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환율의 위험
신록의 5월이다. 그러나 경제의 봄은 오지 않고 불황의 한파가 전국적으로 몰아치고 있다. 수출도 내수도 안 되고, 공장 매물이 쏟아지고, 기업체 부도가 급증한다. 개인 신용불량자도 300만명이 넘는다.
지난 5년 동안 흑자였던 경상수지가 4개월 연속 적자다. 생산, 소비, 투자 그리고 취업률 등 모든 경제지표들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단체와 국회도 현 경제상황이 구제금융 사태에 버금가는 위기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가 어려울 뿐 위기는 아니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그 원인도 북핵 문제, 사스, 카드채 등이라며 주로 경제외적 요인만 탓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이 불거지기 이전부터 우리 경제는 나빠지고 있었다. 그동안 경상수지가 악화하는데도 성장률이 높았던 것은 아파트 등 건설산업과 정보통신산업(IT) 등의 거품 때문이었다. 이제 거품이 빠지니 불황이 닥치는 것이다.
먼저 경제를 원론적으로 보자. 우리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는 지금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그 원인은 수요 부족이다. 수요는 해외수요인 수출과 국내수요 측면이 있는데. 국내수요 역시 국내시장에서 외국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다. 그래서 수요증가책은 수출 증가책과 수입 감소책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이 곧 환율이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보다 수입이 더 증가해 국제수지가 적자가 되고, 판매 감소로 국내 산업의 고용이 감소하며, 이는 소비 감소로 이어진다. 이런 악순환으로 경제가 불황이나 공황으로 빠지는 것이 경제 원리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든 환율을 높여 경상수지 흑자를 증가시키고 성장률을 높여 불황을 탈피하고자 한다.
미국 역시 종전 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강달러에서 약달러(고환율)로 환율정책을 바꾸고 있다. 달러에 대한 유로화 환율이 4년 만에 최저이고 엔화 환율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중국 위안화는 고정환율이어서 달러와 동반 약세가 되어 세계 경제의 디플레이션을 더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일본 중앙은행은 자국뿐 아니라 유럽연합 쪽에도 엔화를 팔고 달러를 매입해 엔화 환율 하락을 막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유럽연합국들도 수출을 위해 초긴장을 하는 등 세계가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입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80%다. 그러므로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어느 나라보다 크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 학계, 경제계, 민간 경제연구소, 언론 등은 금리조정과 재정 조기집행만 논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본재뿐 아니라 각종 부품 그리고 소비재 수입이 급증해 무역적자가 3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한 44억달러까지 확대되고 있다. 또 중국산 농수산물, 경공업제품에 이어 이제는 기술제품까지 값싸게 들어와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번 달러 약세로 중국 상품은 더 싸게 수입될 것이다.
우리는 5년 전 치욕적인 구제금융 사태를 당했다. 당시도 저환율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와 외채가 확대되었다. 여기에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보유 달러를 시장에 내다파는 바람에 국제통화기금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런데 김진표 부총리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다. 취임하자 증권이 폭락하고 환율이 1250원까지 올라가자 기관들에 증권을 사도록 권유하고 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1190원으로 내렸다. 외국 증권자금이 환차손을 우려해 탈출하는 것을 막으려한 것이다. 결과는 외국자본에 증권이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주고 우리 경제만 망치게 될 것이다.
채규대/ 경제노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