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기황후의 업적으로 알려진 공녀차출 금지에 대해-
드라마에선 기황후 지가 공녀였기에, 공녀의 고통을 알고, 공녀징발을 금지해
공녀들을 모두 고려로 돌려보내는 성녀로 그려지고 있죠..
과연? 그럴까요..//
---------------------------------------------------------------------
일단, 공녀는 인권이 없었던 시대의 역사의 희생물이란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봄.
누군가에겐, 권세를 위해서 자진해 간 것도 있고, 본인은 싫은데 집안 어른 탐욕에 등떠민 경우도 있고.
또는, 백만금 억만금을 준대도 내 딸 보내기 싫다고 우는 집안도 있었음.
공녀 개개인 사정이 저마다 다름
어쨎든, 고려후기 사회문제 중 대표적인게 공녀문제임.
첫 공녀차출은, 원나라에 투항하는 남송군인들에게 아내로 내려주기 위해 원나라에서 요구한게 시초임.
당시 고려는, 반역자의 딸, 파계승려의 딸, 기녀들, 등등을 수량을 채워 공녀로 보냄.
그러다가,
정식으로, 충렬왕과 제국공주가 정략결혼을 하고 난뒤엔 황궁에서 궁녀로 쓸 공녀들을 요구했고.
실제로 가장 많이 간 공녀들도 이 케이스-
처녀별감이란 부서를 따로 두고, 엄격한 심사뒤에 14-16,17세 소녀들을 뽑았고
기황후, 대풍수 드라마에선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길거리나 집에 들이닥쳐서 잡아가는 걸로 묘사하던데-.-
( 2작품다 고증이 개떡이라고 욕먹는데는 다 이유가 있음..하다못해 기황후에선 기황후 엄마까지 잡아가데;)
전쟁포로처럼 굴비엮어간다?? 애초에, 공녀들은
일종의 중요한 노동 재원이며, 상품인데,, 상품에 그런 손해를 끼치는건 말이 안됨..ㅋㅋㅋ
더구나, 권문세족의 딸이 공녀로 가는 경우도 흔했는데,어느 집안 누구 딸인줄 알고, 감히 때릴수 있음?
엄격한 심사끝에 뽑히면, 가족들과 헤어져 먼 이국땅으로 가서 영영 다신 못 만날지 모르니,
눈물바다를 이루며 작별인사를 하고, 평범하게 마차나 배를 타고 원나라까지 감-
(개인적으로, 공녀 또는 진헌녀에 대한 고증이 잘된 드라마가 대왕세종이라 생각함)
드라마에서 전쟁포로화 만드는 이미지는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걍.. 단순히 여몽 9차전쟁기에 전쟁포로 이미지가 떠올려져서 그런거 같음;;
신분이 좋고, 배운게 있는 공녀들은 대우도 달랐고, 부서배치도 좋은곳으로 받음.
기타, 일반 평민딸들은 거의 몸으로 때우는 잡무영역..
당시, 고려는 딸을 멀리 보내게 될까봐 서둘러 결혼시키는 조혼이 유행함.
고려에선 여러차례 공녀차출을 줄여줄 것 또는 폐지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함.
근데, 잘 안되었음.. 몽골인들은 수가 부족했고, 한족들을 쓰자니, 황궁에서 뭔짓을 할지 몰라 꼬롬하게 생각했음. 그래서 여러차례 숫자가 줄었다가 늘었다가 하면서 계속 됨.
충숙왕때였나? 고려가 원순제에게 간언해서 잠시 폐지되었는데, 다시 현실상의 이유로 부활함.
당장, 오랫동안 시행되던 공녀제를 폐지하면 시중 들어줄 사람도 부족하고
황실도 업무가 안 돌아갔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것임.
원순제가 잠시 고려의 상소에 마음이 흔들렸다가, 다시 부활시킨건 그 때문이고..
더구나,,
기황후는 박불화를 시켜, 고려에 공녀를 뽑게 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기황후가 공녀제를 폐지시켰다고 주장하는건 모순임.
기황후는 공녀로써 이득을 본 사람이였기에, 자기 세력과 친위대를 넓히기 위해서도 공녀들이 필요했음.
바얀이 1황후가 못되게 한 것을 보면서 그녀는 느낀바가 많았기 때문임..
자기수하의 고려공녀들을 원나라 고관대작들에게 처첩으로 뿌리고, 자기 세력을 키웠던건 부정할수 없음.
덕분에, 당시엔 고려양이 대유행-
심지어, 기황후에게 고려미인을 하사받지 못하면 체면이 구겨져 명가로 취급을 못 받았다는 기록도 있음.
볼로드테무르가 벌인 궁정 쿠테타에서 사로잡힌 기황후는 그에게 백일동안 미인을 가져다 바치고,
난뒤에 풀려났다는 기록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