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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23 18:44
경부고속도로 40주년
 글쓴이 : dhjhk
조회 : 30,760  

DJ
"경부고속도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차 있는 사람들만 팔도 유람하고 다닐 것 아닌가? 쓸데없는 돈 낭비다." 


아래 사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면을 쓰고 고속도로 공사현장에 드러누워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모습이다.
 

고속도로 건설반대 데모 선동으로
유명세를 탄 김대중은
불과 3년 만에 1971년 대선 후보가 되었다.

 

 DJ 
"정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겠다고 해도 16차선(왕복 8차선)은 절대 안 된다.
뭣 하러 그렇게 넓게 짓는가?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 많은 건설비를 조달할 수도 없다."


박정희
"절대로 16차선을 해야 하지만...
김대중이, 김영삼이가 너무 반대하니 할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완성하면 우리나라는 중진국이 될 수 있다.
8차선으로 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경부고속도로

예정지를 순찰하고 있다. [도로공사 제공] 

 

 

박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구상도. 

 

왕복 4차선
"내가 야당 반대 때문에 양보하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도로가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왕복 4차선으로 하더라도 반드시
경부 고속도로 양옆으로 50m는 남겨 두라.
건물 신축을 금지하라.
미래엔 더 확장해야 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집념은

조국근대화와 맞물려 직접 챙기고 공사를 독려하였다.  

 

 

1968년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  <천안 - 신사리>구간중 천안 삼거리 부근에서.

(1968.12월)   

 

 

 

 

작업중 휴식시간에 건설 현장 인부들의 기념사진. 

 

 

경부고속도로 현장의 박 대통령.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의 박정희-육영수-정주영

 

 

경부고속도로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했다. 전후 잿더미 위에서 경제 부흥에 성공한
라인강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서독에 차관을 요청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서독 방문 중 박 대통령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기반시설이 하나 있었다.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인 아우토반(Autobahn)이 바로 그것이었다. 1932년 쾰른과 본을 잇는
도로가 처음 개통된 이래 아돌프 히틀러 치하를 거치면서 아우토반은 독일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국가 대동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우토반을 본 이후 고속도로 건설은 박 대통령의 꿈이 됐다.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인프라 스트락처(Infra-structure), 그중에서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국가 대동맥의 건설이
시급하다고 굳게 믿었다.


1967년 재선에 도전한 박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놨다.
이 공약에 환호성을 올린 사람은 아마도 한국에서 정주영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유사 이래 최대 규모가 될 역사(役事)는 박정희, 정주영의 합작품이 된다.


언론과 학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공사에 들어갈 막대한 자금을 과연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설사 재원을 확보한다 해도 그로 인해 빚어질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마침 세계은행은
한국의 교통량이 경부고속도로를 뚫어야 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언론과 학계는 이 보고서를 금과옥조처럼 활용했다. 세계은행과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자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았다. 당장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얻어 쓰는 길도
끊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박정희, 정주영이 아니었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정주영을
청와대로 불렀다. 단둘이 만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한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 사장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드는 최저 소요 경비를 좀 산출해 봐주시오."


박 대통령은 도대체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조차 파악이 안 돼 답답하던 중이었다.
대통령의 말을 들은 정주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드디어 2년 전 태국에서 익힌 공사 경험을
한국에서 써먹을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정주영은 즉시 5만분의 1 지도를 들고 한 달 가까이
서울과 부산 사이의 강과 산, 들판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주판을 두드려보니 380억 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건설부는 650억 원, 서울시는 180억 원으로 추산했다.


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이 제시한 금액에 가까운 400억 원에 예비비 30억 원을 추가해
총 430억 원으로 공사비를 책정했다. 이 돈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총 428km의 고속도로를
3년 안에 완공하라는 게 현대건설을 비롯한 17개 건설회사에 맡긴 지상과제였다.


마침내 1968년 2월 1일, 흥분과 감동 속에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렸다.
현대건설은 서울~오산, 대전~옥천 등 전 구간의 5분의 2가량을 맡았다. 공사비 책정이
워낙 빠듯했던 만큼 애초부터 큰돈을 벌기는 어려운 공사였다. 그렇다고 기업인이
이익을 포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기업가는 이익을 남겨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지 국가를 위해 또는 사회를 위해
거저 돈을 퍼 넣는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기업가들이 사회에 주는 기업의 열매는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면 된다.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남겨야 하는 것이 기업가에는
번번이 절체절명의 명제였다."


이익에 집착해 탈법 또는 부실공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뿐이다.
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해 이자와 노임을 최대한 절약해야 한다. 정주영, 아니 모든 건설회사
경영자들에게 공기 단축은 곧 돈이었다.


정주영이 무작정 공기 단축에 나선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로써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랄 수 있는 800만 달러어치의 중장비를 도입했다.
낙동강 고령교 공사(1953년 착공) 때 20t짜리 크레인 한 대만으로 무리하게 덤벼들었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겪은 뒤 장비 확보는 정주영에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는 고속도로 공사를 위해 중장비 1천900여 대를 들여왔다. 당시 우리나라에 있는 중장비가
모두 1천400대 정도였으니 장비에 대한 정주영의 집착을 읽을 수 있다.


'호랑이' 정주영은 현장에 간이침대를 갖다 놓고 작업을 독려했다.
공기 단축이 부실 공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챙겼다. 잠잘 시간에는 일하고,
대신 덜컹거리는 44년형 지프를 타고 가면서 잠깐씩 눈을 붙였다.


차에서 자는 습관은 나중에 울산 조선소 건설 때까지 이어져 결국 목 디스크의 원인이 됐다.
심지어 어떤 때는 지프에서 잠을 자면서 지프는 공사장을 빙빙 돌도록 했다.
직원들은 '호랑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게으름을 피우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노동력을 착취한 가혹한 자본가라는 비판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약 40년 전 정주영은 현장 노동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또 한 명의 노동자였을 뿐이다.
그는 노동자가 일할 때 자기만 편하게 쉬는 전형적인 자본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평생을 두고 자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 자신은 나를 자본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꽤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으로 재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일 뿐이다."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고 기반시설을 확보한 박 대통령 시대의 자본주의 산업화는,
우리 사회를 오랜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단숨에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1960년 64%이던 농어민은 80년에 31%로 감소했으며,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된 70년대에는
2차 산업이 1차 산업을 능가하고 중공업이 경공업의 비중을 추월하는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갖추었다.

그 근간에는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국내로 송금한 달러가 기반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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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  경부고속도로 40주년이라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한번 올려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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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10-10-23 18:47
   
현재와 미래 일들은 외면하고, 아직도 과거에 사시는 분들이 참 많아.. 타임머신이 얼른 개발되어야 할텐데..
위에 10-10-23 18:50
   
과거없이 어떻게 현재가 있음..현재와미래도 과거의 연결선임...

(어이없는 댓글이어도 상대방을 무시하지마세요.)
     
ㅇㅇ 10-10-23 18:51
   
내가 당신보다 역사책도 더 많이 봤으면 봤음...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으삼
ㅡㅡㅡ

3번기준 위반.
          
이건 10-10-24 01:50
   
과거 현재 미래를 나눠보기보단 연결선상이라는걸 생각하라는거 같은데
왠 역사책드립이지 ㅋㅋㅋㅋ
               
ㅁㅇㄹㅇㅁ… 10-10-24 03:05
   
글쓴이// 과거만 쫒는 이들은 현실에서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기 마련이지요.

딱 님 견적이 나오는군요

3번기준 위반.
한수 10-10-23 19:00
   
국건위,먼저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었다.
첫째가 시기상조고,
둘째가 재정에 무리가 따른다는 이유였다.

그런 상황이면,시기적,시대적으로 힘들더라도 야당의 반대가 당연히 있어야 맞지 않나 싶다.정당한 이유를 근거를 대며 다섯가지 사유로 반대를 했다는 기록이다.(당시도 지금의 MB정부처럼,동문서답과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닮았다)이유를 요약해 옮겨 본다.

첫째,교통집중투자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서울-부산간에는 이미 복선철도가 있는데 굳이 중복투자하여 수도권과 영남권등 일부지역에 편중적인 발전과 특혜를 부여하였다는 지역편중 우려를 들었다.(이러한 차원의 논쟁은 이농민의 서울집중이 정점에 이르고 있던 60년대 후반의 상황에서 열띠게 전개될 만했으나,대중매체나 학술잡지 등에서 뚜렷이 공론화되지 못했다.그보다는 영남으로의 직접 효과를 둘러싼 둘째 쟁점이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었다)

둘째,고속도로에 예산편중 제기했다.경제성장에 있어 수송 수요가 늘것이고 이에 도로의 건설은 당연히 필요한 것임을 인정 하지만, 왜,일반도로 증설하기 보다 고속도로에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느냐의 비판이였다.(도로 건설 예산이 131억 인데,고속도로70%,일반도로30%배정 문제를 제기했다)

셋째,고속도로 건설은 1965년 10걔년계획으로 착수되었다.그 이전으로 보면 국토개발종합계획이 앞서 있다.본격적인 것은 1965년 11월부터 1966년 6월까지 교통부의 의뢰를 받아,한국 교통상황을 조사한 IBRD(세계개발은행)의 보고서는 철도 중심의 수송체계를 도로 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함을 강조하면서도,유료 고속도로의 건설보다는 국도.지방도의 포장에 치중할 것을 주문했다는 보고서다.

이러한 권고에 따른 우선순위 문제제기를 야당이 한다는 것이다.고속도로 건설의 문제 제기다.1965.09.20 IBRD(세계개발은행)에 용역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화물10.2%,여객11.5%씩 매년 수송수요의 증가가 예상되어 도로건설의 필요성에 동의 하였으나,우선 순위를 권고한 내용이 있다.그러니까 남북횡단이 아니라 동서횡단을 제시한다는 것이다.(IBRD(세계개발은행)권고 사항이다.우선순위다. 1.서울-강릉,2.포항-부산-순천-여수-광주,3.삼척-속초,4.대전-목포등 4개선의 건설이 더 시급하다고 권고한 내용인 것이다)

넷째,건설사무소 즉 관리감독기관의 직급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고속도로 건설사무소의 소장을 1급 공무원으로 임명했는데 이들을 감독하는 건설부의 국토보전국장은 2급 이어서 건설사무소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는 비판 이였다.

다섯째,더불어 법률적 절차 하자 제기를 했다.서울-오산(수원)간의 공사는 예산에 없는 공사였고,이를 국회에 보고하지 않고 착공하였다는 것이다.이 도로의 초기공사는 설계도 제대로 끝나기 전, 즉 설계와 공사가 병행되었기 때문이다.특이한 것은 고속도로의 노선 결정이나 건설 공정계획도 박정희가 직접 독단적으로 결정하였다는 점이다.

이상 다섯가지 문제점을 지적,제기했다.

이 것이 당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하는 이유인 것이다.과연 이러한 야당의 지적이 틀리다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과연 이러한 야당의 지적을 앞뒤가 맞지 않는 문제로 폄하되어야 하는지,시대에 맞지 않았는지 되레 묻고 싶다.또한 국민의 반대는 무엇에 근거하여 반대 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당시 언론은 고속도로 건설에 있어 매우 신중하고,조심스런 태도를 취했다.(그래도 여섯가지 문제제기를 언급했다)

첫째,중소도시가 퇴보할 가능성을 들었다.

둘째,서울,부산의 2대도시의 대자본가가 중소도시에 침투함으로서 중소도시의 경제가 대도시 자본에 의존하게 되어 2대도시에 자본이 집중되고 중소도시에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을 제시 했다.

셋째,농어촌의 지나친 도시화를 우려했다.

넷째,수송난 해결의 본래의 목적에 부응되고 철도의 지나친 사양화를 막도록 고속도로는 화물의 수송에 주력하여야 하는데 반대 결과가 되기 쉽다.

다섯째,이상과 같은 마찰은 지역간의 불균형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다.

여섯째,향토적인 민속성의 보존이 어렵다.

당시 이런 상황이였던 것이다.결국 야당의 시기와 재정,지역불평등을 고려한 반대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반대의 전부인 것이다.반대의 끝이였다.

이 에 건설을 강행하고자 하는 정부측 반대논리로 설득에 들어 간다는 것이다.(당시 조사단 발족67.12.15,단장,안경모),


<경부고속도로의 진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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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친일수구 세력들은..
박정희가 고속도로를 처음 계획했으며,

김대중,김영삼 등 야당이 반대했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처음 기획.계획한 것은 이승만이었으며,
당시 야당이 반대한 것은 경상도-서울만 발전하는 경부고속도로였습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해 민심을 살 필요성이 있었으며,
이를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강행하는데...

급하게 추진하다보니 복구비용만 10배나 들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야당 말대로 천천히 전국적으로 추진했다면..
충청-강원-전라뿐 아니라 각지역이 균형발전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엔 서둘러 시행할 필요도 없었죠.
차량이 거의 없었으니...

차량은 박정희 18,년 철권통치가 끝나고,
전두환 중기에나 많아지게 되니까요.

도대체...수구와 일본극우와의 차이점을 모르겠습니다.
역사왜곡,날조,조작...

실패한 것들은 김일성처럼 찬양하고...참..
한수 10-10-23 19:03
   
<히틀러와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 신화 깨기>

 
독재자들은 뽐내기를 좋아하는 ‘과시병 환자’들이다. 그들은 피라미드나 자금성 같은 거대한 기념비적인 건축을 통하여 자신의 업적과 위대함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물론 대규모 기념물은 독재 정치를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상징장치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독재자들의 이러한 과시행위가 ‘신화’가 되어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생생하게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 히틀러의 ‘아우토반(Autobahn) 건설’과 ‘국민차 계획(Volkswagen-Projekt)’이나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 5걔년 계획’도 신화가 된 거짓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나치의 침략전쟁과 테러, 인종학살을 경험한 독일인들 중에서 히틀러가 처음으로 아우토반 건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실행하여 실업을 해소하고 2차 대전 이후 독일 근대화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많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군부와 중앙정보부를 앞세운 고문과 인권탄압으로 악명 높은 박정희가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 5걔년 계획의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내고 실행하여 고도성장과 근대화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히틀러와 박정희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이러한 신화들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독일에서 최초로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한 것은 1909년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와 몇몇 사업가들이었다. 이 계획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1921년 9월에 처음으로 짧은 구간의 자동차 전용도로(Nur-Autostra e)를 건설했다.

그 후 민간경제인을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들에 의해 아우토반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나치집권 이전인 1932년에 최초의 아우토반이 완공되었다. 히틀러는 집권 후 ‘아우토반 건설과 국민차 생산’을 통한 경제개발이라는 선전을 했지만 실업문제 해결, 군사적 목적, 경제성 등 어느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파쇼독재자 박정희가 경제개발 5걔년 계획을 수립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열중하면서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던 중에 1964년 12월 6일 독일의 대통령 뤼브케의 초청을 받고 서독을 방문해서 ‘아우토반’을 주행해보고 돌아와 직접 연구하여 고안한 것이 고속도로 건설의 첫 단추라는 신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제개발계획은 사실 이승만 정권 당시 산업개발위원회의 미국 유학파 관료들이 입안한 정책을 제2공화국 장면 정권이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미국이 원조금을 지원해주지 않아서 실행하지 못했다. 고속도로 건설도 이승만 정권시기인 1950년대 중반에 도로기술공무원들이 미국에 연수시찰을 가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둘러보고 온 이후부터 추진되었다.

‘공화국은 가도 행정은 남는다’는 말처럼 고속도로 건설이나 경제개발계획은 행정수도이전계획처럼 행정의 연속일 뿐이었다.

결국 히틀러의 아우토반 건설과 국민차 생산 신화와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5걔년계획 신화는 그들 독재자들의 업적이 아니라 그 전 시대에 역사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역사에서 기술진보와 경제발전은 독재자들의 ‘영웅적인 신화’와 무관하게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던 ‘로마가도’가 식민지 민중들의 학살과 전쟁을 통하여 이루어졌듯이 ‘아우토반’과 ‘고속도로’의 건설 또한 터무니없이 낮았던 저임금과 살인적이고 야만적으로 높았던 노동 강도로 고통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잊지 말자.


ⓒ 민족문제연구소
ㅎㅎㅎ 10-10-23 19:09
   
마지막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뿜었다 자료 찾아도 어찌...

3번기준위반.

근거있는 토론을 지향합시다.
     
한수 10-10-23 19:13
   
친일역사청산하는 곳이
민족연구소이구먼...ㅉㅉㅉ

수구매국노들은 어쩔 수 없는건가..??


4번기준미달
     
ㅉㅉ 10-10-24 03:15
   
ㅎㅎㅎ// 너님 견적 딱나오네요



3번기준위반
한수 10-10-23 19:12
   
그리고..저위에 김대중이 드러누워서..반대했다는 사진은
조작된 겁니다...

(언제는 또 김영삼이 드러누웠다더니...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002041139461&code=114

<‘경부고속도로 반대’ 야당 시위 사진은 조작?>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인식대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야당은 ‘목숨을 건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을까. ‘국민과의 대화’ 전후로 인터넷에는 한 장의 사진이 돌았다. 굴삭기 앞에 두 남자가 누워 있고,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밑에는 다음과 같은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공사현장에 몸소 드러누워 진보, 개혁, 민주화운동을 몸으로 실천하신 ‘움직이는 양심’ 슨상님.” 굴삭기 앞에 누워 있는 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완공되던 1970년,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출처 불명의 이 사진 속 인물은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당 인사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뒤에 도열한 사람들이 들고 있는 손팻말의 ‘끝까지 결사반대’라는 글씨는 원래 글씨로 보이지만 이것이 경부고속도로와 관련된 사진이라고 주장이 가능한 ‘고속도로 반대’라는 글씨는 누군가가 사진에 가필(加筆)한 것이다.

사진을 살펴본 장신기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은 “실제 누워 있는 사람의 옷차림이나 체형 등은 김대중 당시 신민당 의원과는 다르다”면서 “일부에서는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김 전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무라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조작된 기억’>

정치에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박 전 대통령도 강조한 말이다. 경향신문 1969년 3월 21일자 기사를 보면 그는 경부간 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업체 대표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조기 완공을 당부하면서 “일부에서 말하듯 정치에서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7개월 뒤 언론은 박정희의 3선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여당 쪽에서 만들어진 정치 신어(新語)로 ‘하이웨이 전술’이라는 것을 꼽았다. “경부간 고속도로 건설을 내세워 정부 실적 PR를 최대한 활용키로 한 것. 지난번 오산~천안간 고속도로 개통식 때 많은 시민의 운집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이후 부상된 것.”(경향신문 1969년 10월 7일)

그리고 1971년 대선. 신민당 후보 김대중은 “우선은 지방 국도 포장, 2단계로 고속도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공화당 후보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여러 고속도로 동시 착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논쟁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란 책에 ‘고속도로와 지방불균형발전’이라는 장을 저술한 한상진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김대중이나 야당의 논리는 고속도로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가 아니었고, 실제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 소외된 전라도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급속한 이농현상 등이 발생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말했다.

DJ의 주장대로 서울~강원 간 고속도로가 우선 만들어졌다면? 교양역사서 <타르타르스테이크와 동동구리무>를 펴낸 정창수 박사는 “강릉은 대도시가 되어 있었을 것이고, 부산은 부산대로 지리상 발전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해상교통이 발달하고 해안지역의 전반적 개발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야당의 반대가)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주장은 만들어진 기억”이라고 말했다.

실제는 경부고속도로 개발 반대론이라기보다 차선론이었고, 나름대로의 대안적 논리가 있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 등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딱지를 붙인 이후 진실로 둔갑한 ‘조작된 기억’이라는 설명이다
허럴 10-10-23 19:17
   
조작자료였구나... ㅅㅂ...속을뻔 했네
한수 10-10-23 19:19
   
<<반대는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기구였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없었다, ‘대안을 제시한 반대’였다
DJ는 고속도로 건설 자체는 동의하면서도 지역불균형을 비판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고,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과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는 얘기는 이제 하나의 ‘가공된 역사’가 됐다. 본래는 4대강사업에 대한 반대를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반대로 ‘교묘하게’ 등치시키며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여기에다 청계천도 마치 반대가 많았다는 식으로 언급되곤 한다. 원래 청계천 사업은 한겨레신문 등이 내건 진보적 의제였음을 벌써 잊고 있다.)

<고속도로 건설 공약을 내건 박정희 대통령을 선택했다>

첫째, 1967년 4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은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속도로의 건설을 공약하기에 이른다. 이를 실천하고자 5월 1일에는 서울-인천간 고속도로 건설을 기공하는 한편, (7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이후인) 1967년 11월 7일에는 제2차 5걔년계획기간(1967~1971년) 중 계획에도 없던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건설부장관 주원씨에게 지시하게 되고,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김용환 회고록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 매일경제신문사, 2002년, 53면 이하 참조).
이때 당시 김용환은 재무부 이재국장이었다.

선거는 1967년 5월 3일에 있었다. (선거 공약에 대한 반대차원에서 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윤보선 후보가 아니라) 고속도로의 ‘전면’ 건설을 내건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국민들은 ‘고속도로 건설’에 동의한 셈이다.
그렇다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국민들이 반대했다는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1968년 1월 여론조사도 압도적 찬성이었다>

둘째,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된 직후 월간 <세대> 1968년 1월호가 각계 인사 100명에게 찬반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68%가 무조건 찬성, 27%가 조건부 찬성, 5%가 반대를 표했다. (한상진, <고속도로와 지역불균등 발전>,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2 근현대편』, 역사비평사, 350면 이하 요약)
이때 이미 우리 사회는 근대화와 개발, 성장주의의 세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편, 조건부 찬성을 포함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유보적인 32명의 의견은 무리한 재정지출에 대한 우려가 12명, 투자 우선순위상 시급하지 않다는 주장이 8명, 제외된 지방의 발전지체 우려가 4명, 기타 8명의 분포를 보였다.
당시의 여론조사가 이런 결과라면 국민이 반대했다는 것은 결코 옳은 해석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렇게 동의하는 이상, 정치권의 반대 또한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한상진, 앞의 논문)

<반대는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기구였다>

셋째, 가장 중요한 반대는 국내가 아니라 국제기구였다.

세계은행의 자매 기구인 국제개발협회(IDA)는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남북종단보다는 횡단도로가 더 시급하다”고 함으로써 차관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그 후 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에 경제협력과 지원을 타진하였으나 성과는 마찬가지였다(경제기획원, <개발연대의 경제정책>, 김용환 회고록에서 재인용)

사실 IBRD의 반대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돈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가 불가능한 우리 현실에서 돈은 세금인상과 채권, 그리고 사용료, 거기에다 국제기구로부터 차관을 받아오는 수밖에 없었는데, IBRD가 반대하고 나서니 한마디로 큰 일이 난 것이다.

실상 가장 중요한 반대는 바로 이쪽에 있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없었다, ‘대안을 제시한 반대’였다>

넷째, 반대는 나름대로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국도와 지방도의 포장이 선결과제라는 것이었다.
“교통부의 의뢰를 받아 1965년 11월부터 1966년 6월까지 한국 교통상황을 조사한 IBRD의 보고서는 철도 중심의 수송체계를 도로 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유료 고속도로의 건설보다는 국도, 지방도의 포장에 치중할 것을 주문했다.”

둘은 당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강사였던 기우식의 논리이다.
“경부고속도로 완공시점인 1970년 9월호 월간 <신동아>에서 당시 서울대 행정대학원 강사였던 기우식은 그 같은 논리를 따라, ‘지역경제의 생활공간이 충분히 이용될 수 있도록 지역 내부를 잇는 교통망, 지역 간을 잇는 교통망이 서서히 형성된 다음에 비로소 고속도로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셋은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성두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성두는 ‘가격정책 등 농민소득수준 향상을 저해해온 경제순환의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시정하지 못한다면 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국민시장권의 공간적 확대는 생각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교통의 편익증대에 따른 전시효과의 확대로 지방민의 서울 집중을 촉구할 수 있고 농공 간 부등가교환이 촉진되어 지역소득의 도시흡수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DJ는 고속도로 건설 자체는 동의하면서도 지역불균형을 비판했다>

다섯째, 같은 맥락과 논리에 DJ가 있었다.
“한편 고속도로 건설이 지역불균등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한 논객으로는 당시 건설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이 단연 돋보였다. 그도 고속도로 건설 자체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과 긍지를 느낄 일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1967년의 제62회 국회 건설위원회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한마디로 ‘머리보다 다리가 크고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말라버린 기형아 같은 건설’이라고 규정했다. 그 의미는 두말할 나위없이 영남 지역으로의 교통망 집중이 강원‧호남과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것이었다.(한상진, 앞의 논문)”

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후보는 윤보선이었다. 이때 DJ는 단지 국회의원일 뿐이었다. DJ는 결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역구인 호남만을 고려하는, 호남푸대접만 강조하는 것도 아니었다. 국제기구의 조언과 보고에 합당한 영동고속도로의 건설을 먼저 주장했다. 이는 결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었다.

“그는 1968년의 제63회 국회 건설위원회에서 IBRD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서울-부산간에는 철도망과 국도, 지방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오히려 서울-강릉간 영동고속도로를 가장 먼저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원도에는 지하자원과 관광지가 많음에도 아예 철도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호남 차별정책도 거론하면서 경부선 복선철도에 비해 호남선 철도는 단선인 데다 낡아빠졌는데도 경부고속도로를 우선 추진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한상진, 앞의 논문)”

사실이 이러함에도 역사적 사실은 왜곡되고 있다. 모든 대안은 그저 반대로만 묘사된다. 나와 다른 생각은 무조건 반대로 해석된다. 대안마저도 반대다. 논쟁은 불가능하다. 논쟁 자체는 아예 봉쇄된다. 예나 지금이나 말 많으면 공산당일 뿐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다시 김용환 전 장관의 회고다.
“‘국가 간선 고속도로 건설계획 조사단’은 최저액인 서울시의 180억 원과 최고액인 건설부의 650억 원의 중간치인 315억 원과 현대건설의 280억 원을 비교 검토하여 300억 원 규모로서 사업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건설비는 뒤에 건설부의 건의에 따라 예비비 10%를 가산하여 330억 원으로 재조정되었고, 실제로 시공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 결국 약 430억 원이 소요되었다(건설부, 『국토건설 20년사』).”

결국 세금을 올리기로 했다. 휘발유세를 100%에서 200%로 올려 돈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서 145억원이 마련됐다. 당시 예상했던 소요공사비는 365억 인데, 이 중 145억 원을 세금인상분으로 마련키로 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동의했다. 재원 마련 계획에 대한 보고가 있던 날,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복 요리를 곁들인 성찬이었다.”

역시나 세금에 대한 인상은 야당보다는 집권여당 내부에서 더 큰 문제로 작동하는 것은 옛 정치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결국 돈 문제가 가장 무섭다.

“한편 재원조달 방안의 일환으로 보고한 휘발유세를 인상하기 위해서 휘발유세법을 개정하려 하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조차도 정부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급기야 휘발유세의 인상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대신, 이것이 당정간 불협화의 원인이 되어 서봉균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불상사를 겪게 되었다. 지금도 그 분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김용환,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 60면)”

마지막 한 가지.
지역 감정이라고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나 지방분권, 지역 균형개발 차원에서 이해했으면 좋겠다.

“박정희는 1967년 6대 대통령 선거 때 호남 푸대접을 들고 나온 호남인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호남선 복선화를 공약했다. 그러나 이것은 착공만 했을 뿐 실제 공사는 조금도 진척이 없었다. 1978년 3월 30일 겨우 대전-이리(익산)간 복선이 개통되었을 뿐이고, 이 문제는 90년대까지도 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다.(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그렇구나 10-10-23 19:38
   
작성자한테 속을뻔 했네...
슬슬 10-10-23 20:28
   
가생이에도 정치꾼들이 설치기 시작하는건가;;
10-10-24 03:19
   
작성자 무슨의도로 이런 날조글을....
양비론=ㅄ 10-10-26 03:53
   
한수님 멋지삼~
수꼴들 못된 날조왜곡자료올려놓고 해명한마디없네?ㅋㅋ
     
주영 11-11-22 15:41
   
ㄴㅇㄹㄴㅇㄹㄴㅇㄹㄴㅇㄹ
ㅁㄴㅇㄹ 10-11-01 14:43
   
뭐 개발할 필요성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전라도랑 국내 최대 규모의 항만이 있던 부산중

어디랑 연결하는게 국익에 이익이 되겠소? 균형발전같은 허황된 소리 말고

현실적으로 접근했을때 어떻게 하는게 가장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었겠냐는 거지.

날조든 뭐든 경부 고속도로로 인해 거지같은 대한민국이 사람사는 나라로 올라 설 수 있게 된건 명백한데.

니가 옳니 그르니 대충 어이없음요.
     
앤조이 15-11-03 01:17
   
마치 일제강점기때 철도를건설했으니 일본이 우릴 잘살게해줬다와 같은 소리군요.
월하낭인 11-06-19 09:05
   
- 김 대중씨 유명한 도로 현장마다 와서 드러누워서 싫어한다고 증언한 전라도 출신
  건설 노동자들 많던데.(현재 강서구등 거주)

- 초기에는 지금보다 운영원칙이 엄격했더랬나보군요.
파리 11-08-19 20:57
   
주영 11-11-22 15:40
   
ㅌㅊㅋㅌㅊ픁ㅊㅍㅌㅊㅍㅌㅊㅍ
주영 11-11-22 15:40
   
ㄹㄴㅇㄹ
주영 11-11-22 15:41
   
ㄴㅇㄿㅌㅊㅍㅌㅊ
주영 11-11-22 15:41
   
ㅌㅊㅍㅌㄴㄹㅇㄴㅇㄹ
엘더스 14-01-15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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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더스 14-01-15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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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더스 14-01-15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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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짖개 14-08-1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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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더스 15-07-04 17:14
   
테스트2
앤조이 15-11-03 01:19
   
글쓴이 환갑지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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