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 교조적인 조선 주자학 문화에서 흘러 나왔다고 저는 확신해요.
어느 쪽이든 방향이 확고한 사람은 어떻게든 보답을 받는 시스템이 기백년을 내려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어요. 훈구와 사림의 사이에서 양시론을 주장했던 김안로는
감간지고와 비방지목을 들고 나온 사림의 거두 조광조에게 박살이 나고
양쪽에서 소인배로 낙인찍혀 정상적 정계활동이 불가능했던데서 보듯이 어느 쪽 파당을 짓
지 않으면 그나마도 인간취급받지 못하던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양비론이나 양시론 같은 타협적 중립입장
은 그래서 지금도 크게 환영받고 있지 못하죠. 그렇게 빨던 유학의 가장 쓸만하고 고결한 이념이라 할수있
는 중용은 정작 제대로 자리도 못잡고 관념의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괴괴하게 떠돌고만 있습니다.
이게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냐 되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지만 유독 심하다는것은 확신이 들어요.
그나마 중도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양비론은 내세울지언정 양시론을 내세우는것은 보지 못했고.
하기야 양시론은 일정한 정치경제적 소양이 있어야 가능한것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결국 한반도는 그래서
상반되는 이념때문에 땅덩어리가 둘로 갈라져 있지않습니까. 그런데 그걸로 그치면 그만인데 남쪽은 다시
두 쪽이 나있는 상태이고. 그래서 어렵죠 대단히. 또다른 예로 남북 중도적 입장에 있던 김구선생의
비극적 결말을 생각해 보죠. 백범은 이념보다 통일이 우선이었는데 그를 위해선 타협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남북 양쪽은 용납할 생각이 없었죠. 그러다 흉탄에 유명을 달리했는데. 다만 역사적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백범의 경교장이 서울이 아니라 평양에 있었다면 무사히 지내다 천수를 누리고 가셨을까
요. 중도론자도 아니요 노선만 조금 다른 이른바 같은편 이었던 박헌영도 만만치 않은 그 세력을 가지고
도 일거에 목을 벤것이 김일성 치하의 평양인데. 이런 역사의 교훈이 중도를 죽이고 어느쪽이든 매파들이
득세하는 곳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본격적인 타협의 역사는 아마도 제가 죽고 언제가의 미래에 언로가
자유로운 남쪽에 의해 일방적 통일이 이뤄지면 그때부터 만들어져도 만들어질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언로가 자유로운 체제를 그 이전 까지남쪽이 계속 유지할 수 있다라는게 전제가 되야 하겠지만.
그때 까지는 언제까지고 시끄러울 겁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려버리는데 우리 사회는 그
미꾸라지를 합심해서 때려잡는데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냥 오염된 흙탕물안에서 괴로워 하며 더러운 개울
을 탓하고 말지. 저만 해도 술자리에선 상대가 어느쪽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거기에 맞춰줍니다. 정치갖고
지인이랑 싸우지 않는다는게 제 개똥철학이구요. 왜냐하면 저도 백범만큼이나 이념보다 술이 더 좋기
때문에. 다만 이런 익명의 섬에선 편하게 제 속내를 드러냅니다. 제겐 술 > 이념, 자유 > 획일
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