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나 미아리 같은 집창촌이 일제의 잔재라는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거 같다.
뭐 매춘이라는게 조선시대에 없었다는 얘길 하려는게 아니다.
엄연히 관기도 있었고 떠돌이 낭사당패에 의한 매춘도 있었고 동네 무당이 매춘을 겸하기도 했고
등등 조선시대에도 엄연히 매춘이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집창촌은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고 운영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통적인 기예 중심의 조선 기생들이 망하게된다.
일본은 지금도 그렇치만 예전부터 성을 구입하는 방식을 각 개인별 또 비용별 아주 세세하고 효율적으로
발전시켜왔다.
한곳에 매춘 여성들을 모아놓으면 관리면에서나 손님입장에서나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집창촌을 상상조차 못했을때 일본인들이 집창촌을 대거 차리고 싼가격에
효율적으로 한 차례 성욕을 해결할수있는 시스템을 만든거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심각했다.
아니 애초부터 여자들을 집단적으로 한곳에 반강제적으로 잡아 가두고 공중변소마냥 사용한다는
그 사고방식이 틀려먹었으므로 필연적으로 오는 결과 였을 것이다.
불과 이삼십년전만 하더라도 봉고차로 부녀자 납치해 사창가에 팔아넘기는 일이 신문에 나오던 때이니
백몇십년전 일제가 막 집창촌을 이 땅에 만들 시절에는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