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이곳에
삼국사기를 탈탈 털어서
ㅡ 고구려와 낙랑, 대방
ㅡ 백제와 낙랑, 대방
ㅡ 신라와 낙랑
ㅡ 고구려와 백제
ㅡ 백제와 신라
ㅡ 신라와 고구려
ㅡ 백제와 마한
ㅡ 신라와 마한
ㅡ 고구려와 마한
관계 기록을 모두 발췌해서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의 고찰에 근거한 것입니다
0. 소서노의 백제가 졸본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 가능성, 소서노 무리가 이탈한 시기와 유리왕 천도 시기가 겹치고 소서노의 초기 백제는 규모가 크지 않았을 가능성
1. 초기 백제의 북부에 말갈, 고구려가 존재
2. 초기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존재
3. 초기 백제 기사에 낙랑과 말갈이 관계돼 존재
4. 초기 백제 기사에서 신라보다 낙랑이 북쪽에 위치
5. 초기 백제 기사에서 낙랑이 200여 년 가량 증발 후 재등장
6. 신라 본기에서 고구려 낙랑 정벌 이후 낙랑 증발
7. 동천왕 평양성
8. 초기 백제 북쪽으로 고구려와 패수를 경계
9. 초기 삼국사기 기록에서 낙랑은 고구려의 서남쪽에 위치하다가 서쪽에 위치
10. 낙랑이 초기 백제의 동쪽, 혹은 동북쪽에 위치하다가 재등장한 200여 년 후 다시 동북쪽에 위치하는 정황
11. 고구려가 요동ㆍ현도를 치는데 거기서 낙랑태수 처자가 등장하고
12. 고구려를 치는데 현도에서 낙랑태수가 등장
13. 고구려가 이미 3세기에 요동까지 진출한 정황
14. 백제가 요동남부와 한반도 두 곳에 거점을 뒀다가 그 초기 역사, 그리고 대륙과 한반도 역사를 한 데 합쳤을 것으로 추정
등을 삼국사기에서 확인하였고
한서 지리지, 후한서 군국지, 진서 지리지, 위서 지형지, 수서 지리지, 요사 지리지 등을 비교 고찰한 결과
0. 요동군 동북에 현도, 동남에 낙랑
1. 현도를 앞 세워 현도, 낙랑이 한 요동군 지역으로 교치된 후
2. 한 요서군 지역을 거쳐
3. 4세기에는 한 요서군 지역의 서남쪽으로 교치돼
4. 5세기를 거치며 소멸된 정황
송사, 남제서 기록에 백제가
1. 요서를 거쳐
2. 하남과 산동 일대에 출현하는 정황
등을 근거하여 가정한 것입니다
낙랑이 살수 이남에 재등장하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기록은 위서 동이전의 기록을 삼국사기 사서 기자가 채택한 것으로 보임
낙랑이 재등장 하면 백제 본기에 낙랑이 등장해야 하는데 200여 년 간 깜깜 무소식
위서 동이전의 한 기록은 삼한을 다소 미발달 지역으로 기술했으나
마한 지역의 기원전부터 ~4세기의 성, 주거 유적은 그 기록에 부합하지 않음
대표적인 게 풍납토성
또 평양 낙랑계 무덤이라는 것을 제하고
평안도에서 황해도까지 산재한 2~4 세기 고구려계 무덤은 무엇으로 설명 할 거임?
평양 무덤들에 대해서도 문성재 박사가 최근에 잘 정리해서 발표한 바 있음
아니 그러면 백제와 고구려를 사이에 두고 요동ㆍ현도가 낙랑과 막혀 있었다는 말이냐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현대의 감각을 고대의 감각으로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경계라는 게 선이 아니라 면이었고 그 면 지역을 말갈이 활보하고 다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