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어족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표면적으로 부여의 관직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猪加)·구가(狗加)에서 부여 귀족의 존칭 가(加)를 볼 수 있는데 고구려 고추가(古鄒加)의 관직과 그 쓰임이 같다.
3세기 무렵 쓰여진 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와 언어가 같은 집단에 관한 간략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東夷舊語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으로 언어가 여러 가지이나 특히 부여와 같은 것이 많다)”고 쓰여 있으며, 옥저·동예 또한 고구려와 같은 언어 집단이라 되어 있다.
부여어족은 후대 만주족의 조상에 해당하는 말갈·읍루·숙신의 언어와는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3세기경 읍루는 숙신의 후예로 “고구려와 언어가 같지 않다(言語不與句麗同)"는 기록[1]이 있으며, 6세기경의 말갈(勿吉, 靺鞨)은 "고구려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언어가 고구려와 다르다(在高句麗北 [...] 言語獨異)"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