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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0 00:46
WP "한국은 전세계서 가장 성공한 '금메달 국가'"
 글쓴이 : 묵객
조회 : 6,926  

평창 동계 올림픽을 주최하는 한국은 전 세

계의 모든 국가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금메

달 국가라고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 주장

했다. CNN에서 ’파리드 자카리아

(Fareed Zakaria)의 GPS’ 프로그램을 진

행하고, 워싱턴 포스트(WP)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자카리아는 8일(현지시

간) WP에 게재한 ‘한국에 금메달을 주

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세계 현대사에서 한국이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국가이고,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국가라는 게 그의 평가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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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18-02-10 00:50
   
칭찬  참 지리게  하네요.감동~!
G평선 18-02-10 00:56
   
반대로 말하면, 민주주의를 모욕하고 훼손해온새키들....  이명박근혜, 신한국왜누리자한당것들....

이것들을 치웠더니,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스크레치 18-02-10 01:08
   
전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식민지배 -> 바로 같은민족끼리 전쟁으로 그나마 남아있던거 초토화



거의 맨몸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이후 약 60여년만에 세계 주요 경제대국에 주요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여기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민주화까지 쟁취한 나라는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볼수 있으니


금메달이라고 봐도 될거 같습니다.
인생재발신 18-02-11 06:54
   
근대 국가 중에서 애초에 민주국가는 있었지만
독재에서 민주화를 이끌어낸 나라가 없긴 없나봐요?
굿잡스 18-02-11 16:31
   
현대사에서 남북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에 또한 전쟁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더구나

쨉의 악랄한 천문학적 조세,식량,산림,수자원,농축산 수탈과 나치가 유럽 전역에 가한 강제노역

보다 더 대규모의 악랄한 수백만의 강제징용 및 수십만의 성노예, 전쟁총알받이, 우민화, 식민 교

육,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반세기만에 이런 빠른 고도 경제 성장과 더불어 민주주의라는 양대산맥을 이룩하면서

불사조처럼 다시금 우뚝 일어선

배경에는 미국의 현실적 지원 역시 부정할 수 없지만 미국의

지원덕에만 이루어졌다는 식이면 지금 세계에 식민지 아픔을 겪고 잿더미에서

이런 경제와 민주주의 양대산맥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가 사방에 널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자체의 내재한 역사,문화의 역량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새삼 말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군요.(사실 근현대사에서

미국은 우리에게는 공과 실을 함께 준 나라로

전범 쨉과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이나 영미가 대규모로 쨉에 차관과 군사 무기를 지원

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쨉이 대한제국을 강점할 수 있었던 토대에 남북 분단 역시도

비록 잠시 해방을 맞이 했지만 정치적 공백상태에서 이런 열강들에 의해

분단된 국제적 측면이 강함)


이미 우리는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와 열도를 아우르는 수천년간 독자적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을 이룩하며

동북아 최강대국에 올랐던 나라였고 유럽의 최대 도시라는 로마 이상의 대도시문명을

이미 삼국시대 5개 이상 구축하며 뛰어난 기술과 역량은 이후 근세조선시대에서도 동북아에서

독보적 세계사적으로 발달한 선진 공론정치와 관료체재, 경국대전에 의한 선진 법치 사회시스템과 발달한 교육

제도를 이룩한 문화적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


옛날에 환인(桓因)의 둘째[3]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4]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고조선 건국신화


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

우리 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일러서 풍류(風流)라 하였다.

設敎之源이 備詳仙史하니 實乃包含三敎하야 接化群生이라.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는데, 실상인즉 세 가지 교(유, 불, 선)를 포함하여 인간을 교화하는 것이다.

 且如 入則 孝於家하고 出則 忠於國은 魯司寇之旨也오.

 말하자면, 집에 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유교(노사구(魯司寇:孔子))의 뜻이요,

 處無爲之事하고 行不言之敎는 周柱史之宗也며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이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도교(노자)의 교훈이요,

 諸惡莫作하고 諸善奉行은 竺乾太子之化也라.

 모든 악행을 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불교(석가)의 교화이니, 즉 이와 같은 것들이다

-최치원 '난랑비 서문'


중·일엔 없는 선비의 공론정치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성리학의 영향, 특히 공론(公論)의 강도는 조선·명·에도막부가 달랐다. 에도막부에선 5~6명의 로주(대신)가 비밀 회합으로 대소사를 결정했다. 공론은 없었다. 황제의 권한이 강했던 중국에선 공론이 사실상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만 공론을 지켜냈다
 
http://news.joins.com/article/14101382
 

587년 전 세종이 국민투표를 실시한 까닭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ec1963&logNo=220959591555
 

세계최초의 민중? 서명운동, 조선시대 만인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7828&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1
 

동아시아 대표적 삼국중에서 이런 조, 명,왜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된 독보적 공론정치의 선진 정치 시스템을

구현한 나라는 조선뿐이라는게 여러 전문가의 일치하는 견해군요.

(왕조시대다 보니 오늘날 우리의 국민주권 직접 민주주의에는 못미치지만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의 공론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당대 세계사적으로도 선진적

공론 정치구현)

이는 질이나 내용에 있어 조선의 정치 시스템을 보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조선의 대표적 언론삼사(言論三司)로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의 언론 기관이 이런

왕의 전횡을 막고 다양한 언론과 민심을 왕에게 전달할 수 있는 출입구를 만들어

확립된 선진적 나라였던데 비해 당시 명나라는 승상의 2인자도없이

통치자 1인독재 체재에 도찰원이라는 감찰기관을 두고 과거 구소련이나 지금의 짱국

공산당과 다르지 않는 전횡을 일삼던 정치 시스템.


그리고 조선의 언론기관중 홍문관의 경우는 조선만에서 보이는 특별한 기관으로

왕의 경론 연구기관적 성격이 이후 정치적 조언등으로 확대되어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왕에게 간언할 수 있는 형태로 자리잡은 조선만의 독특한 정치 언론기관이군요.

그리고 이런 삼사가 이후 중기로 가면서 정치적으로 변질 이용되자 이후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으로 진화했고 특히나 이런 격쟁은 백성들이 문서가 아닌

직접 현장에서 왕에게 목소리를 내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상당히 파격적, 오늘날에도

쉽게 보기 힘든 민주적 언쟁 자리였군요.


그리고 이게 이후 대한제국 시절에는 만인공동회로 이어지는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공론장의 표본들은 남긴 정치 역사를 이어갔던 것이고.


세계 최초의 평민교육기관-고구려의 경당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47AT/27?q=%BC%BC%B0%E8%20%C3%D6%C3%CA%C0%C7%20%BC%AD%B9%CE%20%B1%B3%C0%B0%B1%E2%B0%FC%20%B0%E6%B4%E7
 

그리고 우리는 이미 1500여년전에 귀족뿐 아니라 서민을 위한 교육 기관을 두고

이런 교육에 대한 투자와 중요성은 이후 중세와 조선를 지나 현대에까지도 이어져

왔군요.


이런 우리 고조선 건국의 수준 높은 통치 이념과 철학에 바탕한 인본주의 정신이 이후

왕조시대에도 계승되어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 공론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공론 정치 시스템을 구현한 근세 조선과

백성을 애민이 여겨 백성을 위해 한글이라는 과학적인 문자의 탄생과 세계최초 금속활자의

발명등 세계활자 종주국으로써의 문화적 역량등이 합쳐져

비록 우리가 직접 일본이라는 국호를 세우고 수천년간 선진문화를 전해준

쨉에 의해 35년 쨉강점기라는 반만년 역사에서 유례없던 국호까지 지워지는 치욕의 암흑기와

남북 분단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이런 오랜 뿌리의 깊은 철학과 문화의 저력이 있었기에

20세기 반세기만에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나 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기적같은 양대산맥을

동시에 이룩할 수 있었던 토대들이 되었지 않나 싶군요.
굿잡스 18-02-11 16:37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자존심마저 겸연쩍게 만든다. 조선 사회에서 문맹자들은 심한 천대를 받기 때문에 글을 배우려는 애착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도 조선에서와 같이 문맹자들을 가혹하게 멸시한다면, 경멸을 받게 될 사람이 허다할 것이다.
 
-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


조선시대 한글 활자 인쇄본들

http://decentliar.tistory.com/601
 

오늘날 책대여점같은 조선시대 세책점(아녀자도 소설을 읽고 오늘날 넷에서 댓글 달듯

책에 댓글 놀이도 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mcschool&logNo=220808791129
 
당시 이정도의 문명률(글을 아는 수준)이면 세계사에서도 탑클래스군요.

(비록 근세 조선이 말기에 우리가 일본이라는 국호와 도시문명까지 건설해주며

수천년 신속하고  살던 왜에 35년 잽강점기의 치욕의 오점을 남긴 왕조이지만

괜히 문에서 선진강대국이자 방대한 인쇄문화에 코리아가 세계활자 종주국이 아니군요)


조선의 과학수사 수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129&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3
 



1577년 조선의 <민간인쇄 조보>, 세계 최초 '활판 상업일간신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28988&CMPT_CD=P0001
 
이외 근세 조선이 비록 서구의 기계동력 기술과 무기의 교류가 늦어진 부분은 크지만

사회 전반적 문화상은 이미 다방면에서 선진적이였군요.




이미 현금인출카드를 쓰던 조선왕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0154&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중, 일, 베등 동아시아 의학에도 영향을 준 세계 최초 공중보건의서 '동의보감'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東醫寶鑑)」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하였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980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8F%99%EC%9D%98%EB%B3%B4%EA%B0%90&sop=and
 

이런 공중 의서의 편찬과 상업의 발달에 따라 조선은 이미 18세기에

의약 분업 즉 진찰은 의원에게 약을 약방에서 찾는 형태가 나오는데 유럽은 이런건

19세기 이후로 가서야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회상


조선! 세계 최초의 음식 배달 문화를 시작하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2181&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조선시대의 맛집소개서 / 미슐랭 가이드 ‘효전산고’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0027&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유럽따위 씹어먹는 조선의 빈민구제소 수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3930&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2
 

고려 '사개송도치부법' 서양보다 무려 2세기 앞선 근현대적 회계 복식부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41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84%A0+%EB%B3%B5%EC%8B%9D%EB%B6%80%EA%B8%B0&sop=and


황태연 교수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800년까지 중국 또는 동아시아의 1인당 국민 소득은 영국과 유럽을 앞질렀다. 그렇다면 조선은?

◇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 비교


- 조선(1780~1809): 쌀 8.2kg
- 밀라노(1750~1759): 빵 6.3kg
- 런던(1750~1959): 빵 8.13kg

◇ 경작면적기준 총요소생산성 비교(1800년)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 1917년 1,021달러
- 1939년 1,459달러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 조선의 교육복지


┃세종치세(재위 1418~50) 이후 18세기까지 지방향교, 사학(四學), 성균관 등 모든 유생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숙식, 학비지급, 학전(學田)지급, 면세 및 요역면제.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원칙에 따른 것.
굿잡스 18-02-11 16:49
   
동북아 최강대국, 독자적 동방문명권을 구축한 고조선 고구려문명권.


신석기 혁명,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1669
 
 

고조선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등 분포도

https://blog.naver.com/itcoms0/220344390104?proxyReferer=http%3A%2F%2Fsearch.daum.net%2Fsearch%3Fw%3Dimg%26q%3D%25EA%25B3%25A0%25EC%25A1%25B0%25EC%2584%25A0%2520%25EC%2584%25B8%25EB%25A0%25A5%25EB%25B2%2594%25EC%259C%2584%26docid%3D33MvZ9OeFqASojmtT-%26da%3DIIM%26rurl%3Dhttp%253A%252F%252Fblog.naver.com%252Fitcoms0%252F220344390104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대 한류로서 갑옷문화의 국제적 위상(1)
고조선 갑옷이 중국에 준 영향

http://www.breaknews.com/sub.html?section=sc5§ion2=������/문일반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

위략 왈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북위)세종이 이르기를,“고구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海外)를 모두 제압하여 사나운 오랑캐인 구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였다
 
《후위서》

도표로 한눈에 보는 천년 사직 고구려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1002&logNo=30152299778
 

동북아 최강대국 고구려의 역대 전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890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A%B5%AC%EB%A0%A4+%EC%A0%84%EC%A0%81&sop=and&spt=-5409&page=1
 

근현대 독소전쟁 이전

고대사 세계 최대 대전인 2차 고수전쟁 수나라의 300만 대군은 얼척의 과장인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801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88%98%EB%82%98%EB%9D%BC+400%EB%A7%8C&sop=and
 


고구려 초기 2대 유리왕시절 축조되기 시작한 환도성

앞 궁궐 건물지 무려 90미터.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343393
 


고구려  5세기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우리 백제인에 의해 건립.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남북국 시대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3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sop=and
 

 
고구려는 안학궁으로부터 750m 떨어져 있는 유사시를 대비한 배후 산성이
 
대성산성으로 전체 9km가 넘고 둘레는 7km가 넘으며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
 
중으로,주작봉과 국사봉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에 내부에는 연못이 자그만
 
치 170여개가 존재.
 
http://blog.naver.com/bestchoi21/20018007630 -> 대성산성 사진


우리나라의 고대 도시 축조 역량과 위엄.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138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EB%B0%9C%ED%95%B4&sop=and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예군 묘지명에 적힌 ‘日本’은 ‘百濟’지칭”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42301032430074011
 

“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일 교수, 678년 ‘예군 묘지명’ 근거
“실제 일본은 해좌·영동으로 표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6435.html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 그의 조상은 시호가 민달(비타쓰(敏達))이라는 백제 왕족이니라. ‘속일본기’ 기록에도 부합한다.

-신찬성씨록(서기 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왕과 귀족 족보)


"제30대 비타쓰 천황(敏達·572~585 재위)은 나라(奈良)에 ‘백제대정궁(구다라오이궁 :百濟大井宮)’을 지었다”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제34대 조메이왕(舒明·629∼641 재위)도

"(우리나라 할때)나라의 ‘백제천(구다라강:百濟川) 옆에 백제궁(구다라궁; 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
 
-일본 서기
     
굿잡스 18-02-11 16:55
   
남북국시대(발해-신라)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한 신국(神國)의 신라.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제대로 상륙도 하지 못하고 박살난 일본, 결국 용서를 빌기 위해 서기 742년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 이를 기특하게 여긴 신라는 드디어 일본을 용서하고 속국으로서 인정한다. 서기 806년 속국에게 하교하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7년,
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으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되, 다만 수리하는 것은 허락한다. 또 수놓은 비단을 불교 행사에 사용하는 것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널리 알려 시행하도록 하라.』(七年春三月, 日本國使至, 引見朝元殿. 下敎禁新創佛寺, 唯許修葺. 又禁以錦繡爲佛事, 金銀爲器用, 宜令所司, 普告施行.)
 
- 사찰을 수리하는 것조차 '종주국' 신라의 허락이 없으면 감히 하지 못했던 일본. 이후 '속국' 일본에 대한 종주국 신라의 사랑은 계속되고… 신라의 어버이와 같은 사랑에 감동한 일본은 서기 882년, 보답한다.
 
헌강왕(憲康王) 8년,
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八年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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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최대 도시라는 로마를 상회하는 세계 4대 대도시인 신라 서라벌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urassicgump&logNo=220915736774


중국의 동쪽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떠나려 하지 않는다

-창세와 역사서<마크디시(al-Maqdi shi>


그곳(신라)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정착하여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곳이 매우 풍족하고 이로운 것이 많은 데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금은 너무나 흔해 그곳 주민들은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

-이드리시(이슬람 지리학자)-1154년에 신라가 포함된 지도를 만듬


신라는 중국의 맨 끝에 있는 대단히 좋은 나라다.

그들의 집에 물을 뿌리면 용연향(龍涎香 - 아주 좋은 향기)이 풍긴다고 한다.

전염병이나 질병은 드물며 파리나 갈증도 적다.

다른 곳에서 병에 걸린 사람이 그곳에 오면 곧 치유된다.
 
 
-무슬림이 남긴 것이라고만 전합니다-


중국 저쪽에 산이 많은 ‘신라(Shila)’라는 나라가 있는데

금이 풍부하고 물 맑고 공기가 좋아

한번 간 무슬림은 돌아오지 않는다

후르다드베(Ibn Khurdadbeh)의 '제 도로와 왕국 총람' (이슬람)


신라 서라벌에는 약 17만호의 가구가 있었다. 이는 대략 90만-100만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훗날 조선의 한양보다 4-5배나 더 많은 인구가 살았던 것으로, 혹자는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과 함께 서라벌을 당시 세계 4대 도시로 꼽는다.
 
 인구가 많다고 세계적 도시로 꼽는 것이 아니다. 신라, 특히 서라벌에는 초가집이 없이 모두가 기왓집이었다. 온통 금으로 뒤덮은 집도 수십채나 되었다. 그들의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신라는 차도와 인도가 나란히 잘 정비된 도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도 옆에 마차가 수월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바퀴 자국에 맞춘 도로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뚜렷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도로 옆으로는 배수구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다.
 
 우선 서민층 거주 지의 경우, 집집마다 우물 하나씩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 이처럼 서민층에서도 각 집마다 우물을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면, 당시의 서라벌이 얼마나 위생이 청결한 곳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온돌을 사용하지 않고 숯으로 난방을 했는데 이를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듯, 대규모의 숯 가마가 발견되기도 했다. 숯으로 난방을 할 경우, 매캐한 냄새가 나지 않고 그을음도 생기지 않으니 당시 사람들의 주거환경은 상당히 쾌적했을 것이다. 상류층 거주 지역의 경우에는 본채 건물 외에도 별채와 화장실까지 구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계획적으로 잘 정비된 도시였던 서라벌은 마치 바둑판과도 같은 형태로 도시 주거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방'으로 나뉘어지는 이러한 거주 구역은 한 방당 약 8천평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골목마다 출입문이 있어 치안상태도 좋았다. 그래서 '몇번째 골목, 몇번째 집' 하는 식으로 주소만 알면 집을 찾는 일도 매우 쉬웠다. 따라서 인구조사 또한 치밀하고 완벽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구당 가축의 수까지 세세히 기록해 놓았다.
 
 
천년 전의 도시가 오히려 지금의 대도시보다 더욱 계획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KBS 역사 스페셜>


해동성국 발해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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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남북국 시대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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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황실 조정내의 막강한 고구려계(발해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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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5부를 이은 발해 5경중 상경용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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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8-02-11 16:56
   
중세 고려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위로는 조정의 관리들이 위의가 우아하고 문채가 넉넉하며,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社)가 두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군졸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 자기 고장의 글 가르치는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의 내용)-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 했는데, 극동에 있어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도화견문지(1080년경에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책)


“옛 사서(역사책)에 따르면 고려의 풍속은 사람들이 모두 깨끗 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고려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한 뒤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고려도경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원풍 5년) '선조 시기에는 여진이 등주에 와서 항상 말을 팔았는데, 뒤에 마행도가 고려에 속하게 되어 막혀서 끊겨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조정이 고려와 왕래를 하는 데, (고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여진이 만일 중국에 말을 팔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길을 허락하도록 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끝내 여진의 사신은 오지 않았다.
 

-속자치통감장편
 

동북면병마사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삼산·대란·지즐 등 9개 촌락 및 소을포촌의 번장 염한과 소지즐의 전리 번장 아반이와 대지즐의 여나기나오, 안무이주의 골아이 번장 소은두 등 1238호가 와서 호적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대지즐로부터 소지즐 요응포 해변까지는 700 리에 걸쳐 장성이 수축되어 있으며 지금 오랑캐들이 줄을 이어 귀부해오고 있는 마당에 관방을 설치하여 그들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해당 관리로 하여금 주(州)의 명칭을 정해 보고하게 한 후 밀봉한 공문을 내려 주십시오.”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6월
 
 
​한림원에서,
“동여진의 대란 등 11개 촌락에서 귀부해온 자들이 자기들의 거주 지역을 빈주·이주·복주·항주·서주·습주·민주·대주·경주·부주·완주 등 11개 주로 정해줄 것을 요청해 왔으니 그들에게 각각 밀봉된 공문을 내려 귀주와 순주에 소속시켜 주십시오.”
  라고 건의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9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서여진의 추장 만두불 등이 동번(동여진)의 예에 의하여 주•군을 나누어 설치해 달라고 청하며
평로진 근처의 유원 장군 골어부 및 멱해촌의 요결 등 역시 부적하여 영원히 번병이 되겠다고 원하므로 호수가 35호이고 인구가 252명입니다. 청컨대 판도에 등재하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5월
 

동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삼산, 대란, 지즐 등의 마을 번장이 1238호를 가지고 와서 부적해주기를 청하니, 청컨대 유사로 하여금 주호를 아뢰어 정하게 하고 또 주기를 내리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6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장성 밖에 개간한 전답 11494 경은 청컨대 가을 수확을 기다려 군량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제가하였다.
 
-《동국통감》, 문종 27년 2월

송을 멸망시키고 서토를 지배하기 위해

북경에 세운 중도(중도대흥부 (中都大興府)) 건설의 총지휘자.

금나라 국무총리격인 장호(張浩)

금나라 요양(遼陽) 발해(渤海) 사람. 자는 호연(浩然)이고, 본성은 고(高)씨다. 경사(經史)에 정통했고, 특히 시에 뛰어났다. 태조에게 책략을 올려 어전문자(御前文字)를 담당하도록 명받았다. 태종 천회(天會) 8년(1130) 진사급제를 인정받고 비서랑(秘書郞)에 올랐다. 해릉왕(海陵王) 때 호부상서(戶部尙書)와 참지정사(參知政事), 상서우승(尙書右丞), 평장정사(平章政事),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했고, 연경(燕京)의 성곽과 변경(汴京)의 궁실을 증축하는 일을 전담했다. 세종(世宗) 때 태사(太師)와 상서령을 지냈다. 저서에 『화표산인집(華表山人集)』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07698&cid=42981&categoryId=42981
 
몽골제국의 5대칸이자 서토를 정복하고 원을 세운 쿠빌라이는

북방의 요와 이런 금나라 즉 신라계황제+발해인 연합의 도시문명과 인력의 강북 발판하에서

몽골의 칸에 오르면서 남송을 정벌,노예로 삼고 세계제국을 경영하는 중추 기반이 됨.




연해주 조선식 산성.

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 아르쩨미예바 연구원은 17일 인천광역시 인하대 60주년 기념관에서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술회의 발표를 통해 "요(遼)나라나 금나라의 유적으로 알려졌던 수류봉(峰) 산성(山城)에서 전형적인 한국식 타날(打捺·두드림) 문양의 기와들을 발견했다"며 "이 산성은 출토 유물과 성벽 축조 기법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6진 설치로 북쪽 국경이 확정될 때 방어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수류봉 산성은 연해주 하산 지구의 중국과 러시아 국경에 위치해 두 나라에 걸쳐 있다. 전체 둘레 길이는 727.5m이고 높이는 1.5~2m이다. 러시아 조사단은 작년부터 남문 터 안쪽에 4개의 초석이 있는 구역을 발굴했다. 두드려 낸 반호(半弧) 모양의 문양을 가진 기와와 옹기 조각이 대량 나왔고, '대왕(大王)'이란 한자 명문(銘文)도 발견됐다. 아르쩨미예바 연구원은 "수류봉 산성은 연해주 일대의 요·금나라 성벽과는 구조와 유물이 다르다는 데 중국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330568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313/61666261/1
 

女真酋長乃新羅人 (송막기문- 남송기록)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만주족은 신라로부터 나와..."
  因滿族自新羅、
  "신라성씨 김이 금나라의 원류이다."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로부터 왔다."
  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初從髙麗來

-청황제 칙령의 만주원류고 중


续资治通鉴 卷二百一十四 元纪三十二》记载:“后亦多畜高丽美人,大臣有权者,辄以此遗之,京师达官贵人,必得高丽女然后为名家。自至正以来,宫中给事使令,大半高丽女,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皆仿高丽,举世若狂。”
 
 

"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

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속자치통감 제이백일십사 원기삼십이]

 

《菽园杂记》::“马尾裙始于朝鲜国,流入京师……于是无贵无贱,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阁老万公安冬夏不脱……。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은 조선국(고려)에서 시작되어, 수도로 유입됬으며......귀천을 가리

지 않고 복식이 날 로 성했다. 성화말년에 이르러, 조정 신하들도 입게 되었

다. 각로만공안이 겨울에도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이 복식은 요사하므로,

홍치 초시에 금지되었다. 

[숙원잡기]

 

《寓圃笔记》:"发裙之制,以马尾编成,系于衬衣之内。体肥者一裙,瘦削者或二三,使外衣之张,俨若一伞。",

치마를 넓히는 제도는, 말꼬리를 옷안에 엮어서 만든다. 몸을 비대하게 만든

하나의 치마로, 마른사람은 혹 두개 세개를 입는다, 옷을 바깥으로 넓게 퍼

지게 만드는데 쓰는데, 우산과 같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4179&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B%A0%A4%ED%92%8D&sop=and
 


 ‘고려비색(高麗翡色)  천하제일(天下第一)’

-송나라 태평노인의 ‘수중금(袖中錦)’ 중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ullaw&logNo=220476237900 (중세 고려청자 사진)
 

동아시아 독보적 경지에 올랐던 고려 회화(불화)

http://cafe.daum.net/indelamang/1SaH/538?q=%B0%ED%B7%C1%20%BA%D2%C8%AD%20%B1%E2%BC%FA%B7%C2
 
http://blog.daum.net/migiro/1210


세계 최초 고려 금속활자 (세계 활자 종주국 고려)

http://cafe.daum.net/mujuseonwon/2lvx/7406?q=%B0%ED%B7%C1%20%BC%BC%B0%E8%C3%D6%C3%CA%20%B1%DD%BC%D3%C8%B0%C0%DA
 


고려 조선의 발달한 천문학.

1073년과 74년 <고려사>는 서양에서는 관측하지 못한 ‘신성’ 기록을 남겼다. 그뿐이 아니었다. 1592~94년 사이에도 역시 서양인들의 눈에 띄지 못한 객성을 4개나 관측했다. 특히 한 개의 객성은 15개월간 두 번의 연속된 기간에 걸쳐 관측됐다. 이 객성을 끈질기게 관측한 조선 천문학자들은 이 별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성이나 초신성이 아니라 고정별(항성)이라 판단했다. 그 판단은 옳았다. 그 별은 신성이나 초신성이 아나라 자체적으로 별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는 변광성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1572년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관측한 이른바 ‘티코 초신성’도 동시에 보았다. 또한 1604년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발견했다고 해서 ‘케플러 초신성’이라 명명된 초신성도 관측했다. 오히려 케플러보다 4일이나 먼저 관측하는 개가를 올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130916001&code=960100#csidx5886a16c17d6a568c85a6ae9120d139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alefarmer&logNo=221094800169


왜구 500여척을 몰살시킨 세계 최초의 고려 화포함대해전-진포대첩

http://gun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gunsan&dataType=01&contents_id=GC05700012
 

세계 도시와 비교한 고려의 도시규모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4
 
고려 문화의 포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015
서울남 18-02-11 16:51
   
똑같은 DNA를 가졌으나 김조선과 대한민국을 가른 이유?
김일성과 박정희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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