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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9 20:30
[일본] 인덕천황릉보면 고대일본 동원력이.약하지 않은것같은데...
 글쓴이 : 실험가
조회 : 4,989  

면적으로치면 피라미드.능가하는 세계최고크기라던데..그만한 노동인력을 동원할수 있었던국가가 국력이 약햇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않나요? 삼국사기 신라초기기록봐도 항상 왜군에 시달리는 이야기뿐이고 심지어 신라.전쟁영웅 석우로가 왜군에게 치욕적인 죽음까지 당하는데..

백제와의 관계에서도 항상 백제가 우위였다는 것도 어불성설인게...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침입으로 나라가.한번 망합니다. 고구려군이 충주까지 내려와서 쓸고 다니는데 그때 왜국의 군사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백제가 계속 우위를 점했다는 가정도 회의적이고 무령왕같은경우 일본에서 살다 즉위할때 왜군 천여명이 호위해서 본국으로 돌아오죠.

임나일본부설에.대한.반감으로 고대일본의 국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번 적어봤습니다.(백제와 일본의.관계가.친밀햇더건 중세유럽의 경우처럼 결혼동맹이 성립된 혈연관계가 아니었나 추측합니다. 무령왕과 일본천황이 형제관계였다는 설도 있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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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5-04-09 20:52
   
ㅋ 그게 정작 누구 무덤이라서 발굴을 쉬쉬 꺼리는지나 공부 더 해보시길.

열도에 우리 선조가 석성쌓고 건물에 도성에 벽화에 탑에 사찰 세우고 저수지에

무덤 조성하면 그게 왜국 기술??(로마가 브리티시 식민지배할려고 론디니움이고

수많은 로마 병영기지인 체스터에 118킬로의 하드리아누스 성벽 등을 축조하면 그게

로마제국의 문명력이 아닌 브리티시 미개 원주민들이 세운 문명력의 증표이고 정치

수준??)
     
dokie 15-04-10 00:42
   
한반도에서 발견된 전방후원분은 5세기 6세기이고 일본에 전방후원분은 3세기 4세기경부터 세워진것들인데 어떻게 한반도가 원류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네요...
          
Centurion 15-04-10 01:59
   
전방후원분은 2-3세기경에 한강유역에서 발생해 4,5세기경에 성행하였고, 5세기말에는 한반도에서 소멸되었다.전방후원분은 한강유역에서 비롯해 영산강유역·남해안·낙동강유역·경주 등지에 분포한다. 대개 대하천·해안에 인접한 구릉·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일본에는 홋카이도·오키나와를 제외한 전지역에 분포하며, 특히 긴키(近畿)지방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보고된 숫자가 약 2,600여 기에 이른다.

일본의 경우는 4세기까지는 우리 나라와 같이 산상이나 구릉에 만들었다. 전반부를 스커트형(潑形) 또는 긴 장방형으로 하고 후원부에 비해 낮게 만들었다. 그러나 5세기 이후에는 위치가 평야지대로 바뀌고 규모도 커져서 길이가 수백 m에 달하는 고분들도 출현하였다. 또 전방부의 높이가 올라가고 그 밑변이 넓어져서, 고분이 부채나 키같은 모습을 띄게 되었다.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6세기 말∼7세기 초에 쇠퇴하고 8세기에는 소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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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대사에서 미스터리로 불려 왔던 백제 초기의 한성(아리수-한강지역)문제에 큰 분수령이 될듯 하다. 전에 방송뉴스에서도 보도된 바 있지만, 바로 온조가 십제를 세우고 도읍한 한성백제의 하남 위례성과 가까운 서울 강동구 한강변 일대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 규모의 10여개의 전방 후원분 고분의 발견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작은 동산, 야산, 구릉 정도로 보아 왔던 것들이 사실은 거대 고분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덤 연대도 서기 4세기인 일본의 전방후원분 시기보다 더 빠른 시기인 서기 1세기다. 근초고대왕으로 추정된 오사카의 응신천황릉과 야마토왕조의 왕녀사이에서 낳은 근초고대왕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덕천황릉을 비롯한 일본열도의 고분들은 거대한 전방후원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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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방후원분이 일본 전방후원분보다 몇백년 앞섬..

한마디로 전방후원분은 삼한-백제 세력의 일본열도 개척과 지배의 증거.
               
실험가 15-04-10 08:02
   
님 주장은 소수설인것 같은데요. 다수설은 일본의 전방후원분이 한국보다 2세기정도 앞선다는게 정설입니다.

http://blog.daum.net/gusan0579/8003149

한국의 전방후원분을 발견한 姜仁求선생님은 한반도에 전방후원분의 기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3세기후반에 출현하지만 한국의 전방후원분은 거의 5세기후반부터 6세기전반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요즘 발굴조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의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전방후원분을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일본과 비슷한 전방후원분은 주로 한국 전남지방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한국학자들이-예를 들면 朴淳發선생님, 林永珍선생님, 朴天秀선생님 등-노력해서 알아내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학자 가운데는 일본의 전방후원분을 무조건 “야마토정권(大和政權)으로 대표되는 중앙과 지방의 예속관계(隸屬關係)를 가리킨다”고 보는 선생님이 있는데 이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대로라면 한국의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지배하에 만들어진 것이 됩니다. 하지만 전남지방에는 나중에 말할 것과 같이 전방후원분의 주인공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방형분의 주인공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은 전혀 통용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전방후원분의 주인공 같은 경우는 지역의 권력자의 아래에 있는 사람 중에서 특히 일본과 깊은 관계가 있고 생산공인이나 그 기술을 많이 배출한 사람이 그것으로 힘을 키우고, 전방후원분을 축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사람으로까지 성장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의미로 전방후원분 주인공은 말하자면 신흥세력으로서 정치적인 지위를 평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당시(5세기후반~6세기전반)에 전남지방의 정치정세는 무척 불투명했습니다. 백제의 지배하에 있다거나 아니면 아직도 원삼국시대의 마한(馬韓)세력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등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전방후원분의 주인공이나 일본 군집분의 주인공은 지역의 유력자 정도의 것으로, 그 사람들이 서로 국제교류를 했지만, 외교적인 의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신촌리9호분이나 복암리3호분의 주인공처럼 지역의 최고 권력자층은 일본이나 백제의 운명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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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의견이 제가 본문에서 언급했던 내용과 비슷하네요.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백제는 거의 나라가 멸망하는 국가적인 위기가 발생했고 이를 재건하기 위해 일본세력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대 축조된 백제계 vs 일본계 전방후원분 세력과의 관계를 봐서 일본세력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종속되지는 않았고 우호관계에 따른 조력자정도로 활용했다 이정도로 정리하면 될것 같습니다.
                    
Centurion 15-04-10 16:41
   
실험가님 디씨 역갤이 뭔지 아시나요?
님 링크 따라가보고, 디씨 역갤 짤방 보고 멘붕오네요.

제가 옆동네시절부터 알던 실험가님이 역갤 화교왜구 일뽕들 글에 현혹되시다니.. 허허..
걔네들은 본래 한국까고 일본 찬양하는걸로 날밤 꼴딱 세우는 애들입니다.
               
동화 15-04-10 15:54
   
전방후원분이 한강유역에서 발견되었나요 ?
송파구,강동구쪽에 백제유적들이 많이 있는데..그런건 못본거 같은데요.
                    
햄돌 15-04-10 16:10
   
강동구 전방후원분 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네요

님이 못 봤다고 해서

그게 아닌게 되나요?
                         
동화 15-04-10 22:47
   
죄송합니다만, 서울 강동구의 전방후원분은 무덤이 아닌걸로 밝혀진..일종의 헤프닝으로 끝난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서울지역에서 전방후원분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햄돌 15-04-10 22:49
   
헤프닝이 아니라 아직 조사 안 한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일본 전방후원분 보다 시기가 빠르다는 건 어떻게 나온 얘기임?
                         
동화 15-04-10 22:58
   
조사했음...무덤아님.
전남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도..빠르면 5세기 중엽이거나 늦어도 6세기 무렵으로 본다고 했는데..함부로 확답을 내리기가 애매하다고 봅니다.
                         
햄돌 15-04-10 23:17
   
여기 백제 금성분 논문이 존재합니다.

http://www.paekche.or.kr/board/s_haksulessy.php?num=5
                         
동화 15-04-10 23:46
   
방금 확인했음..
그 논문의 저자분과 그를 따르는 소수의 학자들만 이것을 전방후원분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논문으로 보이네요.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도 확정이 되지 않는것을 보고 연구도 진척이 되지 않는것을 볼떄..전방후원분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결론은, 한국에서 전방후원분으로 공식 인정되는것은 전남에서 발견된것으로 보는게 정설로 보입니다.
     
굿잡스 15-04-11 19:43
   
dokie> 이 사람은 무슨 아스카 시대에 일본 국호 어쩌고 ㅋ 아래 댓글이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횡설수설 하군.


그리고 실험가님이 전방후원분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이 없어 보이군요.

센츄리온 님이 가져온 학설이 소수가 아니라 국내 학계의 지금까지 밝혀진 정론임.

님이 가져온 이야기의 내용 자체도 전반적 배경 지식이 없으니 이해를 못하는 듯 한데

국내 전방후원분에 대해 처음 연구하신 분이 강인구(姜仁求) 선생이였고 83년

<한반도의 전방후원분 (前方後圓墳) >논문을 시작으로 논집이 이미 나온 상태임.

이분의 연구 성과가 다름 아닌  1~3세기경으로 보는 석촌동 6 ,7호분의 한강 유역 일대의

이른 전방후원분 무덤 양식이나 북한쪽은 고구려 무덤까지 기원이 올라가면서(고구려에

이미 기원 1세기경의 자강도 송암리 무덤떼, 압록강과 장자강근처 무덤떼

에서도 발견) 임영진선생도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을 축조하는 집단과 대형옹관을 축조

하는 집단이 조금씩 다르게 병존하다 관련 집단이 늦어도 3세기 중엽 경에 열도로 건너

가 고훈시대를 열었다는 주장을 하는 등 대체로 국내 학자는 이런 열도의 고훈시대의

원조를 한반도로 봅니다.(단지 전남 일대에서 나오는 고분이 대체로 5세기경이라는 말)

그리고 성준락씨는 단축이나 즙석이 없고 부장품이

위세품이 아닌 점 등에서 전남일대의 고분은 열도의 고분 세력하에 있다고 보지

않음.(기본적으로 이런 전남일대의 고분양식은 기원부터 잽에서 떠드는

해괴한 임라일본부설의 증거와는 관계도 없거니와 우리의 앞선 열국시대부터 삼국시대 사

이의 우리 선조의 다양한 진출 교류사를 알 수 있는 또다른 직간접적 증거임)


그리고 열도에 대형 인덕릉이 등장하는 시기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출현과 맞물린

우리쪽의 지각 변동에 따름. 무슨 말인가 하면 3세기 후경부터 시작되는 열도의

초기 고분시대의 유적을 보면 방어를 위한 환호취락과 고지성취락등이 이전에도

몇번 올린 사진짤에서도 언급했지만 300여개의 지역에 우리쪽 소수군벌 집단들이 열도

를 개척하면서 난립, 긴장하던 시대입니다. 이런 가운데 제대로된 도시취락은 나오지 않

는 인구 희박에 이런 일종의 군사 시설만이 존재하면서 고분시대가 등장하고 이후 광개

토 태왕이 출현하면서 이후 장수태왕의 남진까지 맞물리자 남부일대의 정치세력들이 다

시금 열도로 본격적 도래가 시작되면서 백제의 힘이 열도로 강력히 투사되는 가운데 열

도내의 고분이 대형화. 이런 상황에서 인덕릉,응신릉의 대형 고분이 출현하고 열도의 지

배가 안정기에 들어가자 7세기 이후 부터 소멸되기 시작하는게 당시 남한 일대의 남부

와 서열도의 상황임.(지금 한쭝잽간 국경선으로 볼게 아니라 당시는 요하부터 남북한 서

열도는 고조선시기부터 우리의 완연한 단일 생활, 활동권으로 이해하고 봐야 좀 더 쉽게

납득. 실제 고고학적 측면 역시 그렇게 나오고 있고)


여기서도 몇번씩 올라왔지만 일본이라는 국호도 본토 백제 멸망 이후 동쪽 지리명사가

국호로 열도에 등장하게 됩니다. 실제 열도의 고고학적 상황도 이런 부분이 드러났기에

이전 한일역사연구회에서 이미 일본 학자에 의해서도 폐기된 해괴한 학설임에도

전범 극우 후예 아베정권이 출현하면서 다시금 코메디 주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
mymiky 15-04-09 20:57
   
인덕황릉은 당시에 야마토의 국책사업이였다고 봐야하고
왜는 백제의 분국? 이라고 해야 할까. 멀티플레이를 띄고 있었서
본진이 어려우니 도와주러 온거죠. 나중에 백마강에서 망할때도 왜에서 원군 지원병들 오잖아요?

쉽게말해서, 이 예시가 맞을까? 싶지만..한번 써보자면
현재 미국이 잘나가고, 영국이랑도 친함.
미국이 영국한테 종가집의 큰형님 대우해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거죠.
브라질 월드컵때 포르투칼이 경기하니까, 브라질 사람들도 같이 포르투칼 국가 불러주고 그런거 보셨음?
그때, 가생이에서 응? 브라질 포르투칼 식민지 아니였나? 재들 왜저래-.-;; 했는데
사실, 둘은 식민지 관계이기도 하지만,, 포르투칼 왕실이 내전으로 브라질로 망명도 오고, 이민자 후손들도 많고 그러함.  종갓집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경우임. 사실, 현재는 국가총생산도 포르투칼이 브라질 못 따라가거든요. 포르투칼어도 워낙 본국보다 브라질인구가 더 많으니까 표준어도 지금 브라질에서 쓰는 포르트칼어로 바뀌고 있는 형편이고.. 뭐 그래도, 종갓집은 종갓집이지만 ㅋㅋㅋ 미국영어가 대세여도, 여전히 상류층들은 영국식 영어 배우려고 하듯이 말이죠.
장자 15-04-09 21:08
   
백제와 야마토를 별개의 나라로 보면 맞는 말일수도 있지만 고구려와 말갈같은 같은 나라의 식민지속민이라보면
국가위기시에 왜국병사를 거의 무한으로 뽑아썻던것이 이해가 됩니다 두번의 세계대전때도 영국이 위기에 처하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같은 나라는 당연히 병력을 차출해서 유럽과 북아프리카전선으로 보내줍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인디아같은 혈통상 연관관계없는 나라도 본국을 위해 많은 병력과 군자금을 차출합니다 2차대전전만해도 인디아는 영국의 식민지였었죠 백제와 야마토정권은 같은 정체성을 가진 동일국가라고 설정해보면 백제왕이 왜국병사를 동원하는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dokie 15-04-10 00:35
   
동일국가라고 보는건 말이 안되죠.. 종교적 성격부분이나 율령반포 시기등도 다 다른데 어떻게 같은 나라로 봅니까.. 그리고 야마토시기는 백제와 그리 상관없죠.. 일본에 백제의 성격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아스카 시대이니까 그리고 일본은 백제에게만 영향을 받은건 절대 아니죠 쇼토쿠태자의 스승인 혜자도 고구려 사람이고 쇼토큐태자는 백제뿐만 아닌 한반도의 여러가지 기술인들을 영입하고 초청했는데 대표적으로 담징등이 있지요. 아스카시대 건축방식도 고구려나 부여쪽과 비슷하기고 독자적인 국호를 사용하기도 하고 이런 모습으로 볼때 일본은 독자적인 국가 였다는걸 알수있죠
          
mymiky 15-04-10 03:50
   
도래인들이 왜땅으로 건너갈때 일본땅에 있던 원주민들을 죽이거나, 통혼하거나, 흡수하거나 하면서 지배해 나갔을꺼고, 그렇게 그땅을 개척하고 기반을 쌓았죠.

앵글로색슨족들이 영국땅에 정착하면서 켈트족 쓸어버리고, 세력 키운것처럼.
영국인들이 미국땅 차지하면서, 원주민인 인디언들 구슬리고,
말 듣지 않으면 죽이고 했듯이요.

그리고, 본국에서 이주해온 사람이나 기술자들이
그곳을 나라다운 나라답게 점점 기반을 다듬고 만들어간거죠.

야마토 시대라는게 아스카 시대도 포함해서 말할될텐데요?

님말씀대로, 일본이 백제에만 영향을 받은건 아닙니다.
백제계 세력이 쎘던거 같지만, 아마? 가야, 신라, 고구려, 다 있었겠죠.

미국에 영국인만 간게 아니라, 나중엔 네델란드 인들이 와서 뉴암스테르담이란 도시도 만들기도하고, 프랑스 이주민, 독일 이주민, 유럽에서 다 가서  섞인것 처럼요.

(오해는 마세요.
제가 일본이 독자적인 국가라고 인정을 안하는게 아니라.)

그런식으로, 왜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서히
자기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갔을 것이라는겁니다..

지금의 미국인이, 자기 조상은 영국에서 왔니, 내 조상은 스페인에서 왔니
우리집안은 고조부때 이민왔다, 우리가족은 아버지때 이민왔다
그렇지만 모두 다 위 아더 아메리칸~이라고 하듯이요.

비교적 왜에 빨리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을꺼고,
우리 삼국시대 후기에 백제가 망할쯤에 대규모로 건너 왔을수도 있고
이주시기는 개개인에 따라 텀이 있겠죠.

한국에도, 조상이 중국에서 망명 와서 정착한 사람들은
조상님이 당나라때 온 사람들,수백년뒤 명나라때 들어온 사람들
다 다르니까요.
               
dokie 15-04-10 23:42
   
보통 일본 사학계에서는 야마토국의 붕괴를 고훈시대의 시작점인 3세기경으로 보고있을텐데요?
그리고 아스카시대에는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쓰시는 글은 제가 쓴 내용이랑 전혀 관련없는 내용같은데요..제가 말한건 위에 일본이 백제의 식민지 이라는 내용을 반박한거고 님이 말한 도래인들이 일본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줬다는건 당연한 이야기죠..
          
mymiky 15-04-10 04:21
   
솔직히,
일본이 한반도 색체를 최대한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나
역으로, 고대 일본이 한때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하는건

근대에 들어, 한반도에 식민지화하면서

이미, 고대때 우리가 지배했으니, 이번에도 지배하는게 당연하다는 합리화와
서구가 보통, 자기들과 멀리 떨어져있는 지역, 진짜 원주민들이 사는.. 그런 외지를
지배한 것과 달리,

일본은 이미 그런 땅들은 서구가 선점했기에 아쉬운데로 주변국들에게 눈을 돌린거고, 대만같은 섬은 원래 고산족들이 사는 동네였고.. 애초에 그런 날조도 할 필요성도 없이 편했으나

조선같은 경우는 일본인과 비슷한 용모에, 인구나 문화수준이나 역량도 대만하고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 쉽지 않았기에, 그런 날조를 동원해가며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한거죠.

제국주의 개념이 우등생물이 열등생물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거라고 주장하는데
자기들이 지배할 사람들이, 과거엔 오히려 자기들 땅을 지배했다고 하면,
도리어 무척 곤란한 일이니까요..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시대가 지나, 상황이 변해서
이번엔 미국이 영국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사실, 고대엔 우리 미국인이 영국땅을 지배했고,
영어도 우리 미국인이 영국인들에게 가르쳐준거라고
역발상으로 우기면, 듣는 영국인들이 얼마나 기가차고 황당하겠음?-.-

비유하자면, 일본은 이와같은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거라고 봅니다.
TimeMaster 15-04-09 22:04
   
그 대단하다는 인덕천황이라는 자가 백제 왕실의 권력에서 밀려날 정도로 미약한 왕자중 하나로 백제가 각지에 임명한 수십명의 담로중 겨우 한명에 불과했다는 것도 생각해 보시기를...
KilLoB 15-04-09 22:30
   
알기론 "망한" 백잔이 왜국으로 도망간 그들입니다. 백제는 한나라가 아니고 소국 연합이죠(백잔과 잔국을 구별하고 있다고.)그리고, 왜국에도 그전부터 한반도 삼한과 같은질서인 나라들이 있었을것.담로제의 특징. 훗날 백제가 동성왕이후 중앙집권 비스무리하게 시도하는 흔적인. 금동관이 왜국뿐 아니라... 최근에 충청도 지역서도 발견됬지요.

고구려가 남해까지 오는 이유도 그들의 유민이 왜국으로 가려고 신라남부 소요를 일으키니. 이제는 왜군.이 된 그들이 출동하고, 신라는 그 원인을 알고있기에 원인제공자인 고구려에 출병요청을 하고 응한후. 신라를 보호국화 한것. 그전까지 신라가 약했다는 말이고, 사실 그들자체도 백제의 한나라였다가 그 즈음 독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인덕능인지... 신라제 푸른잔 발견되는 이유도 이것을 강변하기위해.. 사실은 아니므로.. 훗날 나제 결혼동맹이... 이 흔적이 있었기에 가능한게 아닐까..

자기들이야 어떻게 주장을 하던... 제가보기엔. 왜란 나라는.. 신라통일전까진 근본 한국의 소국연합 동일질서... 상당기간 삼한내 소국질서의 연장선이다가. 훗날 광개토비 정벌이후. 신라, 가야연합(이나라도.. 이과정후 재등장했을가능성이 있다고)이 커진후부턴.. 이제부턴 개중 백제만의 한 질서부분으로 봅니다. 이과정서도 담로제 소국연합 특징인 정략결혼으로 왜왕이되는 곤지(일본서기 말로는 또다른 진짜왕이 있다지만, 행실이 또라이인 왜왕이 또다른 또라이인 더구나 현대로 치자면 백제의 참모총장하다가 왜국으로 온 곤지를 살려둘리가 없는.. 그말은 그 또라이가 저 또라이란 말,그때당시 왜왕이 하는 유일한 일은 죽으면서 곤지아들애게 넌 백제왕해라.. 이것밖에 없다고, 곤지는 이미, 아들에 왜왕역활 맞기고, 개로왕 백제왕권 참전갔다가 실패 죽었을가능성이 높죠..이과정 최근 발견된 당시로선 국제도시인 영산강유역 끝지역 왜인의 무덤은... 곤지 백제왕 되기 실패와 관련있을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아들과 같이온 왜병출신이라면.. 상당히 성공했을것이고 많이훗날이라 그런 무덤이 되진 않을것.... 왜왕 무의 추도문. 곤지아들이 곤지에 관한내용을 중국에 국서형식으로 보낸것) 또 삼국사기의 왜..란 표현은.. 신라편의 왜와 백제편의 왜가 다른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백촌강 전투
Windrider 15-04-09 22:41
   
왜가 그렇게 뛰어난 나라였다면 왜 역사왜곡을 하겠어요? 부끄러우니까 그렇죠.
멍게 15-04-09 23:35
   
왜의 전력이 무시못할 수준인건 맞다고 봅니다. 다만 신라가 왜한테 털리던 시절은 가야랑 크게 차이 안나던 시절 이야기죠. 백제-왜 관계에서 항상 우위는 아니였다고 생각하는건 저도 동의합니다. 본가가 털렸으니 방계 가문이라도 큰소리칠 수 있는 여건은 되었고 군사력도 그냥 동원해준 것은 아니라고 봐야겠죠. 다만 이걸 잘못 해석하면 복속을 시켰다 이런식으로 해석을 할 우려가 있죠.
햄돌 15-04-09 23:56
   
그래서 소가씨 가문을

왜왕도 감히 못 건드렸음?
개생이 15-04-10 03:12
   
전방후원분에 대해 왜 일본 사학계는 발굴을 금지 할까요? 일왕 선조라서? 하하 들어갔다거 나온 학자도 입을 다물죠.
개생이 15-04-10 03:17
   
그러니까 청동기로 무장한 왜가 뗏목타고 건너와 당시 철기로 무장한 보병 수만에 기마병 수천을 물리치고 그들을 지배했다고요? 왜? 차라리 이라크전에서 이라크가 미군 물리치고 워싱턴 점령 했다고 하지 그래요? 일본의 철기는 5세기 후입니다. 청동기와 철기의 차이는 머스탱 소총과 m16 차이 이고요. 뭔 판타지 소설 쓰나?
     
실험가 15-04-10 07:40
   
청동기 사용하는 미개인들한테 신라왕자 석우로가 포로로 잡혀 화형당하고 왜 쓸데없이 볼모로  왕자 미사흔을 보내 내물왕이 지동생 돌려받으려고 신라대신 박재상이 일본가서 쌩쇼까지 했는지 모르겠네요. 자기가 대신 잡혀 화형당하고...
          
mymiky 15-04-10 07:55
   
신라는 건국 초부터 왜의 침범에 시달렸는데,
이 왜는 당연히 신라출신이 아닌 다른 지역-가야나 백제등, 다른 지역출신의 왜였을 것입니다.
아마? 대마도나 북큐슈 또는 가야에 근거를 두는 왜였을 가능성이 있죠.
신라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쪽편에 치우쳐져 있는 나라였기에, 다른 나라들에 다소 치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끊임없이 한강유역을 차지해 다이렉트로 중국과의 교역로를 열기위해 무척 애를 썼고, (백제, 고구려, 신라 모두 한강을 차지하려고 자주 싸웠고, 실제로 한강을 손에 넣는 나라가 당대 패권을 쥐는 모습을 보였죠.) 그게 성공한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신라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동화 15-04-10 15:50
   
사실..그 부분이 역사적으로 해명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제 식견과 판단으로는 당시 왜가 곧 가야연맹이 아니였을까 ?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야만 뭔가 문제가 풀리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윗분은 북큐슈까지 얘기하셨는데..제 생각엔 일본 본토라고 할 수 있는 큐슈,혼슈쪽은 아닐거 같고..그냥 지금의 경남, 전남, 대마도 쪽의 가야세력(왜세력)이 아니였나 ?? 추측해 봅니다.
가야는 다 알다시피 상당한 철기문화의 나라이기도 하죠. 신라는 험준한 경북지역(평야보다 산맥위주)의 위치에 있어..인구도 적었을것이고, 초기 신라 같으면 모든면에서 가야연맹체보다 국력이 저조하지 않았을까 ?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가야=왜세력이라고 가정한다면, 일본의 초기 건국세력또한 이들 가야연맹체 세력들이 아닌가 보이기도 합니다..아니면 고조선 멸망시..고조선 유민세력들이 가야연맹의 일원일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더군요.
               
햄돌 15-04-10 16:15
   
고조선 사람들이 건너간때는 야요이시대 아닌가요

1차는 고조선
2차가 가야

라던데
          
햄돌 15-04-10 16:11
   
야마토정권이 가야세력이 열도로 건너가서 세운 정권임
무라드 15-04-10 09:20
   
실험가 이 사람
살아있는 교보재야
오답모음집 같은거 ㅋㅋㅋㅋ
핫초코님 15-04-11 15:33
   
고대 왜가 작은 집단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전방후원분도 그런 증거가 되겠죠...
그런데.. 고구려.. 백제계가 남하하기 시작하면서..얘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일본 서기를 그대로 해석을 해주어서.. 왜가 한반도 남부의 가야세력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해 주더라도..그 영향력은 대단히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신라는 법흥왕 시기에 고대 국가의 기초를 닦고.. 진흥왕 기에 연호를 개국으로 고치면서..
진정한 국가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이 시기 신라는 가야를 정복하지요...
당시 일본 왕이었던 킨메이는 그 문제에 꽤나 골머리를 썩습니다..
일본서기에 보면.. 백제의 사진과 오경박사가 왜에 올 때마다..왜 가야를 신라로부터 지켜주지 못하느냐고
닦달을 합니다..
그러자 백제가 대답하길... 우리가 가야와 임나일본부(임나일본부설이 여기에서 등장하는 겁니다)에게
모이라고 얘길하는데.. 일본부가 신라에 붙어서 백제 말을 듣지 않으니 왜왕이 직접 이야기를 하라고 답합니다.
나중에 일본부를 불러 물으니.. 지네들은 전통적으로 신라와 인접하고 친하게 지내서..왜왕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입니다....

왜가 정말 강력한 국가였다면... 신라가 가야를 정복할 때 백제에 매달려 사정할 게 아니라..
바로 치고 들어왔어야 합니다.. 그러나 왜는 그럴 능력이 되지 못했죠.....
성왕기에 신라와 대규모 전투였던 관산성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전쟁에서 백제는 우위를 점하였으나..
성왕이 뻘짓하다가.. 매복에 전사하고.. 백제가 수세에 몰려 버리게 되는데요..
백제는 신라와 전쟁을 하니...왜왕에게 군대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신군이라는 이름으로..보내주기는 합니다만....
그 숫자는 최대 천명을 넘지 못합니다.. 그게 전부죠....

당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할 당시.. 왜는 국력을 총동원하여 백촌강으로 전부대를 진격시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궤멸 당합니다...
이게 당시 왜의 국력입니다...
     
굿잡스 15-04-11 19:52
   
위에도 언급했지만 왜라는 집단을 지금의 일본국가의 정치체로 봐서는 우선 곤란합니다.

이미 고조선말기에는 요하부터 남북한 서열도는 우리 선조들의 완연한 단일 생활 문화권에

활동영역으로 봐야 하고 이게 고고학적 여러 사례속에 열도와 남부일대의 고분도 그런

우리의 열도 개척 진출 교류사와 맞물려 이후 인덕릉도 광개토 태왕의 정복 팽창 이후

강력한 정치 세력인 백제의 본격적 열도 진출과 맞물려 열도내의 기존 우리쪽 난립하던

세력을 하나로 모우면서 대형고분이 등장하게 되는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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