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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1-03 15:58
[중국] 근대 청은 조선의 근대화를 가로막은 최악의 왕조
 글쓴이 : 사랑하며
조회 : 1,590  


조선의 근대화는 서구 열강의 힘에 의해 급격히 몰락해 가는 청과 아시아의 새로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는 일본제국 그리고 부동항을 쫓아 적극적인 남하 정책을 펴던 러시아라는 다자외교와 군사적 충돌의 한가운데에서 채 꽃도 피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에는 청의 악역이 결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근대 시기 한중관계는 조공책봉체제하에 있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이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형식적인 것이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정기적인 사절단 파견과, 중국을 상국으로 대접하는 외교 의례만 지키면 나머지는 거의 조선의 자유 의사가 존중되었다. 병자호란(1637년) 이후 조선에 청군이 주둔하거나 청의 관리가 서울에 주재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조공 관계는 ‘지배-복속’ 관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관계를 막고자 서로 비호하거나 원조하는 일종의 ‘패트론-클라이언트’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김봉진, ‘조선=속국, 속방’의 개념사)

19세기 후반 서양과 일본의 국가들이 조청(朝淸)관계의 ‘정체’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계기는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였다. 프랑스와 미국은 조선과 전쟁을 하면 청나라를 침범하는 게 되는지, 청나라는 개입할 것인지, 그 이전에 도대체 조청관계는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청 정부의 답변은 ‘속국이지만 자주적인 나라이고, 자주적이지만 동시에 속국’이었다. 
즉, 속국자주(屬國自主)였다. 조선 같은 조공국은 사실상 독립국이라는 게 당시 조선과 서양, 그리고 일본의 입장이었다.

1880년대 들어 청은 전통적인 입장을 바꿔 조선 속국화 정책을 급격하게 추진했다. 
그 주도자는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과 그 부하인 마건충(馬建忠), 원세개(袁世凱)였다.
 정책 변화의 이유는 청의 위기감이었다. 
신미양요 후 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은 조선과 강화도조약(1876년)을 맺고 이어 류큐 왕국을 병합(1879년)해버렸다.

청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조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임오군란(1882년) 때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온 오장경(吳長慶)의 부하 장건(張건)은 고대 한사군의 전례에 따라 조선국왕을 아예 폐하고 조선성(朝鮮省)을 설치하자고 했고, 한림원 시강 장패륜(張佩綸)은 대신을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과 외교를 직접적으로 장악하자고 했다. 

사실상의 대원군 쿠데타인 임오군란을 진압하고자 병자호란 후 약 250년 만에 청군이 들어왔다. 
난을 진압한 청군은 대원군을 청으로 납치해 갔고 민씨 정권을 다시 세워줬다. 
청은 이제 서울에 있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 내정에 맘대로 개입했다. 그 선두에 선 게 원세개였다.

먼저 김옥균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켜 조공관계를 폐기하고 아예 독립하려는 급진적인 시도를 했지만 청군은 이를 간단히 진압해 버렸다. 이어 고종은 러시아의 힘을 빌려 청을 밀어내려고 꾀했지만 원세개는 이를 알아채고 그를 폐위시키려 했다.

청은 청일전쟁(1894년)이 발발하기까지 조선의 ‘자주’와 개혁을 방해했다. 
매우 불평등한 무역관계를 강요했고(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사실상 총독으로 군림하던 원세개는 조러밀약을 분쇄했다. 

한미조약에 따라 1887년 고종은 박정양(朴定陽)을 미국공사로 임명했으나 청은 ‘주재국에 착임하면 그곳 청국공사와 협의하고 그 지시에 따르라’며 조선의 ‘자주’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정양은 청나라의 방해로 제대로 임무 수행을 못하고 결국 일찍 귀국하고 말았다. 

전통적인 조선의 ‘자주권’을 무시하고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청의 야욕이 조선의 개혁을 가로막았고 조선인을 등 돌리게 했으며 청이 그토록 우려하던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불러들였다. 

개항부터 청일전쟁까지의 한국 근대사는 ‘속국화’에 맞서 ‘자주’를 확보하려는 청에 대한 항쟁이 중심축이었다. 영은문과 모화관을 헐고 세워진 독립문(1897년)은 바로 그 상징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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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21-11-03 15:58
   
국산아몬드 21-11-04 12:34
   
흥선대원군시절에 청의 영향력은 쩌리신세였음
임오군란 때 청을 불러들인 고종과 민비 때문에 청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것임. 청일전쟁때까지 12년간 상국행세를 했었음
외세가 장악하며 당연히 근대화는 지체됨
흥선대원군이 노욕만 안부렸어도 청따위는 무시할수 있었는데
     
촐라롱콘 21-11-04 15:04
   
흥선대원군 집권기 ~ 고종친정, 강화도조약 시기인 1860~70년대의 청나라는

1~2차 아편전쟁의 여파로 인해 서구열강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내부적으로도 태평천국의 난, 염군의 난, 섬서-감숙일대 회족반란, 신강 위그로족 반란

등 수많은 반란과 변란으로 인해 조선문제에는 관여할 여력 자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병인양요, 신미양요, 일본의 의한 강화도조약 체결 시기에 청나라의 존재감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후 1870년대 후반을 지나며 이전까지 청나라를 괴롭혔던 국내외 여러 전란과 반란들이

정리되는 단계에 접어들고, 동치중흥-양무운동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국력이 다소 회복되는 시점에서 대외문제에서도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문제 역시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국산아몬드 21-11-04 16:42
   
임오군란때 고종,민비가 청군을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청니라가 조선에서 상국행세할 일은 없었어요. 조선왕조 500년 기간에 처음 발생한 종주국행세입니다
안매운라면 21-11-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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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왜 김옥균과 고종은 외세에 의존했느냐고 힐난한다. 탁상공론이다. 청의 속국 시도를 막을 아무런 힘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있나. 국력이 갖춰질 때까지는 현란한 외교술로 조선의 ‘자주’를 인정해줄 타국의 힘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사이에 필사적으로 국력을 키워야 했다. 당시 조선 위정자들의 잘못은 외세 의존에 있다기보다는 빈약한 외교력과 내정개혁 실패에 있었다. 외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강이 필수적이다. ‘용일(用日)’을 하고자 했으나 ‘친일(親日)’로 전락한 개화파의 말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데다 지정학적 요충지인 한반도에서 외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주체국가’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독립국이지만 미국의 강력한 영향과 간섭을 받았다. 하지만 이승만 박정희는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빼먹을 건 빼먹고 거부할 건 단호히 거부했다. 역대 미국 정부가 이 두 대통령을 제거하고 싶을 정도로 골머리를 썩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외세의 힘을 충분히 활용하여 국력 강화를 이뤄냈다. ‘자주’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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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려면 다 퍼오던가, 인용 표시를 하던가 하셔요.
빠뜨린 부분 얼마 되지도 않고만,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할만한 부분만 퍼온 건 무슨 저의인가요.
혹시 이간질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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