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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3 11:53
[베트남] 베트남 역사 정리 4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026  

응우옌왕조, 쇄국정책으로 나라 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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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시대별 영토확장. 응우옌왕조에 이르러 현재의 영토를 확보했다


응우옌왕조의 쇄국정책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륙과 해양으로부터 안보 위협이 닥치는 상황에서 베트남이 대외개방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국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랫동안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온 베트남은 자신이 주변국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 문명은 전통을 깨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반도 등 주변국이 서구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식민지가 되는 상황에서 베트남의 쇄국 의지는 더 강해졌다. 당시에는 개방을 통해 성공한 사례도 없었다.

내부적으로도 응우옌왕조는 비록 방대한 최초의 통일왕조를 건설했지만,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지 않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반란에 직면해 있었다. 응우옌왕조로서는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응우옌왕조는 대중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응우옌 씨가 수백 년간 이어져온 내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태국군을 끌어들인 것, 내란 시기 농민반란으로 등장했고 청군의 침입을 격퇴한 떠이선(西山)왕조(1788~1802)를 멸망시킨 것 등이 그 이유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응우옌왕조가 국제질서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쇄국을 고수하다가 마침내 독립국가 유지라는 역사의 대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이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야기한 조선왕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내란 진압 위해 외세 끌어들여

응우옌아인(阮映·가륭제)은 떠이선왕조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을 후원했던 태국군이 무너지자 1784년 말 피에르 아드란 주교를 통해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동학농민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던 조선왕조의 행태와 비슷하다고 할까.

응우옌아인은 프랑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당시 겨우 4세였던 태자 푹 까잉에게 옥새와 국서를 주어 보냈다. 14개 조항으로 된 국서는 “프랑스는 다이 비엣에 1500명의 군대, 전함, 총, 실탄 등을 제공하며, 다이 비엣은 대가로 프랑스에 호이 안과 꼰론섬을 할양하는 것 외에도 남 다이 비엣에서 프랑스만이 무역활동을 하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1787년 11월 태자와 루이 16세 간 10개 항으로 구성한 베르사유 조약을 맺었다. 프랑스 측의 사정으로 조약 내용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1818년 프랑스는 이 조약을 근거로 다낭과 꼰섬 할양을 베트남에 요구하게 된다.

원정계획이 취소되자 아드란 주교는 자기가 직접 자금을 마련하여 군사를 모집하고 무기와 배를 구입하여 응우옌 씨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지만, 만약 프랑스가 협약대로 원정을 추진했더라면 프랑스는 훨씬 쉽게 18세기 말부터 베트남을 식민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117년간의 항쟁 끝에 프랑스-미국 몰아내

 a)프랑스, 베트남을 3分해 지배, 응우옌 왕조 명맥은 유지

 b) 2차대전 중 일본군 점령, 200만명 굶어 죽어

 c)프랑스, 호찌민의 북베트남에 대항해 남베트남에 바오다이 정권 수립, 분단의 단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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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대통령 관저인 독립궁으로 북베트남군 전차가 진입하면서 오랜 전쟁은 끝이 났다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은 1858년부터 시작되었다. 동남아시아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쪽에 위치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비껴나 있었다. 일찍부터 가톨릭 포교 활동을 통해 속속들이 베트남을 알고 있던 프랑스는 지금까지 식민지 쟁탈전에서 뒤졌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 했다. 프랑스는 베트남이 자국(自國) 선교사를 처형한 데 대한 징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같은 이유로 스페인도 동참했다.

베트남 중부 다낭을 공격하는 것으로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프랑스가 베트남을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기까지는 27년이나 걸렸다.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에서 월등히 앞선 프랑스의 역량 앞에 베트남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중국(청)에 기대려 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1884년 베트남을 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청(淸)나라는 이듬해 베트남에 대한 종주·종속관계를 포기했다.


인도차이나연방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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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민지 시대 총독부. 지금은 대통령궁으로 이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는 교묘했다. 베트남을 남·중·북으로 삼분했다. 처음에 점령한 남부는 할양받았고, 북부는 식민지로 만들었다. 중부에는 응우옌 왕조를 존치시켰다. 하지만 중부도 프랑스 식민정부 흠차대신의 관할하에 두었기 때문에 사실상 반식민지 상태였다. 프랑스가 응우옌 왕조를 존속시킨 것은 허수아비 왕조나마 남김으로써 베트남인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베트남에 이어 이웃한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점령하였다. 프랑스는 이 세 나라에다가 중국으로부터 조차한 광저우(廣州)만을 합하여 인도차이나연방을 세웠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 베트남인이나 프랑스인이 ‘인도차이나’라고 할 때에는 인도와 중국의 사이에 있는 동남아시아 모든 국가가 아니라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세 나라를 통합해서 지칭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통치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 사법권의 강화에 힘썼다. 군대와 경찰은 소수의 프랑스인에 다수의 베트남인으로 구성되었다. 나아가 프랑스는 베트남 애국지사들을 탄압할 목적에서 특별군사재판소를 두었다.

지금은 프랑스 식민지배시대나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꼰 자오’섬의 감옥은 1862년에 만들어졌다. 이 감옥은 베트남 전쟁 시 남베트남 정부의 수많은 베트콩들을 투옥, 고문, 살해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세계 제2위의 쌀 생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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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재정 확보를 위해 본국에서는 금지된 아편 판매와 흡연을 허용했다.


프랑스 식민정부는 1900년 인도차이나재정법을 제정, 식민지 정부의 소요예산은 식민지에서 거두는 세금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식민정부는 재정수입을 높이기 위해 소금, 술, 아편의 생산과 판매를 완전히 독점하였다. 식민정부의 재정수입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본국에서는 금지된 아편 판매와 흡연도 허용했다.

이렇게 마련한 재정을 기반으로 프랑스는 철도 및 도로 건설, 토목건축, 항만시설 등 인프라 구축 사업을 벌였다. 여기에는 경제적 목적 외에 연방 전체의 연계 및 저항 운동 진압이라는 정치·군사적 목적도 작용했다.

오늘날에도 이용되고 있는 북남(北南) 종단 철도, 하이퐁-쿤밍 철도, 북남 종단 도로, 사이공-프놈펜 도로 등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베트남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이공항과 하이퐁항도 이때 만들어졌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호찌민시의 ‘떤선’ 공항도 프랑스가 만든 것이다.

농업은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 개발에서 적은 투자로 가장 많은 수익을 남겼던 산업이다. 프랑스는 준설 및 관개공사 등을 통해 농업생산성을 높였다.

오늘날 베트남이 세계 제2위의 미곡 수출국가가 된 것은 이 시기 투자에 힘입은 바 크다. 아프리카의 구 프랑스 식민지 국가 주민들의 주식이 쌀이 된 것도 이 시절 베트남에서 엄청나게 생산된 쌀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농업 투자에 앞서 토지수탈부터 자행했다. 1945년까지 프랑스가 수탈한 토지는 베트남 전체 토지의 1/4에 해당하는 120만 헥타르에 달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메콩강 하류에 대한 토목공사가 시행되고 이곳의 농업 생산 조건이 크게 향상되면서 남부로 더욱 인구 이동이 가속화되었다. 오늘날 베트남 남부의 인구가 많은 이유다.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은 베트남의 문화도 철저하게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중국 중심이었던 베트남의 문명은 프랑스의 식민지배 이후 프랑스화, 서구화되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가톨릭 신자가 많은 것도 프랑스의 식민지배의 유산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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