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사인여천
미국가뭄으로 한국밥상 흔들려도 속수무책
기사입력 2012-08-03
정부 "식품가격 인상 자제 요청 … 콩은 비싸게 사도 싸게 방출"
세계의 곡창 미국에 닥친 가뭄으로 곡물가격이 폭등하면서 정부가 곡물수급대책을 내놨지만 눈에 띄는 대책은 없다. 가축사료를 포함한 곡물 75%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의 한계다.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재정부 등은 2일 식용 수입콩을 방출할 때 kg당 1020원으로 고정하고, 제분용 수입밀과 사료용 콩·옥수수 등의 할당관세를 0%로 계속 운용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곡물 수급동향과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자료 출처 : 2011. 8.12. 농민신문>
더욱이 곡물 메이져사가 다 그렇듯이 카길사는 수입해가는 나라에서 조차
그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곡물 메이져 회사는 모두 비 상장 기업이다
자기네들 친인척끼리 모두 주식을 소유한걸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모자라는 식량은 모두 카길사(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본사) 에서 수입한다 한국은 거의 연간 카길사로 부터 1500만톤의 곡물을 수입하는거로 나와있다
노태우 사돈의 콩 장사(해표 식용유로 유명한 동방 유량)때문에 노태우는 카길사가
처음에는 한국에서 직거래 콩 장사는 못하게 했었다
1976년 한국의 박정희정권과 미국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박동선 로비'의
배후 곡물상도 카길로 알려지고 있다.
곡물 메이져 사의 파워 또한 대단하다 .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을 소련을 배제하고
유고 슬라비아 연방으로 통일한 티토도 미국 식량지원때문에 가능했고
칠레의 , 전투기까지 동원하면서 .죽어도 대통령궁에서 죽겠다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고 쿠데타에 성공한 피노첸트 역시
미국의 식량지원이 가장 큰 역활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자라나는 칠레의 어린이들에게 분유을 싸게 먹일려고 했다
그러자 미국의 분유회사 네슬레는 자회사의 타격을 우려해 피노첸트의
쿠데타을 부추겼다고 한다 ,,,
더욱이 이들 곡물 메이저사들은 인공위성을 통해서 전 세계 곡물 작황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매점매석등 .마음대로 농작물 가격을 결정한다,,
미CIA.가 전 세계 곡물 작황을 곡물 메이져사에 정보를 부탁할 정도이다
ADM, 카길, 번지 등 곡물메이저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중국 콩 가공시장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유지시장 원료와 가공식용유
시장의 75%는 이들에게 장악된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에서 발간되는 경화시보는 “중국에 있는 97개의 대형 유지기업 가운데
64개사의 주식은 다국적 곡물회사가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식량은 정치적인 문제”
중국이 13억 중국인이 먹고 살아야 하는 식량을 세계 곡물메이저에 맡겨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과 곡물메이저 간의 싸움이 전면화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유전자조작이란, 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기후와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병충해를 없애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
생산량을 늘릴수있어 식량 빈곤을 퇴치한다고 하나 글쎄???
유전자 조작의 옥수수를 먹은 나방의 애벌레가 공복을 느끼지 못해 .
먹지를 않아 굶어 죽는다고 한다
나방 , 벌, 나비들이 이땅위에 사라지면 . 꽃가루 수정을 할수있는 하나의
생물체가 사라지게 된다 ..인공수정도 어느 정도껏이지 ..
아인 슈타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이 땅위에서 사라진다고
한국은 1995년 발효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쌀에 대해 '관세화 예외'를 인정받았다.
2004년 이를 한 차례 더 연장해 2014년까지 관세화를 하지 않기로 했다.
관세화를 할 경우 민간인도 쌀 수입을 할수 있다
쌀 시장 개방을 늦춰 국내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개방을 늦춘 대가로 의무 수입 물량(MMA)이 매년 2만톤씩 늘어 난다 ,
2010년 에는 의무적으로 32만 7천톤을 수입해야만 한다.
당연히 2011년도에는 2만톤이 더 추가되어야 하고....
그렇게 수입된 쌀이 남아 도는 것이다 ,,우리나라 쌀 농사 만으로 남아 도는게 아니다 ..
헌데 그렇게 남아도는 쌀 보관료만 1년에 3000억~~~4000억이 든다
우리나라의 밀 생산이 처음부터 저조했던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1970년에는 9만 700㏊에서 21만 9000t이 생산됐으며, 자급률은 15.9%에 달했다.
그러나 1982년 밀 수입이 자유화되고, 1984년 정부의 국산 밀 수매제도가 폐지되면서
생산량이 급감했다. 밀 자급률은 1980년 4.8%로 급락했고,
1990년에는 0.05%까지 곤두박질쳤다.
우리 밀 화려한 부활← 참고할만한
이정도하고요 나머지는 관심 있는분은 개별적으로 더 공부하시길
한,미FTA가 얼마나 무서운 독약인지도 ...()
끝으로 올해는 식량문제가 심각할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