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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23 19:35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늦춰졌다면
 글쓴이 : 한수
조회 : 34,958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늦춰졌다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국토 불균형 발전, 부동산 투기, 불통 정치, '일단 하고 보자'주의 등
압축성장의 병폐 한층 줄어들었을 것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0년은 한국 현대사, 특히 경제사에서 뜻깊은 해였다. 그해에 포항제철이 기공식을 열었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그리고 전태일이 분신했다. 1968년 2월1일 착공해 2년5개월 만인 1970년 7월7일 준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오늘날까지 퇴색하지 않는 '신화'를 낳았다.

이를 건설함으로써 "한국 경제는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눈부신 발전의 길에 접어들었고", "우리 힘과 우리 기술로 이루어낸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대역사였으며", "당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영단으로 관철한 결과 이제는 아무도 그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신화다.


1964년 서독 아우토반 보고 구상 착수

경부고속도로 착공 당시 건설부 장관이던 주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고속도로를 보고 처음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뜻을 가졌다고 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에 따르면, 1964년에 서독을 방문해 히틀러가 건설한 아우토반을 보고 나서 그런 구상에 들어갔다고 본다.

이후 박정희는 세계 각국의 고속도로 자료를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고속도로 건설 구상을 가다듬었다고 하지만, 일반은 물론 정부와 여당에도 그런 구상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1967년 시작된 제2차 경제개발5걔년계획안에는 고속도로에 관한 계획이나 예산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비로소 빛을 본 것은 1967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때였다. 당시 건설부에서 일한 김의원 전 국토개발연구원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1967년 4월 말, 청와대가 느닷없이 김용희 국토계획국장을 호출했다. '국토계획에 포함시킬 사업을 빨리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김 국장은 생각나는 대로 4대강 개발, 10대항 개발, 고속도로 건설 등을 메모에 갈겨썼고, 며칠 후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 메모 내용이 그대로 공약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박정희가 고속도로 건설안을 마냥 묵혀두었다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서둘러 다시 꺼내든 것은 아니었다. 이에 앞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의뢰해 1965년 11월부터 1966년 6월까지 한국의 교통 실태를 조사하게 한 것이다. IBRD는 당시 한국의 교통망이 철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교통량 증가 예측치를 볼 때 제2차 경제개발5걔년계획 동안 3300km의 도로를 추가로 포장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한 서울과 강릉, 포항과 광주를 잇는 국토 횡단도로와 삼척과 속초, 대전과 목포를 잇는 지역 연결 도로가 가장 빨리 건설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아무튼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박정희는 본격적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에 착수했다. 정부에서는 주원 건설부 장관, 민간에서는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투톱'이 되어 실무를 맡고, 청와대가 최고 사령탑이 되어 계획 수립, 진행, 점검 등을 두루 지휘했다.

당시 박정희는 집무실에 온통 지도를 펼쳐놓고 직접 자를 대고 선을 그리면서 계획에 몰두했고, 정주영 역시 건설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공사를 독려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착공 뒤 불과 2년5개월이라는 '기적적인' 속도로 공사가 완료됐고(본래 일정보다 1년을 단축한 것이다), 총길이 428km, 총공사비 429억원, 동원 인력 900만 명, 중장비 165만 대, 철근 5만t, 공사 중 사망자 77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경부고속도로는 건설됐으나, 그 직후 만들어지기 시작한 신화에는 허점이 많다. 먼저 "경부고속도로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의 계기가 됐다"는 신화를 보자. 경부고속도로가 이후의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여가 과연 얼마나 중대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IBRD 보고서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예상된 물동량 수요 증대는 기존 도로를 포장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고, 굳이 국토를 횡단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할 필요는 없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는 개통된 뒤 한동안은 신설된 고속버스를 이용한 개인 여행용으로 주로 쓰였으며, 생각보다 화물 운송로 기능은 많이 하지 못했다. 경부고속도로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자동차 구매 수요를 높여 경제 발전에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마이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그다지 표가 나지 않는 기존 도로 포장 대신 거대한 고속도로 건설을 선택한 건 선전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당시 정부·여당에서도 반대론 비등

또한 "우리 힘과 기술로 이뤄낸 대역사"라는 신화는 어떤가? "우리 힘과 기술"이 사용된 점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부실함과 희생도 따랐다. 부족한 예산과 공기 단축이 가져오는 선전 효과 때문에, 청와대와 현대건설 회장실에서는 매일처럼 "더 빨리, 빨리!"라는 독촉이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휴일도 없이 매일 19시간 이상 작업하느라 사고가 잇달아 77명이라는 고귀한 생명이 공사 현장에서 스러졌다. 또 고속도로의 핵심인 중앙분리대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중앙선을 넘는 차량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도로 전체가 부실 덩어리였으며, 개통 뒤 1년부터 보수 공사가 시작돼 10년이 지났을 때는 보수 비용이 고속도로 건설 총비용을 훌쩍 넘길 정도가 됐다. 정주영이나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처럼 공사 기간을 1년이나 단축한 고속도로 건설이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전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고, 그것이 '게으른 한국인'을 '근면한 한국인'으로 탈바꿈시키고 마침내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정신적 자원을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비합리적인 '하면 된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빨리 빨리'였던가.

많이 언급되는 신화 중 하나는 아마도 "당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았다"는 신화일 것이다. 당시 김대중 신민당 의원이 건설 현장에 드러누워 공사를 방해했다는 유언비어가 아직까지 진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충분히 타당한 근거를 갖고 반대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에 반대한 사람은 야당뿐만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에도 있었다. 애초에 박정희가 오랫동안 고속도로 건설 구상을 비밀에 붙였던 까닭이 정부와 여당의 반대를 예상해서였다고 볼 만큼 예산 확보나 실용성 문제를 들어 반대하는 공무원과 여당 의원도 많았다. 그래서 박정희는 '국가기간고속도로 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어놓고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사실상 청와대 단독으로 건설을 밀어붙였다.

김대중을 비롯한 야당의 반대론은 △첫째 IBRD가 국토횡단 노선 건설이 더 효율적이라고 분석했음에도 국토종단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은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둘째 부동산 과열과 특정 기업의 비대화를 초래한다 △셋째 지나치게 빠른 도시화를 부추겨 농어촌이 피폐해지고 도시 인구 유입이 증대된다 등이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이런 문제점은 모두 타당성이 입증됐다.

건설부는 이에 대해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권역에 당시 국민총생산의 66%, 공업 생산의 81%가 집중돼 있으므로 그 권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절실하다는 해명을 했다. 하지만 이는 숫자놀음으로, 서울~강릉, 포항~광주 권역을 연결해도 비슷한 수치가 나올 것이었다.

또한 호남고속도로 등을 추후 착공하고 국민소득과 정부 예산이 워낙 적은 상황에서는 균형 발전에 충분한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고 변명했으나, 지역 불균형은 경부고속도로 이후 급속도로 심화돼 경제 규모가 커진 지금에는 오히려 예전보다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고속도로와 함께 깔린 '환상적인 정경유착'

그렇다면 당시 박정희 정권이 IBRD, 야당 그리고 정부·여당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여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단 IBRD가 권고한 대로 동서를 횡단하는 노선을 중심으로 일반 노선 증설 공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무튼 도로 증설은 필요했으며, 야당도 그 점에는 충분히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도권에서 강원도의 발전이 뒤처지지 않고, 영남과 호남의 공업지대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지역 격차가 불거지지 않는 균형 발전이 차근차근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도시화와 수도권 인구 집중도 좀더 완만하게 진행돼, 오늘날만큼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고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는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력 집중과 부동산 투기 과열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기로 본격화한 만큼, 다른 식으로 도로 건설이 이루어졌다면 이런 부작용이 지금만큼 심화돼 빈부 격차와 사회 불안 요인이 될 뿐 아니라 한국 경제를 해치는 병폐로 잠복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당시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서울 양재동의 땅값은 순식간에 수십 배로 뛰어올랐다.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박정희 집권기에 전국의 평균 땅값은 180배가 올랐는데 이는 같은 기간 예금 소득의 10배에 달한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 정책보좌관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폭을 보면 박정희 시대에 이룩했다는 소득 성장이 대부분 거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땅값 상승을 촉발한 계기가 바로 경부고속도로였다. 또한 이를 계기로 현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로 성장하게 됐으며,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정경유착'이 한동안 한국 경제 발전의 모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운영 스타일이 '리더십'으로 인식되고, 여당은 무조건 밀어붙이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식의 비생산적 갈등이 한국 정치의 상식처럼 굳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의 말처럼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포함한 국토개발계획은 민족사의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사업이었다. 그 사업에 정권 바깥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대통령 한 사람과 그를 추종하는 관료 및 기업인 몇몇의 목소리 외에는 깡그리 무시됐다. "소통할수록 효율은 떨어진다"는 것이 경부고속도로를 '성공리에 건설'한 박정희와 그 추종자들이 얻은 교훈이었으며,

따라서 이후 정치를 갈수록 일방통행식으로 몰고 가게 됐다. 이러다 보니 야당 쪽에서도 여당이 제기하는 정책을 합리적으로 논의하기보다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것을 '선명 야당'의 자세로 여기는 패턴이 굳어졌다.

정치적으로는, 지역감정만 잘 활용하면 선거에서 백전백승할 수도 있는 구도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소외당한 지역의 설움도 그런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정치 풍토를 더욱 공고히 하는 재료로 쓰였다. 따라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 정치의 중요한 병폐 또한 없었거나, 훨씬 덜한 상태로 존재하게 됐을 것이다.

철학도 영혼도 없는 '빨리 빨리' 세계관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싹을 틔운 '하면 된다'와 '빨리 빨리' 의식이 한국인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지면서 이후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룩하는 코드가 된 한편, "무조건 이기면 장땡이다" "큰일을 하려면 사소한 문제는 잊어라" 등의 처세술이 꽃피게도 했다.

공작정치에 흑색선전을 해서도 선거에 이기면 그만이다. 뇌물을 먹이고 부실 재료를 써도 대형 공사를 따내면 그만이다. 입시부정을 해서라도 명문대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표절하고 사재기를 해서라도 베스트셀러를 만들면 그만이다···. 정부에서 민간까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일단 길부터 닦고 보자! 그 길이 꼭 필요한 길인지, 그 길에 문제점은 없는지 따위는 나중에 고민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철학도 영혼도 없는 세계관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 세계관이 다리와 백화점을 무너지게 했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까지 초래했다고 하여 반성하던 시기도 어느새 잠깐이 됐고, 지금 바로 여기, 온갖 소통을 거부하며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붙이던 시절을 방불케 하는 일 추진 방식이 이 땅에 버젓이 재현되고 있다.


함규진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
한겨레21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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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 10-10-23 20:03
   
박정희가 싫어도 경부고속도로 깔아서 발전시킨건 인정해야겠죠
ㅇㅅㅇ 10-10-23 20:04
   
잘한건 잘한건데 못한것도 인정해야죠 우리나라는 정치를 신앙수준으로 하는듯 이당이고 저당이고
     
bullet 10-10-23 20:09
   
그렇겠죠. 경제발전시킨 것과 국헌 참절한 행동을 동일선에서 보는건 무리가 있으니까요.
유시민 표현을 빌리자면 성공한 독재자랄까..
ㅇㅇ 10-10-23 20:21
   
장하준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설명했듯
그리고
한국 고도성장기, 지금 중국
지난 15년 한국, 일본을 봐도
고성장 고인플레가
저성장, 저인플레보다 훨씬 낫습니다.

특히 임금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이라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근데 지난 15년간 한국은 외국인노동자 유입 + 비정규직 양성 + 정리해고자 증가로 임금이 억제되었는데
그동안 국제원자재 가격, 부동산 가격만 올랐으니
대다수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수준이 내려갔죠.
흘흘 10-10-23 20:27
   
한결레에서 나왔으니 당연한 기사지...
ㅇㅇ 10-10-23 20:33
   
타이밍이 국운을 가릅니다.

한국은 1965년에 일본에게서 배상금을 받고 그 돈 가지고 일본에서 기술, 설비 사와서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했는데
한국전쟁으로 일제시대 산업기반 다 말아먹지 않거나
이승만 시절에 제대로 정책 추진해 10년만 더 먼저 산업화를 추진했다면,
그래서 90년대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껴서 무역수지 적자 증가해 IMF 간 실패를 피해가
계속 고도성장했다면 이미 1인당 지디피가 프랑스, 일본, 미국 수준에 거의 다다랐을 것이고,

한국이 6, 70년대 경제학자들 말대로 (경제학자들이 쓴 글을 읽은 김대중 등 정치인들이 주장한 대로)
압축성장 대신 순차적인 발전을 추진해 중화학공업, 반도체 육성이 10년 늦었으면
21세기 들어 중국에게 기술적 우위가 아무것도 없어 지금쯤 대만보다 못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지금 세계는 새천년, 21세기 초반에서 거대한 산업변동, 역학변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만 삽질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분배하니 미래가 어둡습니다.

박정희 시절은 국민소득 100달러, 1000달러였으니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해 산업화 추진했다(세계 어느 나라나 산업화 전반기에 공통현상)고 쳐도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아직도 저임금 공장을 먹여살리고자 외국인노동자 수입해
내국인이 많이 일하는 일용직, 서비스업, 자영업에서조차 외국인과 내국인을 임금경쟁시키고,
박정희가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농촌을 잘 살게 할 길을 찾는 게 아니라 외국인신부와 외국인노동자로 지탱해 결국 문제를 더 키우고 후대로 미룰 뿐이니
지금 한국지배층이 박정희 시절 지배층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10-10-23 20:50
   
결과론일뿐이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논리지. 도대체 그 당시 ~~~이랬다면 ~~~이랬다 따위의 한심한 소리나 지껄이고 있으니 결국은 무능하다는 소리나 쳐먹는거다. 아무대안도 제시못하고 반대만 일삼던 짓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전혀 발전이 없지.
이런 10-10-24 00:33
   
하고자 하는 말이 도대체 뭐냐?
박통이 한 일이 하나도 좋은게 없다 뭐 이런 뜻이냐?
이런 후레자식이 있나! 이런눔은 말로 암만 얘기해도 안 통하는걸 누구나 알고 있다.
알더라도 한쪽만 보지 말고 전체를 알어야한다. 한심하고 불쌍한 자로다.
개대중이나 노가리같은 눔이 더 뛰어나다는 말을 하고픈거냐 아니면 북쪽이 똥돼지가족이
그립다는 말이야!
박통시절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말해보아라! 나같이 그시절을 살어온 사람은 다안다 이런말 하는 눔들은 저쪽이라는걸....저....북쪽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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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 10-10-24 19:07
   
한 정책이나 입장에 대한 반대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하나같이 좌빨이나 북한으로 매도하는건 파시즘과 다를 바 없습니다.
     
준표엄따 17-06-05 22:08
   
일제치하에서 일본에 충성혈서 쓰고 사관학교 입학하고 해방후 남로당 빨갱이 출신 주제에 불법쿠데타 일으켜 지 독재하는데 방해된다고 멀쩡한 사람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키고 여대생끼고 시바스리갈 마시다 지 부하한테 총알 맞고 뒤진 다까끼마사오를 아직도 추종하는 노예들이 있다니...당시 경부고속도로도 지방에 따라 불균형이 생길까봐 노선을 좀 조정하자고 한걸 반대했다고 왜곡하고 ...편한대로 생각하니 기분 좀 좋아요?...ㅉㅉㅉ
     
준표엄따 17-06-05 22:12
   
도데체 다까끼마사오 비난하거나 부정하면 왜 북쪽이 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 좀 해보쇼.
멀리뛰기 19-07-09 23:35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늦춰졌다면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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