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날조에는 정말 치가 떨린다.
일본군 아님.
만주국 소위
보면 응시자격 연령이 16세 이상 ~ 20세 미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증선이 증언한 바 당시 1938년이면 박정희 나이가 22세일때인데,
한 두살 낮춘다고 응시자격이 생겼을리가 없겠죠.
이쯤에서 유증선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중앙일보 지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유 선생의 지적처럼
박정희는 1939년 10월에 시험을 쳤기 때문에,
그로부터 1년 5개월 전에 혈서를 보냈다는 얘기는 여러모로 의심이 가네요.
당시에는 모집여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1939년에야 만주군관학교 설립에 관한 얘기들이 나왔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유증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시절 재학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여서
하사관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위의 제한연령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 미만까지 지원할 수 있었으므로 박정희가 나이 문제로 고민했네 어쨌네 하는 것은
개구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나이를 한 살 줄였다고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1945년 일제가 작성한『임시육군군인군속계』상에 나타난 박정희의 생년월일을 보면 대정 6년(1917년) 9월 30일으로 되어있는데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
최근의 나온 신문자료나
과거 신문자료나 내용은 똑같음.
하지만 일본 어디에도 징모과란 부서는 존재하지 않음.
박정희 혈서라는 당시 군모집담당 부서는 군형과(軍衡課)
41년이후에는 정모과(征募課(정모과)
박정희는 존재하지도 않는 부서에 혈서를 쓴것인가?
지금 대두되는
이 신문이 존재하는게 사실이라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임.
왜냐면 내용이 똑같거든요.
좌측이 이제껏 혈서에 관련해 날조를 일삼았기때문에
날조라고 하는건데 뭐가 잘못?
더군다나 혈서의 존재는 어떻게 할거임?
좌측의 입장을 모두 수용한다는 가정하에
논란이지
혈서를 쓴것이 사실이 되는게 아님.
최근신문도 보수는 한경오 안믿고
진보는 조중동 안믿으면서
일제강점기 만주신문은 믿는다?
아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