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칼럼 통해 “노무현은 공산주의 변호”, “성공한 대통령 아니었다” 강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영화 <변호인>의 흥행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여부를 관망하다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모으고 역대 한국개봉영화흥행 순위권에 오르자 간부들이 직접 영화비평에 나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여론과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는데 근거가 빈약하다.
조선일보 김창균 부국장은 22일 칼럼 <부림 사건의 두 가지 얼굴>에서 극 중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의 실제 모델인 노무현 변호사가 부림사건 피고인들이 권유한 서적을 읽었다며 “피고인들이 담당 변호사를 의식화하는 데 성공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속물 변호사가 피고인들에게 휘둘렸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의식화’란 단어를 고른 것이다.
고문으로 위축된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를 두고는 “부림사건 피고인들은 재판정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당당하게 설파했다”고 주장하며 “영화는 왜 이렇게 피고인들을 왜소하게 그려냈을까. 피고인들에 대한 연민을 이끌어내는 한편 경찰·검찰·판사가 합작으로 용공 혐의를 조작한 것처럼 만들어 분노의 스파크를 일으키자는 계산을 했음직하다”고 주장했다.
고문으로 위축된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를 두고는 “부림사건 피고인들은 재판정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당당하게 설파했다”고 주장하며 “영화는 왜 이렇게 피고인들을 왜소하게 그려냈을까. 피고인들에 대한 연민을 이끌어내는 한편 경찰·검찰·판사가 합작으로 용공 혐의를 조작한 것처럼 만들어 분노의 스파크를 일으키자는 계산을 했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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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2일자 30면 오피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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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부국장은 영화 속 노무현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부림사건 변론팀에서 보조적 역할을 맡았을 뿐이어서 당시 수사 검사였던 사람들은 노 변호사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영화 속 이야기가 100% 진실인 양 선전 공세에 활용하는 것도 안 될 일”이라며 “영화는 영화로 놔두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화를 영화로 놔두지 않는 것은 김 부국장 자신이다. 이날 칼럼은 부림사건 판·검사의 주장을 담은 20일자 <사실 비틀고 미화…부림사건 판·검사 영화 ‘변호인’을 반박하다> 기사와 이하원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이 “좌파 담론이 주류인 문화예술계”를 비판한 같은 날 칼럼 <보수가 주목해야 할 ‘변호인’>에 이은 공세의 연장이다.
동아일보도 변호인 공세에 가세했다.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은 22일자 칼럼 <노무현 아닌 송강호>에서 “부림사건 피의자들이 변호사 노무현을 좌경의식화 시켰고, 그것이 노무현 정치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밝히며 고영주 당시 부림사건 수사검사 말을 인용해 “노무현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당국이 사회과학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혐의를 조작한 사건으로 훗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조선·동아는 역사적 사건의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수사검사의 입을 빌려 30년이 넘은 사건을 또 다시 왜곡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사독재의 만행을 사실상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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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22일자 30면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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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이 영화(<변호인>)는 전형적인 상업영화다. 선은 극단적으로 선하게, 악은 극단적으로 악하게 그린다. 이런 신파 구도는 복잡한 진실과 인과를 담을 수 없다. 제작사는 허구라고 밝혔지만 형식적인 발뺌의 장치일 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잘 짜인 상업영화에 미화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품으로 잘 팔렸다는 뜻이다.
이는 배 주필이 “진짜 노무현은 영화 속에 있지 않다. 노무현은 2009년 5월 29일 부엉이바위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세계가 현실 속에서 보아온 그 인물”이라며 영화관을 나온 관객들이 노무현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코 동원으로 이뤄낼 수 없는 천만 관객이란 숫자 앞에서, ‘노무현’이란 상품이 잘 포장됐다고 인정해야만 지금껏 노무현에 대한 비판·비난을 퍼부어온 자사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보수언론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보수언론의 이 같은 방어적 칼럼은 영화를 본 관객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옹호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는 관객들을 무시하는 단편적 시선이다. <변호인>의 흥행은 시대의 정서에 비춰봐야 한다. 국가기관이 대통령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주류언론이 대통령에게 찬양일색의 보도를 하는 상황에서 1981년은 2013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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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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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다시 노무현이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낭만적 바람이 아니라, ‘우리는 왜 1981년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는가’라는 성찰적 물음을 남긴다. 영화의 흥행은 지난해 12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노무현이 나온 영화가 흥행하면 노무현에게 유리하다’는 1차원적 전제에 머무르니 칼럼에 발전이 없다. 이와 관련 한겨레신문은 21일자 사설에서 <변호인>에 대한 보수언론의 칼럼을 두고 “영화 속 진실조차 두려운 자들의 비겁한 변명”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겁한 변명의 ‘수준’마저 안타깝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23일 칼럼 <‘변호인’의 요트와 고문>에서 “요트를 즐기는 장면까지 담았더라면 영화적 재미를 살리는 데 더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적었으며 “영화에서 꽤 길게 이어지는 잔혹한 고문 장면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문 사실은 맞지만, 고문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 불만이라는 투였다.
황호택 논설주간은 이어 “나는 노 변호사가 자루에 담을 정도로 돈을 벌고, 나중에는 인권변호사로서 이름을 높인 성공한 변호인이었을지는 몰라도 성공한 대통령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 영화를 이용해 노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쪽이 정치적인 힘을 결집하려 든다면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분명하게 가려줄 필요가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황호택 주간의 생각과 달리 영화를 본 그 누구도 노무현을 추억하며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변호인>을 두고 조선·동아가 보여준 일련의 칼럼은 독일 나치당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2차 대전 당시 거리마다 붙였던 다음의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복수는 우리의 미덕, 증오는 우리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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