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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10 07:49
[일본] 삼국사기에 나오는 초중기신라와 왜국과의 관계
 글쓴이 : 실험가
조회 : 3,852  



석우로(昔于老, ? ~ 249년 또는 253년)는 내해 이사금의 아들이자, 흘해 이사금의 아버지이다. 삼국사기에 열전이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석우로는 내해 이사금의 아들이 아니라 각간 수로(水老)의 아들일 수도 있다.


230년 내해 이사금이 죽고, 석우로의 삼촌인 조분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이듬해 이찬, 대장군이 되어 현재 김천시 개령군에 해당하는 감문국(甘文國)을 병합하였다.


233년 7월에는 왜인이 쳐들어오자, 사도(沙道)로 나아가 화공으로 이를 물리쳤다.


242년 정월에는 서불한에 올라, 군정을 담당하였다. 이듬해에 고구려가 북방을 쳐들어와 이를 상대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마두책(馬頭柵)을 방어하였다. 당시 우로가 일일이 병사들을 찾아 격려하니, 모두가 우로를 우러러 보았다.


조분 이사금이 죽고, 조분 이사금의 동생 첨해 이사금이 등극했을 때, 현재의 상주시에 해당하는 사량벌국(沙梁伐國)이 백제로 배반하였다. 이에 우로는 군사를 이끌고 이를 토벌하였다.


첨해 이사금 7년인 253년에 왜국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찾아왔다. 사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우로는 갈나고를 희롱하며, "조만간 너희 왕[1] 을 소금장이로 삼겠다"고 하였다. 이에 왜왕이 노하여 신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우로는 "지금 일은 내가 말을 잘못한 탓이다."라며 왜군을 찾아갔다.

우로가 왜인들에게 당시 일이 농담이었다고 해명하였으나, 왜인들은 우로를 붙잡아 불에 태워 죽였다.


이후 첨해 이사금이 죽고 미추 이사금 때, 왜국이 사신을 파견했다. 석우로의 아내가 이사금에게 청하여 스스로 사신을 대접하였다. 사신이 취하자 그녀는 사신을 불에 태워 죽여 우로의 원한을 갚았다. 이에 왜인들이 금성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한편, 삼국사기 첨해 이사금조에는 백제와의 전쟁 기록이 없고, 왜인이 침입하여 석우로를 죽인 일은 재위 3년인 249년 여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훗날 석우로의 아들이 흘해 이사금이 되었는데, 우로가 죽을 당시에는 갓난 아기였다고 한다.




박제상(朴堤上)

생몰년 미상. 신라의 충신. 내물왕 때부터 눌지왕 때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김제상(金堤上)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박제상은 신라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5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아버지는 파진찬(波珍飡) 물품(勿品)으로 되어 있으나, 이러한 그의 세계(世系)는 거의 신빙성이 없다.


신라는 백제세력을 견제할 필요에 의하여 402년(실성왕 1)에 왜에 내물왕의 셋째아들인 미사흔(未斯欣)을, 412년에는 내물왕의 둘째아들인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파견하여 군사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왜와 고구려는 이들 왕자를 인질로 감금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은 즉위한 뒤 그의 두 동생을 고구려와 왜로부터 구출하기 위하여 군신을 불러 협의한 결과,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내14),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등 세 사람이 모두 박제상이 그러한 역할을 맡을 역량이 있는 적절한 인물이라고 천거하였다.



당시 박제상은 양산(梁山)지방의 토호세력으로서 삽량주간(#삽06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눌지왕 2)왕명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들어가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하여 복호를 구출하여 무사히 귀국하였다.



귀국한 즉시 왜에 인질로 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부인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떠났다.
왜에 이르러 마치 신라에 반하여 도망해온 것처럼 속였다. 마침 백제 사신이 와서 고구려와 신라가 모의하여 왜를 침입하려 한다고 참언하므로 이에 왜가 병을 파견하여 미사흔과 박제상을 향도로 삼아 신라를 침략하고자 하였다.



왜의 침략세력이 신라를 치러 오는 도중에 박제상은 강구려(康仇麗)와 협력하여 왜병을 속여 미사흔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 자신은 붙잡혀 왜왕의 앞에 끌려갔다.
왜왕은 그를 신하로 삼기 위하여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하려 하였으나 그는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결코 왜의 신하가 될 수가 없다고 하여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유형에 처해져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받아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신라에 알려지자 눌지왕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를 대아찬으로 추증하고 부인을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책봉하였으며, 둘째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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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를 쓰는 미개인들에게 삼국중 하나인 신라는 왜 이렇게 저자세로 벌벌 기었나요?  신라 전쟁영웅 석우로화형 사건은 신라 초창기라서 미약한 세력이었다쳐도 내물왕때에는 고대국가의 기틀이 잡힐즈음인데도 왕의 동생을 볼모로 보내면서 그당시 동북아시아 최강국 고구려와 동등한 외교적 공을 들이고 있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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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가 15-04-10 08:09
   
“과거 미화 고고학은 역사왜곡 우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090602185225686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주제를 발표한 박천수 경북대 교수는 "고대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화했다는 일본의 '임나일본부설'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일본열도에 문화적 은전을 베풀었다는 남북한의 인식도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김해시 대성동고분군의 일본열도산 문물과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가야지역의 왜(倭)계고분의 존재는 문물과 사람의 이동이 일방 통행이 아닌 어느 정도 상호적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일본 열도의 전방후원분이 3세기 중엽에 출현한 사실을 들면서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조영 시기가 6세기 전엽에 한정되므로 그 기원이 일본열도에 있음은 분명하다"면서 "국내 연구자 중에서는 임나일본부와의 관련을 우려해 전방후원분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부정하려는 경향조차 보였다"고 밝혔다.
     
오투비 15-04-10 08:40
   
무슨 2009,2007년 기사를 가져와서 뒷북을 치고 앉아있으시네.
그리고 전방후원분의 초기 원형인 주구묘가 한국,일본에서 둘다 발견되는데 한국쪽이 1세기 앞선다는건 다 아는 사실아님? 그럼 왜 한반도 주구묘의 잇단 발견이 일본학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까요 ㅎㅎ 몇해나 지난 기사를 가져오는 의도가 뭐임 ?
mymiky 15-04-10 08:11
   
신라는 건국 초부터 왜의 침범에 시달렸는데,
이 왜는 당연히 신라출신이 아닌 다른 지역-가야나 백제등, 다른 지역출신의 왜였을 것입니다.
아마? 대마도나 북큐슈 또는 가야에 근거를 두는 왜였을 가능성이 있죠.
신라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쪽편에 치우쳐져 있는 나라였기에, 다른 나라들에 다소 치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끊임없이 한강유역을 차지해 다이렉트로 중국과의 교역로를 열기위해 무척 노력했고, (백제, 고구려, 신라 모두 한강을 차지하려고 자주 싸웠고, 실제로 한강을 손에 넣는 나라가 당대 패권을 쥐는 모습을 보였죠.) 그게 성공한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신라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실험가 15-04-10 08:11
   
옛날엔 한국이 일본에 주기만 했다고?

http://media.daum.net/zine/newsview?newsid=20071218081212257

일본과의 교류 역사를 이야기하면 한국인들은 대개 '조상들은 일본의 은인'이라는 자부심부터 깐다. '백제·신라 등이 미개한 일본에 수준 높은 문화와 기술, 제도를 일방적으로 전해주었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는 곧 일본이 '배은망덕하다'는 논리로 종종 뛴다. 일본보다 우월했다는 민족주의 사관 아래 숱한 역사서, 심지어 교과서도 일방적인 문화전파론을 가르쳐왔다. 반면 일본학계는 지금도 4~5세기 왜군이 출병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휘둘린 이들이 적지 않다.


이 땅의 일본인 무덤 외면해온 학계

고대 일본은 일방적인 수혜자였을까. 침략자였을까. 기원 직후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7세기 중엽까지 일본 열도와 한반도 사이에 벌어진 교류의 실상은 무엇일까. 1990년대 일본 오사카대학에서 수학하면서 한-일 고대 교류사 유적들을 외롭게 연구해온 박천수 경북대 교수는 최근 역저 <새로 쓰는 고대 한일교섭사>(사회평론 펴냄)를 통해 피할 수 없는 '팩트'(사실)들을 상기시킨다. 일본 땅에 널린 선조들의 유적 못지않게 이 땅에 왜인들이 남긴 유적·유물 또한 숱하게 널려 있다는 것을.

80년대부터 3~6세기 전형적인 일본의 귀족 왕묘 무덤인 장고 모양 고분, 이른바 '전방후원분'이 전남 영산강 유역의 고흥·영광·광주 등지에서 13기나 발견됐다. 경남 해안 일대에서도 왜식 무덤, 동모·투겁창 등의 고대 일본산 무기, 갑옷, 일본식 야요이 토기 등이 숱하게 출토된다. 단순 무역이 아니라 정착하고 대를 이어 영주했으며, 큰 무덤으로 지역 권력을 과시한 징표 등이 속속 드러났다. 국내 학계는 외면하거나,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해석해왔다. 서울 강동 지역에서 백제 왕조가 쌓은 최대 규모의 전방후원분이 발견됐으며, 이것이 일본 전방후원분의 원형이라고 보도한 2005년 한국방송의 오보 파문은 이런 사고방식이 빚은 해프닝으로 기억된다. 저자는 관련 목록만 100쪽에 가까운 한-일 고고발굴 자료를 들고서 힘주어 말한다. "고대 한-일 교류사에 자꾸 근세나 현대의 갈등관계를 투영시키면 안 된다. 실제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발굴 유물들이 던지는 목소리에 귀기울여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 쓰는 고대 한일교섭사>는 20년 이상 한-일 발굴 현장을 누빈 전문가의 시각으로 한-일 교류사를 처음 고고학적으로 재구성했다. 그가 보기에 철기시대인 기원전 300~400년께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기인 7세기까지(일본 시대 구분으로는 야요이시대부터 아스카시대까지) 한반도와 일본의 고고학은 경계가 없다. 무덤, 주거지 등의 유적과 장신구, 도구, 무기류 등은 형식이나 얼개가 거의 같다. 따라서 근대 민족주의의 그림자를 걷고 고고 유물에 바탕해 한-일 교류사를 정리하면 흥미롭고도 당혹스러운 몇 가지 가설이 나타난다.

우선 5~6세기 전라도 일대의 남도 지역은 일본 규슈 땅의 왜인 귀족들이 다스렸다고 본다. 백제는 통치권이 미약한 남도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일본 규슈 땅의 왜인 귀족들을 관료로 데려와 부렸다는 것이다. 광주 도심의 명화동, 월계동, 함평 신덕 고분 등 전라 지역 전방후원분이 그들이 누린 권세를 증명한다. 뿐만 아니다. 남해안과 경남·북 내륙에 포진한 금관가야, 대가야 등의 가야연맹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일본 열도 한가운데인 긴키지방(오늘날의 오사카·나라 일대)의 야마토 정권은 물론이고 규슈, 시코쿠, 심지어 오늘날 도쿄 인근의 간토지방 세력과 동맹관계를 맺고 철 수출은 물론 무기류, 장식품 등의 위신재(신분이나 권위를 표시하는 물건) 등을 교역하는 데 열을 올렸다. 왜와 적대적 관계로 인식된 신라도 5세기 전반 금관가야 쇠퇴 이후와 6세기 후반 대가야 멸망 뒤 일본 각지의 세력과 교역하면서 대일본 교류의 주도권을 행사했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유명한 경주 황남대총의 출토품 '곱은옥'(초승달 모양의 장식구슬)이 일본산이라는 논쟁적 주장과 일본 중앙 긴키지방의 이 시기 주요 고분에 신라제 말갖춤과 금동 장식구가 다수 묻혔다는 사실 등이 근거다.

"전라도 일대는 왜인 귀족들이 다스려"

그는 또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을 비롯한 공주·부여 지역에서 발견된 일본식 동굴 무덤인 횡혈묘는 백제 왕도에도 적지 않은 왜인이 살았음을 시사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기원 전후부터 7세기까지 700년간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는 오늘날보다 훨씬 밀접했을 뿐 아니라 범국민적인 혐한·반일 대립 감정은 사실상 없었다. 같은 생활권·경제권으로서 서로가 존립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휴 동맹의 대상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반도 삼국 간 국경을 넘나드는 것보다 바다로 왜국과 왕래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 정도"였다. 저자는 일방적인 식민지배를 뜻하는 임나일본부는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일본에 가야·백제 등에서 준,위신을 과시하는 장식품과 토기가 숱하게 발견되고, 한반도에서는 왜인들의 무덤과 무기류 등이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것도 그 방증이다. 두 세력이 철과 문물, 군사용병 등의 조건을 놓고 맞춤한 거래관계를 이어나갔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단절되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시대 상황에서 합리적인 정치적 교섭 아래 관계를 지속했다는 것이다. 낯선 일본의 한반도계 유적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라도 원주민과 가야 출신 이주민의 유물이 공존하는 일본 하카타(후쿠오카)의 3~4세기 마을 유적 니시신마치는 영산강 지역과 가야 권역의 토기와 부뚜막 시설이 뒤섞여 발견된 '이주민 타운'으로 드러났다. 금당벽화로 유명한 일본 나라 호류지 근처의 후지노키 고분은 신라와 백제에 교섭 창구를 가진 왜의 왕족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전형적인 신라의 말갖춤이 발견됐다. 껴묻거리(부장품)로 백제계 관과 신발, 가야계 말갖춤에다, 귀고리는 백제계와 가야계를 섞어넣은 구마모토의 에타후나야마 고분, 사실상 가야계 이주민들의 집단 무덤으로 고분과 형태는 물론 출토품도 거의 가야 무덤과 똑같은 니자와센쓰카 고분군, 도쿄 인근의 간토지방 고분의 가야계 출토품 등의 사례들도 소개된다.

기존 견해와 달라 논쟁거리 될 듯

저자는 결론적으로 3~5세기 일본 열도와의 교류 중심은 가야였으며,백제는 6세기 초부터 교류를 본격화했고, 그 사이 간간이 신라가 끼어들었다며 갈래를 짓는다. 이는 4세기 후반 이래 백제가 고대 한-일 교류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기존 문헌사학자들의 견해와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논쟁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박 교수의 저작은 그동안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본에 문물을 다 전해줬다는 민족주의 편향의 인식을 깨는 첫발"이라며 "이 책은 '우국지사의 말투로' 고대 한-일 교류사를 재단하는 시대가 지났음을 웅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지난 10월 일본 출판사 고단샤를 통해 같은 내용을 담은 일어판 연구서 <가야와 왜>를 출간한 바 있다.
     
남궁동자 15-04-10 13:06
   
전라도 지역 전방후원군은 이미 한물 지난 떡밥. 한반도 쪽이 더 오래된거라고 밝혀진지 좀 됬습니다. 오히려 가야 = 왜라는 학설도 있죠. 가야가 고구려한테 대판 깨지고 약해진뒤로 한반도에서 왜가 나오는 기사의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죠. 가야의 잔존세력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왜가 된것을 후대에 가야와 왜를 혼동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당시 전라도 남부지방은 가야의 세력권이었습니다.
mymiky 15-04-10 08:20
   
한마디로, 이분들 주장은

일본의 임나일본부설도 개소리이고,
한국의 무작정 시혜론 또한 개소리이다? 뭐 이런거 같은데

워낙 한일 양국의 사이가 좋지않고, 역사로 아웅다웅이니,
양국의 사학계의 학자들이
그 중간지점을 찾아보자는 뜻인거 같네요.
영웅문 15-04-10 11:37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떠들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 있던 사람들이 들어가서 세운 나라라는 사실.
동화 15-04-10 15:32
   
고대사는 워낙 확실한게 없어서 그렇죠..
다만, 가능성을 열어놓고 추측을 해볼뿐이고요..
기존 우리의 고대사주류 또는 한일관계사의 주류라고 할까요..
고대에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본에 많은걸 주는쪽으로 역사를 해석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 ? 란 의문을 가진다고 하더군요..

고대시대..적어도 4,5세기의 일본열도의 국력은 그 당시 한반도의 가야,신라 만큼은 된다고 보는 학자들도 꽤 있더군요.. 그리고 백제와 왜의 관계는 결혼동맹이였을거라고 보는 입장도 있고요..
일본의 일왕이 처음부터 백제계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하기도 하고..
초창기 일왕은 가야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보는 측면도 있고, 나중에 결혼동맹을 통해 백제와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는 정도가 아닐까 ? 로 보는 측면도 있다고 함..
쉽게말해 가야 와 일본이 같은 하나의 나라였고..백제와 일본은 결혼을 통해 친척관계를 맺은것이 아닌가 ? 로 보는 것일수도 있고요..

4세기 이후만 되도 일본이 허술한 나라는 아니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는거 같고요..
인덕왕릉이나 일본의 주요왕릉이나 출토퇴는 유물의 수준을 봐서는 그 당시 국력이 웬만한 수준은 되는 나라인거 같기는 함..신라를 충분히 괴롭힐만한 수준은 되는거 같고..

4세기 이전의 일본이라면..말이 안되는 소리지만..4세기 이후의 일본이라면 얼추 맞는 얘기일수도 있죠.
고대시대 일본은 무조건 허접하다..라고 할게 아니라는 얘기.
어쩌면, 고대사를 원점에서 다시 연구해야 될 지도 모르고요..
그렇다고해서 임나일본부가 있다는건 아니라고 보고..가야가 사실상 임나의 역활을 했을수도 있지만,
사실..가야의 역사에 대해 한국에서 거의 정보가 너무 없다보니..좀 한계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햄돌 15-04-10 16:06
   
한반도 세력들이 주구장창 열도로 건너가면서

야요이(한반도) 세력들이 확장되면서 왜의 국력이 컸을거라고 봄
햄돌 15-04-10 16:05
   
전방후원분 관련은 이미 다 밝혀졌고 단물 다 빠졌는데요

정방후원분 초기단계인 주구묘가 한반도에서 시기가 더 빠르고 규모가 큰게 대량 발견되는걸로

끝났음

일본학자들도 울면서 돌아갔고 끝임
     
동화 15-04-10 16:16
   
전방후원분 초기단계라 할 수 있는 묘가 한반도 어디에서 대량 발견되었나요 ?
저는 그런 얘기를 못들어봐서..
아시는대로 알려주세용..
          
햄돌 15-04-10 20:25
   
전방후원분의 초기단계인 주구묘는 한국이나 북한 등지에 많음

일본학자도 보고 울면서 돌아갔음.

그러므로 단물 다 빠짐
               
동화 15-04-10 21:58
   
주구묘라는게 뭔가요 ? 한국 어느 위치에서 발견했다는건가요 ? 전 아직 들어보지도 못했음..
                    
햄돌 15-04-10 22:09
   
유투브에 쳐보면 다큐도 나오고

검색해서 찾으면 나오는걸

왜 계속 여기서만 묻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만?
                         
동화 15-04-10 22:38
   
주구묘가 있다고 하시니까 물어보는것입니다.
어디 있는지 모르면서 남들이 있다고 하니까..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댓글 다신건가 보네요..
결국 검색해봤는데, 전남 영산강 지역 일부던데요.한국,북한 등지에 많이 있다고 할 정도 까지는 아니지 싶은데...
                         
햄돌 15-04-10 22:42
   
북한에도 주구식 묘가 있습니다.

다큐에서 봤어요

'남들이 있다고 하니까' 가 아니라

저는 다큐에서 본걸 얘기한거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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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 [일본] '워싱턴의 벚꽃' 그리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 블루하와이 04-05 1530
1357 [일본] 일본 정부 "자위대는 국제법상 군대"…논란 예상 (2) 블루하와이 04-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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