친히 해주니 감사해라. 당시 너란 놈은 병란이 12년이란 강산 바뀔 세월동안 막을수 있었다 개솔 하는데 이건 2차 대전 프랑스를 보면 아주 답이 확 나와. 아주 이때 프랑스 행보가 병란 조선과 소름 끼치게 똑같거든.  하지만 그전엔 너놈은 자꼬 조선군 ㅄ 조선 정부 ㅄ 하는데 당시 명나라랑 비교해볼까?
참고로 청나라군대와 명군 사이에서 명군이 이긴 전투가 몇 개?
단 2개. 하나는 원숭지가 이끄는 명군이 영원성에서 포르투칼 대포로 청군을 격파한 것이고,
두번째는  모문룡 명나라 해적이  비겁하게 조선에 들어와 청나라 요동을 들어가 오늘날의 단둥을 쳐서 함락시키고 도망친 경우.

대부분 전투가 청군의 승리이지. 그것에 비하면 조선은 병자호란 당시에  오늘날의 사단급 병력만큼 되는 인원을  두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것에 비해 소규모 작은 전투에서 몇 번 이긴 것을 보면 오히려 조선이 명보다는 낫네.뭣보다 쌍령 같은 막장 시추에이션은 역사상 전근대엔 넘치고 넘쳐…삼국지만 봐도 뭐 소설이니 사실이 아닐수도 있지만 고작 100명 데리고 가서 10000명 없애는 거나,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보면 탱그레디 같은 장군은 고작 기병 24기 데리고 가서 더 선진 문명 아랍 군들 쓸고 다니고, 수수전투에선 항우가 고작 지휘부 강습만으로 유방 수십만 파괴. 비수대전. 그라니코스 강에서 페르시아 제국 대군이 알렉산더한테 대패. 고구려는 위나라 고작 1만한테 나라 멸망 직전까지 안감? 으따 나라가 얼마나 ㅄ이였길레 일본 20만 보병도 아닌 니가 욕하는 1만 보병한테 털렸다냥? 자 이럼 이제 고구려는 수치의 쓰레기 역사냐? 아니잖아… 너 또 “이게 비교냐? 고구려는 초반에 그래도 위나라 깨부셨어!” 할것 같은데 그럼 조선군도특히 청 양굴리 장수가 이끄는 5천명이 김준용의 군대에 광교산에서 털리거나 그외 김화 백수동 고지같은 양대 승첩등의 상당한 활약도 존재했다고 굿잡스님이 말씀하셨지? 자 그럼 고구려, 유방 세력, 페르시아 제국, 십자군당시 아랍은 허접 쓰레기였을까? 아니지? 좀 일관성 가져. 나처럼 한국 국가 다 빨던가 다 까던가 임마. 물론 나도 인조 같은 쓰레기는 욕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나라 전체를 욕하진 않아 너처럼…

자 그럼 프랑스를 보자. 넌 무슨 당시 조선이 청나라군이 오는 루트도 모르고 완전 ㅄ ㅋ 이랬지? 300년후 프랑스는 다른 줄 아냐? 세계 1차대전에서 매우 심하게 타격 먹은 프랑스가 2차대전 30년의 기간, 무려 강산이 3번바뀔 기간동안 준비한 결과물이 뭔지 알어?

This example should put things into perspective...a man who lived through the invasion of Belgium recalled this moment to paraphrase:
When the French were matching northward into Belgium to meet the Germans, the French officer came into the farm house and placed a map to see where he could station and position some of his forces. The map was outdated, the officers boots were old, and he had a nonchalant attitude to him. He asked the owner how far he though the Germans were... the owner replied to him that the Germans had already been here and were probably already 20 miles south!
The German officer who had come inside had a map with every pinpoint precisely where it was to a henhouse.

The French, given the mood of the country from top down, really stoof no chance no matter how equal they may have proved on paper.

실제 이야기다. 우리 미국 역사선생님도 그랬고 일단 시간 없으니https://answers.yahoo.com/question/index?qid=20100210102128AA95oXg 단다. 독일군이 쳐들어오는데 지도가 오래된 거래서 독일군이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몰랐던게 당시 프랑스군. 프랑스 장교가 벨기에 집에 들어가서 어따 군사 배치하고 이럴까 지도 펼치고 보고있었다. 지도는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형식이였다. 그는 벨기에 농부에게 독일군이 얼마쯤 왔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농부가 말하길 “벌써 20마일이나 남쪽으로 갔어 븅신아!”

12년이 아니라 무려 30년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인조반정에 이괄의 난이 나서 개판되었던 조선 처럼 프랑스도 당시 공산당과 기존 정부의 대립이 심해서 전쟁 대비가 잘 안 된것도 있음. 근데 불과 70년 전 훨씬 기술 좋은 프랑스도 니 말대로 강산이 3번 바뀔 시간에 나라 복구가 안되었는데, 심지어 프랑스는 조선보다 인구도 많고 기후 도 좋아 농사도 더 잘되는데, 300년전 조선보고 뭐? 장난하냐? 12년 강산 같은 소리하네. 당시 유럽 나라들 모두가 불과 30년전 1차 대전 경험하고서는 대비 똑바로 못해서 2차대전때 독일에 먹힘 ㅄ들 이렇게 소리 쳐 봐라 유럽인들 니 목 따러간다에 다 건다
     
대한민국군 14-12-23 17:21
   
오호~훌륭한 논리반박이십니다.^^
     
shrekandy 14-12-24 11:27
   
아, 그리고 전략설께 니 추가로 프랑스가 2차 대전직전에 사령부에 전화기도 설치 못해서 편지로 지시 전달하고 그런거 알지? 게다가 심지어 무기도 딸려서 나폴레옹 시대때의 박격포까지 끌고와서 쓴건 아주 전설급이지.  "고작" 30년 전에 세계 1차 대전인디, "무려 강산이 3번 바뀔 시간" 안데 준비가 고작 저거여? 뭐 프랑스 당시 탱크가 상식외로 짱이였고 준비도 했다 이러지만 머 그럼 조선은 조총병 대거 육성 안했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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