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대선판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중대한 시점에서 난파선의 선장으로 회자되고 있다. 벽처럼 단단한 지지세를 등에 업고 세 확장에 나서야 할 판에 오히려 쌓아논 표마저 까먹고 있다는 말이다. 배에 함께 태운 일꾼들은 노를 헛 젓고 있고, 배에 타지 못한 미취업 부역자들은 연일 배를 흔들어대는 모양새다.
방향키를 잡은 선장은 '과거사 사과 등이 실기했다'는 평가 속에 '현장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다'라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전세금 대책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급조된 정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박 후보가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지고 현안 대처 속도도 너무 느려 대선 패배의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아군들조차도 삼삼오오 모여 "이대로는 어렵다"는 말을 나누고 있다는데…. 박근혜 후보의 총체적 난맥현상을 진단해봤다.
일단 전략가가 없다. 실무진의 역량도 너무 떨어진다. 2주 전 "두 개의 판결이 나왔다"고 답하면서 인혁당 사건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후보는 당시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으로부터 사전에 질문지를 받았다. 답변을 허술하게 준비했던 실무진 탓에 박 후보가 공식 사과 기자회견까지 자처한 꼴이 됐다. "최종판결을 존중한다"고만 했어도 그만인데 박 후보로서는 큰 상처를 입게 됐고 국민대통합위원회라는 숙제까지 떠안게 됐다.
답변 작성자는 호된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실무진의 역량이 떨어져 박 후보가 연방 헛발질하는 것은 '동종교배'에 따른 예견된 결과다. 2007년 경선에서 박 후보를 도왔던 인물들이 다시 실무진으로 투입되고, 홍보, 조직, 메시지, 정책 등 각 분야의 팀장에 박 후보 보좌진들을 재배치하면서 '새로 나올 것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무진이 끌어오는 새로운 사람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한다. 한 의원은 "박 후보 (핵심) 보좌진이 국회의원 머리 위에 있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2007년 경선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고 누굴 만나고 어디를 가고 하는 것을 재탕, 삼탕 하면서 "파격적인 행보, 감동을 주는 발걸음이 상실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추석 밥상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박 후보가 '조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카드를 내놓았지만 이를 두고도 벌써부터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인다. 이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묘하게 겹치지면서 지지율을 까먹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병호 공보단장을 이정현 최고위원으로 교체한 것을 두고서도 기자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다. 일부 기자들은 '이 최고위원은 (상대를 차근차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길어지면 흥분부터 하고 목소리만 높여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최고위원은 박 후보의 대변인격으로 활동하며 과거사를 사과하기 전까지 그의 모든 입장을 옹호한 사람인데 공보단의 수장으로 적합하느냐는 자격론이 불거져 나왔다.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선거기획단 핵심 관계자는 "솔직히 사람이 없다. 의원들이 인재영입에 모두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잘못 천거할 경우 뒷감당을 해야 하고 박 후보에게 찍히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 출신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적군'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은 박 후보에게 상당히 아픈 대목이다. 박 후보 진영의 전략과 전술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가 최대 라이벌 문재인 후보쪽으로 갔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전력누수인 동시에 살얼음판 대선 승부의 최대 악재다.
한편 각 언론사에서 보도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의 하락세가 거듭되자 역할이 없는 사람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비박'의 반란이다. 분권형 개헌 추진을 내세운 이건개 변호사가 최근 프레스센터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같은 장소에서 이재오 의원과 친이계 인사들이 주도하는 분권형개헌추진국민연합 창립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박근혜, 필요하다면 손을 내밀어라"는 압박으로 읽는 분석이 많다. 시점이 묘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의원과 안경률 전 의원 등 친이계 전현직 의원들이 이달 초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분권형 개헌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캠프 안팎에서는 "서둘러 비박 진영을 안아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근혜 본인이다. 믿는 사람을 오래 쓰는 스타일이다 보니 '개혁의 구세주'라는 참신성이 떨어진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이 '변화'라면 박 후보의 이미지와 겹쳐지지 않아 지지세가 꺾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1998년 정치권에 입문한 뒤 '대통령감'으로 덩치를 키운 그로서는 적어도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워야 함에도 문-안 후보가 진용을 짜느라 바쁜 이때 어떤 속도도 못 내고 있다.
참신한 정책도, 솔깃한 공약도 없다. 자기수행과 자기연마가 부족했다는 말도 나온다. 박 후보는 대선 출정식 때 주머니에서 A4용지를 꺼내 읽었다. 외우지 못해 연방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했다. 과거사 사과 때는 방송국에서 쓰는 프롬프터를 보면서 감동 없는 연설을 했다. 박 후보의 실무캠프에는 기자실 따로 사무실 따로 돼 있다.
사무실은 출입을 막는 시건장치가 돼 있다. 안 후보는 종로에 선거캠프를 차리는데 개방형 카페식이다. 박 후보 마크맨 사이에서는 "캠프에 가도 (보도할) 상품이 없다"고 투덜댄다. 박-문-안 3자간 TV토론이 시작되면 누구에게 유리할 것인지에 대해 새누리당이 벌써부터 겁먹고 있다는 말도 있다.
선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