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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3 11:34
[베트남] 베트남 역사 정리 2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968  

1000년 만에 독립 회복한 응오왕조


베트남이 중국에서 독립한 것은 응오(吳)왕조(939~968) 때이다. 중국에서 당(唐)이 망하고, 오대십국(五代十國)으로 분열되어 있던 시기였다. 고구려가 한사군 중에서 마지막 남아 있던 낙랑군을 축출한 것이 313년이니, 중국의 베트남 지배가 얼마나 길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베트남은 오대십국 중 하나인 남한(南漢)의 지배하에 있었다. 베트남은 바익당강(江)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남한을 물리쳐 1000년 넘게 이어져 왔던 북속의 사슬을 끊었다.

〈베트남군은 강바닥에 쇠와 나무 기둥을 박아놓고 작은 배를 이용하여 남한군을 유인했다. 남한군이 강을 따라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조수가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자 그동안 거짓 도망하던 베트남군은 강가 풀숲에 염초와 마른 건초를 준비하고 매복해 있던 군사들과 함께 일제히 화공으로 남한군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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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던 남한의 전함들은 전소되고, 남한국의 수장을 포함한 태반의 군사들은 전사하고 말았다.〉

이후의 역사를 베트남에서는 ‘독립왕조시대’라고 한다. 이 기간에 중국의 베트남 침략은 일곱 차례 있었다. 그중 세 차례는 후술할 몽골의 침략이다.

응오왕조를 비롯하여 딩(丁)왕조(968~980), 띠엔레(前黎)왕조(980~1009) 등은 중국으로부터 갓 독립한 상황에서 왕권의 약화, 왕위 계승의 불안정, 중앙집권제의 미확립 등으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자신들로부터 벗어났음에도 중국은 베트남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질서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이 어쩔 수 없이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였을 경우에도, 중국은 베트남의 독립을 위협하였다.

이를 알고 있는 베트남은 독립왕조 내내 중국과의 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다. 베트남도 1000년 중국의 지배 속에서 정치 등 여러 부문에서 중국화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독립했다고 해서 중국과 모든 것을 단절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베트남은 독립의 보존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응오왕조 시절부터 중국과 스스로 종주-종속의 관계를 택해야 했다. 중국 황제들은 베트남의 수장들에게 정해절도사, 안남도호, 교지군왕 등의 벼슬을 내려주면서 책봉, 형식상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

리왕조와 花山 李씨

띠엔레왕조는 독립왕조에서 처음 있었던 중국의 침략을 막아냈고, 이웃한 점성(참파·지금의 캄보디아)을 최초로 침략했다. 두 사건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듯이 띠엔레왕조는 이전의 두 왕조보다는 발전하였다. 그러나 후계자를 확고히 세우지 못해, 왕자들 간의 반목으로 단명(短命)했다.

왕조의 멸망에는 불교계도 한몫했다. 띠엔레왕조는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오랫동안 정치·사회 전반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승려들을 박대했다. 이후에 세워진 리(李)왕조(1009~1225)가 숭불(崇佛)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랜 기간의 병합과 독립왕조 이후 책봉조공관계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는 베트남의 문명과 문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중국인들은 자사, 태수, 도위, 현령 등 벼슬아치나 군인 등으로, 또는 경제적·종교적 목적에서 베트남으로 들어왔다. 베트남에 정착하는 유형도 단기, 장기, 영구 정착 등으로 다양했다.

때문에 베트남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여 인도적인 요소는 적고 중국적 요소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례로 베트남어 명사(名辭)의 80%가 중국어에서 왔다. 불교는 인도에서 해로(海路)로 직접 전래되었지만,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중국 불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또 중국에서 도교·유교도 건너왔다.

유학(儒學)이 베트남 역사에서 표면화되기 시작한 때는 리왕조 시대였다. 천년의 수도 하노이 시대를 연 리왕조는 베트남 최초의 장기(長期) 왕조이다. 이때부터 공자(孔子)와 유학의 성현(聖賢)들을 제사하는 문묘(文廟)와 국립대학인 국자감(國子監)이 세워지고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다.

베트남이 과거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1075년이다. 고려가 과거제를 도입한 것이 958년이니 77년 늦은 셈이다. 이후 베트남의 과거제도는 1919년까지 유지되었다. 따라서 베트남도 중국이나 한국처럼 문(文)이 무(武)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오늘날 베트남의 교육열이 높은 것도 여기에 뿌리가 있다. 이는 사(私)교육으로 이어져 오늘날 베트남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유교는 지금까지 베트남 사회와는 전혀 다른 사회, 즉 사대부(士大夫)가 중심이 된 사인사회(士人社會)를 출현시켰다.

베트남의 리왕조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화산 이씨(花山李氏)이다. 리왕조가 멸망할 무렵 황족 리롱 뜨엉(이용상·李龍祥)은 뱃길로 망명길에 올라 고려의 강화도에 표류하였다.

이후 그가 대몽항전(對蒙抗戰)에 공을 세우자 고종은 그에게 화산이라는 본관을 내려주었다. 아쉽게도 베트남이나 한국의 공식 사서(史書)에는 리롱 뜨엉과 관련한 기록이 없다. 화산 이씨의 족보에만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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