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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4 06:45
[베트남] 부남(扶南), 참파의 역사(사진 참조)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159  

부남(扶南)과 참파의 역사

 

1부남: 부남은 고대 실크로드 문명사에서 중요한 중개무역 도시였다.


부남은 일찍이 중국 한서부남(扶南)’으로 등장한다. 메콩 델타 지역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푸난 문명의 성립 연대는 1세기 무렵. 푸난은 을 뜻하는 크메르어 프놈(phnôm)’에소 온 말이다. 실제로 부남의 옥애오 유적지 주변에 해발 226m의 바테산이 솟아 있다. 드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했기에 산이 얕은데도 우뚝 솟아 보여 천혜의 요새로 꼽힌다. 바다로 나아가는 길목의 감시와 방어가 가능한 요충지인 이 일대가 옥애오 문명의 발상지로 선택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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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문명의 중심인 옥애오 유적지에서 발견된 석재 유물. 건축물에 붙어 있던 조각돌로 추정된다. 호찌민 역사박물관.

 

 a) 호찌민 역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인 옥애오 유적지 출토 현장. 

 b) 옥애오 유적지에서 발견된 로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의 금화.

 c) 힌두 문명이 짙게 배인 참파의 신상참파 박물관 소장.

 

3 (1).jpg

옥애오 유물은 안장박물관 야외에 몇 점만이 나뒹굴 뿐 정작 현지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약탈당한 유물 대부분은 호찌민 역사박물관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이튿날 찾아간 박물관에선 번쩍거리는 금화 몇 개가 눈길을 끌었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안토니누스 피우스(86~161) 시대의 금화도 보인다. 오랜 평화기를 누렸던 1~2세기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의 황제들이다.

 

당시 로마와 그리스·이집트 상인들은 아라비아해를 가로질러 인도에 상륙했고, 무역풍을 타고 동남아에 도착했다. 후한서에 대진(大秦·로마)에서 사신을 파견한 안돈왕(安敦王)이라고 적혀 있는 이가 바로 아우렐리우스다. 대진국 사신은 166년 바닷길로 일남(日南·푸난 일대)을 거쳐 육로로 낙양에 도착했다. 로마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의 중간 거점이 이곳 푸난 일대였다.

 

그리스 출신으로 로마제국 영내인 이집트에서 활동하며 남해무역에 종사하던 상인이 서기 70년 무렵에 쓴 에리스리안해 안내기(The Periplus of the Erythraean Sea)에도 인도양을 거쳐 푸난에 이르는 항해 노선이 잘 소개돼 있다.

 

대진의 귀족들은 수입 명품인 중국산 비단을 휘감아 신분을 과시하고 있었다. 대신 유리·모직물·진주·산호·호박 등이 로마에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로마제국은 수입 초과의 경제구조를 지녔기에 무역지마다 많은 금화를 뿌렸다. 옥애오에서 발견된 금화가 바로 그 일부일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a.로마 귀족, 비단 휘감고 신분 과시


남해 무역로에서 푸난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초기 동서무역에서 인도 상인의 배들은 안다만 해를 거쳐 말레이반도 서쪽 해안에 닿았다. 말레이 반도와 아시아 대륙 사이를 잇는 좁고 잘록한 지역인 태국 남부의 끄라(kra) 지협(地峽)을 지나 오늘날의 타일랜드만으로 간다. 말레이반도를 관통해 동서 바다를 연결하는 끄라 지협의 수로가 동서 교통로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일랜드만을 가로질러 항해하면 곧바로 메콩 델타에 닿는다.

 

이 강을 따라 가면서 옥애오 일대 지역에 동서 교통로를 중개할 고대 항구도시가 성립됐다. 오늘날 중국이 구상하는 끄라 운하는 어쩌면 이렇듯 오래된 고대 교통로를 부활시키려는 장기 계획일지도 모를 일이다.

 

동서 교류에서 말라카해협을 이용하는 노선은 5세기께에야 본격 가동된다. 말라카해협을 관통해 싱가포르 쪽으로 돌아서 중국해 방향으로 진입하면 훨씬 편리할텐데 당시의 항해기술 수준으론 조금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b.부남은 단순하게 유럽과 중국 간의 동서 교류 중개지 역할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을 통해 인도 문명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메콩강가를 지나가던 배에서 내린 브라만 카운딘냐(Kaundinya)가 토지신 나가(Naga)의 딸인 소마(Soma)여왕이 지배하는 메콩 델타에 당도하고, 둘이 결혼해 마침내 푸난왕국을 만든다는 개국신화는 외래와 토착세력의 결합을 뜻한다. 호찌민 역사박물관에서 만난 옥애오 석상의 대부분이 불교와 힌두의 혼재 양식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박물관에는 산스크리트 비문도 남아 있다. 헬레니즘과 로마 양식의 요소를 가진 간다라 미술이 옥애오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불교와 힌두, 그리고 그리스 양식이 융합적으로 메콩강에서 만나 새로운 해양 문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해상왕국으로 한때 번성을 누리던 푸난은 5세기부터 쇠퇴하기에 이른다. 중국인이 동서무역에 적극 개입하면서 중계무역지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북방 진랍국(眞臘國·크메르)이 쳐들어오자 멸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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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왕국의 멸망은 바로 해양력의 쇠퇴
, 즉 끄라지협 루트 대신 믈라카카해협 루트가 채택되는 국제무역 항로의 변화 속에서 사회경제적 처지가 궁색해진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2. 참파: 밀림에 뒤덮인 미선 유적지의 사원건축물. 동서 교역의 해상 문명지였던 참파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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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유적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리스 양식의 기둥과 초석.

 

세계유산 미선엔 깔끔한 신전이 있다. 부남이 맡았던 동서교류의 해양 문명사적 임무를 이후에 참파가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참파 문명의 중심지는 미선(美山·My son)에 있다. 꽝남성 주이푸(Duy Phu) 골짜기 일대에 찬란했던 참파 문명의 흔적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국 문헌에는 린이(Lin-yi·林邑), 나중에 참파(Champa·占城)로 불리던 왕국이다.

 

베트남 역사책은 대체로 부남은 물론이고 참파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다

베트남 역사는 기본적으로 북쪽으로 중국에 대항하고,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해온 역사다. 오늘날 남북으로 펼쳐진 긴 해안은 오랜 북방·남방 정책의 결과물이다.

베트남 내 소수민족인 참족이 중남부 해안지대에 세운 참파국은 오랜 역사적 공략 대상이었다.

참파왕국은 대대로 신에게 봉헌하면서 새로운 신전을 축조해 나가면서 7~13세기 동안 예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중심지인 미선 유적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덕분인지 몰라도 생각 이상으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참파 사람들은 대단히 예술적이고 넉넉했던 듯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풍수, 자잘한 실개천이 곳곳으로 굽이치는 언덕에 거대한 건축군을 세우고 오랫동안 살았다. 방어와 은신에 유리한 지형에다 근처에 강이 있어 그대로 바다로 나아가기에 유리했다. 해양전략적 요충지에 참파 사람들이 모여 산 것이다.


현지에서 첫눈에 놀란 것은 그리스 양식의 기둥과 초석이 즐비한 모습이다. 바다를 건너온 서양의 건축 양식이 마치 동서 융합의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다. 푸난 문명지에서 발굴된 로마 동전처럼 참파에서도 그리스 문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미선은 또한 신성한 종교적 중심지였다. 힌두교의 창조와 파괴의 신인 시바 여신을 비롯한 다양하고 풍부한 힌두 문명의 숨결이 곳곳에 어려 있다. 시바 여신이 기거하는 메루산 일대를 본당으로 삼고 우주를 상징했다. 순례자는 이들 신에게 예물을 봉헌했고, 건축가는 붉은 사암벽돌을 사용해 면도칼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건축술을 선보였다. 건축물마다 새·물소·코끼리 등 인디아의 신들이 주로 타고 다녔던 동물들과 적도의 자연을 상징화한 다양한 문양, 춤꾼과 악사의 모습 등이 아로새겨졌다. 현세와 내세, 인간과 신이 함께하는 신인(神人) 융합의 세계를 구현했다.


그러나 미선 역시 전쟁의 여진을 피해갈 수 없었다. 문화유산 곳곳이 미군의 폭격에 날아가면서 폭탄 웅덩이가 둠벙처럼 만들어졌다. 다행히 습윤한 열대의 힘이 나무를 길러내고 이끼로 덮여서 빠른 시간에 상처를 가려주었다. 자연은 상처조차 품격 있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3. 베트남 중남부는 항만정치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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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역사가인 미국 인디애나 볼주립대 교수 케네스 홀의 설명을 빌리자면 베트남 중남부는 일찍부터 항만정치(port polities)의 네트워크가 조직된 곳이었다


왕국이라는 중앙 집중적 권력이 있기는 했으나 여러 무역 거점이 해안 곳곳에 포진된 양상으로 존립했기 때문이다. 국제무역의 중추인 참파라는 이름의 분산된 나라들이 일대 강가와 계곡으로 흩어져 미작농업의 혜택을 받으면서 동시에 해안 무역을 주도했다.


참파는 북쪽 베트남인의 공격은 물론이고 중국의 공격도 수차례 받았다. 끝내 10세기에는 안남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남으로 밀렸다. 팽창정책을 취한 원나라는 남해무역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남해항로의 요충지인 참파를 맹렬히 공격했다. 왕국은 그 뒤로도 몇 세기 더 수명이 연장되지만 활력을 잃고 마침내 멸망의 길을 걷는다. 그래도 참파는 장구한 세월을 버티며 무려 19세기까지 존립하면서 베트남 땅의 숨겨진 역사를 이끌어왔다


참파에는 흡사 우리의 백제 유적이 신라에 비해 총량이 절대적으로 적듯이 폐허의 미학이랄까, 사라진 역사의 비밀이나 갈증 같은 그 무엇이 있다.


참파는 역사 속에서 깨끗이 사라진 뒤 정글에 뒤덮여 잊혀진 문명이 됐다. 식민지 시절인 1895년 프랑스 탐험가에 의해 발견된 후에야 발굴이 시작됐다. 다낭 시내의 참박물관을 찾아가보니 앙코르와트 못지않은 양질의 유물이 수북이 쌓여 있다. 말이 <발굴>이지 현장에서 그대로 뜯어내 수용소에 집결시키듯 창고형 박물관에 모아놓은 것들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잊혀진 문명은 서서히 복원됐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고고학자와 복원 기술자의 역할이 컸다. 과거 로마시대 자신들의 조상이 찾아왔던 곳을 그 후예들이 문화유산 복원을 위해 다시 찾은 셈이다.


이제 동남아 해상 문명지의 하나였던 참파라는 단어는 베트남 54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전락한 참족에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참족은 현재 고원지대와 라오스 메콩강 유역 일대에서 40여 만 명이 살아간다.                      중앙SUNDAY 참조.편집.보충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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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8-05-04 13:19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적어도 문화적 측면에서는 의외로 중국보다는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동남아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보로부드르 사원만 하더라도
건축-조각 양식에서 힌두교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고...

심지어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지역의 베트남,라오스,태국의 경우처럼
현 주류민족의 원래 본거지가 중국남부일대에서 남하해온 경우에도, 마찬가지 양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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