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작성된 (선동)유인물>
차량을 접수,제공하라
폭약이나
총기류를 시민군이 가져야한다
주변의 관공서와 악질 기업주집에
방화하라
조금만 견디면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고 해방정권을
세울수있다.
(손남승,5.18연구소)-범시민민주투쟁위원회
학생혁명위원회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무기를
제작하라! 다이너마이트,화염병,사제폭탄,불화살,불깡통,각종기름준비,
전시민
관공서를 불태워라! 차량을 획득하라! 특공대를 조직,군무기를 탈취하라!
아! 형제여! 싸우다 죽자!
(최정운,5.18 민중항쟁과
절대공동체의등장)
도청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나기도했다
오발을 하거나 재미로 한방씩 쏘아보기 때문이었다.
더 기겁을 할일은 수류탄을 차고다니는 꼴들이었다.
안전핀고리를 그렇게 차고 다니는 고린줄알고 그 고리를
줄래줄래 꾀어 달고 다니고 있었다.
그게 뽑히는 날에는 떼죽음이 벌어질 판이었다.
그리고 총 파지법을 모르기 때문에 대작대기 들듯 들고
휘젓고 다니는데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송기숙,5.18연구소)
친구와 함께 2인1조가되어 학동교회 옥상으로 가려는데
목사가 못들어가게 했다. 목사는 계단의 핏자국을 보여주며
어떤 고등학생이 자신의 발에 오발하는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최남식,5.18연구소)
21일 용봉 국민학교 철도변근처에서 나는 거기서
택시를 탔는데 운전수가 타라고 하면서 시민군에 징집된 차량처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징발 당한다고 했다.
(정상현,5.18연구소)
주유소 주인들이 대부분 시위대 차량에 기름을 조금씩밖에 넣어주지 않았다.
다른 시위대 차량이 와서 기름을 달라고하는데 없다고하면 격해진 시위대가
주유소기름들을 막무가내로 부숴버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기름을 분재해주었기때문에 금방금방 기름이
떨어졌고 그럴때마다 차를 팽개치고 다른차를 타곤했다.
(윤석진,5.18연구소)
당시 총을잡았던 사람들은 수탈받고 착취받는 계급이었고
사회변혁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사는 사람들은 집에 숨어서 지냈다는 것이다.
(전용호,1988년 9월)
5월 20일 피신하기로 결정했다.
담양으로 나가는 길목은 피신하는 시민 학생들이 많았다.
차를 탈 수 없어 많은사람들이 걸었다.
(임낙평,1988년 9월)
지원동에서 배추장사를 하던 사람이 트럭에 치여 죽었다고 했다.
그 사람은 계엄군이 아닌 시민군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돈을벌려고
장사하는것이 얄미워 일부러 치었다고 했다.
(최남식,5.18연구소)
고등학생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시민군들에게
제공할 쌀을얻었다
(최지수,5.18연구소)
방림동에서 쌀을 가져가라하는데 차가 없어서
가져올수 없다며 나더러 기동타격대 차를타고
쌀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후에
그사람들은 나를 강도로 매도했다.
내가 총으로 사람들의 배를
위협하고
쌀내놔라며 갖은 협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구성주,5.18연구소)
우리가 맨먼저간곳은 중앙고속터미널 이었다.
터미널홀에 차 몇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키를 모두 뽑아가버린
상태였다.
"시위차량이 부족하니
그레이하운드를 좀 내주시오"
"차를 줄 수
없소"
그 말을 들은 100여명의 흥분한 사람들이 세워놓은 차에
달라붙어
밀기시작하였다. 어떻게 된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중앙고속 건물안으로 들어가
회사기물과
기타 시설물들을 모두 부숴버렸다.
(윤석진,5.18연구소)
주유소에는 사장은 없고 부인과 종업원1명이 있었다.
"기름좀 주시오"
"없어요"
"비상탱크것좀
주시오"
"비상탱크도 없어요"
그것을본 일행중 한사람이 각목으로 유리창을 박살내버렸다.
그때서야 놀란여자는 비상탱크에 있는 기름을 주었다.
(허춘섭,5.18연구소)
한쪽에서 아이스크림도 놔두면 다 녹으니 가지고 가서 사람들이나
먹게하자고 했다. 우린그때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윤기,5.18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